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아이의 원격수업을 들으며 자꾸 웃음이 나는 이유

재잘재잘 두려움 없이 질문하는 아이들... 이런 게 교육 혁신 아닐까

등록 2021.07.16 15:48수정 2021.07.16 17:22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로 인하여 전면 원격수업이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는 준비할 것들이 늘 많다. 교과서, 학습지, 다양한 준비물을 시작으로 작은 학용품까지 챙겨주어야 한다. 하지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아이는 원격수업을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다. 스마트폰, 노트북과 같은 기기에 거부감이 없는 지금의 아이들에게 오히려 교실 수업보다 즐거울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또 예전에는 학부모가 내 아이의 담임 선생님을 만나려면, 큰맘 먹고 사전 약속을 하고 상담 내용을 어느 정도 정리한 후 나름대로 복장을 신경 써야만 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이제 학부모도 선생님의 얼굴을 실시간으로 가정에서 편히 볼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기도 하다.

물론 선생님은 학부모의 입장과는 반대로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학부모 공개 수업을 1년에 한두 번 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닌데, 자신의 수업이 학부모에게 고스란히 공개되니 부담 그 자체일 수 있다. 보건교사인 나 또한 예전에 수업 영상을 직접 촬영하여 송출하면서 혹여 가정에서 학부모님이 함께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지 우려하기도 했던 것 같다. 

아이의 원격수업은 항상 즐겁다
 

초등학교 저학년생 아이의 원격수업은 즐거워보였다. ⓒ unsplash

  
내 아이의 원격수업은 늘상 그렇지만 매우 즐거워 보인다. 하고 싶은 모든 말들을 다 하는 듯하다. 내 아이만 그런 줄 알았는데 모든 아이들이 대부분 수업 과정 속에서 궁금한 내용을 질문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거나 선생님의 질문에 답변하는 등 수업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듯했다. 국민학교를 다닌 80년대생인 나에게는 매우 낯설기만 한 풍경이다.

나의 국민학교 1학년 때 수업 시간을 떠올려보면 이랬다. 나의 선생님은 연세가 있으신 남자분이었고 전반적으로 좀 무서운 선생님으로 느껴지기도 하였다. 따라서 선생님이 말씀하실 때 자유롭게 말하거나 친구와 떠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수업 태도 역시 최대한 바르게 해야만 했다. 선생님과 칠판, 책상 위 교과서를 응시했다. 초등학교에 처음 들어온 아이들은 특히 더 긴장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시절에는 말을 많이 하거나 수업과 다소 무관한 의견을 말하는 것은 금기시되는 듯한 분위기였다.

코로나 대응 업무로 출장 갔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이동식 선별진료소(워크스루)에서 길게 줄을 선 저학년 초등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진단검사용 보틀을 들고 일렬로 줄을 선 아이들에게 교사들이 '일정 거리로 떨어져서 서로 말하지 말라'고 지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이렇게 질문을 던졌다. 


"이거 검사하는 거 아파요?"
"이거 진짜 다 해야 해요? 나 진짜 하기 싫은데..."
"이 병은 뭐예요?"
"이거 거꾸로 들면 안돼요? 이거 안에 든 거 뭐예요?"


끝없는 질문과 아이들 간의 대화로 정신이 없는 나는 곁에 서있던 초등학교 선생님에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초등학생 아이들이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줄 몰랐네요."

선생님은 웃으며 이렇게 말해주었다.

"이건 약과죠. 교실에 들어가면 거의 모든 아이들이 다 말한다고 보시면 돼요. 이 정도는 뭐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하"

나는 중학생의 수업 시간에서도 정말 말이 많다고 느꼈지만, 초등학생들은 조금 다른 줄 알았다. 단순히 나의 국민학교 시절의 교실 풍경만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에는 친구와 떠들지언정, 선생님이 들어오는 순간부터는 거의 정지 상태였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인문학적 상상력을 가진 창의적인 인재'를 만들기 위한 21세기 교육과는 결코 맞지 않았다고 본다.

