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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출산제 유감... '출산을 숨길 권리'만 있는 게 아니다

[주장] 법안이 위험한 세 가지 이유... 아이와 여성 누구도 보호 못해

등록 2021.08.11 07:26수정 2021.08.11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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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가족관계등록법 일부를 개정해 출생통보제를 도입할 예정입니다. 아울러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는 여성'은 익명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하는 보호출산제 역시 함께 법안이 발의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보호출산제를 눟고 모든 가족과 아동에게 편견없는 지원과 권리를 보장하라는 유엔아동권리협약과 국내 법률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반대하는 측과 아동의 유기를 막고 산모와 아이 모두를 구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찬성하는 쪽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먼저 이 제도의 문제점을 담은 글을 싣습니다. 이와 관련 반론이나 다른 의견도 환영합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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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국내입양인연대 등 아동인권단체 회원들이 7월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입양특례법 무력화하는 보호출산제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오는 9월, 정부가 가족관계등록법 일부를 개정해 출생통보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출생통보제란, 누락되는 출생신고가 없도록 부모 대신 의료기관이 아동의 출생을 지자체에 의무적으로 신고하는 제도를 말한다. 현행 제도 하에서는 아동의 출생(병원)과 출생신고(지자체) 사이에 시차가 발생하고, 부모가 의도적으로 출생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국가가 아동의 출생을 파악할 길이 없다. 그간 국제사회는 한국 출생신고 제도의 후진성을 지적하고, 보다 보편적인 제도로 변경할 것을 지속적으로 권고해왔다. 이러한 권고를 받아들여 드디어 한국 정부가 현행 출생신고제를 의료기관에 의한 출생통보제로 전환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출생통보제와 동시에 추진되는 제도가 있다. 바로 보호출산제다. 정부는 출생통보제로 전환하여 의료기관이 모든 출생신고를 의무적으로 할 경우, 나홀로 출산 및 자택 출산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여긴다. 위기임신 상태의 여성(미혼모, 미등록 외국인 이주자, 난민 등)이 의료기관을 기피해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거나, 낳은 아이를 유기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부는 출생통보제 실시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겠다는 취지로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는 여성'은 익명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 즉 보호출산제 역시 함께 통과시키려고 하고 있다. 

출생통보제 도입은 아동의 출생과 출생 신고 사이의 틈을 메우고, 아동의 기본권이 부모에 의해 좌우되지 않도록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고 대대적인 변화다. 그러나 이와 패키지로 추진되고 있는 보호출산제는 '보편적' 출생등록에서 또 다른 예외를 떼어내 '특수한' 사례를 만드는 제도라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현재 발의된 보호출산제 특별법안(국민의힘 김미애의원 발의)이 통과되면, '어떤' 여성은 병원에서 자신의 신분을 가린 채 아이를 낳을 수 있으며, 태어난 아이는 그 즉시 산모와 분리되어 입양 대상 아동이 된다. 산모의 기록은 아동권리보장원이 관리하며, 아동이 성인이 되면 친생부모의 동의하에 열람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보호출산제는 아이를 익명으로 낳은 사람 대신 국가가 출생 신고를 하고, 입양 보내는 제도라 할 수 있다.

이 제도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은 보호출산제가 여성과 아동 모두의 권리를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출산 사실을 숨기고 싶은 여성이 프라이버시 탓에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지 않도록 하며, 친생모 기록을 관리할 수 있기에 아동의 알 권리와 생명권 또한 '보호'하는 제도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보호출산제는 여성과 아동의 권리 중 그 무엇도 '보호'하지 못한다는 주장을 하고자 한다.


독일에도 보호출산제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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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김미애 의원 ⓒ 공동취재사진

 
첫째, 보호출산제가 보호하는 여성의 권리는 오로지 '자녀 출산을 숨길 권리'뿐이다.

보호출산제를 발의한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독일에도 비슷한 제도(신뢰출산제)가 있다는 이유로 한국도 산모가 익명으로 아이를 출산하는 보호출산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해당 주장은 전제가 틀렸다. 독일에 비슷한 제도가 있는 것은 맞지만, 독일에서 여성이 익명으로 자녀를 출산해야 하는 상황은 한국에서 여성이 익명으로 자녀를 출산해야 하는 상황과 전혀 같지 않다.

구체적으로, 독일은 모성보호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한국에 비해 월등히 두텁다. 독일에서 산모는 임신·출산과 관련한 의료 서비스를 전부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의료서비스뿐이 아니다. 출산과 돌봄으로 여성이 경력단절 되지 않도록 다양한 모성보호 정책이 1952년 이후 꾸준히 확대 중이다.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이 의무화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아이 한 명 당 높은 양육 수당을 받는다. 또한, 1992년 제정된 임신갈등법(정식 명칭은 '임신갈등 회피와 극복을 위한 법률')에 따라 전국의 1000개 넘게 존재하는 상담소에서 여성이 성·피임·가족계획뿐 아니라 임신중절을 상담하고 지원받을 수 있으며, 이 임신갈등법이 제정되고 나서도 20여 년이 지난 2014년에서야 신뢰출산제가 도입되었다. 싱글맘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지원이 한국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우호적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생각해보라. 계획 없는 임신을 한 여성에게 '출산 후 아무도 몰래 입양 보내는 것'만이 그녀가 가진 권리의 전부가 아니다. 외부의 강요 없이 스스로 임신하고 출산을 결정하는 권리, 죄책감 없이 안전하게 임신 중절을 선택할 권리, 친생부에게 자녀를 인지시키고 양육의 부담을 나눌 권리, 출산 후에도 그녀의 사회적 지위가 그 이전과 큰 차이가 없을 권리 또한 그녀가 누려야 할 권리다. 독일이 자국의 신뢰출산제 도입 이전에 충분히 선행한 노력은 따를 생각 없이 왜 보호출산제만 따라야 하는가?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는 여성에게 독일과 같이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도 않으면서, "낳기만 해. 아무도 모르게 입양 보내줄게"를 말하는 보호출산제가 과연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일까?

