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잊을 수 없는 과일, 수박

[맛있는 잡담⑤] 임신 중에 그렇게 먹더니 태어난 아이도 좋아해

등록 2021.07.18 17:34수정 2021.07.18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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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먹거리하면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 냉면, 콩국수 등 모두가 즐겨 먹는 대표적 냉 메뉴부터 이열치열이라고 뜨거운 음식까지…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즐기는 여름 음식을 대부분 좋아한다. 거기에 나이 먹고도 변하지 않는 초딩입맛(?) 탓인지 냉장고에는 하드 아이스크림이 가득 채워져 있다. 어린 시절부터 초콜릿을 너무 좋아하는지라 대부분이 초콜릿 계열이다.


오늘은 나의 여름 음식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는 2019년의 여름, 정말이지 시원하게 우리 가족을 지켜준(?) 수박이라는 존재에 대해 떠올려볼까 한다. 우리 아내에게도, 아기에게도 효자 노릇을 했던 과일이니까 말이다.

사실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수박을 거의 잊고 살았다. 싫어하지도 않았지만 좋아하는 편도 아닌지라 누가 먹으면 함께 먹는 정도였다. 먼저 챙겨서 먹지는 않았다. 시골에서 살 때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렇게 수박을 좋아하셨다. 여름이면 잘 익은 수박을 가지고 와서 평상에 앉아 식구들끼리 수박 파티를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내 또래들은 알겠지만 당시에는 간식 자체가 귀했다. 뭔가 메뉴를 따질 틈도 없었다. 그저 식사 시간 외에 다른 것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 기분 좋았다. 수박은 다른 과일에 비해 양도 큰지라 커다란 수박을 쪼개서 펼쳐놓으면 온 식구가 실컷 먹을 수 있었다.

지금이야 안 될 일이지만 당시에는 수박 서리도 유행(?)했던 것 같다. 어쩌다 원두막에서 모이면 형이나 친구들과 함께 수박밭에 들어가 몰래 수박을 들고 나오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마음씨 좋은 주인 아저씨가 알면서도 모른척 하신 듯하다. 뻔히 사방을 주시하고 계신데 어설프게 몰려다니며 수박을 들고나오는 모습을 보지 못하셨을 리가 없다.

그렇듯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이후 성장해서는 수박을 딱히 먹을 일이 많지 않았다. 어쩌다 수박 선물이 들어오면 설탕을 듬뿍 부어 화채로 만들어 한번씩 먹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던 중 아내의 임신은 수박이라는 과일이 또다시 각인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내는 아들이 먹기 편하게 수박을 잘라서 그릇에 넣어준다. ⓒ 김종수

 
수박으로 10개월 버틴 아내, 아들은 수박 대장


자주 즐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수박은 나와 참 인연이 깊나보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렇게 좋아하더니 이후에도 나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이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2019년 여름, 수박은 마치 가족처럼(?) 익숙한 존재로 다가왔다. 당시 아내는 임신 중이었는데 입이 짧은 것은 아니었지만 본래 소식을 하는 스타일인지라 크게 먹고 싶은 것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내는 그게 살짝 부담이 되었던 듯싶다. '뱃속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뭔가를 먹어야 될텐데…'라는 생각으로 음식이 당기지 않아도 계속해서 챙겨 먹으려 노력했다. 평소에 썩 즐기지 않던 고기도 적극적으로 챙겨먹는 등 그야말로 엄마의 노력이 돋보였다. 공복을 즐기던 결혼 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먼저 엄마가 된 지인이 조언을 해줬다.

"골고루 잘 먹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 속에서 당기는 것 위주로 먹어. 괜스레 억지로 먹다가 스트레스 쌓이면 그게 더 태아에게 안 좋을 것 같은데."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아내도 거기에 공감을 했던지 발길을 시장 쪽으로 돌렸다. 여전히 막 먹고 싶은 음식은 없었지만 과일 쪽이 고기보다 더 편하게 먹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여러 가지 과일을 사다가 주 메뉴로 삼았다. 사과, 복숭아, 참외 등 다양한 과일이 식탁에 올랐다.

문제는 자꾸 먹으니까 조금씩 물린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다른 음식에 비하면 그래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맛있게 먹던 참외까지도 슬슬 처음의 그 맛을 느끼지 못했다. 다른 주 메뉴가 필요한가 싶었다.

그러던 중 수박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다른 과일을 먹느라 안 샀는데 아내가 몇 번 먹어보더니 입에 잘 맞는다고 했다. 맛도 좋고, 계속 먹어도 잘 안 질린다는 것. 혹시나 참외 등 다른 과일처럼 그때뿐인가 싶기도 했으나 아니었다. 이번에는 진짜였다. 그 뒤로 출산 직전까지 아내는 계속해서 수박을 먹었으니까 말이다. 아내의 입맛을 수박이 지켜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내는 장날을 많이 활용했다. 장날마다 오시는 과일 트럭 할아버지가 계신데 일반 마트보다 가격도 저렴하고 제품도 싱싱했던지라 들를 때마다 2, 3개씩 샀다. 아내는 트럭 할아버지를 '츤데레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덩치도 크시고 성격도 무뚝뚝하셔서 첫인상은 다소 불친절하게 느꼈지만 말 없이 다른 과일도 조금씩 챙겨주시는 등 은근히 자상하셨기 때문이다. 가끔 웃어 보이실 때는 더 없이 사람 좋아 보였다.

어쨌든 수박의 지원 사격 덕분에 아내는 건강한 아내를 출산했다. 수박이 나와 아내에게 고마운 과일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재미있는 것은 출산 후 아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처럼 수박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임신 때 마냥 꼭 무엇인가를 챙겨 먹을 필요도 없었지만 일단 먹고 싶은 마음이 잘 들지 않으니 자연스레 멀어지게 됐다.

그렇게 수박은 우리 가족에게서 멀어지는 듯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또 다른 수박 대장이 우리 집에 나타났다. 다름 아닌 23개월 된 아들 녀석이다. 좋아하게 된 과정도 아내와 비슷하다. 음식을 조금씩 먹기 시작하면서 이것저것 다양한 메뉴를 배워나가더니 언제부터인가 수박 맛을 제대로 느끼고 있다.
 

식사후 후식으로 수박을 빼놓지않는 아들 ⓒ 김종수

 
어지간한 음식은 연속으로 먹으면 질려하는데 수박만큼은 몇 달째 문제없이 계속 즐기는 중이다. 하루에 한번 이상은 꼭 먹는지라 일주일에 커다란 수박 1개 이상을 먹는다. 아직은 어른들처럼 손으로 잡고 먹기가 불편해서 아내가 깍두기 모양으로 잘라서 그릇에 담아놓으면 포크로 찍어 먹는다.

너무도 수박을 꾸준히 잘먹는 모습에 어느날 아내가 무릎을 탁 쳤다. 그리고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아들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너 딱 걸렸어! 내가 수박이 먹고 싶었던 게 아니야. 네가 먹고 싶었구나?"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수박을 맛있게 먹는 아들이 신기하면서도 예뻤던 모양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의 추억에서 임신 중 아내의 최애 과일 그리고 우리 아들까지 즐겨 먹는… 수박이라는 과일을 내가 여름철마다 잊을 수 없는 이유다.
#수박대장 #수박좋아하는 모자 #수박장군 #수박먹방 #수박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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