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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던 그의 술 장사, 술만 팔지 않습니다

'별주막' '과천도가'로 막걸리 문화 알리는 서형원 대표

등록 2021.06.29 20:50수정 2021.06.29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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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주막·과천도가 서형원 대표 ⓒ 월간 옥이네


이 사람의 약력은 좀 특이하다.

전직 환경운동가였고 한때 시의원으로 시의회 의장까지 지낸 사람. 그런데 이제 '막걸리'에 꽂힌 것. '막걸리에 담긴 우리 문화'에 꽂혔다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일 텐데, 최근엔 양조장까지 세워 직접 술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경기도 과천시에 있는 '별주막' 서형원 대표의 이야기다. 그를 지난 5월 29일, 과천의 새로운 양조장 '과천도가'와 우리 술을 판매하는 '별주막'에서 만났다.

막걸리, 주막, 양조장... 우리 '어울림' 문화 담긴 그릇

2016년 1월 문을 연 별주막은 전국의 우리 막걸리와 제철 음식을 공수해 판매하는 '주막'이다. 일단 '우리' 막걸리라는 말과 '제철'에 나는 농산물로 안주를 만든다는 것에서 여타의 술집과는 조금 다른 곳임을 짐작할 수 있겠다.

그 운영 철학을 들여다보면 이곳이 더욱 특별해지는데 ▲ 화학조미료 ▲ 유전자 변형 농산물(GMO) ▲ 수입 농산물을 쓰지 않고 산지 직거래로 친환경‧유기농 재료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메뉴판에는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생산자의 이름이 함께 표시돼 있기도 하다. 여기에 수입농산물로 만든 술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곳만의 철칙. 말하자면, 시시때때로 계절을 따라 우리 농산물로 만든 제철 음식과 막걸리를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옥천 이원양조장의 '향수'도 이곳 냉장고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언젠가 우리 쌀 품종 홍보 시식회에 간 적이 있는데, 그 행사를 후원한 한 지역 농협에서 막걸리를 함께 가져왔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수입산 쌀로 만든 막걸리였어요. 당장 우리 농촌은 제값 받기 어려운 농산물 가격에, 수입산 농산물로 고통 받는데 우리 쌀을 홍보하는 자리에서 수입쌀 막걸리라니, 참 아이러니하지요."
 

별주막의 특이한 메뉴판. 막걸리가 어디서 어떻게 제조된 것인지, 안주 요리는 어느 지역에서 온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 ⓒ 월간 옥이네

  

별주막의 특이한 메뉴판. 막걸리가 어디서 어떻게 제조된 것인지, 안주 요리는 어느 지역에서 온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 벽면 메뉴판 위로는 각 지역에서 생산된 막걸리 병이 진열돼 있다. ⓒ 월간 옥이네


환경운동가로 오래 활동하며 전국을 누비는 동안, 그는 곳곳에서 땀 흘려 땅을 일구는 농민들을 만나왔다. 그랬기에 그의 머릿속에는 땅과 농민, 지역이 하나로 끈적하게 이어진 풍경이 박혀있을지 모른다.

이는 그가 '지역'과 '양조장'의 관계성을 깨닫게 된 대목이기도 하다. 우리 농산물이 아닌데도 우리 지역 양조장 술이라는 이유로 마시고 자랑하게 만드는 힘. 결국 지역 양조장과 막걸리의 생존은 '지역과의 밀착'에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지역과의 관계성은, 그가 올해 양조장 설립을 구상하고 실행하는 방향이자 목표가 됐다.

"사실 양조장까지는 안하려고 했는데요(웃음). '어울림'의 문화인 우리 막걸리와 주막을 더 널리 알리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차원에서 양조장을 함께 세계화할 수 있겠다는 확신도 들었고요. 여기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여 (주)별네트웍스를 만든 거죠. 막걸리는 밀과 쌀이라는 보편적인 재료로 만드는 데다 그 속에 담긴 한국식 문화가 세계 시장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역공동체형 양조장'으로 지역에 활기를

이자카야(いざかや), 펍(Pub) 같은 단어가 세계인에게 익숙하듯 '주막(Jumak)'도 향후 5년 내에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언뜻 허황한 꿈이 아닐까 의심할 수도 있지만 양조장 '과천도가'를 둘러보면, 그가 말하는 가능성을 함께 느끼게 된다.

