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절단의 첫 뉴욕 방문, 센세이션을 일으키다

[조선의 의인, 조지 포크] 미국에 고종의 국서 한글본이 등장하다

등록 2021.09.16 12:03수정 2021.09.16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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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앞서 말한 것처럼 조선 사절단이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첫발을 디뎠을 당시인 1883년 9월 중순엔 미국 대통령이 국무장관과 함께 뉴욕에 체류 중이었습니다. 뉴욕의 유명한 피프스 애비뉴 호텔(Fifth Avenue Hotel)에 머물고 있었죠. 조선 사절단은 미국 대통령을 만나기 위하여 뉴욕을 가야 했습니다. 


우리는 9월 18일 10시 40분에 워싱턴발 뉴욕행 열차의 특등실에 올랐습니다. 장시간이 걸리는 여정이었지요. 열차에서 나는 조선인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지요. 저물녘 뉴욕에 도착할 때까지 기차 속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아마 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았을 거예요. 미국 언론에 보도되지도 않았고 조선 사절단이 기록을 남기지도 않았으니까요.

당시 조선인 중에 아무도 미국 방문기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 나는 지금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사실 그들이 늘 무언가를 기록하는 모습을 나는 자주 보았습니다. 그들은 분명 기록을 했습니다. 특히 서광범, 변수 등이 유별나게 무언가를 꼼꼼히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아마 이듬해에 일어난 갑신정변의 실패로 홍영식, 서광범, 변수 등이 역적으로 몰렸기 때문에 자의 혹은 타의에 기록물이 모조리 사라져 버리지 않았을지... 너무나 비극적인 일이지만 불과 1년여 후이면 홍영식은 갑신정변의 현장에서 살해될 것이고 서광범과 변수는 가까스로 일본으로 망명을 가게 될 것입니다. 민명익은 귀국 후 오히려 청나라를 섬기는 수구파로 변신하여 개화파와 적대적인 입장에 설 것이고요.

아무튼 뉴욕행 열차 속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어디에도 기록이 없기 때문에 나의 기억을 되살려 내는 수밖에 없겠군요. 조선인들은 어딜 가나 그 특이한 의상과 모자로 인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느데 기차라고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승객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의식하면서 우리는 여러 주제와 현안에 대하여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요. 나는 일본어에 능통하고 중국어도 별 불편이 없었으며 한국어도 배우는 중이어서 사절단과 개인적인 의사 소통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대통령 예방 시에 어떻게 의사소통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한미 양측이 모두 난감해 하고 있었지요. 난제 중의 난제였습니다.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서광범, 로웰, 그리고 나 조지 포크가 머리를 맞댔지요. 여러 경우의 수를 놓고 검토하였습니다. 민영익의 말을 사절단 내에서 누군가가 먼저 일본어로 옮긴 다음 그 일본어를 로웰의 일본인 비서가 영어로 로웰에게 전하고 그것을 받아 로웰이 미국 대통령에게 전하는 방식을 우리는 우선 검토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격식에는 맞을지 모르지만 너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될 것입니다. 다른 대안으로서, 사절단 중에 영어를 하는 일본인이나 중국인이 한 명씩 있으므로 그들에게 통역을 시키면 보다 간편할 것이지만 그건 격식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조선사절단이 결코 원치 않았습니다.

우리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부득이 이렇게 정했습니다. 즉, 민영익의 말을 서광범이 일어로 통역하고 그것을 내가 영어로 통역을 하며, 반대로 미국 대통령의 말은 내가 일어로 통역하고 그걸 서광범이 민영익에게 조선어로 통역한다는 거였지요.

헌데, 열차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에 나는 한 가지 놀라운 일을 발견했습니다. 조선 사절단이 한글본 국서를 지참하고 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여기에서 '국서'라 함은 고종 임금의 친서를 말합니다. 친서는 두 건입니다. 그 하나는 고종 임금의 미국 대통령 앞으로보내는 서한이고 다른 하나는 '신임장'(CREDENTIAL)이라고 일컫는 외교 문서입니다. 신임장이라 함은 널리 알려진대로, 국가 원수가 상대방 국가 원수에게 자신이 파견한 사절을 소개하면서 잘 협조해달라고 요청하는 외교문서입니다.

조선 사절단은 한문으로 되어 있는 국서 원본과 함께 한글 번역본도 대통령에게 제정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조선의 모든 공식 문서는 한문으로 쓰여졌고 한글로 작성된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죠. 조선은 그 즈음 미국을 필두로 서양 국가들과 수교조약을 체결하였지만 조약문을 원본이든 번역본이든 한글로 작성한 사례가 없었습니다.