보호출산제는 분명한 퇴행이다

둘째, 보호출산제가 '보호'하는 아동의 권리는, '친생부모와 손쉽게 헤어질 권리'뿐이다. 

보호출산제는 임신한 여성이 익명으로 아이를 출산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양육 포기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보호출산으로 태어난 아동은 '지체 없이' 입양 절차에 들어가도록 한다. 이는 2011년 입양특례법 전부 개정 당시 도입된 입양숙려제(산모가 입양을 신중히 결정할 수 있도록 출산 후 7일이 지나야 입양 동의를 할 수 있다는 제도)의 취지를 훼손시킬 뿐 아니라, 국제아동권리협약의 아동 최상의 이익(Best interests of the child)을 상당히 침해하므로, 분명한 퇴행이다.

어떤 이는 산모와 아동을 바로 분리시키는 것은 아동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열악한 상태에서 아동이 '자격 없는' 친생 부모와 같이 있다가 무슨 변을 당하느니, 지자체의 보호 아래서 입양 대기 아동이 되는 것이 훨씬 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수많은 해외입양인 사례를 통해 타인의 삶을 상상해보아야 한다. 이들은 뿌리로부터 단절된 삶의 고통을 지속적으로 증언해왔다.

일부 입양인의 주관적인 경험을 덧붙인 감정적 호소가 아니다. 많은 아동권리 선진국가들은 오랜 시간을 거쳐 아동 최상의 이익을 위해 아동이 원가정과 완전히 분리되지 않도록 하는 원칙을 고수해왔다. 국제아동권리협약에 따르면, 아동은 원칙적으로 친생부모에게서 양육 받을 권리가 있으며(7조), 가족과 분리되는 결정은 부모에 의한 아동 학대나 방임 등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요청된다(9조 1항). 또한 부모한테서 분리되었다고 하더라도, 아동에게는 부모 한 명 또는 부모 모두를 정기적으로 만날 권리가 있다(9조 3항). 보호출산제는 이 모든 원칙을 배반한다.

함께 양육할 사람이 없고, 생활고에 시달리며,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고 있는 여성이 당장 아이 키우기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 마음은 양육 여건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인하므로, 조건적이고 일시적이다. 여건이 개선되면 그 마음 또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런데 보호출산제는 이같이 조건적이고 일시적인 이유를 영구적인 '부모 자격 없음'으로 치환한다. 묻는다. 보호출산제로 태어난 아동에게 그 즉시 친권이 중지되어 부모와 영구적으로 분리되어야 하는 결정적 사유가 있는가? 그것은 아동의 이익을 최대화하는가?  

여성의 임신·출산·양육을 국가가 끌어안아야 

글을 마치며 또 하나의 우려를 덧붙인다. 보호출산제가 불러올 결과에 관한 것이다. 나는 보호출산제가 도입되면 우리 사회의 '더 가난하고, 더 사회적 지위가 낮고, 더 취약한' 여성의 아동이 입양 대상이 되어 해외로 송출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불완전한 시민권을 가지고 있어 자신의 신분을 밝히기 어려워하는 외국인 체류자, 북한이탈주민, 성매매피해여성, 장애를 가지고 있는 여성, 청소년 미혼모들이 보호출산제를 통해 입양 대상 아동의 주 공급자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리고 해당 아동의 입양부모를 국내에서 찾지 못한다는 이유로 해외 입양이 지속될 것이다.

학대와 체벌의 경계가 모호했던 부모의 징계권이 민법에서 삭제된 것이 불과 몇 달 전 일이다. 명백한 아동 학대의 현장에서도 자녀와 부모를 분리시키는 일에 머뭇거리던 국가가,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는 여성에게만은 유독 쉽게 친권을 포기시키고, 공인된 방법으로(보호출산제로) 아이를 데려갈 수 있도록 한다. 사회적 지위가 낮고 가난한 여성의 아동이 손쉬운 입양 대상이 되는 현실이 정의로운가? 

출생신고제를 개편하여 자동으로 출생을 통보하는 제도 변화는 환영할 만하지만, 이와 연계되어 성급히 추진되는 보호출산제는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아동과 여성의 권리 측면에서 '출산한 사실을 숨겨', '안전하게 아동을 유기하고', '입양보내는' 제도보다 더 나은 제도를 설정할 수 있다.

가정위탁이든 소규모 그룹홈이든, 친권을 완전히 단절시키지 않은 채 국가가 아동을 임시보호하다가 원가정의 역량이 강화되면, 원가정에서 양육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법도 가능하며, 독일의 사례처럼 모성보호 정책이 자리를 잡은 뒤 익명출산을 논의해도 늦지 않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양육 포기를 전제한 보호출산제가 아니며, 여성의 임신출산양육갈등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것에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가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정소라 시민기자는 젠더문화연구소와 한국한부모연합 소속으로, 한부모가족, 입양, 가족에 대한 글을 읽거나 씁니다.
#보호출산제 #출생신고 #입양 #한국한부모연합 #미혼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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