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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첫 방문... 조선사절단을 다룬 미국 언론

[조선의 의인, 조지 포크] 조선 사절단의 기차 여행에서 생긴 일

등록 2021.08.04 11:10수정 2021.08.04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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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기사 머리부터 발끝까지... 미국인들이 조선인들을 보고 놀란 것에서 이어집니다. 

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예요. 지난 번에 조선의 방미사절단이 1883년 9월 2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서 머물렀던 며칠간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메리카 대륙과 한반도가 지구상에 생긴 이래 최초로 아메리카 땅에서 이뤄진 두 이방간의 만남이므로 이모저모 톱아보는 게 좋겠습니다.


일본과 한국 두 나라를 처음으로 개방시킨 나라가 바로 미국이었습니다. 그 미국이라는 나라를 최초로 방문한 일본사절단과 조선사절단을 대조해 본다면 어떤 그림이 보일까요? 오직 자기 나라만 들여다보면 전체적인 맥락을 보지 못하는 외눈박이가 되고 말죠. 일본을 견주어보지 않으면 조선의 운명이 어떤 길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없겠죠. 

일본 최초의 방미 사절단이 샌프란시스코에 닿은 것은 1860년 봄이었습니다. 조선보다 23년 앞섰던 것이지요. 전번에 언급한 대로 조선사절단은 아라빅호라는 여객선을 타고 태평양을 건넜습니다.

반면에 일본사절단은 미국 군함 포와탄 USS Powhatan호에 승선했습니다. 헌데 특이한 것은 일본 해군정 한 척이 미군함 포와탄호를 따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칸린마루호咸臨丸'라는 이 배는 증기기관과 함께 세 폭의 돛을 또한 장착하고 있습니다.

300톤급으로 길이는 50미터에 이르고 속도는 시속 11km였으며 12정의 총포를 싣고 있었습니다. 이 배는 원래 1856년 도쿠가와 막부가 네델란드에 주문한 것으로서 신식 서양식 함선입니다. 조선인들이 이양선(異樣船)이라 부르는 서양배를 일본은 벌써 그때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죠. 
 

칸린마루호 미일 수호통상조약백주년 기념 우표 ⓒ 공개된 이미지

 
'칸린 마루호'는 나가사키의 해군이 실습용으로 오랫동안 사용해 오던 '간코 마루호観光丸'를 대체한 것이었지요. 그러니까 근대적인 함선으로 실습한 지 3년 후에 태평양 횡단에 도전한 것이죠. 함장을 비롯하여 90여 명의 일본 승무원이 승선한 이 배는 그 해 2월 9일 동경의 우라가항을 출항하여 한 달 남짓 항해한 끝에 3월 중순 샌프란시스코 입항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불과 7년 전에 미국 페리 함선을 보고 바람도 없이 배가 움직이는 광경에 몹시 놀랐던 일본인들이 이제 스스로 그런 배를 몰고 태평양을 건넜던 것이지요. 그들은 미국인들에게 자신들이 서양항해기술에 숙달되었음을 극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일본이 더 이상 낙후되고 열등한 그런 나라가 아님을 유감없이 과시한 것입니다.


당시 '칸린마루호'에는 25살의 후쿠자와 유기치(1835-1901)가 개인자격으로 타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미국 견문이 그를 개화사상의 선구자로 변환시켰고 그것이 메이지 유신의 개막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만 보더라도 일본인의 첫 방미는 그 성과가 컸습니다.

사절단 규모를 보면 일본 사절단 규모는 수행원 및 종복까지 포함하여 총 77명으로 조선사절단(11명)의 7배 규모였습니다. 일본 사절단은 극진한 대우와 대중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조선사절단도 기대 이상의 환대와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만큼 동방의 두 나라에 대한 미국인들의 호기심과 기대감이 높았던 것이죠.

그 기대감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서양인들이 15세기 말부터 세계로 팽창한 동기를 '3G'라고 짚기도 합니다. 즉 Gold(황금), God(하나님), Glory(영광). 바꾸어 말하면, 경제적 이익, 선교, 명예욕이 되겠죠. 그러한 동기와 욕망은 면면히 이어져 19세기에 이르서는 지구적 규모로 심화되고 있었지요. 동양인을 처음 보는 미국인의 시선 속에는 그러한 욕망과 환상이 호기심과 함께 타오르고 있었던 거지요.  

이제 조선사절단으로 시선을 돌려봅시다.

12명의 조선사절단 일행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닷새를 머문 뒤 9월 7일 금요일 새크라멘토Sacramento(현 캘리포니아 주의 주도)로 이동하여 대륙횡단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23년전 일본인들이 왔을 때에는 미국에 대륙횡단열차가 없었습니다.

