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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혼하게 됐는데..." 변호사인 내가 친구에게 해준 말

결혼도 이혼도 부부의 선택을 존중하는 시대... 소송보다는 합의를 권하는 이유

등록 2021.07.18 15:39수정 2021.07.19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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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정점을 향해 치닫는 무더운 날이었다. 회사에서 반드시 참가해야 하는 세미나가 있어서 오랜만에 차를 몰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다. 무더위에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를 빵빵하게 틀어 놓으니 평소보다 신이 났다.

그때, 전화가 왔다.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한 2년 전쯤 된 중학교 동창 녀석이다.


"어. 웬일이야. 결혼하고서는 연락도 없던 놈이."

친구는 3년 전 속도위반으로 결혼을 했고, 카톡 프로필엔 늘 본인을 쏙 빼닮은 딸내미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응... 그러게. 너 지금 바빠...? 통화 가능?"
"지방으로 출근 중이야. 무슨 일인데? 말해봐."
"나 이혼하게 됐는데.... 몇 가지 좀 조언받고 싶은 게 있어서 전화했어."


이혼하게 됐다는 친구 연락, 놀랍지 않다
 

이혼을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아주 현실적인 얘기들이 필요하다. ⓒ elements.envato

 
나는 놀라지 않았다. 저번 달에도 친한 언니가 이혼을 결심했다는 말에 그 결정을 응원했고, 작년 말에도 두 돌 된 아들을 키우는 친구가 아이를 혼자 키우기로 하고 이혼을 했다. 그렇게 내 주변만 해도 기혼자들 중 30% 정도가 이혼을 했기 때문에 이 친구의 말이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음. 그래... 합의지? 조정 신청할 거니? 아무튼 소송은 하지 마라. 그냥 좋게 다 합의해. 그게 서로 상처가 덜 남는 것 같다."
"응... 근데 조건이 안 맞으면 와이프는 소송도 고려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힘들고 답답해서 상의 좀 하려고 전화했지."



나의 부모님 세대까지만 해도 결혼도 선택보다는 의무에 가까웠고, 출산은 더욱더 강력한 의무였다. 그러니 그런 의무들을 져버리는 이혼은 그 단어만으로도 불경스럽거나 인생의 실패처럼 여겨졌다.

자식이 이혼을 하면, 그 부모가 죄인 같은 마음으로 살았고, 이혼한 부모를 둔 자식은 죄다 빗나가거나 낙인이 찍힐 거라는 두려움도 많았다. 행여 이혼을 했다 해도 자기 입으로 말하는 일은 드물었고, 재혼을 하는 것도 쉬쉬했다.

지금은 달라졌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이혼에 쿨해졌다. 그리고 흔한 일이 돼버렸다. 누구나 한번쯤 결혼을 하듯이 또 한 번쯤 이혼도 하는 시대가 됐다. 내가 마흔 즈음이 되어 살아가는 이 세대에서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인식이 주류다.

결혼을 해서 자녀를 갖는 것은 오직 그 부부의 선택이고, 자녀가 없는 부부라 해서 신체적, 경제적 혹은 그 외의 문제가 있을 거라는 눈초리도 상당 부분 사라져서 '딩크족'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물론 그렇지 않은 가정도 있지만). 

결혼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함께 이혼도 인생의 선택 사항 중 하나가 되어간다. 최근 몇 년 간의 통계만 보더라도 그 사실은 쉽게 입증이 된다. 이 시대에 이혼을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자식을 생각해서 참고 살아야지"라는 말은 너무 폭력적인 조언이다. 그것은 당사자의 행복은 안중에도 없고, 나아가 불행한 결혼 생활 속에서 커가는 자식들의 의사도 반영이 되지 않는 추상적인 '말'일 뿐이다.

그보단 아주 현실적인 얘기들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본인의 선택에 대해 어떤 준비가 되었는지, 자녀가 있다면 그들의 마음은 어떠한지, 거주지 문제는 해결이 되었는지, 위자료나 양육비의 액수는 적정한지 등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조언이자 위로가 될 수 있다.

이혼하는 방법 세 가지... 중요한 건
 

소송은?피치?못할?사정이?없는?한?선택하지?말아야 한다.? ⓒ elements.envato

 
이혼을 결심했다면, 그 실행의 방법엔 세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하나는 협의 이혼, 다른 하나는 조정 신청을 통한 합의 이혼, 마지막은 소송이다. 나는 세 가지 모두를 다양하게 봐 왔다.

이혼은 선택이지만, 그 선택의 배경은 보통 복잡한 게 아니다. 그래서 양 당사자가 단 둘이 모든 문제를 테이블에 올리고 합의를 해서 같이 법원 가고, 수개월의 숙려기간을 거쳐 다시 또 법원에서 만나 이혼 확인을 받는 '협의 이혼'은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다. 다만, 감정의 골이 깊지 않고, 경제적 문제도 단순하고, 자녀도 없다면 이게 가장 조용하게 이혼할 수 있는 방법이다. 

요즘 가장 많이 선호하는 방법은 조정 신청을 통한 합의 이혼이다. 언론에서 연예인들의 이혼 소식을 접할 때 많이 들어본 방식이기도 하다. 일방 당사자가 법원에 조정신청을 하면 법원에서 조정 기일을 잡아 준다. 기일 날 법원에 출석해서 서로의 합의 사항을 받아들이면 그 자리에서 바로 조정이 성립되고, 곧 이혼 신고를 할 수 있다.

이 경우 서로 감정은 매우 나쁘지만 이성적으로 이혼을 신속히 하고 싶다면, 서로 간에 우호적인 변호사를 선임해서 처리하면 절차 내내 당사자들이 서로 만나지 않고 이혼 신고까지 처리할 수 있다. 이혼에 대한 의지는 확실하지만 소송을 피하고 싶을 때 적절히 합의할 수 있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소송은 피치 못할 사정이 없는 한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 소송의 성질상 절차를 진행하다 보면 서로의 치부가 낱낱이 드러나게 되고, 그로 인해 수면 아래 있던 문제마저 불거지기 십상이다. 각자가 행복을 찾으려고 이혼을 결심했을 텐데, 오히려 돈을 들여 더 큰 불행의 시간을 만들기도 한다. 내가 친구에게 소송은 절대 하지 말라고 권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혼이 증가한 이 시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이혼을 죄악시했던 시대보다 더 인간적이다. 가족의 결합과 그 가치가 중요한 만큼 그 바탕이 되는 개인의 행복과 선택도 존중되고 이해받아야 마땅하다. 다만, 그 실행의 과정에서 추가로 상처 받는 일을 최소화하고, 사회/경제적 낭비를 줄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혼 #결혼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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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분쟁을 전문으로 하는 미국 변호사입니다. 반려견 두 마리, 다정한 남편과 함께 매일 초심으로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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