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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명이 118명 관리하지만... 소년범죄, 보호관찰로 예방 가능

[주장] OECD 주요 국가 1명이 27.3명 담당... 인력 증원 통해 보호관찰 내실화해야

등록 2021.09.06 12:29수정 2021.09.06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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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관찰 청소년을 위한 검정고시 및 진로 설명회 ⓒ 최원훈


소년 강력범죄가 언론에 보도되면, 소년법을 폐지하거나 개정해서 엄벌하라는 국민 청원이 빗발칩니다. 그러나 소년범죄를 예방하고 재범을 막기 위해 실제로 소년법을 개정하거나 범정부 차원의 장기적·체계적 계획을 제대로 수립하고 실행한 적은 없습니다. 소년범죄는 엄벌 여론이 획기적인 정책으로 이어질만큼 지속적으로 국민의 관심을 받는 사회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기존에 시행하고 있는 정책과 제도를 더욱 효율적으로 추진해서 문제를 해결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바로 소년법에 따른 보호처분입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는 위기청소년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해 범죄를 저지르면, 국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합니다. 보호처분 중 가장 신속하고 선제적인 개입이 보호관찰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들을 모두 교도소로 보낼 수는 없습니다. 보호관찰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수용시설에 가두지 않고 일상생활을 하게 하면서 보호관찰관의 지도·감독을 받아 재범하지 않고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제도입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범죄 예방을 통해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범죄 억제와 사회방위를 위해 교도소에 수용해야 할 흉악범이 아니라, 체계적인 사회 내 처우를 통해 사회복귀를 촉진할 수 있는 평범한 이웃들입니다. 보호관찰 대상자는 강력사범도 있지만, 경범죄로 법원에서 집행유예와 보호관찰을 선고받은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도로교통법을 위반한 평범한 회사원, 부부간의 사소한 다툼으로 발생한 가정폭력, 아르바이트생의 임금을 체불한 편의점 사장님, 길에서 습득한 지갑을 가져간 중학생 등 수용시설에 갈 정도가 아닌 비교적 가벼운 위법 사실인 경우 보호관찰을 통해 갱생의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소년 보호관찰의 목적과 역할 

특히 비행 초기·중기 단계 위기청소년의 경우, 판사가 초범인 성인들에게 실형을 선고하지 않고 집행유예의 기회를 주듯, 사회 내 처우인 보호관찰의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단, 성인이 집행유예 기간 중 재범을 하면 가중 처벌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호관찰 기간 중 준수사항을 위반하거나 재범을 한 소년에게는 보호처분 변경신청 등의 제재 조치를 합니다. 보호처분 중 가장 무거운 처분인 소년원 처분까지 할 수 있습니다.


보호관찰관은 소년의 보호자, 담임교사와 수시로 연락하면서 소년의 일상생활과 재범 요인을 사전에 파악합니다. 대상자가 학생인 경우 교우관계와 출결상황 등 학교생활을 밀착 감독하고, 학교 밖 청소년인 경우 사회복지자원을 활용하여 검정고시 강의와 교재를 제공하고 자격증 취득 및 구직활동을 지원합니다.

또한 지속적인 출석 면담으로 대상 소년의 고민과 진로에 대해 상담하는 멘토 역할을 하고, 야간외출제한 명령과 출장을 통해 소년이 야간에 외출하거나 외박하는 것을 엄격하게 단속하여 비행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있습니다.

청소년은 정신적·신체적으로 미성숙하고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성장기의 부정적 경험이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해 12월 소년 보호관찰 대상자 9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약 43.4%가 아동기에 학대와 방임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호관찰소는 이러한 과거의 상처로 분노조절장애, ADHD, 우울증, 품행장애 등의 진단을 받아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소년들에게 치료비와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보호관찰관 제도 개선 이뤄지면 재범률 낮출 수 있어 

이처럼 보호관찰관은 위기청소년의 재범을 막고 안정적인 사회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년 보호관찰을 더욱 활성화·실질화하기 위해서는 보호관찰관 1인당 대상자 수가 적정해야 합니다.

OECD 주요 국가의 보호관찰관 1인당 대상자 수는 27.3명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보다 훨씬 많은 평균 118명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보호관찰관이 OECD 국가 평균 수준의 대상자를 담당할 수 있는 인력 증원과 제도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소년 강력사범 등 대상자의 재범률을 낮출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비행초기 단계 위기청소년의 보호와 개선에 필요한 치료 및 재활프로그램을 강화함으로써 더욱 적극적이고 실효성 있는 소년범죄 예방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적 지원과 국민의 공감이 있어야 합니다.

이 기사를 작성하고 있던 늦은 저녁, 기자가 담당하고 있는 보호관찰 대상 소년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소년은 어제부터 집을 나와서 청소년 단기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소년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는데, 아버지의 음주와 가정폭력으로 집 밖으로 떠도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소년에 대해 폭력과 방임으로 일관하여 보호자 역할을 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원래 축구를 했던 소년은 부상으로 인해 운동을 그만두고 어머니가 사망하면서 급격하게 방황을 시작했습니다. 학교를 그만둔 소년이 가출을 하고 귀가할 때마다 몸에 문신들이 늘어났고, 소년원에 갔다 온 선배들과 어울리면서 차량을 무면허로 운전했습니다. 결국 소년부 법정에 선 소년에게 판사는 장기 보호관찰(2년) 처분을 결정했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인 소년은 배달대행업체에서 배달을 하면서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편견과 달리 보호관찰 소년들은 배달이나 택배 물류센터, 건설현장, 식당, 편의점, 콜센터, 카페 등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학교를 다니거나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소년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소년은 그저 또래보다 뒤처지고 남한테 피해나 주는 비행청소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년의 가슴속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축구를 하던 시절, 힘든 합숙훈련도 즐겁게 하면서 꿈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추억이 있습니다.

그 추억들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될 것이라는 걸 깨닫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혼자서 갈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의 진심 어린 믿음과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보호관찰소와 보호관찰관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소년법 #보호관찰 #촉법소년 #소년원 #소년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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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보호직 공무원입니다. 20년 동안 소년원, 소년분류심사원, 보호관찰소, 청소년꿈키움센터에서 위기청소년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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