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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조각상 '뒤통수' 그려서 미대 합격... 온몸으로 그리는 80대 작가

신체로 그리는 9차원 회화 창시자, 이건용 작가와 '보디스케이프(Bodyscape)' 전

등록 2021.09.26 11:44수정 2021.09.2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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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신관) 입구 이건용 전시 홍보판. '신체의 풍경(보디스케이프): 온몸을 축으로 반원 그리기'(76-8번) ⓒ 김형순


한국 실험미술의 대가인 '이건용' 작가의 '보디스케이프(Bodyscape:신체의 풍경)' 전이 갤러리현대(신관) 전관에서 10월 31일까지 열린다. 별관 '두가헌'에서도 아크릴, 색연필, 판화 등이 전시된다. 2016년 '이벤트 로지컬' 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유머지만 그는 자신의 80을 '여덟 살'로 비유한다. 열두 살(120세)까지 그림을 그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인생을 길게 멀리 본다. 그는 평생 몸을 붓 삼아 거꾸로 그렸다. 캔버스 화면을 등지고 뒤에서 그린다. 이런 방식을 고집하다 보니 오랫동안 한국미술계에서 외면당해 왔다. 그럼에도 5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승리자로 보인다.

미술유력지 < ARTSY >지에서 그는 한국인 작가 중 유일하게 '2020년 주목해야 할 예술가 35인'에 이름을 올렸다. 내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 열리는 '한국아방가르드' 특별전에도 초대받았다. 그의 작품은 영국 '런던 테이트'에도 소장돼 있다.

50년을 아침에 일어나 잘 때까지 드로잉을 하는 화가이니, 물론 그림에는 능숙하다. 하지만 그림을 잘 그리는 데 관심이 없다. 내 그림은 누구나 그릴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의 그림이 안 팔려 걱정한 적이 없단다. 다만 끊임없이 미술의 본질을 물을 뿐이다. 그에게는 사유의 전환을 통해 작품에 대한 새로운 발상과 아이디어를 얻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렇듯 그에게 그림이란 어떤 양식이나 기술이 아니라 삶의 흔적과 현상을 남기는 것이다. 온몸을 던져 화폭에 그의 심혼을 담는다. 신체로 사유하며 신체로 그린다. 그의 '신체 풍경'은 이렇게 나온다. '잭슨 폴록'의 뿌리기 그림이나 '폰타나'의 찢기 그림과도 다르다!

성장기, 책 속에 살다
 

이건용 I '신체의 풍경: 화면 등지고 그리기'(76-2번) 2021. 그의 신체 드로잉에서는 신체, 장소, 관계 중시한다 ⓒ 김형순

 
이건용은 1942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가난한 목사였다. 어머니는 세브란스 병원 간호사였다. 아버지 서재에는 만여 권의 장서가 있었다. 이런 연고로 책과 친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를 탐탁잖게 여겼다. 어느 날 "책에서 애들 고기반찬이 나오냐?"며 책을 길에다 버렸다. 아버지는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 "책 올려라"라고 말했단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이건용은 배재고 1년 '논리학' 수업 때 현대철학을 접했다. 동양의 노장사상은 물론 서양의 실존주의, 현상학, 언어분석철학 등과 접했다. 몸 철학자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 관련 서적과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를 숙독했단다.

어머니로부터는 5살부터 "지고 오너라!"라는 말을 들었단다. 이게 뭔 소린가? 남에게 양보하라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한국미술계가 그를 오랫동안 알아주지 않아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이건용은 중학 시절부터 괴짜였다. 배재중학교 1학년 때, 새로 받는 미술교과서에 촌평을 했다가 담임으로부터 따귀를 50대 맞았다. 중3 때, 집안에서 '예고'를 가겠다고 떼 쓰다 거절되자 시험지를 백지 제출로, 퇴학당할 뻔했다. 미술교사의 변호가 통했다.

과도한 개발정책 풍자한 '신체항'
 

이건용 I '신체항(Corporal Term)' 나무, 흙 국립현대미술관-경복궁전시장 1971 ⓒ 국립현대미술관

 
그는 홍익대 입시 데생시험 때 남다르게 '아폴로 조각상' 뒤통수를 그리고 합격했다. 당시 미대 학장이 김환기였는데 그 이유를 묻자, "난 특별하게 그리고 싶어요"라고 답했단다.

대학을 졸업하고, 1969년 이화여대 입구에 '동양미술학원'을 세웠다. 당시는 정보가 턱없이 부족한 시대라 평론가와 작가 등이 함께 'S.T(공간-시간 조형학회)'를 설립했고, 거기서 열띤 토론과 세미나를 열었다. 그때 창립된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에도 가입했다.

