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09 18:45최종 업데이트 21.08.0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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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는 역시 만만치 않았다. 올 봄만 해도 유례없는 속도의 백신 개발과 보급이 바이러스 확산을 급격히 저하시키며 정상화에 가까워진 듯 보였다. 하지만 잇단 변이 바이러스 등 코로나19의 역습은 예상보다 강했고 전 세계는 다시 4차 위기를 맞아 새로운 전략 마련에 바빠졌다.

희망적인 것은 접종 완료 후 감염되는 이른바 '돌파감염'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백신 접종이 중증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점차 증명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4차 위기에서 이전보다 더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게 하는 근본적 차이점이기도 하다. 중증 이행 억제가 개인에게는 생명의 위협으로, 그리고 사회 차원에서는 의료체계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을 현저히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칠레 보건당국이 자국 환자들의 반응을 토대로 지난 3일 발표한 결과가 고무적이다. 이 발표에 따르면 지난 2월부터 7월 사이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 접종을 완료한 국민 가운데 돌파감염 후 중증으로 이행된 비율은 불과 2%에 불과했고 사망자는 0%인 것으로 나타났다.(중국산 시노백의 경우는 이보다 높다.) 이런 결과로 볼 때 돌파감염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팬데믹에 따르는 심리적 불안요소는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추세를 유지하면서 안정적으로 공중보건 관리를 하기 위해 많은 국가들이 백신 접종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그 방안의 하나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백신 의무화'다. 최대한 많은 국민이 접종을 해야 백신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백신 확보량이 충분해야 하고 국민들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이미 몇몇 국가에서 부분적으로 시행 단계에 들어갔다.

미국의 연방정부는 지난달 말 소속 공무원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 의무화 계획을 발표했다. 뉴욕, 캘리포니아 등 일부 지방 정부들도 공무원들의 백신 접종 의무화 또는 이에 준하는 조치를 시행 중이다. 구글, 페이스북 등 다수의 글로벌 정보기업들은 본사 직원들에게 오는 9월 또는 10월 정상 출근 이전까지 백신 접종을 완료하도록 했고, 애플 역시 강력한 권고 수준의 직원 대상 접종 지침을 마련했다.

이와 함께 여러 곳에서 이미 실시 또는 실시를 검토하고 있는 또 하나의 방안이 이른바 '백신여권'(보건여권) 발급이다. 특히 유럽연합이 7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하고 있는 '유럽연합 코비드 디지털 증명서'는 △백신 접종을 완료했거나 △감염 뒤 회복된 경우 또는 △최근 코로나19 검사 결과 음성 판정을 받은 경우 국가가 이를 증명하는 큐알(QR)코드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에서는 회원국 국민들이 백신여권을 발급받지 않고 다른 회원국을 방문할 경우 이동이나 방문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 백신여권의 시행은 유럽연합 27개국뿐 아니라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위스 등 비회원국들까지 포함, 영국과 동유럽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유럽대륙 국가들이 공유하고 있다.

K방역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엇갈린 평가

그런데 백신여권의 자국 내 시행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서유럽 국가에서 백신여권의 국내 시행 문제를 두고 찬반 갈등이 커지는 모양새다. 정부가 국경 내부에서 여권 사용을 강요한다는 불만이 일부 국민들을 자극하면서 특히 프랑스는 최근 4주 동안 주말 반대 시위가 계속됐다. 첫 시위가 열린 지난달 17일에는 프랑스 전역에서 11만 명(내무부 추산)이 거리로 나와 반대의 목소리를 냈는데, 지난 주말에는 3주 만에 두 배가 넘는 23만 명 이상이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달 21일부터 영화관, 박물관, 체육관 등 50명 이상 모이는 문화 여가 시설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경우 백신여권을 반드시 소지하도록 했다. 오는 9일부터는 식당, 카페 이용자, 그리고 기차, 항공편을 이용한 여행객과 장시간 버스 여행객에게도 백신여권의 소지가 의무화된다. 이에 대해 반대하는 측은 정부의 조치는 반인권적 처사이며 시민의 자유를 박탈하고 백신으로 시민을 두 부류로 나눈 차별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프랑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델타 변이 확산으로 비상인 가운데 25일(현지시간) 수도 파리의 한 영화관 앞에 코로나19 백신 증명서 제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프랑스는 지난 21일부터 박물관과 영화관·극장 등 50명 이상이 모이는 문화·여가 시설을 이용할 때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는 보건 증명서를 제시하도록 강제했다. 다음 달 중에는 이 조치가 확대돼 장거리를 이동하는 버스, 기차, 비행기 등을 이용할 때도 '백신 여권'을 제시해야 한다. 2021.7.25 ⓒ 연합뉴스