미국 대륙의 동서 사이에는 험준한 산맥과 협곡, 광대한 사막이 가로 놓여 있어서 아무도 건널 수 없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파나마로 이동하여 대서양으로 들어가 뉴욕으로 향했었지요. 그러니까 그 20년 사이에 미국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죠.

조선 사절단의 열차 여정을 정리해 보면 새크라멘토(9.7)→솔트 레이크 시티 →오그덴→오마하 →시카고(9.12-13) →피츠버그→워싱턴(9.15)이 되겠습니다. 일주일 남짓 걸리는 여정 중에 기차를 갈아타는 시카고에서는 1박 2일의 일정을 가집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당시 미국 언론이 조선인들의 기차 여정을 단편적으로나마마 중계하다시피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태면 경유지 중의 하나인 오마하OMAHA 발로 이런 기사가 나오기도 했지요.

 

보빙사 기사 보빙사 특별 예우 ⓒ 미의회도서관

 
.... 세리단 장군(남북 전쟁 영웅)의 참모 제임스 그레고리 대령이 오늘 아침 이곳에 도착하여 두 명의 조선 사절을 예방했다. …..최초로 미국을 방문한 조선사절단이어서 미국정부는 특별 예우를 하려고 한다(출처:The semi-weekly miner. September 12, 1883 번역).
 

여기서 두 명의 조선사절이라 함은 특명대신 민영익과 부대신 홍영식을 가리키겠지요. 아마 이 두 사람에겐 특등실이 배정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세리던 장군의 참모 그레고리 대령은 민영익/ 홍영식의 객실을 찾아와 정중히 인사를 하면서 내일 시카고에 도착하면 세리단 장군이 귀하들을 환영할 거라고 알려주었을 겁니다. 미국 측이 무척 사려깊고 꼼꼼히 조선 사절단을 챙기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군요.

헌데 기차속에서 한 미국인이 조선인들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을 걸어 왔습니다. 존 가우처John Goucher라는 이름을 가진 그 미국인은 메릴랜드주 소재 가우처 대학의 총장이자 목사였습니다. 가우처 목사는 평소에 동방 선교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기차에서 동양인을 보자 눈을 반짝였습니다.

민영익 등과 사귀게 된 목사는 다음 해 1884년 1월 31일 일본 주재 매클레이Robert Maclay 선교사에게 조선 탐사를 권했습니다. 그에 따라 매클레이는 용기를 내어 6월 조선 방문을 감행했지요. 개신교 목사로서는 첫 조선 방문이었습니다. 유명한 알렌Horace Allen 의료선교사(장로교)가 조선 땅에 간 것은 그로부터 3개월 후였으니까요.

5일간의 기차 여행 끝에 사절단은 9월 12일 오후 시카고역에 도착했습니다. 역에 내린 조선인들은 군 장성과 장교들의 영접을 받았습니다. 그런 후 두 대의 마차에 분승한 사절단은 경찰대의 호위를 받으며 숙소로 향했지요. 그날 저녁엔 성대한 환영 만찬회가 열렸습니다. 

시카고에서도 조선인들은 일대 뉴스 거리가 되었습니다. '시카고 트리뷴' 9월 13일자는 지면을 아끼지 않고 조선인과 조선에 대하여 자세히 소개했지요. 기이한 옷차림과 신발을 매우 상세하게 묘사한 데 이어 "그런데 식탁에 앉아 식사할 때에 그들은 모자를 벗지 않고 관모를 쓴 채 식사하고 있었다. 모자는 챙이 넓고 원뿔 모양이었다. ...갓끈이 턱에 매어져 있었다. 그들의 관모는 미화로 15달라나 되는 고가품이다"라고 모자를 설명하느라 애를 썼습니다.

기사는 또 "조선 사절은 모두 기혼인데도 부인을 동반하지 않아 이상했다. 뿌리 깊은 남존여비 사상 때문이다. 조선인들은 여성을 천시한다. 조선에는 조혼 풍습이 있고 능력있는 남자들은 한두 명의 첩을 거느린다. 미국인이 조선인의 집에 초청받는다 해도 그의 부인을 소개받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느니 "조선인은 남들이 보는 앞에서 남녀가 공공연히 키스하는 일도 없다"느니 하고 신기한 일인 듯 보도했습니다.

나아가 신문은 조선의 수도를 서울'So Oool'이라 소개하고  조선인의 민족성에 대하여 "조선민족은 아주 예의 바르고 매너가 정중하며, 금욕주의적 민족이다. 그들은 희로애락을 얼굴 표정에 절대로 나타내지 않는다. ...."라고 썼군요. 

그들이 기차 여행을 하고 있을 때에 워싱턴에서 타는 듯한 호기심으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바로 나 조지 포크였지요. 
  
-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조지 포크 #보빙사 #일본의 최초 방미 #칸린마루 #가우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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