그해 그는 긴 모색 끝에 데뷔작 '신체항'을 내놓았다. 보이는 나무와 보이지 않은 지층을 통째로 가시화해 획기적이다. 정부의 과도한 개발 정책에 반발해 나무를 뿌리째 옮겨놨다. 노자의 팬인 그가 이런 시책을 좋아할 리가 없다. 여기엔 현대미술의 선구자인 뒤샹의 정신도 반영되었다. '공간'에 당시의 통제와 감시의 '사건'을 끌어들여 '장소성'도 부여했다.

이 작품은 1973년 해외 공모에 당선, 35세 미만 세계작가의 축제인 '파리비엔날레'에 초대받았다. 그곳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를 보고 프랑스 미술평론가 '장 자크 레베크'는 "미술과 지질학이 결합된 감동적인 작품이다. 새 미술의 장을 열었다"라고 극찬했다.

그리고 그는 1975년 '이벤트 로지컬'이라는 말을 발명했다. 사실 두 단어는 상충한다. 그러나 자신의 퍼포먼스가 즉흥적인 게 아니라 오랜 사유와 고민 끝에 나온 것임을 강조한다. 여기서 자신만의 미학적 논리(로지컬)를 통해 한국의 혼란한 정치·사회적 상황을 재해석했다.

9차원 회화, 'Bodyscape'(1976-2021)
 

이건용 I '신체의 풍경: 화면 뒤에서 그리기'(76-1번) 2021 ⓒ 갤러리현대

 
1976년 출판문화회관에서 열린 5회 'ST전'에서 '신체의 풍경(Bodyscape)' 연작과 그 회화기법 9가지'를 발표했다. '화면 뒤에서 그리기'(76-1), '화면 등지고 그리기'(76-2), '화면 옆에서 그리기'(76-3) 등 전시장에서 그 외 6가지 기법도 영상으로 보여준다. 그는 이렇게 '앞에서 보고 그리는' 1차원 그리기를 거부하고 그 범위를 9배로 확장시켰다. 
 

미술에서 기술보다 본질을 묻는 이 작품은 1979년 '리스본국제미술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1963년 이건용 일기 중에서 "과연 너는 그렸을까? 너는 그린다는 게 뭔지 알고 있니?"라는 문장이 나온다. 미술의 본질을 묻는 말이다. 아직도 그 답을 찾지 못해 지금도 계속된다. 이번 전시도 그런 질문의 2021년 버전이다. 이런 유례는 세계 미술사에도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추가하면 이건용은 회화적 교란을 통해 모든 담론이 독점된 70년대 박정희 독재를 꼬집은 것이다. 이런 저항정신은 중고시절부터 나타났다. 1975년 그는 정치풍자 퍼포먼스 "이리 오너라 내가 보이느냐?"로 공안당국에 끌려가 심한 고문을 받고 10년간 그 후유증으로 고생했다. 한때 당국에 의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전시도 못 하게 했다.

퍼포먼스 '달팽이걸음'와 소통철학
 

이건용 작가와 기자들과 대면에서 그는 유머와 시연을 통해 원활한 소통을 추구한다. 작업 과정도 보여주다 ⓒ 김형순

 
이건용에게 "몸이란 뭔가?" 이는 그의 평생 질문이다. 동아시아에서 몸은 '정기신(精氣神)' 즉 몸에 마음이 포함된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서 몸은 문화를 창조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건용은 플라톤적 정신우위를 거부하고, 신체지각을 중시한 '메를로 퐁티'를 좋아했다. 그에게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매체는 선이나 점, 면이나 색이 아니라 '신체'다.

이건용은 이렇게 신체가 당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지를 문제 삼는다. 그런 철학이 담긴 대표작이 바로 '달팽이걸음(퍼포먼스)'이다. 이 작품은 1979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처음 선보였다. '손'으로 그리고 '발'로 지우면서 느리지만 결국 앞으로 나간다. 이번 전시에 시연되지는 않았지만 느려도 좋으니 사는 것처럼 살라는 말이다.

그는 아침에 눈 뜨면 할 일이 많아 흥분돼 자신을 절제 못 하고 마음이 들떠있단다. 80이 다 된 작가가 8살 아이 같다. 2019년 '헬로우뮤지엄'에서 어린이를 관객 삼아 이 퍼포먼스를 했다. 그들과 대화의 시간도 가졌다. 왜? 그에게는 아이, 어른, 한국인, 외국인 상관 없이 이런 퍼포먼스가 상대와 가장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갤러리현대 홈페이지 https://www.galleryhyundai.com/main
국립현대미술관 https://www.youtube.com/watch?v=bdwJpXWTTgc
<관련 자료> https://www.youtube.com/watch?v=J4DEsswicVA
전시는 온라인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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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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