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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할까 두렵단 이들... 에이즈 혐오의 추한 민낯

[차별금지법과 나] 질병과 HIV 감염 낙인, 그리고 차별금지법

등록 2021.09.19 19:50수정 2021.09.1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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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차별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차별금지법은 우리 모두를 위한 법입니다. 기획 '차별금지법과 나'에서는 시민기자들이 주변에서 보고 직접 경험한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며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촉구합니다. 많은 시민기자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갓 스무 살이 되던 해 HIV감염인을 처음 만났다. 죽음을 앞둔 상황이었기 때문에 병원 침대 위에 말없이 누워 있는 그와 인사를 나눌 수도 없었다. 황달 증세를 겪던 그는 노란 물감을 온몸에 칠해놓은 것 같았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그 모습이 나에겐 너무 충격적이었다. '에이즈로 죽는 사람이 이런 모습이구나' 속마음이 들킬까 싶어 조심스러웠다.

그는 가까운 친구들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임종을 조용히 기다리는 슬픈 눈들만 병실에 가득했다. 모두 갑작스러운 입원 소식을 듣고 병원에 찾아온 듯했다. 그가 아픈 이유를 아는 사람도 있었지만, 누군가는 나처럼 그의 병명을 처음 듣게 된 사람도 있었다. 당시 나이가 어렸던 나는 게이 형들의 표정과 행동을 조심스럽게 살피고, 쭈뼛거리며 병실 밖을 맴돌았던 것 같다.

오늘은 넘길 것 같다는 안도와 함께 병원을 나섰고, 병문안 왔던 몇몇 사람은 집으로 발길을 돌리지 못한 채 병원 앞 포장마차에서 씁쓸하게 술 한 잔 나눴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곧 그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의 부고 소식을 접했고, 아픈 몸의 감염인들을 자주 만나왔다. 삶의 끝자락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살기 위해 자신의 질병을 숨겼고, 죽어서도 자신의 질병이 노출될까 걱정했다. 천형에 가까운 질병이 낙인찍히는 순간 삶을 포기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살아야지 않겠냐'며 건넨 서툰 위로는 공허하기만 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 슬프기도 했지만, 그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그나마 행복한 삶의 마무리였다. 대부분 쓸쓸하게 혼자 떠났다. 그 누구의 돌봄도 받지 못한 채. 그래도 2000년대 전후 시작된 감염인 자조모임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면서도 모임을 이어가고, 서로에게 위로와 용기가 되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로에게 돌봄이 되어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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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혐오'에 저항하는 인권활동가 2017 세계 에이즈의 날 기념행사로 2017년 12월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디셈버퍼스트(December First)' 행사에서 HIV/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 활동가들이 에이즈 혐오를 확산시키는 데 대해 항의하며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 남소연


얼마 전 한국 HIV/AIDS감염인연합회 KNP+가 주최한 토요수다회 행사에서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과 감염인들이 만났다. 감염인 중심의 커뮤니티 케어 모델을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다양한 고민과 생각을 듣기 위해 기획된 자리였다. 나이 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감염인 특성에 맞는 지원이 무엇인지 확인해보고자 했다.

나이듦, 죽음과 같이 다소 무거운 주제에 짓눌리지 않고 유쾌하게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예상대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을 생각하기보다 '지금 현재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더 고민했으면 좋겠다는 최현숙의 제안에 감염인들은 이 말에 공감하면서도 혼자 있을 때 아플까 봐 걱정되고, 고독사하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두렵다고 했다.


의학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감염인의 기대수명이 비감염인과 크게 다르지 않아졌다. HIV에 확진되었다고 더 빨리 죽지 않는다. 생명줄이 길어졌다. 완치제가 나오지 않았을 뿐, 하루 한 알 치료제를 복용하면 큰 문제 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더 간편하게 치료하는 방법들이 연구되고 있어 앞으로 치료는 더 쉬워질 것이다.

에이즈 인권운동이 시작되었던 2000년대 중반만 해도 감염인들은 치료과정의 힘듦을 이야기했다. 약 복용 경험을 나누며, 부작용은 없는지 확인하곤 했다. 지금은 치료과정이 복잡하지 않고, 고통을 동반하지 않다 보니 감염인들도 이제 죽음을 먼저 떠올리지 않는다. 만성질환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다만 질병 확진과 동시에 관계가 단절된 삶, 자신이 감염인이라는 사실이 두려워 스스로 고립된 삶,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외로움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도...'

