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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이면서 지극히 한국적인... 고종의 자신감이 담긴 '이곳'

[덕수궁 근대건축 ②] 한양(韓洋) 건축을 융합시켜 지은 집, 정관헌(靜觀軒)

등록 2021.09.19 11:25수정 2021.09.1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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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만약'이란 게 없겠지만, 1860년대 시작된 근대가 우리 힘으로 이뤄졌다면 어땠을까를 늘 생각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근대는 이식된 근대였습니다. 이식된 그 길을 서울에 남아있는 근대건축으로 찾아보려 합니다.[편집자말]
새로운 세기(世紀)가 밝았다. 여명이 어둠을 걷어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심장을 두드린다. 지존은 새 시대를 꿈꾼다. 아침 햇살처럼 뻗어 나가는 꿈이 풀벌레마저 깨워선 생동하는 생명력을 한껏 발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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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녕전 뒤 낮은 언덕에 서 있는 정관헌 모습이다. ⓒ 이영천

 
함녕전 뒤 작은 동산에 오른다. 언덕에 오른 지존의 발걸음이 한곳에 머문다. 햇살이 뭍 생명의 시선으로 사위를 환하게 비춘다. 심장이 고동친다. 자손만대 길이길이 이어지는 부강한 나라를 만들고 싶은 열망이 가슴 가득 밝은 빛으로 깃든다. 좋은 정치로 모든 백성이 잘사는 나라를 열어 보이고 싶다. '고요히(靜) 세상(풍경)을 바라다보는(觀) 집(軒)'에 들어 깊은 사유에 빠져든다. 깨어남이고 시작이다.

하지만 세상을 비추는 햇살이 다 같은 것만은 아니었다. 황제의 나라를 세웠으나, 모든 것이 부족해 보인다. 이리떼처럼 달려드는 외세에 여기저기 살점이 뜯겨져 나가고 뼈가 으스러졌다. 나라 위상에 걸 맞는 궁궐을 세워 맞서 보려 하지만, 여러모로 힘에 부치는 것도 사실이다. 부강한 나라를 세우겠다는 열망을 무엇으로 드러낼 수 있을까? 서구화는 이미 곳곳에서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지 않은가.


사바틴의 구상

도성(都城)에 세워진 여러 양관(洋館)을 설계하는 데 힘을 쏟은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수옥헌을 설계한 존 헨리 다이의 설계라는 주장도 있음)이 "발전과 변화는 서로 다른 문명이 하나의 형태로 조화롭게 융합되는 데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단순히 형태와 기능을 짜깁기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문명의 장·단점을 극복하고 조화시켜내는 게 핵심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덧붙여 그러한 융·복합만이 융성하는 문명국가로 나아가는 첩경이라는 것이다.

이 건축가는 왕후가 일본 낭인들 칼에 쓰러져가는 모습을 목격한 자다. 저들의 만행을 세계만방에 알려 곤궁에 처한 왕에게 큰 도움을 주지 않았던가. 약현과 종현에 지어진 가톨릭 성당 공사가 난관에 부딪쳤을 때도 조언을 아끼지 않은 건축가다. 조선 건축에도 이제 많이 익숙해져 있다. 그만큼 개방적이며, 나라와 종교를 떠나 조화와 화합을 추구한 인물로 보인다.

고종 황제는 그에게 작은 실험을 요구한다. 새롭게 밝아 오는 세기를 찬연하게 맞이하려는 의도다. 서로 다른 문명이 형태는 물론 기능에서도 조화를 이룬 건축물을 설계해 보라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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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벌대 장대석 기단 위에 선 7칸 정관헌 전면. 계단과 베란다 바깥 기둥, 그 위 낙양과 녹색 팔작지붕이 선명하다. ⓒ 이영천

 
일본이 어쭙잖게 떠벌이는 '탈아론(脫亞論)'같은 모양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청나라 풍의 벽돌 조에 어설픈 한옥기와를 이고 있는 모습이어도 안 된다. 이런 건축물로 어찌 융합을 말할 것이며 새로운 꿈을 추구했다 할 수 있겠는가? 규모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진정한 융·복합을 어찌 이뤄낼 것인가에 달려있다.

