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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방청석 모두가 봤다... '디지털성범죄 영상' 공개 재생한 법원

통상 '비공개 증거조사'인데... 판사가 틀고, 검사는 제지 안 해 '2차 피해'

등록 2021.09.03 06:45수정 2021.09.0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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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 ⓒ 소중한

 
[기사 수정 : 3일 오전 10시 40분] 

불법촬영한 디지털성범죄 영상이 법정에서 공개 재생되는 일이 발생했다. 불법촬영 사건 재판의 경우 피해자 보호 차원에서 '비공개 증거조사'가 일반적이나, 해당 재판의 판사는 이 사건과 무관한 이들이 방청석에 있었음에도 피해 영상(증거)을 공개 재생했다. 피해자와 피해자 변호사가 법정에 자리하지 않은 상황에서, 검사 역시도 이를 전혀 제지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남신향 판사)은 지난 8월 25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카메라 등 이용 촬영·반포 등) 혐의를 받는 외국인 A씨의 재판을 진행했다. A씨는 지하철 반대편에 마주보고 앉은 여성의 신체를 휴대폰으로 촬영하다 역무원에 발각돼 지난 2월 재판에 넘겨졌다.

이날 재판에선 A씨가 촬영한 영상을 재생하는 증거조사가 진행됐다. 형사소송법과 형사소송규칙에 따르면, "녹음·녹화매체 등에 대한 증거조사는 (법정에서) 이를 재생해 청취 또는 시청"한다고 돼 있다.

다만 불법촬영 등 성폭력 사건 재판의 경우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통상 증거조사를 비공개로 진행한다. 형사재판의 주체인 판사, 검사, 피고인(변호인 포함)과 법원·교정본부 관계자를 제외하고 모두를 법정에서 내보낸 채 증거조사를 진행하는 방식이다(피해자나 피해자 변호사가 재판에 출석했을 경우 이들도 증거조사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날 판사는 "사본 동영상을 재생하겠다"며 재판을 비공개로 전환하지 않고 증거조사를 진행했다. 재생에 앞서 "출력물만 봐선 조금... 그냥 전신 사진 하나가 캡쳐된 거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법정 방청석엔 다음 재판을 기다리던 피고인 등 4~5명이 자리하고 있었고, 해당 영상은 이들에게 모두 노출됐다. 피해자나 피해자 변호사가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유일하게 피해자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공판검사(서울중앙지검 김병철 검사)도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제지 안 한 검사도 문제... 피해자는 상상치도 못한 2차 피해"

성폭력 피해자 측에서 많은 재판을 경험한 변호사들은 "피해자 입장에선 상상치도 못한 2차 피해"라고 지적하며 성폭력, 특히 불법촬영 재판에서의 증거조사를 위한 법원의 규정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성범죄 피해 전담 국선변호사'로 활동 중인 신진희 변호사는 "피해자의 경우 법정에 나오는 순간 '내가 바로 영상 속 그 사람'이라는 걸 확인해주는 것이니 얼마나 부담스럽겠나. 실제로 피해자 대부분이 재판에 출석하지 못한다"라며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은 법원이 알아서 자신을 적절히 보호해줄 것으로 믿는다. 더구나 증거조사라는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그렇게 영상이 재생된다는 걸 알면 피해자가 얼마나 큰 충격을 받겠나"라고 지적했다.

이은의 변호사는 "의사에 반해 성적수치심을 일으킬 수 있는 영상을 촬영하지 못하게 하고 이를 유포할 경우 엄히 처벌하는 것이 법에 나와 있는 불법촬영 사건의 본질"이라며 "불법촬영은 피해자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하는 걸 넘어 인격권까지 유린당하는 심각한 범죄다. 피해 영상을 법정에서 공개적으로 재생한다는 것은 법의 취지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검사 출신의 오선희 변호사는 "판사도 문제지만, 검사가 판사를 제지하고 재판을 비공개로 전환해 달라고 요청해야 했다"라며 "판사와 검사의 행위가 위법은 아니지만 무신경하고 무능력했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신 변호사도 "피해자와 피해자 변호사가 없었던 상황에서 그 현장에서 이를 제지할 수 있는 사람은 검사뿐이었다. 판사의 민감도도 떨어졌고, 검사도 가만히 있었고, 피해자 변호사도 부재했던 총체적 난국인 상황"이라며 "증거조사 방법의 경우 형사소송법과 형사소송규칙에 적혀 있는 내용이 전부다. 법원이 불법촬영 재판의 증거조사 진행과 관련해 규정 마련 등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통상 비공개로 진행되는 불법촬영 재판의 증거조사에도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오 변호사는 "증거조사를 비공개로 진행하더라도 법정의 큰 스크린에 피해 영상을 띄우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사건의 재판 때도 여러 차례 문제제기를 한 바 있다"라며 "재판부, 검사 측, 피고인 측에만 모니터를 놓고 그곳에서만 영상을 재생하는 방식 등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법정엔 판사, 검사, 피고인, 피고인 측 변호사, 법원 직원, 법정 경위, 교도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피해 영상을 봐야 할 절대적 필요성이 없는 이들도 포함돼 있는 것"이라며 "사실 증거조사의 경우 판사, 검사, 피고인 측만 참여하면 되는 것 아닌가. 법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피해자의 2차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묘안을 고민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피해자가 법정에 있다는 관점에서 생각해야"

헌법은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는 공개재판주의를 명시하면서도, "다만, 심리는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안녕질서를 방해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할 염려가 있을 때에는 법원의 결정으로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예외를 두고 있다. 특히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대한 특례법에는 "성폭력범죄에 대한 심리는 그 피해자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하여 결정으로써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다만 해당 재판부 입장에선 ▲ 증거 영상에 담긴 피해의 정도 ▲ 피해자 신변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지 법정의 상황 ▲ 검찰과 피해자 측의 비공개 심리 신청 여부 등을 고려해 이 사례를 예외의 상황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수 있다. 더해 우리나라 사법 시스템 특성상 연달아 재판이 이어지기 때문에 재판의 신속성에 중점을 뒀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김미리내 광주여성민우회 활동가는 "법정은 기본적으로 누구나 오갈 수 있는 곳"이라며 "영상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든, 예를 들어 아무리 피해자가 마스크를 써 알아보기 힘들다 하더라도 '만약 피해자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의 관점에서 생각해봐야 한다"라며 라고 강조했다. 

검찰 징역 2년 구형... 가해자 측 "코로나로 수입 급갑해 충동적, 잘못 뉘우쳐"

한편 이날 검사는 A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A씨의 변호인은 "(피고인은) 잘못을 뉘우치고 있으며 재범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라며 "(가족을 부양하는 상황에서) 코로나로 인해 수입이 급감해 막막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여 충동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점과 식당에서 열심히 근무하며 충실히 생활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선처해 달라"고 밝혔다. 이어 A씨는 모국어로 "벌금을 내는 건 각오하고 있다"며 "앞으로 열심히 생활하겠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9월 8일 A씨에 대한 선고공판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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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잡습니다. 

최초 기사에 공판검사 이름을 잘못 기재해 이를 수정합니다. 법원 홈페이지 '나의 사건검색' 서비스를 통해 확인한 재판 출석 명단과 실제 출석한 검사가 달라 착오가 있었습니다. 해당 검사와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불법촬영 #2차 피해 #법원 #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중앙지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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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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