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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유흥을 위해 존재하는 동물은 없다

[어스링스 지구생명체 기록 프로젝트] 전시동물 ② '전시동물'의 현실과 쟁점을 짚다

등록 2021.08.11 08:39수정 2021.08.1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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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링스(Earthlings) 지구생명체 기록 프로젝트'는 지구생명체들이 있는 현장으로 가 그들의 삶을 글, 사진, 영상으로 기록합니다. 다양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희생당하는 인간 외 종들의 현실을 고발한 2005년 미국의 영화 <지구생명체>(Earthlings)에서 이름을 가져왔습니다. 농장,바다,동물원,펫샵,동물실험연구소 등 인간의 목적을 위해 희생되거나 삶터를 빼앗긴 이들을 찾아가 기록원들이 보고 듣고 맡은 현실을 기록하여 연재합니다. [기자말]
국내에는 110개의 동물원과 280개 남짓한 동물카페가 있다. 6만에 가까운 동물들이 오늘도 숱한 눈길 속에 갇힌 삶을 살아내고 있다. 저마다의 서식 환경을 무시한 채 동물을 전시하는 공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뜻 '교육적 효과'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연상작용에는 두 가지 맹점이 있다. 첫 번째는 '교육적 효과'가 생략시킨 숨은 목적이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제1가치처럼 작동하여 비판의 여지를 차단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동물 전시공간은 '교육적 효과'가 동반한다고 믿어지는 '오락 및 유흥 활동'이다. 즉, 동물원의 실제 목적은 여가활동으로 설명되는 인간의 '오락과 유흥'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설사 교육적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무언가를 '위한' 동물은 있을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존재 목적은 무엇인가? 그 자신을 위한 '행복'이 아니라면 섣불리 답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동물의 경우 역시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생명 앞에 '목적'을 세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집담회 <오락·유흥을 위해 존재하는 동물은 없다> 포스터 ⓒ 어스링스 프로젝트

 
지난 7월 31일, 어스링스 지구생명체 기록 프로젝트 팀은 이러한 전시동물의 현실을 짚어보기 위해 집담회 '오락·유흥을 위해 존재하는 동물은 없다'를 진행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되었음에도 세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다양한 관점이 교차되며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먼저 어스링스 프로젝트의 팀원이 어린이대공원과 충무로 펫샵거리의 동물들을 목격한 경험을 공유했고, 동물해방물결 이지연 대표와 동물권단체 케어 김영환 대표가 전시동물의 현실과 쟁점,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어스링스 팀원이 전시동물을 목격한 기록은 이전 연재기사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동물원은 자가당착에 빠진다
 

동물해방물결의 슬로건, '느끼는 모두에게 자유를' ⓒ 어스링스 프로젝트


동물해방물결은 '느끼는 모두에게 자유를'이라는 프레이즈 아래, 동물을 고통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행동하는 단체이다. 현재 동물해방물결은 개식용 철폐 운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만 이지연 대표가 동물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 역시 동물원의 불행해보이던 호랑이를 본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동물 담론이 (1)복지, (2)권리, (3)보호 혹은 보전의 영역으로 나뉜다고 할 때, 많은 동물원들이 동물들의 '종 보전'을 자신들의 순기능으로 삼는다. 하지만 그러한 거시적 목표 하에 각 개체들에 대한 처우는 더욱 경시되고 열악해지는데, 국내에서 관련 사례는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종 보전이라는 목적은 실제로 달성되고 있을까? 익히 알려져있듯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은 흔히 같은 행동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정형행동'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자연수명 이전 폐사 비율 역시 압도적으로 높은데, 이는 동물원의 결정적 한계를 보여주는 결과이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공간, 특히 인간의 오락을 위해 도시에 만들어낸 인공 공간은 결코 동물의 원 서식지를 재현할 수 없다. '종 보전'이라는 목적과 달리 동물들의 생태적 및 행동적 필요를 전혀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이러한 관점에서 동물원은 실상 '교육적 효과'를 가질리 만무하다. '생태 체험'이라는 미명 아래 인간의 입맛대로 동물의 생태를 편집해내는 경험을 획득할 뿐이다. 이로써 아이들은 더욱 인간의 관점에서 동물을 대상화하는 방식을 학습하게 된다. '종 보전'을 진정으로 위한다면 열악한 시설에 동물을 가둬두고 폐사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원 서식지 내의 보전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이 응당하다.