 
프랑스에서 일고 있는 정부의 코로나19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은 외부의 시각에서 볼 때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다. 팬데믹에 대응하는 정부에 국민들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매우 불분명해 보이기도 한다. 정말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은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대책에 반대하는 걸까? 그렇지 않은 여론은 어느 정도의 규모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정부의 방역 조치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반응이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 것은 사실이다(그렇다고 비슷한 비율의 양분은 아니다). 그리고 이들의 방역에 대한 이견은 한국의 팬데믹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평가에서도 엇갈리고 있으며, 더 넓게는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철학적 시각에서 분화돼 있다.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능력에 대한 프랑스 내부에서의 인정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프랑스 국민들에게 한국은 분명 팬데믹을 맞아 최고의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 줬고, 국가를 폐쇄하지 않으면서도 인명 피해와 경제 피해의 최소화를 달성한 거의 유일한 국가다. 그런데 한국의 위기관리 능력과 관련해 이들의 평가가 양분되는 부분은 '그 위기관리 능력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에 대한 답이다. 

그 중 하나는 한국 국민들의 적극적이고 참여적인 주인의식에서 찾는다. 국가가 부도가 났을 때 자발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금을 모아 팔았듯, 보건 위기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의 상당부분을 포기하면서도 방역에 협조한 점을 든다. 주권자로서 주인의식이 없다면 불가능한 희생이라는 평가다.

반면 다른 한쪽은 같은 현상을 다른 각도에서 해석한다. 팬데믹 상황에서 국민들이 정부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수 있었던 배경은 국민들이 개인의 자유를 감시당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라는것이다. 이러한 해석에는 한국인들이 오래전부터 유교적 순종주의에 잘 길들여져 있는 시민들이라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다. 지난해 봄 한국의 팬데믹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찬사가 쏟아질 때 소수 의견으로 나온 평가였다.

이렇게 같은 현상에 대해 두 가지의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는 배경에는 프랑스의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과 논쟁의 역사가 놓여있다. 오랜 시간 대화와 타협에 의해 민주정치를 완성한 영국과 달리 구체제와의 급격한 단절을 통해 민주정치를 완성한 프랑스는 그만큼 이론적 논쟁도 치열했다. 민주주의 원리에 대한 다양한 논의 가운데 중요한 하나가 주권의 소재에 대한 논쟁이다.
 

8일 오전 경기도 구리시 보건소에서 2차 접종을 마친 시민을 대상으로 '백신접종' 스티커를 신분증에 부착해 주고 있다. 2021.6.8 ⓒ 이희훈

 
시민은 민주주의 시혜자인가 수혜자인가

프랑스 혁명 당시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직접적 영향 하에 있는 시민주권주의자들은 시민 개개인이 주권자로서 충만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주권의 소재는 시민에게 있고 모든 시민이 모든 결정의 최종 책임자라는 것이다. 그만큼 시민들의 주권 행사는 적극적이고 직접적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시혜자와 수혜자가 구별되지 않는다.

반면 에마뉘엘 조세프 시에예스(Emmanuel-Joseph Sieyès)와 같은 국가주권주의자는 시민의 직접적 주권행사 참여에 회의적이었다. 간접민주주의의 이론적 반석이 된 이 이론에 따르면 국가의 주권은 시민의 수만큼 분할될 수 없다. 주권의 소재는 추상적 존재인 국가에 있으며 시민은 자신들의 대표자에게 권한을 위임할 뿐이다. 결국 국가는 시혜자, 시민은 수혜자의 입장으로 구별된다.

이러한 두 가지의 원천이 프랑스 민주주의 전통 속에 혼재돼 있으며 때로는 타협을, 때로는 대립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적용 범위를 놓고도 마찬가지다. 전자의 전통은 시민 개개인의 주권적 행사를 위해 개인의 무한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고 믿는다. 주인으로서의 책임의식 때문이다. 반면 후자의 전통은 팬데믹 위기 속에서도 개인의 자유가 우선시돼야 한다고 믿는다. 민주주의의 수혜자로서 시민의 권리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식당의 예를 들어보면 이해가 더 쉽다. 호황일 때는 문제가 없지만 경영 위기에 빠졌을 때 식당의 주인과 객은 입장이 달라진다. 경영난을 마주하는 주인은 긴축과 절제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사업장의 존속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반면 객은 식당의 경영난과 관계없이 이전과 같은 수준의 응대를 요구한다. 소비자로서의 당연한 권리라 믿기 때문이다.

