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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동물원'은 사라졌지만, 아직 여기엔

[어스링스 지구생명체 기록 프로젝트] 전시동물 ① 인간의 유흥 위해 존재하는 잔혹한 공간

등록 2021.07.28 08:19수정 2021.07.2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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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링스(Earthlings) 지구생명체 기록 프로젝트'는 지구생명체들이 있는 현장으로 가 그들의 삶을 글, 사진, 영상으로 기록합니다. 다양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희생당하는 인간 외 종들의 현실을 고발한 2005년 미국의 영화 <지구생명체>(Earthlings)에서 이름을 가져왔습니다. 농장,바다,동물원,펫샵,동물실험연구소 등 인간의 목적을 위해 희생되거나 삶터를 빼앗긴 이들을 찾아가 기록원들이 보고 듣고 맡은 현실을 기록하여 연재합니다. [기자말]
'동물원, 아쿠아리움, 펫카페, 펫샵' 이 장소들을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나는 자연스레 화목한 가정, 데이트 코스, 신이 난 어린이들, 동물과의 만남 등이 떠올랐었다. 부모님과 어린이날에 동물원에 간 기억이 한 번쯤 있는 것이 단란한 가족의 지표가 되는 듯했고, 친구들과 아쿠아리움에서 수족관 속 동물들과 교감하듯 사진을 찍고 이를 인생 사진이라 부르는 모습을 보았다. 연인과 라쿤카페, 알파카월드를 가는 것은 이색 데이트를 현명하게 즐긴 것으로 인식되었다. 

나는 이 장소들을 자주 찾지는 않았다. 내 예상과 달리 녹슨 철문 앞에 쪼그라들어 있는 동물들을 보면 편치 않았고,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알파카를 기대했으나 넓은 들판 속 좁은 울타리에 갇혀 사람들을 등에 태우며 '15분에 만 원'을 받는 모습을 보고 큰 실망을 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져야 할 공간이라 여기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긍정적인 효과에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시했고, 다른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렇게 무관심들이 모여서 동물들은 전시되고 대상화 되어 왔다. 

비인간동물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존재'이자 '느끼는 존재'임을 인지하고 나서 그들이 전시되는 공간이 얼마나 폭력적일지 감히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마주하기 두려웠다. 그러나 이제는 무관심하고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지난 과오를, 우리가 행하고 있는 폭력을 두 눈으로 직시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어스링스 프로젝트 팀원들과 '서울어린이대공원동물원', '충무로 펫샵거리'를 방문했다.

나에게 이 공간들이 이전과 어떻게 다르게 다가올지 두려운 마음과 더불어 다른 사람들이 이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과 반응이 궁금한 마음을 가지고 동물원에 입장했다.

진정 여기가 그들이 서식할 곳입니까?  
 

철장 사이로 보이는 새 ⓒ 김지수

   
동물원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런 곳에 동물이 산다는 것인가?'였다. 서울대공원은 도심 속이라는 것이 낯설 정도로 분명 넓고 쾌적하였는데 그 속에서 동물들이 있는 곳은 좁고 방치되어 녹슨 우리 안이었다.

가장 먼저 만난 건 '아누비스개코원숭이'였다. 철문을 열고 나온 원숭이는 나무판자로 이루어진 좁은 놀이터에 기대어 있었다. 원숭이를 소개하는 펫말에는 '엄격한 집단생활을 하며'라고 적혀있었다. 그러나 그 곳에서 엄격한 집단생활은 불가능해 보였다. 철문 뒤에서는 그들의 특성에 맞는 공간이 갖추어져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보여지는 공간이 이 정도라면, 보이지 않는 곳은 더 참혹할 것이다. 애초에 인간이 만든 환경에서 동물들이 그들의 습성을 따라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옆 우리에서 아기 원숭이도 보였다. 평생 철조망 안에서의 생이 전부인 것이 눈에 훤해 마음이 참담해졌다. 우리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원숭이 앞에 섰고 어린이와 함께한 가족도 보였다. 부모님은 어린이가 원숭이를 보게 하려고 원숭이를 가리키고 엉덩이가 빨갛다며 시선을 이끄는 등의 노력을 하셨다.


아기 원숭이는 사람들이 나타나자 빤히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무얼 말하고 있었을까. 어떤 호소와 원망을 보내진 않았을까. 아니면 그 모든 걸 잃은 공허한 눈이었을까. 어린이는 아기 원숭이의 눈빛에서 무엇을 읽었을까. 과연 그것이 어떤 경험이 되며 교육적 효과를 불러일으킬까. 
 

철문 앞의 아누비스개코원숭이 ⓒ 박수빈

   
첫 만남부터 갑갑한 마음을 안고 발걸음을 옮겼다. 이어서 우리는 열대동물관에 있는 뱀, 두더지, 앵무새 등의 동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두 팔로 충분히 감쌀 수 있을 듯한 작은 유리 상자에 갇힌 뱀과 두더지를 지나 앵무새가 살고 있는 곳으로 들어가자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저 비명으로만 들렸다. 소리를 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안내 문구가 보였다. 자유롭게 날아야 할 새가 갇혀 있는 것부터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다른 관람객들이 앵무새에게 말을 걸며 앵무새가 그들의 말을 따라하기를 기대하는 모습이 보였다. 평소 앵무새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 하나만으로 앵무새를 대상화하고 그 행위를 강요하고 있었다. 앵무새가 기대에 부응하지 않자 사람들은 실망하며 등을 돌렸다. 

