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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도 '가지된장튀김' 같았으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가지와 된장의 환상적인 만남, 그 맛의 비결

등록 2021.07.26 19:44수정 2021.07.2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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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 말씀처럼 먹성으로 어른 되긴 영 글러 먹었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스무살 중·후반까지 쿰쿰한 냄새가 싫다며 된장 들어간 음식은 쳐다도 안 봤으니 말해 뭣 하겠나. 물컹한 가지 요리 또한 제아무리 맛있다 꼬셔대도 일절 손대지 않던 것 중 하나다.


'국민학교' 여름방학 때 외가에 놀러 갔더니, 외사촌들이 어른들 눈을 피해 슬금슬금 텃밭에 드나드는 눈치였다. 텃밭에만 갔다 오면 외사촌들 손에는 잘 익은 가지가 들려 있었다. 이보다 더 맛있을 수 없다는 듯 갓 따온 가지를 부여잡고 야무지게 질겅거렸다.

나도 덩달아 한입 베어 물었다가 "퉤퉤" 못 먹을 것 먹은 양 입안에 든 걸 죄다 뱉어냈다. 스폰지와 별반 다르지 않은 걸 왜 먹는지 도무지 이해되질 않았다. 그보다는 외사촌들의 거짓부렁에 약이 올랐는지도 모른다. '달착지근하다더니.... 개뿔!'
 

일본 유학 중에 아르바이트했던 '이자카야(대중음식점)'의 메뉴판으로 어묵류가 없는 걸 보니 추워지기 전에 팔던 메뉴들 같다. ⓒ 박진희

   
가지와 된장 맛을 제대로 알게 된 건 타국에서다. 1990년대 중반, 일본에서 연구생으로 일 년 동안 팔자에 없던 경제학을 공부했다. 이미 직장생활을 몇 해 하고 시작한 공부여서 제 밥벌이는 할 수 있는 나이였다. 게다가 감히 연구생 주제에 한국에서 들고 온 돈을 고스란히 축낼 수 없어서 일주일에 3~4번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서울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오빠 때문에 한국을 알게 됐다는 직장인에게 일주일에 한두 차례씩 한국어를 가르쳤다. 준공무원 신분의 그녀는 출장이 잦아 수업을 제때 못하는 날이 많았다. 수입이 들쭉날쭉했다. 그래서 친하게 지내던 중국인 언니가 일하는 이자카야(居酒屋)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함께 일하게 됐다. 보통 이자카야(居酒屋)를 우리말로 '선술집'이라 번역하는데, 가정식과 간단히 마실 수 있는 주류와 안줏거리를 파는 곳이다. 

식당은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아들 하나를 둔 사장님 내외가 저녁 시간에만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써가며 운영하는 곳이었다. 엄청 친절하신 분들이라 초면에도 구면같이 느껴졌다. 손님 대부분은 근처에 직장을 두고 있거나 가까운 곳에 사는 단골들이었다. 식구처럼 드나드는 손님들과는 해넘이 행사와 신년 행사도 같이 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가게는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인테리어를 하고 있었지만, 사장님 내외의 음식 솜씨만큼은 아주 특별했다. 제철 식재료에 눈을 뜬 것도 재료마다 지닌 특징에 관심을 두게 된 것도 이분들과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이국 생활 중에 중매쟁이로 나선 사연

가지 맛이 한창 물오를 때였다. 우리가 흔히 보는 기다란 가지도 있었지만, 당시로써는 처음 보는 둥근 형태의 가지가 반찬거리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더구나 도톰하게 잘린 가지에 칼집을 넣어 된장을 바른 뒤 튀겨내는 '가지된장튀김'은 이 집만의 특별한 메뉴였다.

가지밥, 가지찜, 가지볶음, 가지무침 등 한창 가지요리가 SNS를 점령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가지에 된장을 발라 튀긴 요리는 보지 못한 것만 봐도 비범한 레시피임을 알 수 있다.

가지와 된장?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다. 그런데 여러 번 권하여 못 이기는 척 한 번 먹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어찌 이런 음식 궁합이 있을 수 있담? 사장님 내외는 타고난 천재 요리사가 틀림없다'며 음식에 반하고 실력에 감탄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사장님 내외 솜씨를 잘 배우게 됐다. 한국에 돌아가면 손님들과 소통하는 일식당을 차리고 싶다는 포부도 갖게 됐다. 계절이 바뀌어 새 메뉴판으로 교체할 때 받아둔 묵은 메뉴판을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버리지 못하는 까닭이다.

