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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외교·안보... 김여정만 바빠질 수도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외교안보 공약 살펴보니... 비현실적 비전과 악수의 교차

등록 2021.09.23 19:11수정 2021.09.23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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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외교안보 관련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경선 예비후보가 지난 22일 발표한 외교·안보 공약 중에 눈길을 끄는 부분들이 있다. '판문점에 남북미 상설 연락사무소를 두겠다' '정치적 조건이나 비핵화와 관계없이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을 추진하겠다' '남북간 방송·통신을 개방하고 청년·학생 교류를 포함한 문화교류를 확대하겠다' 등이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남북관계가 지진부진하자 지난해 6월 16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한미동맹으로 인해 남북관계 진전이 지연되는 현실이 폭파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연락사무소 재건에 동의하려면 남북관계는 물론이고, 한미동맹도 적잖은 변화를 거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 아래서 윤 예비후보가 남북 연락사무소도 아닌 남북미 상설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겠다고 하니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대북 인도적 지원은 미국과 국제연합의 대북제재로 인해 제약을 안고 있다. 하지만 윤 후보는 정치적 조건과 관계없이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고 공약했다. '정치적 조건과 관계없이'는 미국과 유엔의 대북정책과 충돌을 빚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국민의힘 예비후보의 입장에서는 과감한 공약이 될 수도 있다.

북한 정권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로 민심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사상 단속 혹은 민심 단속에 고삐를 죄고 있다. 올해 들어 김정은이 청년이나 여성 집회에 메시지를 보내거나 혹은 일선 지방 간부들 앞에서 연설하거나 기념사진을 함께 찍는 일들이 잦아졌다.

일례로, 지난 3월 6일에는 조선노동당 시·군 책임비서 강습회에서 폐회사를 했고, 4월 8일에는 일선 당 간부들의 회합인 세포비서대회에서 고난의 행군을 거론했다. 4월 29일에는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제10차 대회에 서한을 보내 15년짜리 경제 로드맵을 제시했다.

북한 정권은 이렇게 대중과의 접촉면을 늘리는 한편, 남한발 혹은 자본주의발 문화를 차단하는 노력도 함께 기울이고 있다. 지난 7월 8일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북한 청년들의 옷차림과 남한식 말투 등에 대한 집중 단속이 이뤄지고 있다'고 보고했다. '남편을 오빠로 부르지 못하게 하고 여보로 부르라고 권유하는 일도 있다'고 국정원은 보고했다.

이 정도로 남한 문화와 자본주의를 경계하는 북한이다. 윤 후보는 그런 북한을 상대로 남북 방송·통신 개방을 추진하고 청년·학생 교류를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연락사무소 설치나 인도적 지원 확대 공약과 더불어, 지금 상황에서는 꽤 요원해 보이면서도 눈길을 끌 만한 공약이다.


위와 같은 공약을 실현하려면 획기적인 접근법이 수반돼야 한다. 기존에 했던 방식으로는 결코 실현할 수 없음을 70년 이상의 경험이 충분히 증명했다.

비전은 눈길을 끄는데 접근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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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정권수립 기념일('9·9절') 73주년을 맞아 자정에 남쪽의 예비군격인 노농적위군과 경찰격인 사회안전무력의 열병식을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2021.9.9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윤석열의 문제점은 여기에 있다. 눈길을 끌 만한 비전들에 걸맞은 획기적인 접근법이나 발상의 전환을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위의 공약을 실현하겠다며 그가 제시한 세부 방법론인 '한반도 변환 구상'과 '한미 포괄적 전략동맹 실천 및 북핵 대처 확장억제의 강화'는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바꿀 만한 묘안이 되기 힘들어 보인다.

그는 '한반도 변환 구상'의 구체적 의미와 관련해 "북한 비핵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하면서 현재의 단절과 대결의 남북관계를 개방과 소통, 협력의 남북관계로 전환하겠다"라고 설명했다. 개방·소통·협력을 늘리는 방법으로 한반도를 변환시켜 위의 공약을 실현하겠다는 것.

그런데 소통·개방·협력을 현실로 만들 해법이 신통치 않다. 그는 소통 등을 늘리는 방법과 관련해 "주변국 공조를 강화하며 비핵화 대화를 재개하고 남북간의 소통을 늘려 나가겠다"라고도 말했다.

'미국과의 공조'라고 하지 않고 굳이 '주변국 공조'라고 에둘러 표현한 것은 그것이 미국·일본과의 공조를 뜻하기 때문일 수 있다. '주변국 공조'는 미중과의 공조를 뜻할 수도 있고 미중일과의 공조를 뜻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미일과의 공조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한미일 삼각 공조는 이미 가동되고 있다. 이것은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부쩍 강화됐다. 그리고 이것은 북한의 냉대를 받고 있다. 냉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북일 간의 불신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이 북한 문제에 발언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상태에서 '주변국 공조'를 강화하면, 북일관계의 불안정 요소가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에 더욱더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 방향으로 한반도 변환을 추진하게 되면, 남북관계는 한층 악화되고 한반도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김여정의 날선 담화를 더욱 자주 듣게 되는 상황이 조성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핵우산 강화? 

한반도 변환 구상과 함께 내놓은 '한미 포괄적 전략동맹 실천 및 북핵 대처 확장억제의 강화'라는 방법론 역시 마찬가지다. 언론 보도에서 강조되고 있듯이, 윤석열이 말하는 '한미동맹을 통한 대북 억제력 강화'의 핵심은 미국 핵우산의 보호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공약했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한미 확장 억제를 강화하겠다. 한미간에 '유사시 핵무기 전개 합의 절차'를 마련하고 '정례적인 운용 연습'을 통해 핵우산의 신뢰도를 높이도록 하겠다."

