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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개혁동지가 오늘의 '금배지 따까리'로

[알고보면 쓸데있는 우리동네 진보정치] 욕 한 번으로 퉁치기엔 너무 비싼 지방의회

등록 2021.07.15 12:01수정 2021.07.15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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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2일 열린 제302회 구로구의회 정례회 제5차 본회의 모습. ⓒ 구로구의회

 
지방의원? 구의원? 쓸데없는 데 괜히 의원이라고 목에 힘만 주는 사람들. 개뿔 아는 거, 하는 것도 별로 없으면서 있는 척하는 세금 좀 먹는 사람들. 가끔씩 외유성 해외연수로, 업무추진비 부적절 사용으로 무개념을 증명해주는 사람들...

지방의원과 지방의회(기초·광역의원과 의회 포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대부분 부정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런 사람들을 이따금 '씹어주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개념있는 민주시민을 인증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댓글이나 모임 뒷담화로 욕해주는 것만으로 그치기엔 우리 주민들의 혈세 출혈이 너무 크다.

내가 속한 구로구의회 1년 운영 예산은 대략 36억9900만 원. 서울에 25개 구가 있으니 대충 어림잡아 서울시 내 구의회의 총 예산은 대략 1000억 원(40억 원*25개구). 인구 1000만 명에 1000억 원이니까 전국 인구를 5000만 명으로 잡았을 때 대략 5000억 원가량이 매년 기초의회(구의원, 군의원)에 직접 들어가는 돈이다. 그런데 그것만 있나? 광역의회(서울시의회, 경기도의회 등)는 의원들 의정활동비도 훨씬 더 많고 운영비도 더 크다. 

이렇게 지방의회를 운영하는 데도 어마어마한 세금이 든다. 뿐만 아니라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주민을 대표해서 심의하고 다루는 세금, 사업 등의 영향력은 더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 삶을 좌지우지하는 꽤 많은 결정을 내린다.

그러니 잘 생각해보면 수많은 내 돈, 내 세금을 쓰는 기초·광역의회를 아예 없애버리거나 '쓰잘데기없는 놈들'이라고 욕 한 번 하고 말아선 안 될 것 같다. 그 욕이 사실 엄청나게 비싼 욕이기 때문이다.

확 없애버릴까, 확 바꿔버릴까

혹자는 아예 없애자고들 한다. 그럼 지방의회를 없애볼까? 사실 지방의회의 취지나 목표가 썩 나쁜 건 아니다. 민주주의, 아래로부터, 구체적인 주민 목소리 이런 게 그 취지다. 참 좋은 말들이다. 게다가 1990년대 이 제도가 부활할 때는 군부독재 때부터 이어오던 관 중심-중앙관료 중심의 행정을 주민들의 뜻을 반영하는 행정으로 바꾸는 혁신적인 역할도 했다.

지방의회가 있어야 할 명분이 꽤나 많다는 말이다. 없애기 쉽지 않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국회의원들 때문에 지방의회를 없앨 수 없을 것이다.


구의원들, 시의원들을 두고 국회의원 '따까리'네 하는 이야기를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만큼 국회의원들이 지방의원들의 충성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는데 국회에서 지방의회를 없앨 수 있을까. 명분적, 현실적 이유 모두 없다. 

그렇다면 바꿔보자. 뭘 어떻게 바꿔야 하나. 지방의회에 대한 대표적인 부정적 인식은 '일을 안한다는 것'과 '주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 주민들이 뭘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게 첫 번째에 해당한다. 목이 뻣뻣하다든가, 잘못을 저지르고도 뻔뻔하다든가 하는 게 후자에 해당한다.

이유는 하나다. 국민이 아니라 다른 쪽을 보고 일하고, 다른 쪽을 무서워 한다 이렇게 볼 수 있겠다. 그래서 지방의회를 제대로 바꾸는 길은 지방의원들이 '금배지 단 높은 분'들이 아니라 주민들 눈치를 보고 그들에게 충성하도록 바꿔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된다.

