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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만 3800명, 보지도 않고 사간다는 인천 구둣가게

43년째 구두 만들어온 '베로나 수제화' 도현동 사장... 고객 한 사람에 집중하는 장인정신

등록 2021.09.11 11:04수정 2021.09.14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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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째 수제구두를 만들고 있는 베로나수제화점의 도현동 사장 ⓒ 최시연

 
장인은 자신의 분야에서 열정과 혼을 담은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오직 일 자체를 위해 몰입하는 인간의 모습. 이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장인의 이미지다.

인천 주안역(1호선) 3번 출구로 나와 도화역 방향으로 조금 가다 보면 도현동 사장이 운영하는 '베로나 수제화'가 있다.


베로나 수제화는 요즘 보기 드문 오래된 수제화 전문점이다. 매장 안에는 남자 구두를 비롯해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여자 구두가 빼곡하다. 도 사장은 43년째 수제구두만을 고집하며 외길 인생을 살아온 구두 장인이다.

IMF로 곤두박질, 인천에서 다시 일어서다

1978년 당시 20대 초였던 그는 대학 진학을 할 수 없게 되면서 가업으로 구두를 만들고 있던 아버지와 형을 따라 자연스럽게 구두 만드는 일을 하게 됐다. 

"구두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전에 직접 디자인해서 만들기도 했었거든요. 주위에서 칭찬을 많이 해 줬어요. 제가 만든 신발이 제법 인기가 많아서 잘 팔리더라구요. 그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저 스스로 제법 솜씨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막상 구두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서 형에게 정말 많이 혼났어요. 그렇게 만들기 시작한 구두를 43년째 만들고 있네요."

도 사장은 당시 수제구두의 성지였던 명동의 한 구두공장에서 10년 가까이 수습생으로 기술을 연마한다. 이후 우연한 기회에 한 제의를 받아 1986년 2월 백화점으로 납품을 하기 시작했다. 동부 이촌동 신동아 쇼핑센터에 첫 매장을 열었고, 이어서 압구정동 한양 백화점(현 갤러리아 백화점)에도 입점했지만, 생각보다 잘되지 않았다. 


문제점을 신발의 퀄리티에서 찾은 도 사장은 제품 개발에 더욱 노력을 기울였다. 그 후 잠원동 뉴코아 백화점에 입점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하루에 이백 켤레 이상이 팔렸다. 

그즈음 도 사장은 지인의 부탁으로 인천 희망백화점과도 인연을 맺게 된다. 인천에서도 베로나 수제화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전국 23개의 매장에서 도 사장이 만든 베로나 수제화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눈앞에 성공의 고지가 손에 잡힐 듯하던 그때 1997년 IMF 위기를 맞게 된다.

"완전 바닥을 쳤어요. 살고 있던 아파트까지 압류를 당했거든요. 정말 힘들었어요."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던 도사장은 부도난 어음 일부를 보상받아 지금 이 자리(미추홀구 석정로 368)에서 다시 구두를 만들기 시작했다. 최선을 다해 구두를 만들었고 정성을 다해 고객을 맞이했다.

그가 절대 잊지 않는 2500여명의 이름
 

도현동 사장이 수선을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해 고객에게 설명하고 있다. ⓒ 최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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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나 수제화의 도현동 사장이 작은 다리미로 신발의 겉가죽의 미세한 주름을 펴는 작업(오른쪽)과 구두를 완성화기 전 최종적으로 한번 더 망치를 두드리며 점검을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망치질을 천 번은 해야 구두가 완성된다. ⓒ 최시연

 
그렇게 다시 첫걸음을 뗀 지 23년 만에 그는 단골만 3800명이 넘는 베로나 수제화로 다시 우뚝 서게 된다. 

"제가 말하는 단골은 신발을 최소한 두 번 이상은 맞추신 분들이에요. 이분들 중 2500여 명은 지금도 이름을 외우고 있어요. '고객 한 분 한 분은 또 다른 나'라는 생각을 매 순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저희 고객 중에는 제가 그분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신발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또 그냥 지나가면서 들르기도 하시고요."

이처럼 베로나 수제화는 고객들이 사랑방처럼 편안하게 들렀다 갈 수 있는 곳이다.

