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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라면에 우리밀 못 쓰는 이유, 가격 말고 또 있다"

[인터뷰] 우리밀세상을여는사람들 송동흠 운영위원장

등록 2021.08.08 19:55수정 2021.08.08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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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밀세상을여는사람들 송동흠 운영위원장. 인터뷰는 6월 27일 경기 김포의 한 식당에서 진행했다. ⓒ 월간 옥이네


올해 2월 라면과 과자류를 주력으로 하는 식품기업 농심이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는 보도가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집콕'과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짜파구리'(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어 만드는 라면요리 - 편집자 말) 덕에 영업이익이 1천억 원을 넘어서며 전년 대비 100% 증가했다는 것.

그러나 밀가루를 사용하는 기업의 영업이익은 우리 밀 농가의 수익으로 이어지진 못한다. 기업들이 값싼 수입밀만 선호하기 때문일까? (관련기사 : 오늘 드신 열무국수, 그 면은 어디에서 왔나요 http://omn.kr/1un1g)

우리밀의 자급률이 여전히 1~2%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밀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밀세상을여는사람들 송동흠 운영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리밀세상을여는사람들은 우리밀 발전을 위해서는 밀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뜻을 가진 이들이 모여 2017년 창립한 단체다. 우리밀을 매개로 먹거리 이해·확산 관련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특히 국내외 밀 산업 자료를 꾸준히 소개하고 있다.

"많은 양을 균일한 품질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라면 소비량은 74개. 5천만 명에 단순 대입해 계산하면 한 해 소비량은 37억 개에 달한다. 이 중 우리밀은 얼마나 될까? 우리밀 라면이 월 200만 개 정도 생산된다고 하니 이 역시 단순히 따지면 연간 2400만 개 정도. 우리 국민이 1년에 먹는 라면 중 우리밀은 0.65% 정도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감자전분 사용 비중이 높아지고 있으니 실제로는 더 빈약할 것이다." - 송동흠 운영위원장 블로그 중

한살림 우리밀라면이 10년 가량 나오고 있고, 아이쿱생협 조합원도 계속 늘고 있다는데 우리밀 라면 시장은 왜 더 커지지 않을까?


송동흠 운영위원장은 이를 '우리밀 지키기' 운동과는 별개로 자급률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말한다. 밀 소비와 생산의 불균형 사이, 그 틈을 메워줄 밀 산업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

"국민 1인당 밀 소비가 30kg대에 달한 것은 이미 1970년대 일이다. 과거엔 일제가 쌀을 공출해가면서 우리는 밀, 보리를 먹었던 거고 해방 이후엔 가난해서 저가 수입밀을 먹었다.

그런 시기를 지나며 먹거리가 고급화되자 밀 소비 행태도 점차 바뀌었다. 라면은 물론이고 피자, 바게트, 파스타 등 온갖 형태로 우리 식문화가 바뀌었다. 밀 소비는 꾸준히 이어져온 일이나 정작 우리밀이 그 시장 틈새를 파고들지 못한 것이다. 이 속에서 밀 소비를 봐야한다.

식량자급률이 떨어지는 이유는 국내 생산과 소비 시장이 맞지 않아서다. 우리 농산물 시장이 '미국 식민지'가 돼버린 상황에서 생산과 소비가 완전히 별개로 가고 있다. 국내의 다양한 소비처를 국내 생산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

 

옥천의 한 밀밭 ⓒ 월간 옥이네

 
- 그 시장의 틈새를 우리밀이 치고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역시 가격일 텐데.

"가격 문제가 제일 크지만 품질 문제도 있다. 많은 양을 균일한 품질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거다. 대기업 라면에 우리밀을 쓰기 어려운 이유다. 몇 천 톤을 안정적으로, 동일한 품질로 공급해야 하는데 우리밀은 아직 그게 안 된다. 이걸 우리 시장 안에서 어떻게 단계적으로 안정화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야 한다.

별개로, 현재 밀 소비 시장의 중심은 중력분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이 중 60~70%가 국수 같은 면류가 아닐까 추정한다. 실제로 우리밀 역시 빵보다는 국수용에 적합하다. 그런데 농림축산식품부나 정부에서 우리밀 얘기를 할 땐 '제빵용 밀'을 이야기한다. 실제 국수 시장을 내버려두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셈이다. 이런 부분에 있어 우리밀이 어떻게 시장의 틈을 메우고 들어갈 수 있을지 찾아야 한다."

"일본 100만 톤, 우리는 3만 톤... 밀 가격부터 낮춰야"

- 미약하지만, 전국에서 우리밀을 지키는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적은 양이라도 지역에서 나름의 판로를 만들어 가고 있는 건데.

"소중하고 중요한 운동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밀 살리기, 우리밀 보존 차원이고 자급률은 또 별개의 논의가 필요하다.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선 거기에 맞는 대책을 펴야 한다. 지금 프랑스가 연간 3천만 톤의 밀을 생산한다. 호주도 3천만 톤, 캐나다가 2천만 톤, 미국이 4천만 톤이다.

우리처럼 밀 자급률로 고민이 많은 일본만 해도 벌써 100만 톤이다. 우리는 연간 생산량 해봐야 3만 톤이다. 일단 양에서도 게임이 안 된다. 그런데도 우리밀에 대해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자급률을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말이 되나?

우리보다 자급률이 훨씬 높은 일본(약 17%)만 해도 나름의 밀 보호 정책을 갖고 있다. 무관세로 수입밀을 들여와도 기업이 가져갈 땐 자국산 밀에 대한 장려금을 붙여서 가져가는 식이다. 수입산과 경쟁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만든 거다. 이런 나라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밀 수준은 소꿉장난에 머무르고 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 있다고 보나.