서구 건축이 추구하는 공간의 기능성과 조선 건축이 추구하는 개방과 폐쇄를 조화시켜 연계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보자는 게 사바틴의 구상이다.


개방과 폐쇄, 기능적 공간 분리의 조화

두 개 층으로 분리된 낮고 넓은 기단(基壇)을 쌓아 올린다. 밝은 화강석을 다듬어 기단 가장자리를 튼실하게 보강한다. 영국 공사관과 즉조당 쪽으론 담을 두른다. 준명전과 즉조당으로 통하는 곳에 협문(夾門)을 내고, 훤히 열린 기단 동측과 남측에 화강석 계단을 쌓는다. 여느 궁궐 전각의 기초를 이루는 형태와 전통을 고스란히 지켜낸다.

집이 들어설 자리에 다시 허리 높이로 기단(3벌대 장대석)을 쌓는다. 화강석을 다듬어 엇갈려 쌓고 지하층을 두어 이곳에 공기를 불어넣을 환기구(풍혈)를 설치한다. 집으로 오르는 동·서·남 삼면에 계단을 내어준다. 1층 평면 구성은 단출하면서도 기능적이다. 한옥이 갖는 개방과 폐쇄를 서구건축의 기능적 공간 분리와 어울리도록 평면을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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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 외빈 접대 등이 행해진 내부 홀이다. 베란다 경계 돌기둥과 우물천장이 보이고, 커튼 안쪽이 벽돌로 지어진 4개의 방이 있는 곳이다. ⓒ 이영천

 
중심 공간은 북측에 벽돌로 쌓아 구획한 4개의 방과 그 전면에 큰 홀(Hall)의 배치다. 맨 좌측 방은 연회 서비스 공간이다. 나머지 3개의 방은 창고 등 다양한 용도로 쓰였을 것이다. 전면 홀은 외부인을 접견하거나 작은 연회를 베풀기에 적당한 크기다. 바닥은 나무 마루이며 그 위에 카펫을 깔았다.

홀 바깥 주변 공간 평면은 동·서·남 삼면을 넓은 베란다로 구성한다. 바닥은 콘크리트다. 측면의 평면구성은 석조전이나 중명전과 같은 양식이다. 삼면에서 끌어온 바깥 풍광이 베란다와 홀로 연장되어 이어진다. 고요히 세상(풍경)을 바라보기에 맞춤한 공간이다.

특이한 입면

융·복합의 실체는 입면 구성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개방된 홀 경계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굵은 돌기둥(자연석재가 아닌 인조석 씻어내기)이 서구식 건축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굵은 돌 보(椺)가 천장을 떠받히고 있다. 천장은 간명한 단청으로 장식한 한옥 우물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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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기둥과 안쪽 돌기둥이 보인다. 팔작지붕과 베란다 지붕의 모습이 구분되며, 합각은 하얀색이다. ⓒ 이영천

 
홀과 북측 방의 중심 공간 지붕(당초 굴뚝이 있었음)은, 짙은 녹색(1998년 아스팔트 슁글로 대체)에 서양건축에선 찾아 볼 수 없는 팔작지붕이다. 지붕 선을 곡선이 아닌 직선으로 처리하였고, 지붕 끝을 과감하게 잘라내 버려 처마가 드러나지 않는다. 한옥의 지붕 형태를 따랐으면서도 마무리는 전형적인 서양 방식이다.

베란다가 이루는 주변 공간 지붕은, 한옥 겹처마에 매다는 부연(婦椽)을 응용한 흔적이 뚜렷하다. 팔작지붕 잘려나간 끝에 벽돌로 단을 쌓아 공간을 띄우고, 그 밑에 길게 내민 동판 지붕을 달았다. 역시 끝단은 처마 없이 잘린 모양새다.

