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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판사들은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유리한 판결만 할까?

[주장] '솜방망이 처벌' 없애려면 양형기준 개선이 필수

등록 2021.06.28 18:01수정 2021.06.28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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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6일, 아동·성착취 동영상 22만 건이 유포되었던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가 구치소를 빠져나왔다. 그날은 손정우에 대한 미국인 범죄인 인도 청구 송환 판결이 있었던 날이었다. 손정우는 1심에서 집행유예를, 2심에서 최종적으로 징역 18개월을 선고받았고 이미 2020년 7월 6일에는 형을 모두 마친 상황이었기에 미국 송환이 불허된 직후 석방되었다.

"(손정우가) 용돈을 벌어보고자 시작한 것"이라 쓰인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한 손정우의 아버지는 판결 직후 "재판장이 현명한 판단을 내려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이로써 한국에서 더 이상 손정우의 죗값을 물을 수 없게 되었다. 아동·청소년에 대한 강간 등 악질적인 성착취 동영상을 22만 건이나 유포한 손정우가 받은 형량은 고작 18개월이었다. 손정우와 그의 가족에게 사법부는 '현명'했지만, 피해자와 한국 여성들에게 그 재판은 비겁한 결과로 남았다.

'n번방' 사건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외친 것은 '신상공개'였다. 'n번방' 사건 이후 'n번방'에 가담한 사람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SNS 계정들이 생겼고, 'n번방' 가담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국민 청원이 최다동의 청원들 중 하나로 선택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지만, 사법부의 시스템을 믿지 못하게 된 시민들이 사적으로라도 복수하고 싶은 심리를 가지게 되거나 일상생활 속 성범죄자들을 스스로라도 피해야겠다는 심리를 가지게 되었다는 분석도 일면 타당하다.

사법부는 왜 국민의 법 감정과 유리된 판결을 끊임없이 내리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나라의 '양형 기준'의 모순점 대해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1. 양형기준의 모순 – 법정형보다 낮은 권고 형량 범위

가장 최근에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는 양형기준은 2020년 12월에 확정된 디지털 성범죄 관련 양형기준이다. 그중에서 아동·청소년의 성착취물 제작 등에 대한 형량은 다음과 같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발표한 아동 청소년 성 착취물의 형량범위 ⓒ 대법원양형위원회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제작한 자는 감경될 시 2년 6개월에서 6년형까지의 형량 범위 내에서 선고받는다. 그러나 현행법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제작·수입·수출한 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뿐만 아니라 가중 형량에 무기징역이 가능하다는 조항도 없다. 양형기준안이 법정형과 상관없이 도출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아동 청소년 디지털 성착취 동영상을 영리 등 목적으로 판매한 죄에도 적용된다. 심지어 이번에는 감경이 아닌 기본영역의 하한도 법정형에 못 미친다. 배포와 알선, 구입도 모두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비슷한 문제는 카메라 등 이용촬영과 관련된 양형기준에도 발생하고 있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규정하는 "영리를 목적으로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그러나 양형기준안의 감경영역과 기본영역의 형량은 모두 3년이라는 법정형에 미치지 못한다. 심지어 특별 감경과 작량 감경이 허용된 한국의 양형기준을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형량범위보다 낮은 형량범위가 권고 형량이 되는 상황은 많을 것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발표한 카메라 등 이용촬영 범죄 양형기준 ⓒ 대법원 양형위원회


법정형과 권고 양형범위의 괴리가 나타나는 것은 디지털 성범죄만은 아니다. 강간도, 강제추행 범행에 대해서도 법정형과 양형범위의 괴리는 끊임없이 나타난다. 예컨대 일반 강간 감경영역 형량은 1년 6개월~3년이고 기본영역 형량은 2년 6개월~5년이다. 그러나 일반 강간은 법적으로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해야 한다. 강간의 경우 감경영역과 기본영역 하한선 모두 법정형보다 낮은 것이다. 이러한 괴리는 그 자체로 양형기준에 대한 신뢰도를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한계적이지만, 전체 범죄 자체의 양형 기준을 낮춘다는 점에서 더더욱 문제이다. 즉, 감경영역의 양형 범위가 지나치게 낮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다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2. 양형인자의 모순 – 진지한 반성을 하면 감경?

