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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는 왜 70년 넘은 대학 이름 통째로 바꾸나

[김수진의 '별일 있는' 캐나다] 굿바이 라이어슨 유니버스티, 굿바이 던다스 스트릿

등록 2021.09.23 07:21수정 2021.09.2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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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경험하는 크고 작은 '별일'들, 한국에 의미있는 캐나다 소식을 전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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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원주민과의 화해를 위해 이름 변경을 결정한 캐나다 라이어슨대학교의 캠퍼스. ⓒ ryerson university

 
캐나다에는 어찌된 일인지 도시마다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거리들이 많다. 토론토에도 해밀턴에도 워털루에도 '킹 스트리트'(King Street)가 있다. 차탐에도 키치너에도 우드스탁에도 '아들레이드 스트리트'(Adelaide Street)가 있다. 거리뿐만 아니라 공원이나 학교 같은 기관도 같은 이름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잦다. 그중 라이어슨 대학교, 라이어슨 초등학교, 라이어슨 공원 등 '에거튼 라이어슨(Egerton Ryerson)'이란 사람에게서 비롯된 이름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영영 사라질 모양이다. 

지난 8월 26일, 토론토에 위치한 '라이어슨 대학교(Ryerson University)'는 이름을 바꾸겠다는 발표를 했다. 4년 전에도 학교 내 원주민 학생들에 의한 개명 요구가 있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었다. 그러다 이번 여름 옛 '기숙학교' 부지 두 곳에서 무려 1000여 명에 이르는 원주민 어린이들의 유해가 발견됨으로써 다시금 개명을 향한 투쟁에 불이 붙었다.

대체 '라이어슨'이란 인물은 누구이고 '기숙학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한 대학이 오래도록 지녀온 이름을 바꾸는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일까.

라이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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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라이어슨 공과대학 입구 앞에 학생들이 서 있다. ⓒ ryerson university

 
영국과 프랑스인들이 들어와 캐나다라는 나라를 세우기 훨씬 전부터 이 땅에는 원주민들이 터를 잡아 살고 있었다. 그들이 빼앗긴 것은 땅뿐만이 아니었다. 캐나다 정부는 그들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말살정책을 폈고 '기숙학교'는 그러한 정책의 일환이었다. 1996년까지 100년 넘는 기간 동안 15만 명의 원주민 아이들이 부모와 공동체에게서 떨어져 '기숙학교'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원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박탈 당하고 백인의 문화와 관습을 강제 당하는 과정에 수많은 아이들이 학대와 방임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올 여름, '땅속 탐사 레이더'를 통해 옛 기숙학교 부지에서 1000여 명에 이르는 아이들의 유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처참한 광경은 비단 원주민 공동체만이 아닌 캐나다 전역을 충격과 분노로 몰아넣었고, 라이어슨 대학교 개명 운동에 다시금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다.

에거튼 라이어슨, 그가 바로 기숙학교 시스템의 주 설계자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캠퍼스 내에 세워져 있던 그의 동상은 유해 발견 사건으로 분노한 이들에 의해 끌어져내리고 목이 잘리는 훼손을 당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학교 측은 차후에도 동상 복원이나 교체는 없을 것임을 밝혔다.

개명을 향한 논란이 커지자 학교는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학교 이름, 에거튼 라이어슨이 남긴 (부정적 의미의) 유산, 그 외 (그와 관련된) 기념요소들에 대한 재검토 작업을 진행했다. 역사 고증과 더불어 지역사회와의 대화, 약 6000개 설문조사 검토 등의 작업도 함께 이뤄졌다.

이후 대책위원회는 학교 이름 변경, 에거튼 라이어슨의 부정적 유산을 공인하는 자료 공유, 원주민 역사와 식민 관계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더 많은 기회 제공 등을 골자로 하는 22가지의 권고사항을 제시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수백 명의 교수들, 또 수백 명의 직원들이 서명한 개명 요구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제는 라이어슨을 기리는 일을 멈추어야 할 때다."
"논쟁은 끝났다. 평등, 다양성, 포용이라는 명백한 가치에 정면으로 반하는 압제와 집단학살은 우리 사회에 설 자리가 없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8월, 대책위원회의 권고가 받아들여져 개명이 결정됐다.

"교체 비용? 변화를 지지하는 기부자 상당할 것" 

지난해 미국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흑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불타오른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 그리고 올 여름 기숙학교 원주민 어린이 유해 발굴 사건으로 인해 캐나다인들은 점점 더 비판적인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 깊은 관심을 갖고 인종차별 및 원주민 학대와 관련된 이름들을 주시하고 있다.

라이어슨 대학의 개명 결정이 원주민들의 피해와 아픔을 돌아보고 어두운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일이라면, 얼마 전 토론토 '던다스 스트리트'(Dundas Street)의 이름 변경 결정은 흑인들의 인권이 짓밟혔던 역사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당위를 담고 있다.

