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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년 전 사진 속 그 장소에 유해가 있었다

[대전 골령골 유해발굴 현장] 학살 당시 찍은 미군 사진 속 산세와 일치... 수십여구 유해 확인

등록 2021.08.22 16:37수정 2021.10.1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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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령골 학살 사건 당시 미군에 의해 촬영된 군인과 경찰의 총살 직전 장면. 미 극동군사령부 연락장교 애버트(Abbott) 소령은 1950년 7월 골령골 학살 현장을 찍어 본국으로 보냈고, 이 자료는 비밀문서로 분류 50년동안 비공개돼 왔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최근 골령골 유해발굴 현장에서 드러난 유매매장지. 71년 전 학살당시 미군이 찍은 사진(위)과 산세가 같아 같은 위치로 보인다. ⓒ 심규상

 
 

미 극동군사령부 연락장교 애버트(Abbott) 소령이 1950년 7월 찍은 대전 골령골 학살 현장(가운데 흑백)과 근래 골령골 현장(컬러).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1950년 군인·경찰에 의해 총살된 대전 골령골 유해 매장 추정지에서 71년 전 학살 당시 사진과 같은 위치에서 유해가 나왔다.

행정안전부와 대전 동구청(구청장 황인호)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지난 6월부터 대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 현장에서 유해를 발굴 중이다. 올해 발굴은 한국선사문화연구원(원장 우종윤)이 맡았다. 이중 '1 학살지'로 불리는 구역에서 수 십여 구의 유해가 드러났다. 이 구덩이는 폭 2m, 깊이 2m다. 이 구덩이의 총길이는 지난해 발굴로 드러난 100m 구덩이와 연결돼 있다. 또 위쪽으로 같은 크기, 비슷한 길이의 구덩이와 접해 있다. 암매장 구덩이가 1구역에서만 최소 300m에 달한다.

특히 이번에 드러난 유해매장지는 71년 전 학살 당시 미군이 찍은 사진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미 극동군사령부 연락장교 애버트(Abbott) 소령은 1950년 7월 골령골 학살 현장을 찍어 자국으로 보냈고, 이 자료는 비밀문서로 분류 50년 동안 비공개돼 왔다.

당시 여러 장의 사진 중에는 학살 장소를 유추할 수 있는 현장 산세가 담긴 사진이 들어있다. 사진을 보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민간인 복장을 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땅바닥에 앉아 있고 총을 든 경찰과 헌병들이 이들을 겨누고 있다. 주변으로는 현장 골짜기 산세와 능선이 언뜻 보인다. 민간인 복장의 사람들은 이곳에서 모두 총살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최근 유해가 확인된 곳은 당시 학살 현장 사진과 같은 위치다. 8월 20일 현재 수십여 구의 유해가 드러났지만 정확한 희생자 유해는 추정하지 못하고 있다. 아래쪽으로 겹겹이 유해가 묻힌 데다 위쪽으로 2~3개의 구덩이가 나란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인근 주민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골령골 현장을 방문한 북한군에게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다. 1950년 7월 또는 8월, 대전을 점령한 북한군과 함께 골령골 현장을 방문한 영국 <데일리 워커>의 앨런 위닝턴 기자가 찍었다. 이번에 유해가 드러난 장소는 위닝턴 기자가 찍은 일부 현장 사진과 비슷해 동일 장소로 추정된다. ⓒ 대전 동구청

  

미 극동군사령부 연락장교 애버트(Abbott) 소령은 1950년 7월 골령골 학살 현장. 이 사진은 비밀문서로 분류 50년동안 비공개돼 왔다. ⓒ 심규상

  

최근 드러난 유해구덩이. 수십여구의 유해가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 심규상

 
이곳은 학살 직후 북한군과 함께 현장을 방문한 앨런 위닝턴 기자가 찍은 학살 현장과 같은 장소로 보인다.  영국 일간신문 <데일리 워커>의 편집자이자 특파원이었던 위닝턴 기자는 학살 직후 현장을 찾아 구덩이 밖으로 삐져나온 희생자들의 손과 발, 다리의 모습이 담긴 참혹한 사진과 함께 현장 모습을 '나는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I saw the truth in Korea) 제목의 기사를 송고했다.

이번에 유해가 드러난 장소는 위닝턴 기자가 찍은 일부 현장 사진과 비슷해 동일 장소로 추정된다. 위닝턴 기자는 기사에서 암매장 구덩이 수를 모두 6개, 구덩이를 총 합한 길이를 약 530m로 추산했다.

골령골에서는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국민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을 대상으로 최소 4000여 명, 최대 7000여 명의 대량 학살이 벌어졌다. 당시 가해자들은 충남지구 CIC(방첩대),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이었고, 그들에 의해 법적 절차 없이 집단 살해됐다.
#골령골 #유해발굴 #민간인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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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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