현행 양형기준상에는 강제추행과 장애인 대상 성범죄, 13세 미만 대상 성범죄, 군형법상 성범죄, 디지털 성범죄, 심지어 성폭력 범죄 후 사망의 결과가 발생한 경우에도 '진지한 반성'이 일반양형인자의 감경요소로 포함되어 있다. 즉, '진지한 반성'이 주된 감경요소로 판단되는 특별양형인자는 아니지만, 일부 참작 가능한 일반양형인자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용혜인 의원실에서 대법원으로부터 받은 2019년 성범죄자 양형기준 사유 분석 ⓒ 용혜인 의원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에서 대법원에 요청하여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양형 기준 적용을 받았다고 기재된 성범죄 4725건 중 3420(70.9%)이 감경 사유인 '진지한 반성'이 채택됐다. 장애인과 13세 미만 청소년 대상 성범죄에서도 65%와 69.2%의 성범죄자들이 '진지한 반성'을 인정받았다. 이 모든 수치는 성범죄 재범률 60%라는 현실적인 수치와 대조된다. 용혜인 의원은 이에 대해 "인터넷 검색만 잠시 해봐도 성범죄자들을 위한 반성문 대필 사이트를 찾을 수 있다"고 언급하며 "2000원이면 예시 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고, 5만 원이면 반성문 대필이 가능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일반양형인자보다 조금 더 실제 양형에 반영될 확률이 높은 특별양형인자에 포함된 '처벌불원'도 문제이긴 마찬가지이다. 대부분 '처벌불원'은 피해자와의 합의 과정을 통해 판단된다. 심지어 실제 합의를 이루진 못하더라도 '합의를 위한 진지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판단되면 감경 요인으로 인정된다. 이 때문에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 합의를 종용받거나 연락을 받는 경우도 많다. 이 과정에서 2차적인 피해를 입는 피해자도 발생하고는 한다.

더욱 큰 문제는 '처벌 불원'이 모든 피해자의 의사를 반영할 수 없다는 점이다. 디지털 성폭력은 피해자가 다수인 경우도 많다. 이때 전체 피해자 중 일부의 피해자는 합의를 진행했거나 원할 수 있지만 또 다른 일부의 피해자는 합의를 진행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또는 피해자들 중 일부는 자신이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아직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확률도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 피해자가 2명 이상일 시 '처벌 불원'을 어떻게 판별할 것인지의 기준이 마땅히 정해진 바 없다. 국회 토론회 '디지털 성폭력, 양형부당을 말하다 : 피해자 관점에서 본 양형기준' 자료집에 따르면 전주지방법원 2019. 7. 17. 선고 2019고합135 판결에서 피해자 3명 중 1명의 처벌불원 의사만 확인했고, 나머지 피해자 2명은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해 피고인이 합의할 기회를 갖지 못했음에도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으로 판정한 선례도 존재한다. '처벌 불원'은 이 때문에 명확한 기준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집행유예 기준은 더욱 문제가 많다. 지난 12월 확정된 디지털 성폭력 집행유예 기준에 따르면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 피고인의 구금이 부양가족에게 과도한 곤경을 수반, 동종전과 없고, 금고형의 집행유예 이상의 전과가 없으면 집행유예에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한다.

'박사방' 주요 가해자였던 조주빈은 장애인 종합복지관을 비롯해 5개 시설에서 55회에 걸쳐 봉사활동을 했고, 여아 살해를 모의하고 조주빈의 주요 공범이었던 사회복무요원도 장애인 봉사활동을 한 바가 있다. 이들의 과거 행적이 이들의 교화나 반성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이들은 이러한 집행유예 기준의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하다'라는 판단을 받을 수 있다.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는 2심 재판에서 결혼으로 부양가족이 생긴 점을 참작하여 낮은 형을 받을 수 있었다. 미국 송환 재판이 불허가 난 후, 상대방이 혼인 무효 소송을 내서 혼인 관계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는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주장이 얼마나 쉽게 조작할 수 있는지, 그리고 결코 진실을 밝힐 수 없는지를 보여주는 주요한 사례로 존재한다.

