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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부터 성교육 한다는 건 오버라고 생각했는데

성에 대해 알려주는 만화 '집에서 성교육 시작합니다'를 읽고

등록 2021.07.21 09:11수정 2021.07.2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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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초등학교 고학년이라고 하니 지인이 <집에서 성교육 시작합니다>라는 책을 추천해 주었다. 책을 보자마자 노란색 띠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일본 아마존 초대박 베스트셀러. 4~11세가 중요'라고 적혀있는 띠지. '4세부터 성교육이라니 너무 과장한 거 같은데' 하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넘겼다.

성교육 전문가가 학부모들에게 성교육을 하는 형식의 만화여서 읽기가 편했다. 게다가 '아이에게 이렇게 알려주세요'라고 쉬운 말로 다시 정리해 주어 실생활에서 아이에게 말할 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난 '월경이 시작되었을 때는 이렇게 말해주세요' 부분에 인덱스를 붙였다.
 
"생리할 때는 보통 5일간 계속 피가 나오는데 기간이나 양은 사람마다 다르단다. 시작하고 반나절에서 이틀쯤은 생리통이라고 해서, 배에 심한 통증이 지속될 수 있어. 만약 너무 아파서 힘들거나, 나른하거나 마음이 무거울 때는 언제라도 말해주렴. 수월하게 지나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 보자. 또 모르는 것이 있거나 곤란한 일이 생기면 물어보렴."(p108)
 
 
내 어릴 적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생리를 시작했는데 당시 생리에 대한 아무 정보가 없어서 무척 당황했었다. 마침 흰 바지를 입고 있었고 엄마도 집에 안 계셨는데 동생이 옆에서 "언니 오줌쌌대요!" 하고 놀려대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초경을 한 뒤로도 생리대를 언제 갈아야 하는지 몰라 하루종일 생리대 하나를 사용했다. 생리 중일 때, 동네 꼬마 아이가 나에게 "똥 냄새 난다!"라고 놀려 창피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딸이 처음 생리를 시작할 때 책에 나온 대로 말해주면 아이의 긴장감이 조금은 덜해지지 않을까.
 

집에서 성교육 시작합니다 - 당황하지 않고 몸·SEX·성범죄 예방법을 알려준다, 후쿠치 마미,무라세 유키히로 (지은이). ⓒ 이아소

책을 읽기 전에는 4세부터 성교육을 한다는 게 오버라고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그 홍보 문구가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범죄 예방을 위해 아이에게 'NO, GO, TELL'을 알려줘야 하는데 'NO'는 싫다고 분명하게 거부하고, 'GO'는 사람이 많은 곳으로 도망치고 'TELL'은 만약 '비밀이야'라고 했어도 신뢰할 수 있는 어른에게 말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난 이중 'NO'에 대한 설명이 가장 인상 깊었다. 만화책 속 강사는 어릴 때 싫은데도 분위기 때문에, 혹은 예의 없다고 혼날까 봐 '싫다'라고 말하지 못한 적이 많지 않냐고 묻는다. 무심코 눈치를 보고 마음의 갈등을 억누르다 보면 자기를 지키는 센서도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NO'라는 감정을 참지 않는 것 또한 성범죄 예방이 된다고 한다. 사람은 'NO'라는 감정을 전달하거나 수용하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는 인간으로 성장한다고 했다.

난 착한 아이라는 틀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며 'YES'만 하고 자라 아직도 'NO'라는 표현을 잘 하지 못한다.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의 'NO'라는 표현이 버겁게 느껴지고 때론 기분 나쁘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 'NO'라는 표현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내가 받은 성교육은 중학교 가정시간에 정자와 난자가 만나 아이가 생긴다는 교육 비디오를 본 게 전부다. 당시는 성에 대한 이야기를 무조건 금기시하는 분위기여서 드러내 놓고 부모님께 궁금한 걸 물어볼 수도 없었다. 중학교 때 친구가 보여준 책에서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알게 되었는데 그때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던지. '우리 엄마, 아빠는 아닐 거야, 아닐 거야'라고 생각했었다.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보니 성에 대한 아이의 질문을 '지금은 몰라도 돼, 나중에 알려줄게'라는 말로 넘겼다.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는데 혹시나 아이가 다시 물어본다면 '담담하게' '제대로' 알려줘야겠다. 가정에서 미리 배워놔야 우연히라도 음란물을 접하게 됐을 때 성행위에 대한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고 하니까. 아이가 "엄마 아기는 어떻게 생기는 거야?"라고 다시 묻는다면 이렇게 말해줘야지.
 
"물고기는 물속에서 암컷이 알을 낳으면 그곳에 수컷이 아기씨를 뿌려서 그 둘이 만나 생명의 근원(수정란)이 만들어지는데 사람은 물속에서 살지 않잖아. 그래서 아빠의 아기씨를 알이 있는 곳으로 고추로 쏘아 보낸단다. 엄마의 오줌 나오는 데랑 똥꼬 사이의 깊은 안쪽에서 알이 기다리고 있거든. 이런 걸 섹스라고 말해. 어른이 돼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아기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모두가 하는 거란다." (p119)
 

아, 과연 내가 이 긴 대사를 딸에게 담담하게 잘 말할 수 있을까.

집에서 성교육 시작합니다 - 당황하지 않고 몸·SEX·성범죄 예방법을 알려준다

후쿠치 마미, 무라세 유키히로 (지은이), 왕언경 (옮긴이),
이아소, 2021


##성교육 ##집에서 성교육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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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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