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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성 징병'을 제대로 논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서평] 군대는 어쩌다 젠더 갈등의 블랙홀이 되었나,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

등록 2021.07.20 16:05수정 2021.07.2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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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알고리즘 덕분에 전역한 젊은 여군 혹은 군대에 소위 '말뚝을 박은' 여성들이 출연하는 콘텐츠들을 본 적이 있다. 하나를 보면 또 다른 하나를 추천해주니 몇 개를 보게 되었다. 이 영상들을 보고 느낀점을 요약하자면, '이들도 전역 이후 인생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평범한 생활인이구나' 정도 되겠다. 

그런데 그런 영상에는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저게 진정한 여군이다', '여자들은 저 사람들을 본받아야 한다' 등의 칭찬 댓글이 달린다. 그런가 하면, 동시에 여성이 사병으로 복무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어차피 군대 가도 꿀 빠는 거 아니냐'라는 비꼬는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의무가 부여되지 않아도 각자 나름의 이유로 입대를 했을 여군들에게 다른 여성들과 비교하고 조롱하는 말들이 과연 고마운 칭찬으로 들릴지 잘 모르겠다. 이런 댓글들은 한국 사회에서 군대라는 주제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라는 방증 아닐까. 

성평등을 위해 군대를 가라?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 책 표지. ⓒ 동녘

 
여성학, 평화학 연구자인 김엘리가 최근 낸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2021)을 읽으면서 전역 여군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에 달린 댓글들 생각이 났다. 저자는 여성 징병에 얽힌 정치사회적 맥락을 톺아보면서, 이 문제가 얼마나 복잡한지 논증해낸다. 

특히 한국 사회의 근대화 과정에서 남성의 병역 이행은 남성이 표준적인 시민이 되어가는 과정이었음을 지적한 여러 연구자의 분석을 인용한다. 결국, 근대적 남성성은 '국가를 지키는 자는 곧 가정을 지키는 생계부양자'라는 인식을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기틀 속에서, 한때 남성만 군대를 갔던 것은 너무 당연한 얘기였다. 

그런데 최근엔 '여성도 군대를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는 상황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때 우리는 다양한 질문들에 직면하게 된다. 
 
무엇보다 어떻게 평화를 만들 것인가라는 비전을 국가가 독점하지 않고, 시민들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안보가 반드시 군사안보여야만 하는가?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강한 군사력이 있으면 만사형통인가? 시민들의 안전한 삶을 위해 국가와 군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중략) 안보에 관한 생각이 달라지면 군사 활동의 성격도 변한다. 포스트 근대사회의 군사 활동은 비전투 활동으로 확장되는 경향이 크다. 그러면 군인의 역할이나 정체성도 다양해진다. 

오늘날의 여성 징병 논의는 여성을 어떻게 하면 전투병으로 만들 것인지, 남성이 짊어진 병역 의무를 어떻게 나눌 수 있을 것인지에 집중된 감이 없진 않다. 그러나 저자는 '평화'의 관점에서, 오늘날 필요한 군대와 병사의 모습은 변화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여성 징병 논의는 여기에 기초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군 가산점제가 위헌 결정이 난 뒤 지난 20여 년의 시간 동안, 한국 사회는 가산점제를 부활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데에만 사회적 비용을 허비했다. 사회적 변화로 군 복무가 인생에서 사실상 '낭비'가 되어버리자, 2030 남성들은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남성만의 병역의무는 투자 손실"이며 "자유로운 투자가 아니라 강제적인 복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는 군대를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얻지 못하며, 사회적 인정을 받지도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감정에 '공정성 담론'이 치고 들어오자, 여성에게 억울함을 푸는 결과를 낳게된 것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이 역시 안보의 관점에서만 병역을 바라보는 시선이 만들어 낸 폐해인 셈이다. 결국, 군대 문제는 남녀가 대립하는 '젠더갈등'의 모양새를 띄게 된다. 
 
군사안보가 절대적인 명제일수록 어떤 사람들은 군사제도를 의심하기보다는, 징집되지 않는 여성들에게 그 격차에서 오는 억울함을 쏟아낸다. 누구나 똑같이 군대에 가야 한다는 공정성 담론이 남성 사회에서만 작동하는 것을 넘어 병역 의무가 면제된 여성을 겨냥하는 시대가 되었다. 때로 남성만의 징병제는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의 탄환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더욱더 남성과 여성이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마치 젠더 갈등의 중심에 병역 의무제가 도사리고 있는 듯 말이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정치의 역할 
 

여성이 군대에 가면 성평등이 실현될 것이라는 시선에 저자는 의문을 제기한다. ⓒ Pixabay

 
이 주제는 하루 이틀의 논쟁도 아니고, 여기에 말을 얹는 사람들도 수없이 많아서 논의의 장이 복잡해지기 쉽다. 실제로 김엘리는 이 책을 통해 '병역의 의무'라는 신성불가침의 가치를 다양한 시선에서 바라보면서 오늘날의 군대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하길 요청한다. 

이러한 복잡한 논쟁이 '여자가 군대를 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평등이다'라는 단순한 문장으로 축약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이 책을 읽으면서 생겼다. 저자 역시 "누가 군인이 되는가라는 문제는 단선적인 기준으로 말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다양한 논점이 교차하는 이 전선에서 정치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은 중요하다. 저자는 해외의 여성징병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논의를 인용한다. 권 의원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도 지속해서 여성 징병 논의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해왔던 사람이다. 

지난 4월, 권 의원은 MBC 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 "여성의 일자리 확대라는 측면에서 군인은 굉장히 좋은 일자리다. 군대에 여성이 많아지면서 여성 친화적인 조직으로 바뀐다는 것은 그 사회에 성평등 문화가 확대되는 데 굉장히 좋은 요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박용진 의원의 '남녀 의무군사훈련' 도입 주장 등에 대해서는 "'찬성할래, 반대할래' 방식은 지금 단계에서 굉장히 섣부르다. 조심스럽게 논의를 시작하는 것에 적극 찬성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여성징병을 공론장에서 언급하는 많은 이들이 이 주제의 복잡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중이다. 제도권 정치가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성실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여성의 군 참여는 '성평등' 프레임 안에서 논박되고 성평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었다. 언론도 이에 가세한다. 여성들에게 금녀의 공간은 없다며 여풍을 몰고 온 여성 군인의 행보를 양성평등의 실현으로 재현한다. 여성 징병 논란은 이러한 성평등 프레임 안에서 그 여부를 묻는, 혹은 가능성을 묻는 찬반 논쟁으로 축소된 느낌이 짙다. 여성이 군대에 가면 성평등 실현에 이로울까 아닐까라는 물음 안에서 우리가 던질 수 있는 다른 물음들은 지워진다.

(중략) 좀 다르게 접근을 해보자. 여성이든 남성이든, 누가 되든 군대는 진짜 갈 만한 곳인가? 전쟁 준비와 군사 활동은 할 만한 것인가? 군대와 군사안보, 국가를 서로 연계 짓는 사유 틀을 좀 다르게 숙고할 여지는 전혀 없을까?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

김엘리 (지은이),
동녘, 2021


#여성징병 #군대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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