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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볕더위, 불 안 쓰고 만드는 입맛 도는 요리

[강윤희의 제철 1인 식탁] 애호박 카르파치오, 고기 없는 탄탄 두부면

등록 2021.07.24 11:29수정 2021.07.2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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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생명을 가득 담고 있는 제철 식재료를 먹는다는 것은 자연의 기쁨을 온 몸으로 느끼는 것. 계절도 생명도 드러나지 않는 무감한 매일의 밥에서 벗어나 가끔은 혼자서도 계절의 맛을 느껴보자. 철마다 나는 제철 채소를 맛있게 즐기는 법을 익혀 자연스레 채소 소비는 늘리고 육류 소비는 줄여 지구에는 도움을, 나에게는 기쁨을 주는 식탁으로 나아간다.[기자말]
장마는 빨리 지나가고 연일 폭염이 이어지는 요즘, 세계적으로도 이상 고온 현상이 잇달아 발생하는 걸 보고 있자니 기후 위기가 피부로 다가온다. 평소 경각심을 가져야지 하면서도 이제까지 살던 습관에 익숙해 잊고 있었는데 요즘엔 지구가 정신 차리라고 호통을 치는 것 같다. 일상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실천 항목들을 찾아보며 쓸 데 없이 옷 많이 사지 않기, 대중교통 생활화 하기 등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는 중이다.

환경을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실천 중 하나로 채식도 권장되는데 최근에는 꼭 엄격한 채식이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이틀은 고기 없이 지내기, 하루에 한 끼는 고기 없는 밥상 차리기 등 '비건 지향' 혹은 '간헐적 채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

나의 경우 어릴 적에는 고기라면 아무리 작은 조각이라도 삼키지 못했을 정도로 타고나길 고기나 생선 등을 꺼리는 성향이었다. 내가 먹는 것이 생명을 가지고 있던 동물을 죽인 사체라는 생각을 하면 비위가 상해 도저히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어린 나이라 환경이나 동물권 같은 것은 생각을 못했고 그냥 본능적으로 몸이 거부했다.

지금은 이것이 비건(엄밀히 말하면 달걀과 유제품은 좋아하기 때문에 페스코지만)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당시 어른들에게는 '까탈스러운 입맛'으로 받아들여졌다. "나중에 사회 생활하기 어렵다" 등등의 우려 섞인 말을 들으며 어른이 되기 위해 조금씩, 억지로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 더군다나 음식 기자로 일하다 보니 점차 고기나 생선의 맛을 알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고기나 해산물보다는 채소와 열매, 곡물류를 훨씬 좋아하고 태어나 이십 년을 고기 없이 살았던 습관이 몸에 배어 평균적인 육류 소비량보다는 훨씬 육류를 적게 먹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막연하게 '이 정도면 일부러 채식을 할 필요는 없지 않나'라고 생각해왔다.

자연스럽게 '비건 지향'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쪽으로는 따로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이왕이면 제철 채소를 더 맛있게 먹고, 혼자 먹기보다는 그걸 주위에 알리는 편이 아주 조금이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고기를 좋아하는 이에게 "고기 먹지 마"라고 하기보다는 "채소도 정말 맛있다"라고 즐겁게 접근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불 안 쓰고 만드는 요리

그런데 맛있는 채소고 뭐고 요즘처럼 더위가 심할 때는 음식을 하는 게 고역이다. 더위에 가스불 켜기는 두렵지만 기력은 없어 뭔가 힘나는 걸 먹고 싶다. 물론 여름은 채소와 과일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신나는 계절이다. 시장에 가면 싱싱한 토마토와 오이가, 가지와 애호박이 정말 저렴한 가격으로 나와있다.

