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초강수, '표준시장단가' 불발에 "재량권으로"

경실련 "문재인정부, 참여정부가 약속한 '표준품셈 폐지 즉각 이행해야" 성명

등록 2021.07.12 20:51수정 2021.07.12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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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6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부동산 시장법 제정" 국회토론회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12일 "경기도는 재량권을 활용해 공공 공사에서 표준시장단가를 적용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내겠다고 발표하였다"면서 "문재인정부는 참여정부가 2004년도에 선언한 '표준품셈 폐지'를 즉각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지난 6일 경기도(도지사 이재명)는 올 하반기부터 100억 원 미만 공공 건설공사에 대해 조례 개정 없이 도지사 재량항목을 활용한 새로운 표준시장단가 적용 방안을 마련해 시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기도가 추진하려는 표준시장단가는 참여정부(노무현정부)에서 도입했던 실적공사비 제도와 유사한 시장가격 기반의 건설공사 예정가격 산정방식이다. 경기도는 이번 조치로 공사비 거품을 4~5% 정도 걷어내 연간 약 100억 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표준시장단가 확대 적용' 조례 개정 또 불발... 건설업계 반발

건설공사비 산정기준은 표준시장단가와 표준품셈, 두 가지가 있다. 표준품셈은 품셈에서 제시한 수량(재료, 노무, 경비)에 단가를 곱하는 원가계산방식을 말하고, 표준시장단가는 이러한 표준품셈을 적용해 완료한 공사에 계약단가,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산정한 직접공사비를 말한다. 따라서, 정해진 단가를 기준으로 산출하는 표준품셈보다는 시장 상황을 반영한 표준시장가격이 표준품셈보다 대체로 낮게 산정되는 경향이 있다.

현행 행정안전부 예규는 100억 원 미만 공공 건설공사에는 표준품셈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예산의 효율적 사용을 위해 성남시장 재임 시절부터 최근까지 공공 공사에 대해 표준품셈이 아닌 표준시장단가 적용을 추진해왔다.

앞서 박근혜정부는 지난 2015년 10월 300억 원 미만 공사의 공사비 산정 시 지방계약법이 정한 표준시장단가 대신 표준품셈으로 산정하도록 '지자체 입찰 및 계약집행기준(행자부 예규)'을 개정했다. 그러자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지침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따르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성남시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시가 계획하고 있는 서현도서관 등 4개 공사의 공사비 단가의 경우 표준품셈이 표준시장단가보다 약 17.5% 비쌌다. 게다가 표준품셈으로 산정된 공사비 중 인건비가 실제 최일선 건설노동자에게는 절반 정도만 지급되는 등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재명 지사는 경기도지사 취임 이후 100억 원 미만 공공 건설공사에 표준시장단가를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하며 본격적으로 제도 개선에 나섰다. 이재명 지사는 2018년 8월 SNS를 통해 "셈법만 바꾸면 1,000원 주고 사던 물건을 900원에 살 수 있는데 안 할 이유가 없다"면서 "누군가의 부당한 이익은 누군가의 손해로 귀결된다. 100억 미만 공공 건설공사에도 표준시장단가가 적용될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이 지사의 발언 이후 경기도가 최근 2년간 도에서 발주했던 계약금액 10억 원 이상의 공공건설공사 32건을 대상으로 표준시장단가를 적용해 공사예정가를 계산해 본 결과 표준품셈보다 평균 4.4%까지 예산 절감이 가능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표준시장단가를 적용한다면, 가짜회사(페이퍼컴퍼니)처럼 중간에서 착취하는 얌체 업체들의 개입 여지를 없애고 불법하도급 비리를 차단, 전체 건설업계에의 건실화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 경기도의 논리다.