던다스 스트릿이라는 이름을 제공한 '헨리 던다스'는 노예제 폐지를 지연시킨 스코틀랜드의 정치인이다. 상상만으로도 불쾌하지만 만약 한국에 '이토 히로부미 길'이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해 보니, 던다스 스트릿을 바라볼 때 흑인들이 느꼈을 감정이 단박에 이해가 됐다.

하지만 오래도록 사용되어 온 거리나 기관의 이름 변경이 쉬운 일은 아닌 것이 그에 따르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2년 이름을 바꾼 웨스턴 대학의 경우 20만 달러(약 2억3436만 원)의 비용이 들었다고 보고된 바 있다. 이름 변경 프로젝트의 범위 내에 있는 건물이 40개, 프로그램이 141개, 그 외 스포츠 대표팀들까지 있다고 하니 협의 과정, 디자인 변경, 시행 과정 등을 고려해볼 때 라이어슨 대학이 치르게 될 비용도 그에 못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름 변경으로 인해 대학이 앞으로 얻게 될 모금액도 상당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논란을 겪으면서 라이어슨 대학이 기부자들을 잃은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식민주의, 인종차별, 기숙학교와의 연관을 끊음으로써 기금 모집에 도움을 받으리란 것이다. 기금 모집 컨설턴트 회사 대표 구이 말라본의 말을 들어보자.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이 특별한 이슈는 매우 강렬합니다. 재정 지원을 통해 이러한 변화를 지지하는 일에 동참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 반대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기부자들은 사회적 관심사와 진보적인 생각들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며 "포용, 다양성, 평등은 점점 더 많은 기부자들이 추구하는 가치"라는 것이다.

소비자도 '가치'를 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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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 어린이 집단사망 애도하는 트뤼도 캐나다 총리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지난 6월 1일(현지시간) 오타와 국회의사당 인근에 마련된 추모 공간을 방문해 원주민 기숙학교에서 집단 사망한 어린이들을 애도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한 캐나다 원주민 부족은 브리티시컬럼비아의 옛 캠루프스 인디언 기숙학교의 부지에서 지표투과레이더로 확인한 결과 세 살배기 등 어린이 215명의 유해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트뤼도 총리는 이에 대한 '구체적 조치'를 약속했다. ⓒ AP=연합뉴스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될 대학의 로고가 새겨진 머그나 후디 같은 상품 판매가 증가할 것이란 기대도 있다. 마니토바의 마케팅 교수 팡왕은 진보적 가치를 받아들이는 브랜드는 지역사회를 넘어 관심을 끌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힘을 가진다고 말한다. 실제로 최근의 그러한 예들을 찾아볼 수 있다.

아이스하키팀인 '위니펙 제트(Winnipeg Jets)'는 원주민 디자이너와 함께 원주민 스타일의 팀 로고를 제작했고 그 로고가 새겨진 저지는 수집가들이 찾는 애장품이 되었다. 원주민에게 지지를 표하는 이들로 인해 수요가 늘자 팀은 판매 물품을 모자, 후디, 티셔츠로까지 확대해나갔다.

진보적인 변화로 판매가 증가한 또다른 예는 '나이키'에서 볼 수 있다. 2018년 '나이키'는 'Just Do It' 캠페인의 모델로 전 NFL 선수 콜린 캐퍼닉을 기용했다. 미국 내 흑인에 대한 백인 경찰의 만행에 항의하는 표시로 국가가 흐르는 내내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던 콜린 캐퍼닉, 캠페인을 통해 그에 대한 지지를 표한 나이키의 분기 수익과 주식 가치는 급증했다(당시 콜린 캐퍼닉과 나이키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치열했지만).

최근 벌링턴 시도 '라이어슨'의 이름을 딴 라이어슨 공원의 이름을 변경하기 위해 11월까지 새로운 이름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취합하는 중이다. 몇몇 최종 후보가 정해지는 대로 투표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에 앞서 라이어슨 초등학교 역시 만장일치로 이름 변경을 결정했다. 해밀턴과 런던에 있는 같은 이름의 '라이어슨 초등학교'들도 '진실과 화해'의 정신에 기반해 주민들로부터 새로운 이름 추천을 받고 있는 중이다.

벌링턴 시는 말한다. 원주민 공동체 구성원들은 기숙학교를 떠올리는 일 없이 공공장소를 누릴 수 있어야만 한다고. "시 공원의 이름을 다시 짓는 것은 원주민들과의 화해를 향해 취할 수 있는 첫걸음"이라고.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고 수익이 증가해 그것으로 이름 변경에 따르는 비용을 상쇄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가혹한 역사를 대변하는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거듭 떠올리게 하는 이름의 변경을 추진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더욱 성숙한 사회로의 한 걸음일 수 있다.

라이어슨이나 던다스 같은 인물의 배경을 몰랐던 이들에게는 배움의 장이 될 것이고, 이름 변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의들은 어두운 과거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며, 새로운 이름을 다함께 고민하는 과정은 오늘날 이 사회에서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을 안겨줄테니 말이다. 이름 변경으로 바뀌는 것이 단지 이름만이 아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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