이 무더위는 풍부한 일조량으로 많은 채소를 무럭무럭 자라나게 하지만 역으로 농가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며칠 전 강원 화천군에서 애호박 8kg 한 상자를 택배비 포함 6000원에 판매하는 행사를 시작했다. 일조량이 늘어 애호박 생산량이 크게 늘어났지만 폭염으로 소비가 줄어 가격이 폭락했다. 이로 인해 입은 재배 농가의 피해를 줄이려는 일환이었다.

맛있고 저렴한 애호박. 하지만 한 번에 많이 소비하기는 어려운 애호박. 이 애호박을 익히지 않고 샐러드처럼 잔뜩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애호박 카르파치오'. 이탈리아에서 육류나 해산물, 채소를 익히지 않고 조리하는 방법을 뜻하는 '크루도(Crudo)' 중에서도 재료를 아주 얇게 저며 썬 것을 카르파치오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치면 '회'라고 해야 할까?

애호박 카르파치오는 아주 얇게 썬 애호박을 소금으로 살짝 절여 물기를 뺀 뒤에 올리브유, 레몬즙 등의 드레싱을 더해 먹는데 '애호박을 생으로 먹을 수 있어?'라는 의아함을 한 방에 날릴 만큼 아주 부드럽고 산뜻한 맛이 좋다. 입맛이 없는 여름에 샐러드나 사이드 디시로 제격이고 불을 켜지 않아도 되는 데다 조리도 간단하니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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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박과 노란쥬키니 ⓒ 강윤희

 
이 외에도 식빵에 마요네즈를 바르고 얇게 저민 오이를 잔뜩 올려 소금, 후추만 뿌려 먹든가 시판 콩국물에 우무와 방울토마토 오이를 넣어 먹는 등 불 안 쓰고 끼니를 챙기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날들이다.

문제는 단백질을 챙겨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양 밸런스를 생각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밥이나 간식을 먹다 보면 탄수화물과 같은 당류만 잔뜩 먹게 된다. 그렇다고 의식적으로 단백질 섭취를 늘릴 생각을 하면 밥상 차리기가 만만치 않다.

혼자 밥을 먹으려고 음식을 할 때 나는 재료에 고기를 잘 안 넣기 때문에 달걀이나 두부로 단백질을 채운다. 그런데 불 안 쓰는 요리를 하다 보면 단백질 챙겨 먹기가  어렵다. 그래서 시판 두부면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요즘 대형마트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두부면은 두부를 얇은 포 형태로 만든 포두부를 면처럼 얇게 썬 것으로 따로 익히지 않아도 되고 맛도 고소하거니와 식물성 단백질이라 인기가 높다.

집에서 가장 자주 해 먹는 음식 중 하나로 두부면을 이용한 '포두부무침'이 있는데 라오깐마와 흑식초 등의 양념으로 간단하게 만들 수 있어 좋다. 하지만 메인 요리라기보다는 사이드 느낌이 강하고 단독으로 식사를 하기에는 맛이 강하다. 고민하다 이번에는 '고기 없는 탄탄 두부면'을 만들어 보았다.

대만에서 만들어진 '탄탄멘'은 양념해 볶은 다진 돼지고기와 참깨 페이스트의 일종인 '지마장'과 고추기름 소스가 들어간 면 요리로 뽀얀 육수를 자작하게 부어먹는 게 일반적이다.

지금 소개하는 버전은 고기 없이, 집에 있는 재료로, 불을 쓰지 않고, 최대한 편하지만 맛있게 먹기 위한 비빔면 레시피다. '불 없이, 고기 없이 간단하게 요리하며 단백질이 주가 되지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한 그릇 음식'이라니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훌륭하다!

만든 양념의 색이나 모양이 쌈장 같기도 해 나 혼자 '대만풍 쌈장'이라 부르는데 양념은 냉장고에서 일주일에서 이주일은 거뜬해 한 번에 많은 양을 만들어두고 아무때고 꺼내 비벼먹기만 하면 끝이다.