현역 국회의원 때문에 안 바뀐다... 엄청난 기득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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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광역의원들의 생사는 국회의원들이 쥐고 있는 구조다. ⓒ 오마이뉴스

 
내 주변에도 괜찮은 지방의원들이 있다. 열심히 활동하고, 주민 편에서 고민하는 의원들이다. 그런데 그런 '싹수'가 있는 지방의원들도 다음 선거 공천, 지역 위원장의 심기, 그 지역 국회의원의 눈치 앞에선 소신을 접는 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엔 소신을 펴다가 공천에서 잘려나가기도 한다. '주민에게 열심히'보다, '당과 공천자에게 적절히'가 더 중요하니까.

지방의회 세계의 불문율이 있다. 2인선거구, 3인선거구 체제에서 구의원은 1번당, 2번당 공천이 사실상 당선을 의미한다. 아마 2인선거구는 100% 당선이고, 3인 선거구는 자기들끼리 두 명을 내서 한 명 떨어지는 것 빼고는 100% 당선일 것이다.

사실상 지방의원 배지를 주민들이 달아준다기보다는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이나 지역위원장이 달아주는 구조다. 아무리 훌륭한 정치인도, 열심히 해보려는 구의원도 이런 구조 앞에서는 결국 무기력해진다.

어제까지만 해도 의회개혁을 위해 나와 함께 힘을 합치자고 했던 의원이 "김 의원 미안하네... 나도 당에 속하고, 위원장에 메인 몸인데 어쩔 수 없는 거 이해하지?" 하면서 의회 투표날 아침에 말을 바꾸고 등을 돌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따까리' '거수기'라는 치욕스러운 별명이 완전히 틀렸다곤 말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다.

이런 선거제도와 공천권을 바꿔야 그나마 지방의회가 주민을 위해 일을 할 텐데, 바꾸는 권한은 국회에 있고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내어놓는 결정을 할 이유가 없다. 이대로가 좋으니까 말이다.

자신의 재선, 3선 달성을 위해 선봉에 나서줄 사람, 자신에 대한 충성이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는 지방의원을 자기 손으로 굳이 없앨 필요는 없다. 사실 정치제도 개혁, 선거제도 개혁, 지방분권, 뭐 이런 것들이 그럴싸한 이유로 결렬되고 불발되곤 하지만 그 속 이유는 어쩌면 단 하나 아닐까. 결정권자 국회의원의 기득권, 고양이 앞에 생선을 맡겨뒀기 때문이다. 

국민의 것은 국민에게로

선거제도 개혁, 지방의회 역할론, 이런 것에 많은 국민들은 관심없어 한다. 내 삶에 영향도 별로 안주면서 자기들끼리 정쟁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잘못된 이해와 무관심 속에 우리 혈세를 아깝게 새어나가게 만들고 기득권이 또하나의 권력을 나눠갖는 그들만의 리그가 자리잡는다.

지방의회 선거 제도만 제대로 바꿔도 그 권력을 다시 국민이 행사하고, 수천 명의 지방의원들이 국회의원 좋은 일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밥값하도록 할 수 있는데 말이다. 이걸 혐오하고 무시하는 건 국민에 좋을 일은 아니다.

대통령을 직접 뽑는 것, 국회의원을 뽑는 것, 중앙 언론에 나오는 여의도 정치만 국민 주권의 대상인 건 아니다. 없는 것 같고, 안 보이는 것들에 중요한 권력도 많고, 내 삶을 바꾸는 정치도 많다.

앞으로 나는 국회의원을 필두로 기득권들이 좌지우지하는 지역정치, 지방의회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동네 정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우리 동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어떻게 굴러가는지, 동네에서의 진보와 보수는 뭘 갖고 어떻게 투쟁하는지 말이다. 관심 있는 사람은 관심을 가져달라. 이것 역시 당신의 주권을 찾고 지켜내는 아주 중요한 민주주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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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서 정의당 구로구의원. ⓒ 김희서 제공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김희서씨는 현재 구로구의원(정의당)입니다. [김희서의 알/쓸/우/진]은 매월 둘째, 넷째주에 게재됩니다.
#지방의회 #기초의회 #김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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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소속 서울 구로구의회 의원입니다. 오마이뉴스 오랜 독자이기도 합니다. 더많은 사람들의 더많은 행복을 바라는 진보정치인 이고, 지역에서부터 하나하나 쌓아가는 정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역정치인 입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중앙과 여의도에만 편중되고, 거대 양당만 다뤄지는 정치언론 환경을 탈피해보자는 좋은 제안을 받고 지역정치 이야기를 써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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