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19 11:53최종 업데이트 21.08.19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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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 탈레반 조직원들이 15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에 위치한 대통령궁을 장악한 모습.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은 이날 대통령궁도 수중에 넣은 뒤 "전쟁은 끝났다"며 사실상 승리를 선언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앞서 이날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한 직후 국외로 도피했다. ⓒ 카불AP=연합뉴스

 
지난 5월 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올해 9월 11일까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철수를 완료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리고 8월 15일, 탈레반 반군은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 있는 대통령궁을 전격 무력 접수했다. 미군 철수 발표 후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반군의 진격에 힘 한번 못쓰고 모래성처럼 무너지기까지 정확히 세달 반 걸렸다.

3700만 인구와 65만㎢(한반도의 3배) 면적의 국가를 경영하던 정부가 이처럼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모습에 세계는 경악했다. 아프가니스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정부 조직과 군을 이처럼 가볍게 와해시킨 탈레반은 도대체 어떤 조직인가? 향후 아프가니스탄 국민과 지구촌의 안전은 얼마나 보장될 수 있을까?


지난 주말 사이 서아시아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태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사태가 급속하게 전개되고 있어 어떠한 속단도 아직은 이르지만 현재까지의 경과를 차분히 복기해볼 필요는 있다. 앞으로의 정세 파악 시 치명적 오판은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탈레반의 정체성

"아프간 인민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16일 중국 외교부 화춘잉 대변인이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 상황에 대해 밝힌 내용이다. 화 대변인은 "전란을 멈추고 평화를 이루는 것은 3천만 이상 아프가니스탄 인민의 일치된 마음의 소리"라고 덧붙였다.

평화에 대한 바람은 아프가니스탄 3천만 인민이 원하는 것이 맞을 테다. 그렇지만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권력 장악이 그 구체적 방법인지는 의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은 다민족 국가이고, 탈레반은 그 중 하나의 민족만 대표하기 때문이다. 탈레반의 권력 장악은 한 민족에게는 기회지만 다른 민족에게는 재앙이 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국가가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은 남부의 파슈툰인(1460만), 북서부의 타지크인(860만), 우즈벡인(280만), 중부의 하자라인(800만), 서부의 아이마크인(260만)을 포함, 수많은 민족이 구성하고 있는 국가다. 이 가운데 파슈툰인이 가장 큰 인구 구성 비율을 차지한다. 그리고 탈레반은 파슈툰족을 기반으로 하는 정교일치주의 단체다.

파슈툰인은 국경 너머 파키스탄 거주민이 3200만 명으로, 아프가니스탄 거주 동족인들보다 월등하게 많다. 심지어 아프가니스탄 전체 인구에 맞먹는 수준이다. 흔히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탈레반이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내용은 그 이유 때문이다. 파키스탄 정부의 지원이라기보다 파슈툰인의 지원을 받는다는 표현이 따라서 더 옳다. 이들은 아프가니스탄이라는 국가의 소속감보다 파슈툰족 소속감이 더 큰 민족이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국가를 대하는 정서는 이렇듯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과 많은 차이가 있다. 이들은 아프가니스탄 또는 파키스탄의 국적과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공동체 정신과 종교적 일체감을 가지고 있다. '탈레반'이라는 용어는 파슈툰족의 이슬람 신학교에서 공부한 학생들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탈레반'은 파슈툰어로 '학생'이라는 뜻이다.

탈레반의 이슬람교를 흔히 다수파인 수니파의 한 분파로 분류하지만, 파슈툰족 고유의 토속적 신앙과 전통 문화가 함께 혼합된 것이 이들의 이슬람교다. 따라서 이들의 교리를 흔히 이슬람 근본주의라고 칭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정통 이슬람과는 거리가 있다고 하는 것이 맞다.

특히 여성의 정체성, 여성의 역할에 대해 극단적으로 반인륜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 부르카(히잡과 유사하지만 얼굴 포함 거의 전신을 가림)로 가리지 않은 여성은 외출이 금지돼 있고, 부르카로도 가리지 못하는 손, 눈 등은 부도덕을 유발할 수 있는 요소로 간주한다. 12세 이상 여성에 대한 교육도 금지돼 있다.

