본문듣기

100만 원에 혹해 자동차 구입, 결국 압류당했습니다

[청년금융소외시대⑥] 금융 소외로 이어진 청년들의 '인식격차'

등록 2021.06.26 20:05수정 2021.06.26 20:05
4
원고료로 응원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가 운영하는 광주청년드림은행에서 제작한 일러스트. ⓒ 광주청년드림은행, 일러스트 작가 윤연우


"자동차를 정리하려는데 과태료가 있다는 거예요. 그 자동차보험 있잖아요. 꼭 가입해야 되는 건데 그걸 가입 안 해서 그런 거였어요. 의무가입인 줄 몰랐어요." 

광주에 사는 20대 동혁(가명)씨는 군대를 제대한 이후 고된 일터를 전전했다. 한때 경남에 위치한 조선소에서 배관 보조로 일하기도 했다. 당시 동혁씨는 각종 안전장비를 착용한 채 배관공을 따라 선박 구석구석을 기어 다녔다.

2016년 8월 조선소에서 함께 일했던 절친한 친구 A가 동혁씨를 찾아왔다. 두 사람은 군생활을 함께했고, 조선소에도 함께 들어갔다. A는 동혁씨에게 "서울에서 정착하려는데 돈이 부족하다"며 "대출이 나오지 않는 나를 대신해 대출을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매일 연락을 주고받던 친구였다. 힘겨운 시기를 함께 지나오기도 했다.

동혁씨가 망설이자 A는 "2주 뒤에 햇살론 대출이 나오니까 그때 돈을 돌려주겠다"며 재차 대출을 부탁했다. 결국 동혁씨는 제2금융권과 사금융을 통해 1300만 원을 대출받아 A에게 건넸다. 그러나 2주 뒤 A는 돈을 갚지 않았다. 그가 여러 사람에게 같은 수법으로 돈을 받아내어 사기죄로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한참 뒤의 일이다.

동혁씨를 찾아온 A의 아버지는 "어차피 1300만 원을 다 받지는 못한다"며 "300만 원을 줄 테니 합의해달라"고 요구했다. 수사와 재판을 비롯한 공적 절차에 더 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았던 동혁씨는 그 돈을 받고 합의서를 써주었다. A는 여러 사람과 합의했음에도 법정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 이후 돈이 급했던 동혁씨는 다시 힘겨운 일터들을 전전했다. 대부분 월 급여가 많지 않고 대우도 좋지 못한 곳들이었지만, 일터를 가릴 형편이 못됐다. 그럼에도 대출은 줄어들지 않았다. 급전이 필요한 순간이 더 많아졌다.

2018년 동혁씨는 SNS에서 차를 구매하면 선금으로 100만 원을 준다는 광고를 봤다. 이때 동혁씨에게는 이미 '합법적인' 대출이 나오지 않았다. 문득 차량을 구매하는 건 불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량 가격은 1000만 원에 달했지만, 선금 100만 원이 생기면 해결할 수 있는 당장의 급함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더 이상 돈이 나올 구석이 없었다.


동혁씨는 업자에게 연락해서 차량을 구매하겠다고 했다. 물론 구매 대금은 모두 동혁씨가 갚아야 할 돈이었다. 앞으로 5년간 매달 25만 원씩 돈을 내겠다고 약속했다. 한 달을 기준으로 생각해보니, 그렇게 큰돈은 아닌 것 같았다. 복잡한 계약서와 서류들이 오갔다. 동혁씨는 내심 선금 100만 원을 기다렸다. 그러나 업자는 선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조건이 안된다고 했다.

계약 관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동혁씨는 이미 확정된 계약을 취소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업자에게 계약 철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대신 매달 25만 원씩 차량 대금을 내기로 마음먹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이로써 빚만 1000만 원 늘어난 셈이 됐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건강보험을 내야하는 건지 몰랐어요. 전입신고도 귀찮아서 바로 안 했는데 이렇게 밀려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알고 나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놔뒀어요. 금액이 너무 크니까 지금 당장 낼 수가 없어서요."

불행은 계속됐다. 동혁씨는 4대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시기에는 건강 보험료를 따로 납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뒤늦게 연체된 건강보험료 150만 원이 청구되었다. 매달 170만 원 가량을 벌어도, 대출 이자는 꾸준히 연체됐다. 결국 2020년부터 차량 대금이 연체됐다.

직후 동혁씨에게 차량 대금을 받고 있던 캐피탈 측이 차량에 압류를 걸었다. 몇 번 타보지도 않았던 동혁씨의 차량이 공매에 넘겨졌다. 얼마 후 동혁씨에게 구청에서 연락이 왔다. 차량 처분 과정에서 자동차 보험 미가입 사실이 확인되었다는 연락이었다. 과태료 120만 원이 부과되었다. 누구도 동혁씨에게 자동차 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올해 초 밀린 대출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 동혁씨는 대출 문제 해결을 위해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에서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홈페이지 캡쳐. ⓒ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광주에는 지역 청년들의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민단체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아래 광주 청지트)'가 있다. 동혁씨는 광주 청지트에서 1:1 내지갑상담을 받았다. 내지갑상담은 청지트가 고안한 청년 맞춤형 재무상담이다.

동혁씨는 상담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함을 이유로 놓쳐왔던 것들을 인식하게 되었다. 상담사는 밀린 대출의 상환 순서를 정해주었다. 또 안정적인 부채 상환을 위해 소비 유형을 분석한 후 소비 계획도 마련했다.

'상품권 깡' 불법입니다

상담 당시 동혁씨는 '상품권 깡'을 통해 현금을 조달하고 있었다. 휴대폰으로 상품권을 구매한 후 재판매를 통해 현금을 마련해온 것이다. 동혁씨는 "매달 월급이 들어와도 대출 원리금을 내고 나면 현금이 남지 않는다"며 "불법이 아니라서 이 방식으로 현금을 마련해 월세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상담사는 상품권 깡은 통신 과금 서비스를 통해 자금을 융통하는 행위로써 정보통신망법상 불법행위임을 안내했다. 또 당장 급한 불을 끄는 데 성공해도, 다음 달 휴대폰 요금이 과도하게 청구되어 악순환에 빠질 수 있으니 소비 계획을 통해 더 이상 부채가 늘어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보자고 설득했다. 현재 동혁씨는 컴퓨터 유지 보수 업체에서 일하면서 조금씩 대출을 갚아나가고 있다.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주세연 센터장은 "가족과 단절된 상태에서 위험하고 단기적인 일자리를 전전하며 불안정한 주거 환경 속에서 삶을 살아내고 있는 청년들은 우리 사회가 보려고 하지 않는 청년들"이라며 "청년이라 불리는 2030 내부에 존재하는 격차에 주목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주 센터장은 또 "동혁씨의 선택들은 그가 매 순간 최선을 다해 결정한 것들이었다. 다만 그가 접근하거나 경험할 수 있었던 정보의 차이가 인식의 격차를 만든 것 같다"며 "안전망 없이 경제생활을 시작한다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어야 하지만 기댈 곳 없는 우리 사회는 청년에게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며 "사회가 보다 포용적인 복지정책을 통해 삶의 안전망 구축에 적극 나서야 한다"라고 밝혔다.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광주청년드림은행 #자동차 대출 #청년금융소외시대 #청년 격차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폭력에 대해 고민하며 광주의 오늘을 살아갑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광주의 오월을 기억해주세요'를 운영하며, 이로 인해 2019년에 5·18언론상을 수상한 것을 인생에 다시 없을 영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3. 3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4. 4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5. 5 "일본정치가 큰 위험에 빠질 것 우려해..." 역대급 내부고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