그즈음 조선에선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조선어를 잘 아는 영국 외교관 애스턴(Aston)이 한영수교조약문 영어본의 한국어 번역본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조선의 외교부서의 장인 김만식에게 그런 취지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러자 김만식 왈, "나는 조선글을 배운 바 없고 읽을 줄도 모르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조선의 외교업무를 실제로 관장하고 있던 사람은 청나라의 이홍장이 파견한 독일인 묄렌도르프였습니다. 조선에서는 목참판이라고 불렸죠. 목참판은 애스턴이 한글본을 만들려 한다는 정보를 접하고 김만식에게 반대하라고 일렀습니다. 이에 김만식은 걱정 말라면서, 그렇잖아도 일전에 애스턴에게 자신은 언문 같은 건 모른다고 대응했다고 자랑삼아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소문이 서울의 외국인 사회에 퍼지게 되었지요. 우리 서양인들은 그런 일이 참으로 야릇하게 느껴졌습니다. 

반면에 당시 조선의 일반 관료들의 생각으로는 지엄한 국가 문서를 '언문'으로 작성한다는 것 자체가 국가위신을 망치는 일이었을 겁니다. 더구나 조선이 미국과 수교함으로써 청나라로부터 자주 독립을 이룬 것이므로 한문이 아닌 한글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대다수 지식인들은 여전히 한문을 숭상하고 한글을 천시하고 있었던 게지요.

하지만 당시 조선에서 한글 천시를 개탄한 극소수의 조선인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개화파들이었지요. 우리 서양인들은 그들을 진보파(progressive party)라고 불렀지요. 방미 사절단은 진보파가 주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당시엔 민영익도 진보파에 속했고요. 그들이 한글본 국서를 들고 미국에 온 것은 실로 평지 돌출인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한글본 국서는 곧 현지 언론에 크게 보도 될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살펴 보기로 하죠.  

사절단 일행이 뉴욕에 인접한 저지 시티(Jersey City) 정거장에 내렸을 때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도보로 나루터를 건넌 다음 대기 중인 마차에 올라 숙소로 향했지요. 숙소는 유명한 피프스 애비뉴 호텔(Fifth Avenue Hotel)이었습니다. 아더(Arthur) 대통령과 프릴링하이젠(Frelinghuysen) 국무장관도 그곳에 머물고 있었지요. 전권대신 민영익과 부대신 홍영식 그리고 종사관 서광범은 그 호텔 3층(아더 대통령 객실 인접)에 여장을 풀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인근의 밴덤(Vendome) 호텔에 투숙했지요.
 

Fifth Avenue Hotel 보빙사가 투숙한 뉴욕의 고급 호텔 ⓒ 공개된 이미지

 

Fifth Avenue 호텔 연회실 Fifth Avenue 호텔 연회실 초기 모습 ⓒ 공개된 이미지

 
나는 조선인들과 함께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한 뒤 다음날 거행될 행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주로 일본어를 사용했고 때로는 한자를 써서 설명했지요. 나아가 나는 한국어를 몇 마디 시도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무척 친근감을 느낀 듯하였습니다.

다음날 일찍 나는 조선 친구들과 호텔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미 포크와 나이프를 제법 잘 다루었고 서양식 식사 매너에 적응해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사절단은 객실로 돌아가 문서를 챙기고 의관을 갖췄습니다. 아더 대통령은 11시 정각에 일층 대접견실에 먼저 입장하였습니다. 나는 사절단을 안내하여 일층으로 이동하였는데 그 때 뜻밖의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지요.

수많은 구경꾼들이 복도로 몰려들지 않겠어요? 여성과 어린이들도 많이 보이더군요. 화려하고도 기이한 의상을 차려 입고 기상천외의 모자를 쓴 조선인들의 신기한 모습이 그들에겐 아라비안 나이트의 실제 상황으로 여겨졌겠지요.  

현지의 '뉴욕 헤럴드', '뉴욕 타임스', '뉴욕 데일리 트리뷴' 등의 신문사가 취재 경쟁을 벌였습니다. '뉴욕 데일리 트리뷴'(New York Daily Tribune, 9월 19 일자) 보도 일부를 같이 볼까요?  
  
"어제 11시 15분 피프스 애비뉴 호텔(Fifth Avenue Hotel)의 1층 접견실에서는 동양적인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기이한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은 Corea 혹은 대 조선 Tah Chosun이라 불리는 왕국의 임금이 보낸 사절이었다. ….복도마다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는데 여성들도 많았다(The corridors were thronged with people, many being ladies).

민영익 전권 대신(Minister Plenipotentiary)은 오얏빛깔의 긴 비단 두루마리를 걸쳤는데 그 안에는 하얀 속옷과 버선을 입었다. 허리에는 금박이 새겨진 벨트를 착용했다. 가슴 위 사각형의 비단천에는 한 쌍의 학이 수놓여 있었다. 그는 가느다란 검정 대나무로 만든 조선식 모자를 쓰고 있었다. 모자 테는 넓었으며 마치 높은 왕관 모습이었다. 모자 안에는 꽉 조이는 죽제 망건이 바치고 있다. 부대신(홍영식)은 가슴에 학이 한 마리만 수놓여 있었다. 다른 조선인들도 다양한 색깔의 전통 의상을 입고 있었다..."


-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보빙사 #조지 포크 #한글본 국서 #FIFTH AVENUE HOTEL #민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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