3. 양형 범위의 모순 – 있으나 마나한 권고 양형 범위.

처음 디지털 성폭력 양형기준안이 공개되었을 시 일부 언론들에서는 아동·청소년 성적 착취물에 관한 범행을 저지른 사람에게 내릴 수 있는 최대 형량이 29년 3개월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러한 계산식은 해당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다수범인 경우 가능하다.

쉽게 말하여 아동, 청소년 성 착취물을 제작한 사람이 가중영역의 권고를 받고(7년에서 13년형) 다수범이어서 형량범위 상한이 1.5배 높아지고(7년에서 13X1.5년형) 여기에 덧붙여 특별 가중되어 형량범위의 상한이 또 1.5배 높아진다면(7년 형에서 13X1.5X1.5, 즉 29년 3개월) 이론상 29년 3개월 형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판사가 이후 작량감경을 할 수 있기에 명확하지는 않다.

바로 이 지점에서 양형 기준의 모순점은 또다시 발생한다. 판사가 애초에 7년 형에서 29년 3개월 중 아무 형량이나 내려도 양형기준상 올바른 판결을 내렸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권고 형량 범위의 하한을 그대로 둔 채 상한만을 가산하는 형식의 특별 가중과 권고 형량 범위의 상한을 그대로 둔 채 하한만을 감산하는 형식의 특별 감경은 모두 지나치게 긴 권고 형량 범위를 낳는다. 이러한 '권고 형량 범위'는 따라서 판사의 판결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결론 : 정의로운 양형 기준을 위한 제안

정의로운 판결을 위해서는 양형 기준 변경이 사회적 논의의 장으로 올라와야 한다. 우선, 성폭력 양형기준의 감경영역 하한을 법정형으로 맞추고, 전체 형량을 높이는 것이 진행되어야 하며 지나치게 넓은 권고 형량범위를 조정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지금과 같이 감경영역과 기본영역, 가중영역으로 형량 범위를 나누는 것이 아닌 감경영역과 기본형량, 가중영역으로 형량을 나누는 것도 고민해볼 만 하다. 지나치게 넓은 양형 기준은 오히려 '제멋대로 판결'을 부추기는 문제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판결문에 어떠한 양형기준상의 사유로 감경·가중을 선택했는지 명확히 기록될 필요성도 존재한다. 특히 어떠한 사유로 집행유예를 결정했는지 판결문만 보아서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떠한 기준에 따라 감경 혹은 가중을 선택했는지, 집행유예 판단의 기준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적시된다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하는 것과 더불어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도 높일 수 있는 좋은 방편이다.

양형기준상 감경 범위를 선택한 이후에도 판사가 맨 마지막 결과로서 작량감경을 가능하게 한 현행법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이미 감경영역 상 형량을 결정한 이후 판사가 작량감경을 다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제도는 지나치게 판사의 판단만을 근거로 법 집행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양형기준의 감경 요소 자체를 성폭력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설정할 필요성이 존재한다. 피해자의 피해를 경감시킬수도, 가해의 내용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없음에도 가해자의 '배경'을 고려하는 감경 요소는 용인되지 않아야 한다.

수만 건의 성착취 동영상을 유포한 범죄자가 초범이기에,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했기에 감형되는 것은 국민들의 법 감정에 심각하게 유리되어 있는 결론을 낼 수 있다. 오히려 이러한 성범죄자들이 감형을 받는다면, 공범들의 체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는 등 실질적인 해결에 기여한 경우여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신민주는 기본소득당 여성주의 의제기구 준비모임인 <베이직 페미>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성폭력 #양형기준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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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정치에 관한 책 <판을 까는 여자들>과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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