학교민주주의와 혁신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지금의 학교는 '민주주의'와 '혁신'을 말하며 수업 형태부터 공간까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강의식 수업을 위주로 하던 과거와 달리, 다양한 형태의 교수학습법, 모듬학습을 통한 토론과 토의의 활성화 등 많은 변화가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학생 생활지도 역시 민주적이고 자율적으로 변화하는 추세이다. 나의 중고등학생 시절의 획일화된 헤어스타일과 복장 규정과는 달리, 학생들이 자율적이고 민주적으로 학생 생활 규정을 만들고 지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내가 재직한 학교에서도 학생 생활 규정을 새롭게 제정하기 위하여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상당수 참여해 아주 치열한 토론회를 거쳤고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재잘재잘 수업하는 내 아이와 노트북 너머로 계속 들리는 다른 아이들의 말소리가 참 어색하면서도 재미있기도 하고 반갑다.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많은 아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어 수업의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화내지 않으셨고 아이들의 이름을 골고루 불러가며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셨다.

"OO야, 한번 말해볼래?"

지난 원격수업 때, 아이가 궁금한 것이 생기거나 할말이 있을 때마다 계속 큰 소리로 선생님에게 말을 했다. 나는 아이의 태도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 민망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었다. '계속 저러다가 아이가 선생님께 꾸중을 듣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아이에게 다가가 강하게 제지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선생님은 단 한번도 혼내지 않고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시며 잘 경청해주었다.

"OO아, 뭐라고 했니? 다시 한번 말해줄래요?"

코로나19로 인하여 먼저 온 미래교육, 원격수업과 온라인 수업이 처음 시도된 작년 초 학교 선생님들을 비롯하여 학생과 학부모는 모두 어려움이 컸다. 지금도 '원격수업'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일대 혼란' '엄마 수업' 등 여전히 힘겨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작년 초부터 학교 선생님들은 원격수업 관련 기기 구비를 시작으로 학생의 출결 확인, 과제 독려 등을 하느라 어려움이 상당했다. 가정에서도 기기 준비가 되지 않았거나, 접속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저학년생의 경우 다수의 과제가 엄마의 숙제가 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원격수업으로 인한 코로나 시대의 학습 격차를 우려하는 보도에 대응해, 원격수업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 시대 원격수업이 말 그대로 '일대 혼란'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런 와중에도 아이의 원격수업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교실 속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새삼 떠올랐다. 이런 엄중한 상황 속에서 웬 감성적인 소리를 하냐는 의견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오늘따라 아이들의 재잘대는 말소리와 선생님의 목소리가 떠올라 흐뭇한 웃음이 짓는다. 
 

자신의 의견을 잘 개진할 수 있는 민주적인 수업 분위기로 바뀌고 있는 학교 교실 속 풍경 ⓒ unsplash

 
원격수업 전 아이의 가방 속 준비물을 챙기면서 선생님의 꼼꼼하고 세심한 손길을 느꼈다. 선생님은 아이의 투명 파일에 날짜와 교시가 적힌 원격수업 학습지들과 날짜별 준비물까지 챙겨서 넣어주셨다.

갑작스럽게 원격수업이 진행되면서 선생님은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을 손수 챙기느라 바쁘고 힘들었을 것 같다. 이런 와중에도 아이들이 웃으며 자신의 말을 할 수 있는 수업 분위기를 만들어준 아이의 담임선생님께 진심어린 존경과 응원의 마음을 전했다.  

불현듯 정치권을 비롯하여 우리 사회에서 어른들이 가장 많이 거론하는 단어 '혁신' '민주주의'가 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가장 처음 접하는 작은 사회인 학교의 교실 수업 속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소중한 가치가 초중고 학창시절 동안 아이들에게 잘 체득되길 희망한다. 나는 오늘 행복한 불금, 아이의 원격 수업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덧붙이는 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릴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원격수업 #학교민주주의 #교육혁신 #초등학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일상 속 크고 작은 이야기를 전하는 행복예찬론자

이 기자의 최신기사 40대의 방황이 주는 의미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