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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후 두 달, 뒤늦게 딸 죽음 안 아버지의 절절한 편지

'광주 건물붕괴' 유족이자 부상자인 김씨가 변호사에게 편지 보낸 사연

등록 2021.08.05 13:31수정 2021.08.05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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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학동 재개발 구역의 건물 붕괴 참사로 인해 여전히 병원에 누워 있는 김 아무개씨가 4일 피해자들의 법률대리인 중 한 명인 김정호 변호사에게 보낸 편지다. ⓒ 김정호 변호사 제공


"안녕하십니까. 저는 2021년 6월 9일 광주 학동에서 청천 날벼락 같은 참사를 겪고 병실에 누워 있는 환자 김◯◯입니다. 순식간에 터진 폭탄 같은 폐건물 붕괴로 막내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만 했고, 이렇게 늙은 애비만 몹쓸 목숨을 부지하고 있습니다."

광주 학동 재개발 구역의 건물 붕괴 참사로 인해 여전히 병원에 누워 있는 김씨가 4일 피해자들의 법률대리인 중 한 명인 김정호 변호사에게 보낸 편지다. 김씨는 사고 당일 막내딸과 함께 수술 후 요양병원에 있는 아내를 만나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가 참변을 당했다.

참사로 인해 막내딸은 목숨을 잃었고 김씨는 큰 부상을 입었다. 가족들은 김씨의 몸 상태를 고려해 그에게 한동안 딸의 사망 사실을 알리지 못했고, 참사 한참 후에야 소식을 접한 김씨는 큰 고통을 겪고 있다.

해당 편지는 김씨가 김 변호사가 쓴 <불편한 동행>이란 책을 읽고 감사의 마음을 담아 쓴 것이다. 김씨는 편지를 통해 유족이자 부상자로서의 절절한 심정을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참사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문제해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변호사를 통해 김씨의 동의를 얻어 아래 편지의 일부 내용을 전한다. 

사위가 변호사님의 저서 <불편한 동행>을 보내주었습니다. 제목마저 저의 앞날을 예견하는 것 같아 찡한 마음에 우울·공황장애 등의 산란한 상태임에도 난필(亂筆)을 씁니다. 병실에서 저는 '사람도 산천초목처럼 봄에는 싹이 트고 겨울에는 움츠리며 영원히 오순도순 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꿈만 꾸었습니다. <불편한 동행>은 저에게 병실에서 신세만 한탄하지 말고 책을 읽으면서 자신을 성찰하라는 인생 말미의 지침을 주는 책인 것 같습니다.

(중략) 책 118쪽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악의 참사 세월호 사건." (중략) 최고 책임자가 무능하면 2인자, 3인자도 무능해야 하는가. 그리고 이들 못지않게 지탄받아야 할 자는 유족들의 가슴을 후벼 파고 소금을 뿌리는 자들입니다. (중략) 저는 몸을 다 추스르고 병원문을 나서면 지금까지도 이 시련에 대해 당신 때문이라고 원망하는 집사람을 지극정성으로 설득해 우리와 같이 자식을 잃은 세월호 유족들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위로받기가 아닌 위로하기 위해 방문하렵니다.

(중략)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눈을 감으면 내 새끼가 햇빛 찬란한 하얀 솜털 같은 구름 저쪽에서 원망하듯 반갑게 반겨주겠지요. (중략) 정의로운 국가를 만드는 일은 깨어 있는 시민들의 몫입니다. (중략) 불편함이 있더라도 동행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 저도 (책을) 읽다가 이러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중략) 저의 아름다운 동행은 친구들로부터 시나브로 가족으로 옮겨지는 듯합니다.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경천동지할 사건을 겪고 나니 가족의 소중함에 가슴이 저려 옵니다. 저는 다섯 공주의 아버지입니다. 꽃보다 예쁜 막내딸을 먼저 하늘로 올려보냈습니다. 불편한 동행과 아름다운 동행을 같이 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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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광주 동구 학동4 재개발 구역 철거 건물 붕괴 사고 현장 건너편 도로에 사망자를 추모하는 꽃다발과 손편지가 놓여있다. 지난 9일 오후 4시 22분께 이곳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붕괴하며 잠시 정차 중이던 시내버스를 덮쳤다. 이 버스에 타고 있던 17명 가운데 9명은 숨지고 8명은 중상을 입었다. ⓒ 연합뉴스



"개인의 아픔에 그치는 사건 아닌 사회적 재난"

김 변호사는 5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딸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김씨는 큰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분"이라며 "그러한 분께서 이렇게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보내와 피해자들의 법률대리인인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 가슴이 먹먹해져 초심을 돌아보게 한 편지"라고 말했다.

이어 "편지엔 개인의 아픔뿐만 아니라 이러한 참사를 통해 우리 사회가 생각해야 할 점이 담겨 있다"라며 "누구나 그 현장을 지나갈 수 있었고, 누구나 그 버스에 타 있을 수 있었다. 이 참사는 개인의 아픔에 그치는 사건이 아닌 사회적 재난이며 공론화를 통해 제도 개선으로까지 나아가야 하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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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변호사. ⓒ 김정호 변호사 제공


  
김 변호사를 비롯한 이번 참사의 법률대리인단(강성두·김정호·서애련·장은백 변호사)은 5일 오후 광주경찰청 수사본부에 ▲ 철저한 진상조사 ▲ 책임자 처벌 ▲ 신속한 피해회복 ▲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책 마련 등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이들은 진정서를 통해 "이 사건에서 붕괴한 것은 비단 5층 건물이 아니라 기업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와 사회구성원들의 책임의식"이라며 "나와 내 가족이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안도하고 이웃의 고통을 외면했던 우리가 사회시스템의 부재로 후진국형 인재를 반복하고 있는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을 만들어 왔는지도 모른다는 자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 7월 28일 광주경찰청 수사본부는 이 사건에 대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고, 안전불감증에 기반한 무리한 철거방식의 선택, 감리 원청 및 하도급 업체 관련자들의 주의의무위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라며 "유족들은 이 사건이 과실 범죄가 아니라 사실상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에 가까운 무책임에 의한 참사라고 가슴을 치고 있다. 향후 수사에서 불법하도급 사실을 인지하고도 묵인한 정황, 조합의 운영과 관련된 비리, 수의계약과 입찰 비리 등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철저한 수사를 요청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서 재난은 사회의 문제로 공론화되지 못하고 개인의 슬픔으로 치환돼 유족들을 점점 고립시키는 악순환을 반복해왔다"라며 "이번 참사도 마찬가지다. 철저한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 신속한 피해회복,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책 마련에 시민들의 관심과 수사기관과 관계당국의 적극적인 조치를 부탁드린다"라고 덧붙였다.
#광주 #학동 #재개발 #참사 #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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