이 지붕을 지지하는 바깥 기둥이 특이하다. 통상 철제로 만드는 서양식 기둥을 오로지 나무로 구현시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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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짜 맞춰 세운 기둥 각 부위가 선명하다. 전체적으로 정관헌 모습은 이 기둥과 난간이 연출하고 있다. ⓒ 이영천

 
기단에 네모난 나무기둥을 세운다. 그 위에 8줄 긴 홈(Fluting)이 파인 민흘림 둥근 나무기둥을 세우고, 기둥머리에 이오니아식 문양이 들어간 받침(주두)을 앉힌다. 받침과 지붕을 연결하는 부위는 화려한 꽃병이 조각된 네모난 나무다. 이렇게 각기 형태가 다른 나무를 짜 맞춰 하나의 기둥을 세운 것이다.

기둥 사이는 화려한 낙양(기둥 상부 측면과 상인방 또는 창방 하부에 ㄱ자 모양으로 댄 목조 장식)으로 장식하였다. 상부에 직각사각형의 꽃문양 나무틀을 끼워 넣고, 기둥 맨 위 양측으로 삼각의 구름문양을 넣어 머리서 보면 말굽아치가 연상되도록 구성하였다. 복(福)을 상징하는 박쥐문양도 간간이 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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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로 만든 난간 모습. 원 안의 소나무와 사슴, 그 밖으로 박쥐가 새겨져 있다. ⓒ 이영천

 
기둥 사이 하부는 금속난간으로 채웠다. 황금색으로 칠해진 난간은 소나무와 사슴문양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베란다도 녹색으로 단청한 우물천장이다.

여러 용도로 변형되어

정관헌은 개방적인 파빌리온(pavilion, 정자나 그에 속하는 경미한 정원(庭園)건축, 다정(茶亭), 휴게소 등)의 모습이다. 한옥과 서양건축의 특장점이 조화를 이룬 (콜로니얼(Colonial)양식이라고도 부르는) 이국적인 풍모이면서 지극히 한국적인 건축물이다. 이러한 개방성과 융·복합의 자신감을 고종은 덕수궁 작은 언덕 위에 구현시킨 것이다. 세기가 바뀌어 20세기 시작이다.

집에 쓰인 재료도 적·회색 벽돌부터 석재, 목재가 두루 사용되었다. 중심 공간을 이루는 곳은 벽돌과 석재가, 퇴를 두르듯 만든 베란다 공간은 목재가 주를 이룬다. 이런 재료의 어울림도 이 집이 갖고 있는 특이함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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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이름에 걸맞는 풍경을 연출한다. 즉조당 방향으로 바라 본 풍경이다. ⓒ 이영천

 
하지만 이런 자신감이 오히려 집에 상처가 되기도 했다. 이 집은 그리 큰 규모는 아니다. 함녕전 뒤 다소곳한 모습의 조용한 집이다. 선대왕의 영정을 모시기도 했으나, 대체로 왕의 휴식·휴게기능과 외부 빈객을 가볍게 만나거나 연희를 베푸는 기능이 주였다. 따라서 대체로 소홀하게 취급되고 관리되어 왔음이 사실이다.

이 집의 최초 모습은 알려진 게 없다. 홀은 당초 벽돌담의 방으로 꾸며진 것으로 보인다. 불행히도 1930년대 초에 일제(日帝)가 평면 구성을 변형하고 지붕 일부와 재료를 바꾼 것으로 추정한다. 팔작지붕합각의 일본식 철물(懸魚)과 둥근 창이 이를 증명한다. 이때 홀을 개방시키고 돌기둥을 세운 것으로 보이나 명확하진 않다. 다만 한양(韓洋)건축을 융합시킨 당초 형태와 정신까지는 온전히 없애지 못했다.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며 웅대한 꿈으로 지은 집은 색채가 선명해서 좋다. 근대국가 건설이라는 명쾌한 꿈을 동·서양 건축문명의 조화에서 찾으려한 그 지혜가 밝아 보인다. 다시 새로운 세기를 맞아 20여 년도 더 흐른 지금, 이 집에서 우린 무엇을 읽어내야 하는가?
#정관헌 #사바틴 #콜로니얼_양식 #한양(韓洋)건축의_융합 #덕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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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레 타인과 소통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소통하는 그런 일들을 찾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보다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서로 교감하면서,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풍성해지는 삶을 같이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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