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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과 최재형, 혹시 X맨?

[하성태의 인사이드아웃] '차라리 박근혜는 준비된 정치인이었다'는 평가까지 나오는 이 판국

등록 2021.08.06 07:20수정 2021.08.06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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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4일 오후 경기도 파주 미라클스튜디오에서 대선 출마선언을 했다. ⓒ 국회사진취재단

 
"감사원장으로서 법과 원칙을 지키며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임기 6개월을 남기고 감사원장직을 사퇴하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을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4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출마선언문 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이랬다. 그가 감사원장직을 사퇴한 것은 지난 6월 28일. 그렇게 37일 만에 대통령 출마를 선언한 전직 고위 임명직 공무원의 입에서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을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는 출마의 변이 나온 것이다.

출마의 전제 자체가 현 정부의 '안티 테제'임을 숨기지 않은 최 전 원장은 현 정부를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으로 규정했다. 전후 맥락이나 선언문 전체의 기조를 따져봐도 바뀔 건 없었다. 그러니까 이전 정부까지 멀쩡했던 대한민국을 무너뜨린 것이 현 정부라는 최 전 원장의 출마선언문 속 문제의식은 "이 정부 반대로만 하면 부동산 풀린다"는 한 마디로 집약된다.

이 정부의 반대? 미안하지만 그 '반대' 정권의 수장들은 지금 줄줄이 구속수감 중이다. MB식 법치주의와 개발지상주의의 폐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역대 대통령 조사결과 속 꼴찌에 가까운 MB의 순위를 보라. 박근혜 국정농단을 단죄한 것도 촛불을 든 국민이었다. 그렇게 '박정희 이데올로기'와의 결별과 청산이 이뤄졌다.

그렇다면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을 되살리겠다는 최 전 원장의 지향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출마선언 당일 최 전 원장측이 공개한 한 장의 사진에 단서가 담겨 있었다. 가족 명절 모임에서 온 가족이 국민의례를 하는 사진을 공개한 최 전 원장은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른다"고 부연해 많은 이들을 경악케 했다. 그 누구라도 전체주의를, 국가주의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게 수십 년 된 건 아니고요. 몇 년 전부터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저희 아버님께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애국가를 끝까지 다 부르자, 그렇게 해서 시작하게 됐죠(...). 국가주의, 전체주의는 아니죠. 나라 사랑하는 거하고 전체주의하고는 다른 말씀 아닙니까? 저희 집안 며느리들은 기꺼이 참석하고 또 아주 같은 마음으로 애국가 열창했습니다."
- 최재형 전 원장, 5일 CBS 라디오 인터뷰 중


퇴행을 뛰어넘는 준비 부족


적지 않은 이들이 영화 <국제시장>을 떠올렸다. 1980년대까지 평일 매일같이 국기 하강식을 하고 국기에 경례를 했던 그 국가주의의 전제와 군사정권의 폐해를 말이다. 이러한 최 전 원장의 국가관은 최근 논란을 자처했던 "일자리 빼앗는 최저임금 인상은 범죄"(지난달 31일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라는 노동관과도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헌법이 정한 최저임금 보장 정책을 '범죄'라 몰아세우는 이러한 최 전 원장의 노동관은 얼핏 노동자들을 기계처럼 인식하는 퇴행적 사고라 볼 여지가 충분해 보인다. 그런 법률가 출신 정치인은 또 있었다. '주 120시간 노동' 발언으로 역시나 물의를 빚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 말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 앞서거니 뒤서거니 국민의힘에 입당한 두 사람의 삶의 궤적이 꽤나 겹쳐 보인다. 둘 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법률가 출신이다. 현 정부에서 고위직 공무원을 역임했으나 중도 사퇴한 것도, 현 정부의 탈원전 관련 수사를 합작한 것도, 뒤이어 나란히 국민의힘에 입당한 것도 공통점이다.