"새로운 신발을 디자인해서 만들 때 가끔은 어떤 대상을 떠올리기도 하는데, 그분이 그 신발을 사가는 경우가 많아요. 정말 신기하죠?" 이 말을 하던 당일도 그날 출시된 새 제품을 보지 않고 구매하는 고객이 있었다. 그 신발은 그 고객을 생각하면서 만들었다고 했다. 그것은 고객과의 믿음으로 형성된 특별한 거래 방법일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걱정할 건 없어요. 제가 바로 바꿔드리거든요"라며 호탕하게 웃는 도현동 사장. 고객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며 신뢰가 형성된 그만의 판매 방법이 인상적이었다.

베로나 수제화에서는 삼삼오오 짝을 이뤄 들른 고객들이 편안하게 이 신발, 저 신발을 마음껏 신어보는 일이 자연스럽다. 그렇게 신어보던 고객들은 신고 온 신발은 벗어 수선해 달라며 맡기고 새 신발을 신고 나간다. 

정돈되지 않은 듯 보이는 베로나 수제화의 풍경엔 이처럼 편안하게 들른 고객에 대한 도 사장의 배려가 숨어 있었다.

"깔끔하게 정리해 놓으면 사람들이 편안하게 신어보지 못해요. '이 신발 신어봐도 돼요?'라고 자꾸 물어본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냥 이렇게 둬요."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는 한 고객은 다른 곳에서 구매한 샌들을 도 사장 앞에 내놓으면서 "이 장식이 너무 예뻐서 샀는데 발이 아파요. 이 장식을 넣어서 편안하게 신을 수 있도록 다시 만들어 주세요"라는 주문을 했다. 이에 도 사장은 "알았어요.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요"라고 답을 한다. 이들 사이에는 어떤 구체적인 설명도 필요 없어 보인다. 

베로나의 번영이 다시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도현동 사장이 디자인해서 만들어 낸 여자 신발(여자 신발은 백화점에 납품하기 시작한 1986년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 최시연

 
그는 처음 10여 년 동안은 남자 구두만을 만들어 왔지만, 백화점에 입점하면서 여자 구두를 만들기 시작했다. 백화점엔 남자 손님보다 여자 손님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여자 구두는, 만드는 방법은 같지만 정교함에서의 차이가 컸기 때문에 매 순간 감각을 잃지 않도록 다방면으로 다양한 노력을 해야 했다. 많이 보고, 때로는 젊은 감각을 가진 미대생들을 채용해 도움을 받으면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매 순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시작은 남자 구두였지만 지금은 여자 구두 만들기에 더 매진하고 있다는 도현동 사장.
    
"보석을 매개로 한 화려하고 화사한 여자 신발은 우리 베로나의 주력상품이에요. 보석을 다루는 데는 아마도 저를 따라 올 사람이 없을걸요." 그는 미처 생각지 못한 아주 작은 부분에 이르기까지 섬세하게 신경을 써서 신발을 만들고 있었다.
 

도현동 사장이 자신 있게 만드는 화사한 여자 구두 ⓒ 최시연

 
도 사장과 43년을 함께 한 '베로나'라는 이름은, 그가 구두를 만들기 시작하던 1970년대 중반, 전 세계 수제구두의 성지나 다름이 없었던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도시 이름을 딴 것이다. 지금은 수제구두의 명맥을 이어가기 바쁘지만 197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베로나 거리의 번성함이 다시 찾아오길 바라는 기대감이 이름 안에 담겨있는 듯하다.

도 사장은 이 매장에서 제일 비싼 신발이라면서 남자 구두 한 켤레를 보여준다.

"타조 가죽으로 만들었어요. 신발의 안과 겉면을 비롯해서 바닥까지 제일 좋은 가죽을 썼죠. 우리 매장에서 현재 백만 원에 판매되고 있는데 웬만한 명품보다 더 잘 만든 신발이에요. 단지 이곳에서 이 이상의 가격을 받지 못할 뿐이죠."