과천시 외곽 남태령 아래에 위치한 과천도가는 네모난 콘크리트 건물 안에 목조형 양조장을 통째로 들여다 놓은 형태로 만들어졌다. 이르면 6월 말 첫 선을 보일 막걸리 준비로 양조장 안은 벌써부터 구수한 향이 가득하다.

서형원 대표는 이곳을 술 관련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 작정이다. 양조 전 과정을 보고 듣고 맛보는 것부터, 동네잔치가 있을 땐 이곳에서 함께 막걸리를 나누며 어울리는 문화까지 복원하는 게 그의 꿈이다.
 

과천도가 내부. 다양한 문화체험 활동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진 별네트웍스 제공) ⓒ 월간 옥이네

 
"지리적으로도 이곳 위치가 참 좋습니다. 우면산과 관악산 사이에 있는데다 옛날부터 이곳 남태령에 주막이 많았다고 해요. 현재로선 과천 유일의 양조장이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고요. 저는 양조장의 가치가 술을 만드는 것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 막걸리에 담긴 공동체 문화를 이곳에서 함께 만들어 가는 거죠. 과천도가는 그런 '지역공동체형 양조장'의 모델이 되고 싶습니다."

프랑스나 스페인 등의 와이너리(포도주 양조장) 투어 같은 탐방형 양조장, 나아가 지역과 연결되고 공동체에 활기를 불어넣는 양조장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다만, 과천은 물론이고 과천 주변 지역에서도 논농사를 하는 곳이 없어 지역 쌀을 구할 수 없는 것은 아쉬운 점. 서 대표는 이를 산도조절제와 감미료를 쓰지 않으면서 누룩과 국산쌀로 빚은 막걸리로 극복하겠다고 밝힌다.
 

막걸리를 시음하는 모습 ⓒ 월간 옥이네

  

과천도가 실험실에서는 에탄올 함량 점검 등 막걸리 생산 준비가 한창이다. ⓒ 월간 옥이네

 
여기에 그는 '생주'가 가진 유통의 한계 역시 오히려 '오래된 미래'로 가치가 있다고 덧붙인다. 세계적으로도 살균하지 않은 생주 문화는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우리에게는 있다는 것. 국내외에서 인기를 끄는 '내추럴 와인'이나 '리얼 에일' 같은 술이 우리에겐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다고 말이다.

우리 농산물을 쓰다 보니 가격이 높아지는 것 역시 필연적인데, 주막에서도 1만 원 대 이하로 내놓을 수 있는 막걸리로 먼저 대중화를 시작한다는 전략이다. 여기에 좀 더 위 단계의 고급술로 '홈술(집에서 즐기는 술)' 시장까지 공략하겠다고.

"우리 것에 대한 관심도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어요. '가성비' 보다는 '가심비'의 시대이기도 하고요. 동네잔치에도 쓰는 술이 되려면 가격이 중요한데, 현재 우리 소득 수준이 막걸리 한 병에 4, 5천 원은 쓸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이게 우리 동네 술이야'라고 소개하고 자랑할 수 있는 자부심을 만들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죠. 과천도가는 그런 술을 만들려고 준비 중이고요."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에서 쌀로 만든 술, 막걸리를 즐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프랑스 와인을 칠레산 포도로 만든다고 생각하면 참 어색하고 이상하지 않냐"며 우리 농산물과 우리 술의 뗄 수 없는 관계를 한 번에 설명한 서형원 대표의 말에서, 우리 술 안에 담긴 것이 단순히 취하고 노는 문화만은 아님을 돌아보게 된다.

지역 공동체 안 어울림과 흥의 문화를 이어가고 그 원동력이 되어줄 '주유소'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는 별주막과 과천도가 이야기는 유튜브 채널 '막걸리 TV'를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다.

별주막 : 경기 과천시 별양상가1로 37 신라상가 B1(02-504-7016)
과천도가 : 경기 과천시 남태령옛길 65

월간옥이네 통권 48호(2021년 6월호)
글·사진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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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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