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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째 순창 오지마을 찾은 의사들, 그 이유가

[현장] 전북 순창군 구림면 운북리 단풍마을 의료봉사 현장

등록 2021.07.21 16:07수정 2021.07.2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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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마을 주민들이 봉사단의 설명을 진지하게 듣고 있다. ⓒ 최육상


"손 씻는 법, 이제 모두 알고 계시죠?"
"마스크는 어떻게 착용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죠?"
 

전북 순창군 구림면 운북리 단풍마을 회관에서 때 아닌 소동이 벌어졌다. 흰 가운을 두른 의사와 파란색 티셔츠를 입은 의료봉사단 단원들이 웃음으로 단풍마을 주민들을 맞이했다. 주민들은 익숙한 듯 천막 안에 놓인 의자를 하나씩 꿰찼다. 이날 의료봉사를 받으러 회관에 나온 주민은 60대부터 95세까지 스무 명 남짓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하고 한국농어촌공사가 주관한 '2021 농촌재능나눔 의료단체 활동지원사업'이 진행되던 지난 17일 오후 1시 단풍마을 회관 앞. 성산장기려기념사업회ㆍ블루크로스의료봉사단 단원들과 함께 마을을 찾은 장여구 단장은 "4년째 순창 단풍마을을 방문하고 있다"고 밝게 웃었다.

60대부터 95세까지 주민들에게 의료봉사

강철환(84) 노인회장은 "해마다 의료진들이 우리 주민들에게 의료 상담과 진료를 정확하게 잘 해주신다"며 "다른 마을은 모르겠지만, 치료 한 번 받으려면 읍내까지 힘들게 나가야 하는 우리 마을에는 참으로 고마우신 의사 선생님들과 학생들"이라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섭 이장은 "의료봉사단이 오지 마을만 찾아다닌다고 그러는데, 어느 날 우리 마을에 연락이 왔다"면서 "작년에는 코로나였는데도 빠지지 않고 오셨고, 꼬박 4년째 우리 마을을 찾아주셔서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김충효 교수는 "오늘 의료진은 외과, 치과, 가정의학과, 신경외과, 안과 이렇게 다섯 과에서 상담과 검진, 치료를 나왔다. 저는 순창엔 이번이 처음"이라며 "봉사단은 의료진과 고등학생과 대학생 등이 다양하게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귀복(88) 어르신은 "코로나 때문에 마을 주민들이 이렇게 모이는 건 정말 오래간 만이라서 참 좋다"며 "의사 선생님께서 치료도 해 주시고 매번 여러 가지 지원품도 주셔서, 밥이라도 한 끼 대접해서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귀띔했다.

국내최초 의료보험조합 설립한 장기려 박사 뜻 이어
  

장여구 단장이 대표로 주민들에게 지원 물품을 증정하고 있다. ⓒ 최육상

 
이날 의료봉사단은 "전북 순창군 구림면 주민들을 위한 생활 물품 지원" 행사를 열고, 어르신 한 명 한 명에게 물품을 전달했다.

성산장기려기념사업회는 '성산 장기려' 박사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설립했다. 장기려 박사는 1968년 우리나라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인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만들었다. 장기려 박사는 가난한 환자들도 돈 걱정 없이 치료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한 권으로 끝내는 교과서 위인>(2005.12.30. 조영경, 백정현)은 장기려 박사를 이렇게 소개한다.

"그(장기려 박사)는 수술비가 없는 환자를 위해 자신의 돈으로 수술을 해주고, 그나마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밤에 몰래 환자를 탈출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평생 자기 집 한 채 가지지 못하고 병원 옥상 사택에서 살다가 1995년 추운 겨울날 새벽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4년 전 컵라면을 처음 드셔 보신 주민들"

장여구 단장은 장기려 박사의 손자로 할아버지의 뜻을 잇고 있다. 장 단장은 봉사활동을 총괄하느라 분주했다.

장 단장은 "전국의 농촌 오지 마을 위주로 1년에 몇 차례씩 봉사활동을 다니는데, 다른 마을은 해마다 바뀌지만, 순창 이곳 마을만 4년째 빠지지 않고 오게 됐다"면서 "순창군에서는 오지에 속해서 그런지 4년 전에 저희가 간식으로 먹으려고 가져왔던 컵라면을 마을 어르신들이 처음 드셔보셨다고 말씀하신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장 단장은 기념사업회에서 어르신들을 위해 큼직한 그림 설명을 곁들여 만든 '119가 올 때까지 생명을 살리는 응급처치 구해줘요! 119' 책자를 건네면서 "질병은 치료보다 예방이 몇 배는 더 중요한데, 어르신들이 질병 예방법을 생각보다 진짜 모르신다"고 안타까워했다.

장 단장은 이어 "4년째 방문하다 보니 어르신들 건강 상태를 비교적 잘 파악하고 있다"면서 "검진과 치료가 중요한 활동이지만, 의료진과 봉사단원이 어르신 한 명 한 명과 대화를 나누고 생활에 필요한 물품도 지원해 드리면서 정을 나누는 게 훨씬 더 큰 봉사인 것 같다"고 말했다.

"봉사활동을 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경기도 가평에서 봉사활동에 참여한 문소윤(청심국제고3) 학생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해 아동학교에서 사물놀이를 가르치다가 작년에 의료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했다"면서 "농어촌에서 의료봉사 하는 건 올해가 처음이고 지난주에는 (강원도) 영월에 다녀왔다"고 말했다.

문소윤 학생은 "고3이면 한창 입시 공부 할 때 아니냐"는 물음에 "공부할 시간이 줄어서 힘들지만, 봉사활동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또 시골마을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정말 반갑게 맞아주시고 좋아해 주셔서 주말을 이용해 틈틈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해맑게 답했다.

마을 최고령 이양림(95) 어르신은 "나이가 들어서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는데, 의사 선생님들하고 학생들이 와서 즐겁게 대화를 해주니 정말 좋다"면서 "우리 마을 주민들 모두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면서 선생님과 학생들을 계속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미소 지었다.

마을회관은 야트막한 산 중턱에 자리했다. 인사를 나누고 마을회관에서 내려오는 길, 무심코 뒤돌아 올려다 본 회관 위로 주민과 봉사단원들이 왁자지껄 웃음꽃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에 찌는 듯한 날씨였지만, 짙은 초록의 산으로 둘러싸인 단풍마을에서는 웃음꽃에 막혀 무더위가 잠시 멈춰 선 느낌이었다.
 

의료봉사를 온 봉사단과 마을주민들은 대화를 나누며 즐거워했다. ⓒ 최육상

#전북 순창 #구림 단풍마을 #장기려 #성산 장기려 #장기려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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