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대화의 조건_ 솔직하게, 정확하게, 정중하게

1020과 함께 하는 천샘의 젠더수업_6

등록 2021.08.15 15:53수정 2021.08.15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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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읽는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업이든 아니든, 말이든 글이든, 젠더 주제이든 아니든 우리가 대화를 나눌 때는 최소한의 조건을 공유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 조건이 공유되지 않을 때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화, 하지 않아도 됩니다. 누구하고나 언제나 대화가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대화를 할 수 없는 상황도 있는 법입니다. 대화를 하려 노력하는 것이 반드시 늘 최선인 것은 아닙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솔직하게, 정확하게, 정중하게'라는 대화의 조건을 이야기합니다. 이 조건에 대한 상호 동의가 없다면 대화는 건강하고 생산적일 수 없을 겁니다. 반대로 이 조건이 갖추어진다면 우리가 얼마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느냐는, 대화를 지속하지 못할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각각의 조건에 대해 살을 붙여 보여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솔직하게'입니다. 여기에 종종 '가능한 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곤 합니다. 대화의 중요 조건 중 하나가 솔직함인 것은 분명이나 사실 100% 솔직함이라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불가능합니다. 인간의 언어 자체가 한계가 분명한 매체이기 때문에 언어를 통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다 표현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외부에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도 있을 수 있고, 시간의 제약도 있습니다. 짧은 제한된 시간에 생각의 아주 일부를 '편집'해서 소통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솔직한 언어(소통)가 힘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일입니다. 문법도 맞지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은 시골 어르신들의 말과 글에 승복 당해 본 적이 있다면 아마 동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 한 솔직하게'의 원칙을 지키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방법이 뭐냐고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말과 글로 옮기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솔직함에 다다르는 지름길일뿐더러 그 자체로 자신을 주체로 세우는 소중한 경험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젠더 이슈는 우리 모두의 일상 안에, 예외 없이 모두의 일상 안에, 녹아 있습니다. 어려운 말, 떠도는 글 가져다 그럴듯하게 가공하려 애쓰는 시간에 자신의 일상을 한번 더 찬찬히 돌아볼 일입니다. 주의!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 밝히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억지로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은 '정확하게'입니다. 어떤 주제로 대화를 할 때도 정확성은 중요한 덕목이겠지만, 젠더처럼 발화력이 높은 주제로 이야기를 할 때는 주장의 논거를 정확하게 하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숫자로 이야기하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경험이나 주관적 의견을 이야기할 때에도 정확성은 필요하고도 중요합니다. '오늘 아침 밥을 먹고 나온 것 같습니다'라는 문장을 말하며 아무 생각이 없다면 성찰이 좀 필요하겠군요. 정확한 것은 정확하게, 모호한 것은 모호하게 말하는 것이 정확한 것입니다. 아무리 정확하게 말하려 노력해도 오해를 피하기 어려운데, 정확하게 말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이 정확하게 알아들어 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요?

마지막으로 '정중하게'입니다. 상대방을 나와 똑같은 존엄한 존재로 보고 있는지 자문해봐야 합니다. 이 조건만 갖춰져 있어도 갈등의 많은 부분은 이미 해결되지 않았을까요?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 없는 상태에서의 대화가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대화는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젠더 같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이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저 말싸움을 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니 그에 말려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읽는 여러분도 이 세 가지 조건에 동의하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끝까지 대화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생각이 끝까지 평행선을 달리더라도 말입니다.
#젠더 #젠더수업 #사회학 #대화의조건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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