그는 판매와 상관없이 이런 신발을 꾸준하게 만들고 있다. 자신의 솜씨가 녹슬지 않도록 연마하기 위함과 자신의 실력을 검증하기 위해서다. 실력을 지키는 것이 곧 베로나 수제화의 품위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도 사장이 생각하는 좋은 신발의 기준이 있다. 첫째 맵시가 있고, 둘째 편안하게 신을 수 있어야 하며, 셋째 고객에게 잘 어울려야 한다. 그래서 항상 좋은 재료를 써서 제품을 만들고, 가성비는 그다음에 고민한다. 가격 책정을 먼저 하고 나면 좋은 신발을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도 사장은 자신에게 늘 질문한다 "네가 만든 신발을 고객에게 자신 있게 내어놓을 수 있겠니?"라고. 그에 합당한 신발을 만들어 내기 위해 매 순간 노력한다.

연습벌레로 잘 알려진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는 100세 되던 해 "그렇게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잘하시는데 지금도 연습을 해야 하시냐"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내가 실력이 조금 더 느는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사장도 지금 이 순간도 벼랑 끝에 서 있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한 노력이 그에게는 첼리스트의 거장 카잘스의 연습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신발의 안과 겉면 바닥까지 최고의 가죽으로 만든 타조 가죽 신발. 베로나 수제화에서 가장 비싼 신발이다. ⓒ 최시연

 
그를 살린 고객들... "평생 A/S는 당연한 보답"

베로나를 찾는 대부분의 고객은 신고 온 신발은 벗어놓고 새 신발을 신고 간다. 철저히 고객의 입장에 서서 그들에게 집중하려는 도 사장의 영업 철학이 여기에 담겨있다. 

"제가 신발을 만드는 이유는 '그 누구'를 위해서죠. 누군가가 제가 만든 신발을 좋아해 주고 편안하다고 말해주고 예쁘게 바라보면서 자신들의 신발로 가지고 가는데, 뭘 더 바라겠어요. 정말 고맙죠. 그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에요. 평생 그분들의 신발을 살펴 드리는 것은요.

IMF 경제위기 속에서 수제 신발을 만들던 사람들이 바닥을 치고 있을 때, 설상가상으로 대형 구두 브랜드가 쏟아져 나왔어요. 그런 상황 속에서 실력 있는 수제공들이 많은 고난을 겪어야만 했었죠. 그때 저와 같은 사람들이 대부분 도산을 하면서 대형 브랜드들의 하청업체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 과정에서 도 사장도 언더그라운드로 밀려나게 됐다. 
 

1980년 도현동 사장의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망치 ⓒ 최시연

 
어려움 극복하기 위해 틈새시장을 공략한 그는 좋은 제품을 소량으로 생산하고 정교하고 예쁘게 잘 만드는 방법에 집중했다. 그렇게 만들어 낸 도 사장의 신발을 인정해주고 찾아 주는 고객들이 하나둘 생겨났고, 그렇게 찾아 주는 고객들이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그런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이 오늘의 베로나 수제화가 건재하도록 도와준 주인공들이다. 

도 사장에게 베로나 수제화 판매장을 찾아 주는 모든 고객은 은인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 그의 마음이 알게 모르게 고객들과도 공감을 이루는 듯 보였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풍경이 이곳 베로나 수제화에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훌륭한 장인은 일을 해결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해법으로 새 지평을 연다'라고 한 리처드 세넷의 말처럼, 도 사장은 업으로 시작한 구두 만드는 일을 통해 천국과 지옥을 맛봤다. 그리고 결국 한 사람의 고객이 자신을 살렸다는 것을 처절하게 터득하게 됐다.

그는 살기 위해 신발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우여곡절의 인생 경험을 통해서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을 정성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열린 것이다. 자신을 살리고 성장시켜준 사람들을 향한 새 지평의 시선이. 

결국 도현동 사장은 신발이라는 매개를 통해 사람들과의 '소통장인'이 됐다. 밝은 웃음과 경쾌한 목소리로 고객을 맞이하는 그의 모습이 그 모든 것들을 증명해 주고 있다. '베로나 수제화에 가면 기분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경험이 사람들에게 그쪽으로 발길을 옮기게 만들고 있다.

글·사진 최시연 i-View 객원기자
 

베로나 수제화 전경 ⓒ 최시연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천시 인터넷신문 'i-View'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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