팬데믹 위기 속의 프랑스가 그렇다. 시민의 권리와 자유문제를 놓고 주권자로서의 시민 자격과 '고객 마인드'의 시민 자격이 충돌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충돌은 프랑스뿐 아니라 위기 속의 모든 사회에서 보이는 현상이다. 팬데믹을 대하는 한국 시민들의 자유와 사생활 보호 권리의 반납이 전자의 입장에서는 주인으로서의 긴축과 절제로 보일 수 있지만, 후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권리를 빼앗기는 복종으로 보이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 에펠탑 인근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24일(현지시간) 시위대 수만 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백신 증명서와 여권에 반대하며 대규모 집회를 벌이고 있다. 2021.7.24 ⓒ 연합뉴스

 
그렇다면 국내 공공장소를 이용하기 위한 백신여권 발행을 바라보는 프랑스 여론은 어떤 모습일까? 이와 관련 4일 프랑스의 경제 전문지 <레제코>(Les echos)가 의뢰한 여론조사가 공개됐다. 이 조사에 따르면 37%의 국민이 정부의 백신여권에 반대하는 저항운동에 지지 또는 호감 의사를 표했다. 반면 48%의 국민은 저항운동에 거부감을 나타내 정부의 뜻에 지지를 표했다.

이러한 결과는 지난 2018년 프랑스를 뒤흔들었던 '노란조끼' 저항운동(2018년 발생한 마크롱 정부의 유류세 인상을 계기로 민심이 폭발해 반정부 시위로 확산한 저항운동)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노란조끼' 저항운동 당시 그들을 지지 또는 호감을 표했던 여론이 무려 73%에 달했다. 반면 반대 또는 비호감은 15%에 불과했다. 그만큼 사회적·경제적으로 급변하는 시대에 적절한 대응을 못하는 정부에 반감을 표하는 국민적 여론이 강했다.

반면 팬데믹 상황에서 백신여권을 발행하려는 정부에 저항하는 목소리는 '프랑스 대혁명'에 비교하고 싶어 하는 주최 측의 희망과 달리 다수의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백신여권을 실제 사용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더 분명하다. 카페 등 공공장소 이용에 백신여권을 사용하겠다는 의견은 77%인 반면 사용하지 않거나 백신여권을 발급받지 않겠다는 의견은 23%에 불과했다.

비행기, 기차 등 장기 여행에서의 사용 여부에 대해서는 각각 80%, 20%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백신 의무화에 대한 찬반도 비슷한 양상의 결과가 나왔다. 백신 의무화에 찬성한다는 여론이 61%, 반대 여론은 39%로 나타났다. 기존의 같은 주제의 여론조사들도 유사한 결과를 보여 왔다.

"자유는 타인의 자유가 시작되는 곳에서 멈춘다"

코로나19 백신 접종과 증명서 발급을 둘러싼 프랑스 국민들의 양분된 생각은 자유에 대한 기본적 사유 방식의 차이와 직결된다. 프랑스는 흔히 자유와 인권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실제 무한 자유를 향한 그들의 열망은 어느 나라 국민들보다 강렬하다. 프랑스 대혁명 직후 작성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도 저항권과 표현의 자유, 생각의 자유 등을 천부적 권리로 명시하며 이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보편성을 가진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인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금언이 하나 있다. "자유는 타인의 자유가 시작되는 곳에서 멈춘다(La liberté s'arrête là où celle des autres commence)." 그들이 열망하는 무한 자유도 타인의 자유와 충돌이 불가피하다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수의 프랑스인들은 백신과 백신여권의 의무화가 자신의 자유를 침해하지만 전염병의 특성상 만약 거부할 경우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는 이유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주권자로서의 의무이자 권한 행사다. 주권자는 권리 수혜만 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는 타인의 자유가 시작되는 곳에서 멈춘다." 팬데믹 상황에서 이기적 자유방임주의자를 비판하는 한 프랑스 네티즌이 이 금언을 패러디한 글을 사회망에 올려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누군가의 생명은 다른 사람의 자유가 시작되는 곳에서 멈춘다" 나의 이기적 자유가 타인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자유는 한 개인이 추구하는 최상의 선(善)이지만 사회는 최상의 선을 추구하는 개인들이 모든 것을 공유하는 곳이다. 심지어 숨 쉬는 공기마저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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