이에 경기도는 2018년부터 행정안전부에 계약예규 개정 제도개선을 요청하는 한편, 같은 해 10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경기도 지역건설산업 활성화 촉진 조례 일부 개정안'을 도의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조례 개정안은 건설업계의 거센 반발로 도의회에서 3년째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건설업계는 표준시장단가 적용 시 중소건설공사 단가 후려치기로 건설현장 안전관리가 소홀해질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표준시장단가 확대 적용을 반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는 "각각의 내역을 공개하면 실제로 해당 공정이 제대로 반영되었는지 알 수가 있어 오히려 안전관리가 강화되고 열악한 건설근로 여건도 개선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이재명 지사는 지난 6월 8일 김명원 위원장 등 경기도의회 건설교통위원회 위원 14명 전원에게 서한을 보내 표준시장단가 적용 조례 개정에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이 지사는 서한에서 "현재 100억 원 미만 공공 건설공사비 산정 시 적용하는 표준품셈 제도는 수시로 변하는 시장가를 제대로 반영치 못해 적정공사비를 산출하는데 부적절하다"며 "이를 시장거래가격을 반영하는 표준시장단가로 바꾸면 적지 않은 예산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당위성을 설명했다.

그는 또 "공공 건설공사는 혈세로 추진하는 사업이고, 효율적인 예산집행은 주권자인 도민에 대한 의무"라며 "공정하고 합리적인 공사비 산정은 예산 낭비를 막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이 지사는 6월 10일 도의회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하기 위해 건설교통위원회 위원들과 간담회도 진행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의회 건설교통위원회는 6월 14일 내부회의를 거쳐 6월 정례회에 '표준시장단가 확대 적용을 위한 조례 개정안'을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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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욱 GH(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이 건설공사 현장을 두러보고 있다. ⓒ GH

 
이재명, 조례 개정 없이 도지사 재량 활용한 표준시장단가 적용 방안 마련

그러자 이재명 지사는 올 하반기부터 100억 원 미만 공공 건설공사에 관해 조례 개정 없이 도지사 재량항목을 활용한 새로운 표준시장단가 적용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겠다고 강수를 뒀다.

이번 방안은 우선 표준시장단가와 표준품셈으로 예정가격을 모두 산출한 뒤, 그 차액만큼을 일반관리비율 등 재량항목에서 감액하고, 이를 설계서에 반영해 발주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표준시장단가 예정가가 86억 원, 표준품셈이 90억 원일 때, 차액인 4억 원을 재량항목에서 조정하는 식이다.

보통 표준품셈 산정방식이 표준시장단가 보다 4~5% 높게 산출되는 만큼, 이 같은 '거품'을 걷어냄으로써 관계 법령·조례를 따르면서도 사실상 표준시장단가를 적용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경기도의 설명이다.

이운주 경기도 공정건설정책과장은 "표준품셈을 적용하되, 도지사 재량권을 활용해 사실상 표준시장단가 금액을 적용하는 행정의 전환"이라며 "공사비 거품을 제거하고 합리적인 공사비를 산정해 예산 낭비를 막고 건전하고 공정한 건설환경을 만드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다.

경실련 "변칙·꼼수 행정?... 후안무치"

이에 대해 경실련은 12일 논평을 내고 "중앙정부(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의 면피 행정과 도의회의 건설업계 이해 대변으로 (표준시장단가 적용 조례 개정안은) 좌절되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이라며 "그럼에도 광역자치단체 최초로 시도된 경기도의 예산낭비 방지 노력은, 정책 관료와 지방의회가 어떻게 이익단체에 봉사하고 있는지를 일깨워 준 사례이기에 씁쓸하면서도 의미는 크다"고 높이 평가했다.

경실련은 또 "상당수 언론들은 (경기도의) '변칙·꼼수 행정'이라는 건설업계 일방의 주장뿐만 아니라 '의회 무시 처사'라면서 법적 문제를 따지겠다는 경기도의회 입장을 실시간으로 내보내고 있다"며 "후안무치가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경실련은 특히 "설계가의 85% 수준에 낙찰받아도, 이익을 남길 수 있도록 설계공사비를 부풀려 발주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면서 "나라 곳간을 책임져야 할 정책 관료와 의원들은, 한술 더 떠 '적정공사비' 운운하며 건설업계 시중 노릇을 하고 있다. 엉터리 정책 관료를 솎아내고, 예산 낭비를 조장해 온 정부 부처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표준시장단가 #표준품셈 #경실련 #경기도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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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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