1978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해 세운 아프가니스탄 민주공화국에서는 그래서 여성의 부르카 착용이 금지돼 있었다. 하지만 이슬람 무장단체 '무자헤딘'의 봉기로 인한 내전 이후 혼란한 상황을 틈타 탈레반은 빠른 속도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세력을 키워나가게 된다. 이때 소련 세력에 대항하는 탈레반을 지원한 나라가 미국이다.

1996년 탈레반은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우는 신정국가를 세우게 된다. 결국 탈레반이 권력을 쟁취하는데 가장 힘을 준 나라가 미국인 셈이다. 미국은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지원했던 사담 후세인을 상대로 훗날 전쟁을 치렀듯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지원한 탈레반과 역시 전쟁을 치르게 된 것이다.

아프간은 어떻게 저주의 땅이 되었나
 

지난 16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국외 탈출을 위해 주민들이 담을 넘어 공항으로 들어가고 있다. 아프간의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정권 재장악을 선언하자 카불 국제공항에는 외국으로 탈출하려는 군중이 몰려들었으며 결국 항공기 운항이 중단되고 공항은 마비됐다. ⓒ 연합뉴스=EPA

 
그렇다면 다시 돌아가 보자. 아프가니스탄 인민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아프가니스탄 인민이라는 정체성은 애초에 없었다. 오래전부터 다민족이 얽혀 있는 지역에 주변의 거대 세력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겨루는 각축장으로 삼아 온 곳이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이다. 서구 세력 가운데 처음 이 지역에 개입한 것은 모든 서아시아 분쟁의 원천인 영국이었다.

'그레이트 게임'이라 불리는 유럽 열강의 아시아 수탈 역사 속에서 특히 이 지역에서 충돌한 것은 영국과 러시아였다. 남하 정책을 추진하는 러시아, 그리고 그에 맞서 식민지 인도를 지키려는 영국, 이들이 완충지대로 삼은 것이 아프가니스탄이다. 그 과정에서 이들의 입맛에 따라 인위적으로 국경선이 그어지고 앞서 기술된 파슈툰인들의 거주지역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으로 나뉘게 된다.

이처럼 민족국가가 구성되지 않은 서아시아에 국가의 이름으로 난도질당한 상흔이 지금의 국경선인 셈이다. 그리고 국가로서 아프가니스탄은 열강들의 패권 전략과 이에 저항하는 소수민족들이 맞서 싸우는 저주의 땅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영국, 러시아(소련), 미국이 차례로 손을 털고 나간 것이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를 이루고 있다.

"스스로 지키려 하지 않은 곳에서 미군을 더 이상 희생시킬 수 없다."

16일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자신의 철군 결정을 변호하며 한 말이다. 설득력 있는 메시지다. 미국 국민의 상당수도 이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실제 '스스로 지키려 하지 않은'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은 미군의 천문학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힘없이 무너졌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2500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2조 달러가 넘는 비용을 부채로 조달했다. 이 부채는 앞으로 이자를 감안하면 수십 년 사이 두 배가 넘는 액수로 커질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억장이 무너질 노릇일 거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그 변명은 처음부터 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세력을 전복시키고 무리한 정권 교체를 시도했는지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스스로 지킬 능력이 없는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그들의 군대는 전혀 수권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소수 세력이었다. 선거를 치렀지만 부정선거 의혹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북서부에 주로 거주하는 타지크족을 중심으로 '민주'정부를 꾸렸지만 실제 이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의지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파슈툰족 중심의 탈레반 세력이 카불에 입성하자 현금을 들고 달아난 대통령을 바라보는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 주권 등 거대 담론보다 같은 민족끼리 서로 침범하지 않으면서 천부적 인권을 보장받고 사는 것일 수도 있다.

19세기 인류는 내셔널리즘(국가주의)이라는 새로운 체제문법을 고안해 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무한한 수혜를 입은 민족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국가의 이름으로 얻은 수혜는 대부분 타민족의 희생으로 얻어진 것들이었다. 그 한 비극의 예를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보고 있다.

국가주의의 한 세기가 지났다. 이제는 수혜를 입었다는 민족들마저 국가주의의 한계를 하나씩 찾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고민할 때다. 그것이 어쩌면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곳에서 벌어지는 비극의 순환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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