사슴마을에서는 울타리에 가두어진 사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이들이 풀을 사슴에게 먹이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으로 '화단에서 뜯은 풀, 채소, 과일, 과자 절대 주지 마세요.라는 팻말이 보였다. 나는 보호자가 근처에 없는지 눈으로 살폈고 만류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런데 바로 근처에서 아이들의 아버지가 "이제 그만 주고 가자"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먹이 주는 것을 '허락'했고 '이동'해야 하는 이유로 만류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먹이를 주지 말라는 팻말 앞에서 먹이를 주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동물체험'인 걸까.
 

좁은 철문으로 들어가는 코끼리 ⓒ 이수민

 
"먹이 주기의 또 다른 이름은 동물 학대입니다."
 
동물원 속 어느 길에 걸려 있던 현수막이다.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말이었다.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턱대고 주는 먹이가 동물에게 끼칠 피해를 다들 가늠하기 때문이다(물론 앞서 사슴에게 먹이를 주던 가족에겐 닿지 않은 말인 듯하다).

하지만 난 애초에 이 동물원의 존재가 곧 동물 학대라고 느껴졌다. 본래 살던 곳에서 '납치'당해 동물원에 오기까지 그들이 거쳤을 고통, 그들의 특성과 서식지를 안내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모습의 제한적 환경, 앞으로의 삶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 이 모든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 동물 학대가 아니면 무엇일까. 동물원에서 내가 본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왜 그 곳에 있는지도 모른 채, 본래의 본능과 욕구를 억제당하며 살고 있다. 
    

스라소니 소개 그림 동물원에서 본 스라소니는 이와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 이수민

 
인간들의 즐거움을 위해 '먹방 라이브'를 해야 했고, 인간들을 위해 재롱을 부리는 공연장도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분명 '동물행동풍부화'를 시행하고 있다고 했으나 환경도, 먹이도, 인지도, 감각도 그 어느 것도 풍부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은 단 하루, 몇 시간 둘러본 것으로도 알 수 있었다.

'애견 백화점' 속 '상품'들

동물원에서의 힘겨운 시간을 안고 우리는 충무로 펫샵 거리로 갔다. 그 곳에선 공공연하게 동물들을 '상품화'시켜 '판매'하고 있었다. 가게 안으로 '명품 전시장'이라는 이름 아래 a급, 특a급 등의 글이 보였다. 손바닥만 한 강아지와 고양이들은 사료, 배편패드와 함께 작은 유리장 안에 들어가 있었다. 
 

좁은 틈새를 향해 뛰어 오르는 고양이 ⓒ 김지수

 
한 모녀가 강아지를 '구매'하여 손잡이가 달린 종이상자에 담아 나온 모습을 보았다. 다른 가게에선 4인 가족이 화기애애하며 강아지를 고르고 있었다. 아이들은 유리장 속 강아지들을 귀여워하며 신이 나 있었고 부모는 여러 질문을 하며 강아지를 이리저리 점검했다.

사실 나는 펫샵의 이면이 많이 알려져 있다고 생각했기에 실제로 거래되는 것을 볼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이 곳에서는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유리장 속에 갇힌 동물들이 어디서 어떻게 왔을지, 또 여기서 '거래'되지 않으면 어디로 가게 될지 생각하니 아득해졌다. 

전시와 관람, 판매와 구매

우리는 동물원과 펫샵에 갇힌 동물들을 보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져 오래 응시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어떤 목적이든 그들을 '보러' 왔다는 것 자체가 결국 인간인 내가 그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다.

이제 우리는 동물원이 더 이상 교육적으로 활용되거나 체험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제 공간에 살아야 할 존재들을 인간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가두어 둔 것은 폭력의 체험일 뿐이다. 유리장 속 귀여움의 이면에는 인간의 호감을 사기 위해 공장에서 번식 당하고 유행이 지나면 버려지는 끔찍함이 있다는 것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여러 동물을 마주쳤다. 그날만큼은 동물들을 바라볼 자신이 없어 눈을 피했다. 인간의 시선이 그들을 대상화하여 관람하고, 마음에 들면 구매하는 행위를 행할 수 있음을 하루 온 종일 느꼈기에 편할 수 없었다.

전시되고 관람하는 관계, 판매되고 구매하는 관계가 아닌 본연의 모습 그대로 존중하고 존중받으며 공존하는 것이 진정한 교감이고 만남일 것이다. 우리가 느낀 불편함들이 모여서 모든 동물들이 편안한 생을 보낼 수 있는 세상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스링스 #전시동물 #서울어린이대공원 #동물원 #펫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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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되는 존재가 없도록, 무해한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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