미국 핵우산의 보호를 두텁게 함으로써 그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전쟁 방지다. "전쟁 걱정 없는 튼튼하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라고 공약했다. 그러면서 "한미동맹을 더욱 강력하게 재건해 나가겠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북한 비핵화'나 '비핵화'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북한 비핵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하겠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국제공조를 강화하겠다, 비핵화 대화를 재개하겠다, 비핵화 진전을 보아가며 경제협력을 준비하겠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이렇게 북한 비핵화를 강조하면서 미국 핵우산의 강화도 동시에 강조했다. 이 같은 접근법이 북한에 통할 수 없으리라는 점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핵우산 강화를 통해 전쟁을 방지하겠다'는 대목에서 드러나는 또 문제점은 한반도 위기 구조에 대한 윤 후보의 인식이 치밀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정확히 말하면 윤석열 캠프 외교·안보 라인의 단견을 드러내는 이 대목은 그동안 미국 핵우산의 보호 하에서도 한반도가 끊임없이 불안정했던 원인을 도외시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전쟁 휴전 이후로 남과 북은 전쟁을 하지 않았다. 전쟁이 벌어지지 않은 것은 미국·중국·러시아 같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미국 핵우산의 가동에도 적지 않게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핵우산이 한반도 전쟁을 막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간 남북관계가 불안정했던 결정적 요인 중 하나는 끊임없는 소규모 충돌과 침투였다. 핵우산이 가동 중인데도 이런 대결이 끊임없이 발생했고 이것이 한반도 불안정을 가중시켰다.

2017년에 <국제정치논총> 제57집 제3호에 실린 이진명 한국외대 교수의 논문 '미국의 핵우산, 신뢰할 만한가?: 미국의 핵 일반확장억지력에 대한 정량적 분석, 1945~2001'은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 국가들은 서로 간 끊임없는 숙적 관계로서 매우 높은 분쟁 빈도를 보여준다"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1950~2001년 동안 한국·북한·미국·중국·대만·일본 중 각각의 양자관계에서 발생한 분쟁이 총 380건이며 연평균 7.3회에 이른다. 이 가운데 선제공격 횟수는 북한 39회, 중국 33회, 한국 24회, 미국 20(회), 대만 20(회), 일본 11회에 이른다. 여기서 분쟁의 핵심이 남북한 관계라는 것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미국 핵우산이 작동하는 동북아에서 소규모 분쟁이 잦았다는 사실은, 핵우산이 대규모 전쟁의 예방엔 도움이 돼도 소규모 분쟁 방지엔 별다른 효과가 없음을 보여준다. 세계인들이 중동 상황을 불안정하게 바라보는 것은 그곳에서 벌어진 대규모 전쟁보다는 소규모 테러나 충돌 때문인 측면이 크다.

이런 소규모 충돌에 대해서는 미국 핵우산이 사실상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위 논문은 "미국의 확장 억지력이 무력의 위협·시위·사용과 같은 낮은 수준의 분쟁에까지 유용한 것은 아니라는 통계분석 결과는 현실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한국의 구조적·체계적 안보 취약성과 일치한다"고 진단한다. 한반도 정세가 불안한 것은 대규모 전쟁의 발생 가능성 때문이기보다는 소규모 충돌의 상존 가능성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2010~2017년까지 군사충돌 264건, 9·19 합의 이후엔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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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선언 이행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 서명 2018년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임석한 가운데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문에 서명한 후 취재진을 향해 들어보이고 있다.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지금 남북 군사분계선은 이전보다 현저히 평화롭다. 지난 3년간은 그 이전과 현저히 달랐다.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의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9.19 합의 3주년인 지난 9월 19일 <한국일보>에 기고한 '한반도 평화의 버팀목, 9·19 군사합의'에서 "올해 초 발간된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의 대남 침투·국지 도발 사례는 정전협정 이후 총 3120건에 달한다"며 "2010년 이후에도 2017년까지 264건의 크고 작은 도발이 이어졌다"고 한 뒤 "9.19 군사합의 체결 이후 남북간 군사적 충돌이 단 1건도 없었다는 점에 주목한다"고 평가했다. "정전협정만으로는 불안했던 한반도 평화에 군사합의라는 또 다른 버팀목이 작용한 결과"라고 그는 덧붙였다.

9.19 군사합의로도 여전히 불안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합의를 통해 군사분계선이 조용해졌다는 사실은 한반도 평화를 지키는 원동력이 미국 핵우산이 아니라 남북 신뢰임을 보여준다. 미국과 함께 쓰는 우산보다는 민족이 함께 쓰는 우산이 한반도 평화에 훨씬 유용함을 증명한다.

그런데도 윤석열은 미국 핵우산에 대한 의존을 심화시키겠다고 공약했다. 미국 핵우산에 더욱 의지함으로써 "전쟁 걱정 없는 튼튼하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한반도 불안정이 핵우산과 무관하게 심화돼온 현실을 도외시한 공약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 상황에 대한 그와 캠프의 인식이 불철저함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윤석열의 공약은 현실과 동떨어질 뿐 아니라 남북관계를 9.19 이전으로 되돌리는 악수가 될 수도 있다. 그의 안보 공약이 혹시라도 실현된다면, 가장 바빠질 사람은 담화 준비 여념이 없게 될 김여정일지 모른다. 
#윤석열 #남북관계 #한반도 평화 #미국 핵우산 #핵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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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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