무친 오이나 애호박, 쌈채소와 토마토에 해초류까지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재료를 올려보자. 비건이 아니라면 삶은 닭가슴살을 찢어 올려도 어울린다. 몇 시간만 외출하고 돌아와도 온 몸에 힘이 빠지는 여름, 맛있는 여름 채소를 잔뜩 먹으며 더위를 이겨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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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박 카르파치오 ⓒ 강윤희

   
🥒 애호박 카르파치오

- 재료

애호박 1개, 소금 2/3작은술, 다진 양파 1큰술, 다진 마늘 1/2작은술, 레몬즙 1개 분량, 올리브유 2큰술, 딜이나 이탈리안파슬리 등의 생허브 적당량(생략 가능), 후춧가루 약간,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 적당량, 아몬드나 호두 등의 견과류 약간

- 만들기

1. 애호박은 채칼 등을 이용해 얇게 저민다. 저민 애호박에 소금을 넣고 손으로 살살 섞어 15분가량 절인다.
2. 다진 양파와 마늘, 레몬즙 분량의 반, 올리브유, 다진 딜이나 이탈리안파슬리를 섞어 드레싱을 만든다.
3. 애호박에서 나온 물기를 적당히 제거하고 드레싱을 넣고 고루 섞어 묻힌 뒤 5분에서 10분가량 그대로 두어 맛이 배도록 한다.
4. 그릇에 보기 좋게 담고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얇게 깎은 것과 다진 견과류, 후추를 뿌려낸다. 맛을 보고 신 맛이 부족하면 남은 레몬즙을 덧 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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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없는 탄탄두부면 ⓒ 강윤희

  
🥓 고기 없는 탄탄 두부면 (1인분 기준)

- 재료

시판 두부면 1팩, 다진 파 적당량, 깨 2큰술, 오이·애호박·해초·삶은 달걀 등 좋아하는 토핑 적당량

탄탄 양념: 피넛버터 1큰술, 고추기름 1큰술(라오깐마나 라유로 대체 가능, 라오깐마나 라유로 대체 시 굴소스 분량은 1작은술로 줄여서), 간장 1/2큰술, 굴소스 2작은술, 참기름 1작은술, 맛술 1작은술, 다진 양파 1/2큰술, 다진 파 1작은술, 다진 마늘 1작은술

*비건으로 먹고 싶다면 굴소스 대신 연두 등 채식 조미료로 대체한다. 집에 참깨 페이스트(타히니나 지마장)류가 있다면 1/2큰술 추가하면 더욱 좋다. 없다면 다지거나 간 아몬드나 호두, 깨 등을 취향에 따라 1큰술 가량 더해도 좋다.

- 만들기

1. 양념재료를 고루 섞어 양념을 만든다.
2. 깨는 절구 등을 이용해 살짝 으깨듯 갈고 파는 송송 썰어 찬물에 10분가량 담가 매운기를 빼고 물기를 제거한다.
3. 오이는 소금에 살짝 절여 물기를 뺀 뒤 참기름과 간 참깨, 액상 조미료 등으로 살짝 간해 무쳐도 좋고 소금에 살짝 절이기만 해도, 생으로 올려도 좋다. 애호박도 위의 카르파치오와 같은 방법으로 소금에만 살짝 절여 올릴 수 있다. 반숙란이나 해초, 삶은 닭가슴살, 살짝 데친 유부 등 취향에 따라 토핑을 준비한다.
4. 두부면은 흐르는 물에 한 번 헹군 뒤 물기를 제거한다.
5. 면을 그릇에 담고 양념과 토핑을 올린 뒤 비벼 먹는다.

*국물 자작한 형태로 먹고 싶다면 닭 육수에 우유를 반반 섞고 한 번 끓여 자작하게 부어내거나 시판 사골국을 부어 먹는다. 비건으로 즐기고 싶다면 물과 두유를 반반 섞고 채소 조미료나 소금을 더한 뒤 살짝 끓여 부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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