토요수다회 행사를 마치고 참여자 중에 한 분이 인사를 건넸다.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손문수 대표가 차 한잔이나 하자고 근처에 있던 사무실에 초대했다. 감염인 자조모임에 처음 방문한 것이다. 40대 초반의 감염인이었다. 확진 후 KNP+ 추천으로 심리상담을 받은 분이었다.

그동안 왜 찾아오지 못했냐고 물어보니 아는 사람을 만날까 봐도 걱정되고, HIV에 감염된 자신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두려웠다'고 했다. 그가 살아온 삶을 충분히 듣지 못했지만, 한 발 뗀 용기에 '잘 선택했다. 앞으로 자주 만나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국내에서 HIV가 확인된 지 3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감염인들은 자신의 질병이 드러날까봐 두려워한다. 질병에 덧씌워진 낙인과 차별의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직업, 관계, 사랑 등 많은 것을 잃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자신을 옥죄는 죄책감도 한 몫 할 것이다. 의학 기술이 기대수명을 높여주었는지 몰라도, 낙인과 차별을 해결해주진 못했다. 오히려 삶의 시간이 길어진 만큼 차별을 견뎌야 할 고통의 시간이 길어진 것이다.

감염인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토요수다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 병이 있다 보니까,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렵고 그래서 외로운 것 같아."

2000년대 중반 에이즈 인권운동을 함께 시작했던 윤가브리엘도 "우리 같은 사람들이 무슨 인권이라고..."하면서 인권활동가로서 사는 삶을 주저했다. 자존감이 얼마나 낮은 상태인지 고스란히 보여주는 말 아닌가. 존엄한 인간으로서, 권리의 주체로서 자신을 보기보다 차별당해도 되는 '우리'로 스스로 낮춰 부르고 있는 것이다.

혐오의 민낯

에이즈 혐오는 존재를 부정하고, 인권을 훼손하고,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기 위해 주로 쓰여진다. 국가가 에이즈 예방을 위해 치료제를 지원하는 것을 두고 세금낭비로 표현하고, 전염의 위험을 극대화시켜 두려움과 공포심을 조장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고 쌓이게 되면서 감염인 당사자들은 심각한 '내재적 낙인'을 경험하고 있다. 죄책감을 느끼고, 자기 탓을 하게 되고, 심지어 자살과 자해 위험이 높아지기도 한다.

당사자의 경험을 곁에서 봐온 나도 에이즈 혐오의 민낯이 얼마나 추한지, 그리고 그것이 질병 예방과 감염인 인권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지 경험해 왔다. 2015년 당시 KBS 이사였던 조우석씨는 나를 공개적으로 호명하며 '더러운 좌파'라고 했는데, 이 발언의 근거가 되었던 건 나에게 감염인 파트너가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2017년 국회에서 개최된 '디셈버퍼스트(December First)' 행사 당시엔 감염인의 발언권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인권활동가들이 혐오의 무리 한가운데서 모욕을 경험한 적도 있었다. 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될 때마다 그 옆에서 찬송을 부르고 북을 치며 '에이즈 확산'의 책임을 성소수자들에게 돌리는 혐오폭력은 이제 익숙하기까지 하다.

차별금지법이 가져올 변화

장혜영 의원을 시작으로 이상민, 박주민, 권인숙 의원까지 총 네 개의 차별금지 평등에 관한 법안이 발의되었다. 법안 발의는 분명 반가운 소식이지만 정치권에서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이 드는 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정치권이 다양한 이유를 들어 차별금지·평등법 제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동안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이 감당해 온 차별의 역사는 쌓여만 간다.

입법 발의된 차별금지·평등법을 살펴보면 차별금지 사유에 '병력病歷'이 포함되어 있다. 이 법이 제정되면 HIV감염인들도 부당한 차별과 인권침해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존엄한 인간으로서, 차별없이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우리'들을 앞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감염인들이 경험하는 외로움, 죄책감과 같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해결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차별을 개인의 몫으로 남겨두지 않는다면, 감염인들의 삶에 짙게 드리워진 낙인의 고통은 사라질 수 있다. 자기 탓을 하지 않고, 자존감을 지키며 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터득할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움츠려 있는 일상을 흔들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정민석 시민기자는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활동가입니다.
#HIVAIDS #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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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재단 사람,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무지개의 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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