윤 전 총장이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 댓글' 사건 항명으로 몇 년간 좌천됐을 뿐 둘 다 문재인 정부 이전까지 잘 나가던 법률가였다. 또 최 전 원장은 1956년생, 윤 전 총장은 1960년생으로 두 사람 모두 1970~80년대에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시기를 거쳤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출마 선언 전후 최 전 원장은 '예상보다 훨씬 더 극렬한 보수'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그는 헌법 가치를 가장 잘 지킨 대통령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꼽았다. 애초 '중도'를 아우르겠다던 윤 전 총장은 연일 극우와 다를 바 없는 언사로 입길에 오르는 중이다. 두 사람이 지난해까지 '태극기 부대'를 품었고 이준석 대표 취임 이후 젊은 보수에게 손짓 중인 국민의힘에 입당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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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가 3일 오후 서울 은평구 은평갑 당원협의회를 방문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윤석열 검찰의 조국 일가족 강제수사에 대해서도 둘은 뜻을 같이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일명 '시무 7조'로 유명해진 논객 조은산씨는 3일 자신의 블로그에 윤 전 총장을 만났다며 '조국 수사는 정의도 아니고 정치도 아니었다. 그건 상식이었다'는 윤 전 총장의 전언을 공개했다.

최 전 원장도 5일 한 인터뷰에서 "조국 사태는 당시 검찰에서 제대로 수사를 하고 기소를 했던 것 아닌가"라는 뜻을 내비쳤다. 2년 전 서초동에서, 여의도에서 '검찰개혁' 촛불을 들었던 이들이 반길 만한 평가는 분명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들에게 퇴행의 흔적을 뚜렷이 느끼는 것은 바로 여성들이다. "페미니즘이 저출산의 원인"이라던 윤 전 총장의 발언은 분석부터 발언 그 자체까지 문제 투성이었다. 최 전 원장의 가족 모임 사진이 공개된 직후 인터넷 상에서는 '나는 저기 며느리로는 못 갈 것 같아'와 같은 비난 글이 쇄도했다.

두 사람이 입당한 국민의힘에 대한 여성들의 지지율이 고르게 하락 중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처럼 여러모로 공통점을 공유하는 두 법률가 출신 정치초년생의 진짜 문제는 본인들이 자처하는 '퇴행의 정치'조차 아직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 누구도 등 떠민 적 없다

"부족함이 있었다는 점은 솔직히 인정하지만 감사원장 마치고 또 저희 아버님 장례 치르고 제가 정치에 입문한 지 한 20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제가 마치 구체적인 로드맵이나 정책 이런 거를 제시했다면 저 사람 감사원에 있으면서 정치할 준비를 했나, 이렇게 또 보시지 않았겠습니까? 앞으로 기대해 주십시오."
- 5일 최재형 전 원장, CBS 라디오 인터뷰 중에서


전날(4일) 비대면 기자회견에서 '준비가 안 된 것 아니냐'는 돌직구 질문에 당황해하던 최 전 원장이 내놓은 변명은 이랬다.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준비가 안 된 것을 양해해 달라"며 여러 번 사과 아닌 사과를 했던 최 전 원장을 과연 '준비된 대통령 후보'로 여길 이가 얼마나 될까.

'검증의 시간'이 우선일 것 같던 윤 전 총장의 경우는 어떤가. 여권으로부터 '연쇄 망언범'이란 별명을 득한 윤 전 총장은 '주 120시간 노동'에 이어 '부정식품' 발언 등 1일 1사고를 자처하며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질을 국민들 모두에게 되새기는 중이다. 또 5일엔 "일본에서도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것은 아니다", "방사능 유출은 기본적으로 안 됐다"는 <부산일보> 인터뷰 발언이 문제가 돼 윤 전 총장 캠프가 해명에 나서야했다. 연일 언론 보도를 장식하는 논란에 대한 해명마저 의뭉스럽기 짝이 없다. '주위에서 들은 것'이라거나 '책에서 본 것'과 같은 윤 전 총장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들을 이들이 얼마나 될까.

누구도 두 사람에게 정치 일선에 나서라고, 대통령에 출마하라고 등 떠민 적도 없다. 두 정치초년생의 활약 앞에 '차라리 박근혜는 준비된 정치인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 싶다. 5일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의 페이스북 촌평은 시민들에게 설득력이 있다. 

"한분은 하시는 발언마다 갈팡질팡 대변인 해설이 붙고 진의가 왜곡 되었다고 기자들 핑계나 대고, 또 한분은 준비가 안되었다고 이해해 달라고 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유감입니다. 국정은 연습도 아니고 벼락치기 공부로도 안 되는 겁니다."
#윤석열 #최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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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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