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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엌은 조리대가 아니다, 치유의 공간이다

'지리산별빛담은마을' 김청희·박세원 모녀

등록 2021.07.12 18:02수정 2021.07.1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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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별빛담은마을 김청희·박세원 모녀 ⓒ 주간함양


밤하늘 별빛이 아름답다는 경남 함양읍 삼휴마을에 '지리산별빛담은마을'이 있다. 이곳에는 엄마의 꿈을 이뤄주고 싶은 딸이 살고 있다. 어쩌면 엄마의 꿈이 딸에게 희망이 되었나 보다.

박세원(27)씨에게는 아토피가 심한 동생이 있다. 엄마는 동생을 낫게 하려고 아토피에 좋다는 음식, 치료, 환경 등을 찾아다녔다. 가족이 함양으로 오게 된 것도 전국 최초의 '아토피 제로' 공립형 보건학교 금반초등학교에 동생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세원씨가 15살이던 해다.

타지에서 대학공부까지 마친 세원씨가 다시 함양으로 돌아온 것은 옆에서 지켜봐 온 엄마의 일을 '언젠가 내가 해야겠구나'하는 막연한 생각에서였다.
 

지리산별빛담은마을 김청희·박세원 모녀 ⓒ 주간함양


'지리산별빛담은마을'에서는 세원씨 어머니가 전통방식으로 직접 담근 청이된장, 청이고추장 등 장류제조와 함양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유통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엄마는 아토피가 심한 아이에게 건강식을 먹이기 위해 된장, 고추장도 직접 담갔는데 맛을 본 사람들의 인기를 얻어 제품으로 생산, 판매하게 됐다. 사회복지사였던 엄마는 이 일을 하면서도 장애인이나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쉴 공간을 내어주고 건강한 밥상을 차려주며 음식으로 치유해 주고 싶어했다.

엄마의 꿈을 응원해 온 세원씨는 '사회적 농장 육성 지원사업'이 엄마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이 사업이라면 엄마가 전부터 바라던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간절한 바람으로 준비해 '지리산별빛담은마을'은 사회적농장과 치유농업으로 2020년 사회적 농장 육성지원사업에 선정된 경상남도 5개 농장 중 한 곳이 됐다.

"딸이 아니었다면 치유농업을 시작하지도 못했겠죠." 엄마 김청희씨는 든든한 동반자 딸에게 무한신뢰를 내비친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장애를 가진 아이를 알게 되어 10여 년 이상 인연을 이어갔죠. 그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무렵, 장애를 가진 이 아이도 가치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김청희씨가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생각하게 된 시점이다.


잘 먹고 잘 쉬며 치유하는 공간으로
 

지리산별빛담은마을 김청희·박세원 모녀 ⓒ 주간함양


봉사로 시작해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게 되면서 김청희씨는 장애인과 함께 부대끼며 생활했다. 그녀가 장애인을 돌보는 일에 더욱 몰두한 것은 어쩌면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 더 큰 고통 속으로 자신을 밀어넣기 위함이었다.

"장애인을 보살피며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니 오히려 아토피로 힘들어하는 제 아들은 뒷전이었어요. 한 발짝 뒤로 물러서니 내 아이만 바라보던 나에게 오히려 여유가 생겼지요."

김청희씨의 말을 빌리자면 그녀는 그때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고 했다.

김청희씨는 음식치유에 대해 음식을 만들고 먹어보면서 오감을 체험하는 것, 음식으로 표현하고 그 과정을 통해 치유가 되며 마지막에는 나를 찾는 과정이라고 했다. "마음에 상처가 생기거나 병이 오면 물 한모금도 넘길 수 없죠. 음식은 마음을 열고 자신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해 주는 약이에요." 지리산별빛담은마을의 별빛부엌은 조리공간이 아니라 치유의 공간이다.
 

김청희·박세원 모녀 ⓒ 주간함양


본격적으로 치유농업을 시작하면서 배우고 준비해야 할 과정도 많아졌다. 음식을 통해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치유농업을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사이버대학에 등록하여 치유농업 과정을 밟고 있으며 동물매개, 원예치료, 심리학도 배우고 있다.

세원씨는 경상대학교 최고농업과정 발효과정을 이수하고 전통장류제조2급을 취득했으며 엄마와 함께 함양군농업기술센터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통해 한식조리기능사와 떡제조기능사 자격증도 준비 중이다. 세원씨는 "앞으로 음식치유농장으로 지리산별빛담은마을이 성장하기 위해선 전문성을 갖춰야한다고 생각했다"며 "11월에 치유농업사 자격시험에도 도전할 예정"이라고 했다.

지리산별빛담은마을이 사회적농장 육성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함양관내 기관은 물론 타 지역에서도 문의가 늘고 있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사업을 자유롭게 할 수 없지만 앞으로 사회복지사를 대상으로 치유수업을 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장애인, 치매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정도 준비하고 있다.

한 끼 식사로 건강을 온전히 되찾을 순 없다. 먹고 자고 자연에서 뒹굴며 치유할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장애인들에겐 더 긴 시간이 필요하죠. 이곳에 숙소를 마련해 한 달 살기, 귀농체험 등 사회적 약자나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어요. 이젠 돈이 아니라 사명감이 된 것 같아요. 딸과 함께라서 가능해진 꿈이죠."

김청희씨가 그리는 모든 그림은 딸을 통해 이뤄진다. 치유를 통해 함양을 선물로 주고 싶다는 김청희씨. 그녀 옆에는 언제나 딸 박세원씨가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주간함양에도 실립니다.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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