그러나 모든 실용적 이유를 차치하더라도 동물에게 갇힌 삶을 강요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정당하지 않다. 인간에게 하지 않는 행동을 동물이라는 이유로 허용하는 것은 다분히 종차별적이다. 어떤 인간 착취도 허용될 수 없는 것처럼, 어떤 동물 착취도 허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이지연 대표는 말한다. '필요'나 '효율'과 무관하게 윤리적으로 잘못된 일은 행해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동물해방물결 이지연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 어스링스 프로젝트


더불어 동물들의 '종 보전'이 필요해진 이유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물들이 생물다양성의 위기를 맞닥뜨리고 있는 근본적 원인은 바로 동물들의 서식지를 빼앗는 '인간'에게 있다. 이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동물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결국 자가당착에 빠지는 셈이 된다.

이처럼 수많은 모순과 문제를 안고있는 동물원은 장기적으로 폐지되는 것이 마땅할 법한데, 이를 위해서는 먼저 야생동물의 수입이나 증식이 우선적으로 중단될 필요가 있다. 이후 현재 수용된 동물들에 한해 쉼터(생추어리, Sanctuary)를 마련하는 등 현실적인 대책들을 바탕으로 폐지의 수순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덧붙인다. 
 

동물해방물결이 목소리내어 온 이슈들 ⓒ 어스링스 프로젝트

      
이러한 방향성 하에서 동물해방물결은 동물쇼 중단을 요구하는 액션들을 여러 차례 취해왔다. 동물학대로 인한 폐사나 전시로 인한 상해를 근거로 '동물원 및 수족관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을 문제삼은 것이다. 문제제기는 계속해서 진행 중이며 판결문의 단 한 줄이라도 유의미한 진전을 얻어내기 위해 이들은 끊임없이 투쟁하고 있다.

당장의 동물원 폐지가 머나먼 길일지언정, 같은 곳을 바라보는 작은 움직임들이 변화의 불씨가 되어줄 것은 분명해보인다. 가장 용기가 필요했던 앞장 선 움직임에 우리의 목소리는 든든한 바람이 되어줄 수 있다.

'한 뼘' 안에 전시된 반려동물, 펫샵과 번식업

반려동물 문화의 이면에서 펫샵은 성행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인식 수준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펫샵과 번식장들이 버젓히 영업을 하고 있다. 특히 번식장의 현실은 극도로 열악한데, 김영환 대표는 배설물로 인한 악취나 환기, 고립 문제는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흔한' 문제라고 말한다.

이중에서도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펫샵과 번식장의 폐업 상황이다. 상품으로 태어나 상품으로 길러진 동물들은 '편의'에 의해 손쉽게 버려지기 때문이다.
 

동물권단체 케어 김영환 대표가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 어스링스 프로젝트


동물학대 가해자들을 처벌하고 죽어가는 동물들을 구조하기 위해 동물권 단체들은 오늘도 전국 각지에서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 벌금형일지라도 이러한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동물보호법 제8조에 있다. 해당법상 동물학대 행위는 동물에게 상해나 질병을 유발시킨 것을 기준으로 하며, 그에 대한 구체적인 시행규칙으로 사육공간의 너비나 높이, 사료 공급과 위생의 기준 등을 규정해두고 있다.

이는 물론 유의미한 법안이지만 2018년 영국에서 제정된 일명 '루시법(Lucy's Law)'과 비교해볼 수 있다. '루시법'은 기존보다 강화된 동물복지 법안으로, 임신과 출산을 수차례 반복해야했던 번식견 '루시'의 사연이 알려지며 촉발되었다. 개나 고양이, 즉 반려동물의 상업적 거래를 억제하기 위해, 8주 이하의 어린 강아지나 고양이의 3자 거래(펫샵 등 직접 기르지 않은 동물을 판매하는 경우)를 원천적으로 금지한 것이다.(3-5-(1))

이에 더해 주거환경 면에서는 '외풍이 들어오지 않는 잠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규정을 마련하고 있는데(6-2-(1)), 이는 국내법상 '더위, 추위, 눈, 비 및 직사광선 등을 피할 수 있는 휴식공간을 제공해야 한다'는 규정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김영환 대표의 발언 중 폐업한 펫샵의 사례 ⓒ 어스링스 프로젝트

   
이로써 반려동물의 전시를 철폐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비교적 명확해진다. 먼저 인간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감금된 채 죽어가는 동물들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는 주변을 조금 더 기민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동물권 단체들과 함께 끊임없이 목소리 냄으로써 관련 법안들을 더욱 촘촘하게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야생동물과 반려동물의 전시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갖는 것은 '소비하지 않는 것'이다. 전시 공간의 존재는 실상 소비자들의 수요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전시동물과의 관계맺음에 낯선 감각을 느꼈다면 이미 행동은 시작되었다. '나'부터, '우리'로부터, 변화를 위한 발걸음을 힘차게 떼어나갈 수 있다.
#어스링스 #전시동물 #반려동물 #동물권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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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 환경, 젠더, 노동 세상 만사에 관심 많은 1년차 비건이자 환경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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