"우리밀 가격을 낮춰야 한다. 수입밀과 동등한 수준이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시장 수요가 생길 정도로 가격 정책을 펴야 한다. 그것이 수요로 연결되면 생산이 늘 것이고 나아가 우리밀의 품질 안정성을 찾을 수 있다. 일단은 '공익형 직불제'를 통해 실현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더불어 농림부가 비축밀을 사 시장에 공급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 소비시장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밀을 개발하는 것이 시급하다."

- 지금도 우리밀이 여러 종류 있지 않나. 또 개발이 필요한가.

"우리밀 종류가 얼마나 될 거 같나? 키작은밀(앉은뱅이밀), 백중밀, 금강밀, 새금강밀, 백강밀, 조경밀, 고소밀, 수안밀... 그나마 농가에서 실제로 재배하며 어느 정도 수확량이 되는 것들이 10여 종은 되려나? 그런데 일본은 얼마나 될 것 같나. 100여종이다. 호주는? 5천 개다. 차원이 다르다."

(참고로 국내 밀 품종은 1970년 이후 2016년까지 40품종이 개발됐다. 2016년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에서 낸 <국산 밀 산업현황과 전망>에 따르면, 강력분용으로 조경밀과 백강밀, 박력분용으로 고소밀과 조아밀, 중력분용으로 금강밀, 백중밀, 수안밀, 호중밀, 새금강밀 등이 개발됐으며 쌀밥에 섞어먹는 혼반용으로 백찰밀 등이 있다.)

- 그렇게 많은 품종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국수용 밀가루가 필요하다고 해보자. 이때 국수용으로 쓸 수 있는 품종이 여럿 있어야 한다. 토양에 따라, 기후에 따라 밀의 품질과 성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북 영주와 구미, 충북 옥천에 똑같은 금강밀을 심어도 품질이 다 다르다. 영주에 심은 금강밀로는 빵을 만들 수 있는데, 구미에 심은 걸로는 빵이 안 되는 식이다. 그러면 구미 토양에서도 빵을 만들 수 있는 금강밀2 품종을 개발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품종개발이 거의 안 돼 있다. 1997년도에 개발된 금강밀이 아직도 주종이다. 영주에 심어도, 구미에 심어도, 옥천에 심어도, 동일한 품질의 밀 종자 개발이 필요한 거다. 쉽게 얘기하면 '국수용 밀', '제빵용 밀'로 수백 개의 품종이 존재하고, 지역에 따라, 토양에 따라 맞는 품종을 골라 재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거다."

"식량 안보보다 중요한 건 지속가능성"
 

옥천의 한 밀밭 ⓒ 월간 옥이네

 
- 밀 품종이 늘어난다고 해도, 우리의 좁은 국토 면적에서 실제로 밀이 소비를 받쳐줄만큼 생산될 수 있을까.

"겨울철 유휴농지를 활용하면 된다. 유휴농지를 모두 활용하면 대략 230만 톤 정도 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 우리 정부의 밀 자급률 목표치가 5%(약 12만 톤)인데, 이의 두 배인 24만톤(10%)까지도 무난히 갈 수 있다."

밀뿐 아니라 주곡을 이야기할 때 '자급률'과 함께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식량 안보'다. 그러나 송동흠 운영위원장은 '식량 안보'가 아닌 '식량 주권' 나아가 '우리 농업농촌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농협중앙회가 위탁생산해 판매하는 밀가루가 수입산이고, 농림부 구내식당에서 사용하는 밀이 수입밀이며, 농림부가 국산밀 발굴단 이벤트 상품으로 내건 것이 '삼성 갤럭시 버즈 프로'와 'CJ상품권'인 현실. 관계기관조차 우리밀에 대한 이해가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풍경 속에서 우리는 식량 주권과 함께 농업농촌을 바라봐야 한다고, 송동흠 운영위원장은 힘주어 말한다.

"농림부가 식량 안보를 이야기하면서 같이 말하는 게 '조달권'이다. 식량이 부족하면 어디서든 들여올 수 있다는 거다. 우리가 경제대국이 되면서, 사실 농산물 수입이 차단될 일이 없다. 우리는 미국, 호주, 캐나다의 아주 중요한 고객이다. '수입밀 가격 폭등' 이런 얘길 할 때도 그렇다. 수입밀이 가장 비쌌던 때가 2007, 2008년인데, 그때도 수입밀은 우리밀보다 쌌다.

그래서 이 문제를 '식량 안보'의 문제로만 보면 안 된다. 유럽처럼 건강한 먹거리와 국토 환경의 문제로 인식을 바꿔가야 한다. 농촌이 가난해지면서 사람이 다 떠났다. 이건 결국 밀이 겪은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우리밀을 버리는 과정, 외면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일이다. 이제라도 우리 농업과 농촌에 대한 올바른 가치를 세우고 다시 가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양을, 원하는 방법으로 키워내는 것이 식량 주권이다. 그걸 통해 농민을 행복하게 해야 하고, 농촌을 살려야 한다. 국토환경의 균형 발전이라는 문제는 농업농촌을 살리지 않으면 다 허사다. 세종시 같은 거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밀, 그리고 밀뿐 아니라 우리 농산물 전체 생산 기반과 소비 정책, 농업농촌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 거다.

밀이 제일 앞서 망한 것뿐이다. 우리의 1차 방어선이 무너진 것이고 그에 따라 다른 작물도 다 같이 무너지고 있다. 밀의 문제는 이런 차원에서 봐야 한다. 밀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모든 농산물, 우리 먹거리의 위기이고 우리 농업농촌의 위기이다. 이런 차원에서 국가 정책을 세워야 한다."


월간옥이네 통권 49호(2021년 7월호)
글·사진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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