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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때문에 집 떠난 사람들이 사진전 연 까닭

[리뷰]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봉명주공>

21.08.26 15:45최종업데이트21.09.0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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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8번째를 맞은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8월 23일부터 29일까지 “일상의 특별함을 담다”라는 주제로 전 세계 29개국의 64편의 다큐멘터리를 상영합니다.[편집자말]
한국 사회에서 집은 그야말로 핵심적인 화두다. '사는(buy)것이 아니라 사는(live) 것이다'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누군가에게는 집이 사고파는 하나의 상품이라고 인식되고 있다는 거 아닐까. 모두가 내 집을 가지고 싶어 하지만 그 꿈은 점점 멀어져만 가는 것이 현실.

그런 와중에 자신이 오랫동안 살던 곳에서 떠나야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모르긴 몰라도 집은 단순히 거주하는 공간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터전이기도 한 만큼, 개인의 삶에는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봉명주공>은 떠나는 사람과 그곳을 다시 채우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삶의 맥락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봉명주공아파트 
 

<봉명주공> 스틸컷. ⓒ EDIF


<봉명주공>(Land and Housing, 2020)은 김기성 감독의 첫 다큐멘터리 영화로, 최근 진행된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EDIF) 출품작이다. '봉명주공아파트'는 청주의 1세대 아파트로,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한국주택공사가 주거안정을 위해 지은 아파트 단지이기도 하다. 

그런 봉명주공은 2008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었지만, 시공사 선정 등의 어려움으로 계속 시기가 밀리더니 2019년에야 본격적으로 재건축 사업이 진행된다. 자연히 기존 주민들은 떠나야 한다. 흥미롭게도 LH(한국주택도시공사)는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인 'Land and Housing'의 약자다. 동시에 단어 뜻 그대로 '땅과 주택'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 모여서 같이 살아가는 곳. 이 영화는 봉명 주공에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영화는 재개발을 앞둔 2019년 여름의 봉명주공과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공사가 진행 중인 2020년 봄의 봉명주공을 번갈아 비춘다.
 

<봉명주공> 스틸컷. ⓒ EDIF

 
감독은 이곳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는다. 다들 여기서 꽤 오래 살았던 모양이다. 중학교 때부터 나이가 들기까지 쭉 살아온 사람도 있을 정도니, 삶의 터전을 떠나는 건 아쉬운 일일 수밖에 없다. 젊을 때 결혼한 시점에 분양받아 봉명주공에 들어온 사람도 있다. 아들이 커온 시간이 곧 봉명주공의 시간이기도 하다. 

더 나이가 든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할까. 옛날에는 사과나무와 벚나무가 참 많았다면서, 젊은이들은 다 나가고 나이 든 사람들만 있다며, 아이들로 북적북적했던 30년 전을 회상한다. 그러면서 "여기 노인네들은 그냥 (건물을) 고쳐서 산다고 그러지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라고 불평한다. 

그러면서 갑자기 왜 여기 사는 사람들 편을 들지 않느냐며 조합장을 욕한다. 영화는 적극적으로 비추지 않지만, 주민들은 알게 모르게 경제적인 문제를 둘러싸고 서로 논쟁하고 다투는 과정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흔적을 남기거나 지우는 이야기

사실 <봉명주공>은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거나, 재개발에 반대하는 격렬한 투쟁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재개발이라는 주제는 부동산과도 연관이 되지만, 영화는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떠나가는 과정과 그들이 가꾸었던 나무와 텃밭이 밀려 나가는 모습을 담담히 담아낼 뿐이다. 어디서나 생길 수 있을 법한 이야기. 

그렇게 사람들이 떠나가고 재개발 공사를 시작하는 시점인 2020년 봄,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봉명주공을 기억하기 위해 찾아온다.

사람들이 떠난 봉명주공은 공사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다큐는 봉명주공을 돌아다니며 한때 본인들이 심었을 나무와 가꾼 텃밭을 둘러보는 사람들, 건물 안에서 재건축을 위해 마감재를 뜯어내거나 펜스를 설치하는 작업자, 휑하게 남아버린 낡은 아파트 전경, 나무를 거침없이 밀고 베어버리는 포크레인 등을 번갈아 가며 비춘다. 아마 한때는 공사소리가 아니라 사람들 때문에 시끌벅적했을 곳들일 테다.
 

<봉명주공> 스틸컷. ⓒ EDIF

 
이들은 아직 베지 않은 꽃나무, 예전에 심어놓은 작물들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기록한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사진을 찍고 기록하는 것보다 베어지는 게 더 빠르다. 작업자 말대로, '옮기지 못하면 다 베어버리는' 거다.

영화는 막을 내리면서 영화에 나왔던 주민들의 근황을 보여준다. 그들은 봉명주공 근처로 이사를 했다. 당시에 봉명주공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찍은 지은숙, 지명환씨는 사진전을 열었다고 한다. 

포털에 '봉명주공'을 검색하면 영화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재개발되었으니 분양권과 입주권을 얻을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는 영상이나 실거래가, 주변 시세 등의 정보도 접할 수 있다. 평범한(?) 광경이면서도 흥미롭기도 하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떠나갔지만, 또 누군가가 그곳으로 살기 위해 들어오겠지.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었던 봉명주공은 이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거래를 위한 상품이 되어 가는 중인 듯하다. <봉명주공>은 어쩌면 '집'에 대한 한국 사회의 모습을 축약해놓은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봉명주공 다큐멘터리 EDIF 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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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읽고 보고 쓰고 있습니다. 활동가이면서 활동을 지원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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