이 집 단골손님 중에 중학교 교사가 있었다. 어느 날, 사장님 내외가 반 농담삼아 "좋은 사람 있으면 중매 좀 서" 하시길래 내게 한글을 배우는 공무원 제자를 점찍었다. 가지된장튀김은 처음이라기에 겸사겸사 가자고 조르니, 제자는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섰다.

선보는 자리의 분위기는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다를 바 없었다. 이름, 나이, 가족관계를 소개하고 나서 하는 일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과는 좋지 않았다. 내가 봤을 땐 제자는 가지 같은 여자고, 중학교 선생님은 된장 같은 남자였다. 겉으로 봐선 안 어울릴 듯한데, 몇 번 더 봤더라면 필시 가지된장튀김같은 의외의 조합을 보였을지도 모를 일인데.... 아쉬움으로 끝난 청춘남녀의 인연이었다.
 

가지를 약간 도톰하게 잘라서 가운데에 칼집을 반쯤 넣어준다. 칼집을 양쪽으로 조금씩 넣어 줘도 괜찮다. ⓒ 박진희

 
며칠 전, 못난이 가지를 몇 개 얻었다. 찜통에 쪄서 잘게 찢은 걸 간장 양념하여 무쳐 먹다가 문득 그 옛날 잠자던 미각을 일깨워 준 '가지된장튀김'이 떠올랐다. 둥근 가지를 못 구해서 일반 가지를 쓸 수밖에 없으니 흉내만 내보기로 했다.

만드는 방법은 정말 간단하다. 우선 일정 간격으로 가지를 도톰하게 썰어서 중간 부분에 칼집을 내준다. 안에 된장을 넣어야 하니 반 정도만 잘라준다. 칼집을 크게 낼수록 된장이 삐져나와 모양은 엉망이 된다. 무엇보다 간이 맞지 않아 낭패를 볼 수 있다.

된장은 국내에서 생산되는 일본 장국된장, 일명 '일본 미소'를 사서 쓰면 되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은 게 흠이다. 450g 한 통에 8000원인 것을 세일가 6400원에 사왔다. 가성비를 따지면, 국산 쌈장에 전분을 섞어 써도 괜찮지 않나 싶다. 가급적 물기가 없고 부드러운 된장이 제격이다.

된장은 칼집 낸 가지 한쪽 면에만 바르는 것으로 충분하다. 가지와 먹으면 생각보다 된장이 짜게 느껴지니, 부족하다 싶게 넣는 걸 추천한다. 자칫 가지를 세게 눌렀다간 된장이 밖으로 삐져나오기도 하니 조심해서 다룬다. 싱거우면 간장이나 여타 소스에 찍어 먹으면 해결될 문제다. 

칼집 낸 가지에 된장을 바르고 밀가루를 묽게 반죽해서 골고루 묻혀 튀겨내면 끝이다. 기름진 걸 싫어하는 분들은 전처럼 프라이팬에 기름 넉넉히 두르고 부쳐내도 좋다. 센불에 단시간에 조리하는 걸 권한다.
 

옥수수밥에 가지된장튀김(이날은 전으로 부쳤다)을 올려 먹었다. 아련한 옛 추억도 생각나고, 별미를 즐기며 시작하는 아침은 특별했다. ⓒ 박진희

 
옥수수 몇 알을 넣고 밥을 짓고, 가지된장튀김(이날은 가지된장전을 부쳤다)을 올려 아침밥을 먹었다. 먹어 본 사람들은 가지 같지 않은 가지 요리라는 나쁘지 않은 평을 내놓았다.

요즘 부쩍 한·일 관계가 악화 일로를 치닫고 있다. 이런 때 막말과 상식 이하의 행동을 일삼은 일본 인사들이 떠올라야 정상인데, 나는 내게 살갑게 대했던 일본 지인들과 함께한 시간을 회상하게 된다.

가지와 된장처럼 영영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나라다. 시끄러운 신문 기사를 살피며, 두 나라 관계가 가지된장튀김처럼 의외의 조합으로 거듭나길 바라고 또 바라게 된다.
덧붙이는 글 [오늘의 기사 제안]
#가지 요리 #된장 #맞선 #맛의 신세계 #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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