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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 예정지의 '진짜 주민'을 만나고 왔습니다

[어스링스(Earthlings) 지구생명체 기록 프로젝트] 야생동물①: "이들은 목숨으로 투쟁과 저항하고 있는 거예요"

등록 2021.09.26 14:30수정 2021.09.2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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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링스(Earthlings) 지구생명체 기록 프로젝트'는 지구생명체들이 있는 현장으로 가 그들의 삶을 글, 사진, 영상으로 기록합니다. 다양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희생당하는 인간 외 종들의 현실을 고발한 2005년 미국의 영화 <지구생명체>(Earthlings)에서 이름을 가져왔습니다. 농장,바다,동물원,펫샵,동물실험연구소 등 인간의 목적을 위해 희생되거나 삶터를 빼앗긴 이들을 찾아가 기록원들이 보고 듣고 맡은 현실을 기록하여 연재합니다.[편집자말]
'살기 좋은' 마을

마석역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더 달려 내린 곳에 현수막 하나가 보였다. '살기 좋은 청룡 마을, 골프장이 웬말이냐'. 우리가 도착한 곳은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내방리. 포털사이트에서 '수동면'과 '골프장'을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골프장 환영한다"는 제목의 기사들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정작 현장에는 반대한다는 글귀만 눈에 띄었다. 

골프장 예정부지라고 하는 이곳은 멸종위기 동물인 반딧불이가 전국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많이 나타나는 청정구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주민들은 '살기 좋다'고 말한다. 물론 개발하는 걸 두고 '살기 좋아진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 개발은 인간만을 위할 때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주민들을 만나러 왔다. 흔히 떠올릴 사람 주민은 아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야생동물들을 만나러 왔다.
 
"인간이 집을 지었다고 해서 권리를 주장하려면 거기에서 집을 지은 새들도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겠죠. 모든 존재들이 같이 공존해야 되는 세상이 우리의 주변 마을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사는 거기에도 반드시 새가 있을 거예요." (사이)

'어스링스 지구생명체 기록 프로젝트' 9월의 만남은 야생동물이다. 야생동물 하면 깊은 산이나 광활한 평원을 떠올리기 쉽지만 인간의 주변에도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있다. 오늘 우리는 그들과 잘 만나는 여행을 해보려 한다. 직접행동 DxE(Direct Action Everywhere Korea)에서 활동하는 사이의 안내를 받아 어스링스의 냉수, 선선, 윤미(나)가 동행했다.
 

하늘과 땅 사이의 존재들 ⓒ 선선

 
다양한 새소리가 잘 들릴 때까지

도로의 시끄러운 차 소리에서 멀어지며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새소리가 덩어리째 들렸다.
 
"새는 하늘과 땅 사이의 존재죠. 야생동물 중에서도 하늘을 나는 만큼 다양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어요. 새는 3차원이잖아요. 나무 위를 좋아하는 새도 있고, 풀숲에 사는 새도 있고, 인간 주변에서 보이는 새도 있고. 그래서 새들을 본다는 것은 '여기에 자연이 있다. 야생이다'는 걸 확인하는 거예요." (사이)

사이 활동가가 쌍안경과 탐조기록장을 나눠주었다. 소리가 들리는 곳을 따라 개울 주변에 작은 새, 나무 위에 큰 새, 전깃줄에 그나마 알아보는 까마귀를 번갈아 보느라 우리들 고개가 분주해졌다. 쌍안경 덕분에 새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순간 현기증이 났다. 뺨에 검은 점이 있는 참새, 목에 검정색과 청회색의 무늬를 가진 멧비둘기, 귀 주변에 갈색 부메랑 같은 무늬를 가진 직박구리, 몸의 크기별로 진짜 작은 진박새와 그보다 큰 쇠박새, 또 그보다 좀 더 큰 박새가 있었다. 무늬를 자세히 보고 싶어 새들이 지금 있는 그 자리에 조금만, 조금만 더 머물러주길 바랐지만 그들은 금세 떠났다.

탐조기록장에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에 자주 만날 수 있는 새들의 도감이 있었고, 나는 그 옆에 이런 소리들을 적었다. (잠시 새들의 소리를 상상해 보자) 흔히 뱁새라 불리는 붉은머리오목눈이는 "삐비비", 박새는 "휘비비", 직박구리는 "찍찍", 큰부리까마귀는 "악악", 멧비둘기는 "구구 꾸꾸", 오색딱따구리는 "뾱뾱", 참새는 "짹짹". 어설프고 투박하지만 내 생애 첫 탐조 활동의 기록이다.
 

쌍안경으로 새를 보고 있는 어스링스팀 ⓒ 사이


해가 지기 시작하자 새소리가 잦아들었다. 이제 잘 곳을 찾는 거라고 했다. 전깃줄에 앉아 있던 까마귀가 길 너머의 높은 나무들 사이로 길게 날아갔다. 새들은 자유로워 보인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할 뿐, 새들이 정말 자유로운지는 알 수 없다.
 
"새들이 날아다니니까 자유롭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거든요. 여기는 그나마 낫지만 계속 개발되고 있는 곳은 새들에게 전쟁 같은 환경인 거죠. 건강했던 새도 좋지 않은 환경이니까 병들 수 있고. 또 열 명이 태어나면 열 명이 죽는 거예요. 그나마 원래 터를 잡고 있던 건강한 어른 새만 간신히 살아남는 거고. 그렇게 수가 줄어가는 거예요. 사대강만 큰 문제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데 사대강보다 훨씬 큰 규모로 지역에 난개발이 벌어지고 있거든요." (사이)

개발로 인한 야생동물의 서식지 파괴는 인간 사회의 문제와도 닮았다. 강제로 쫓겨나고 조용히 밀려나는 사람들, 그리고 야생동물들. 어쩌면 우리는 함께 연대할 수 있다. 가엾고 불쌍해하는 마음과 인간이 도와준다는 시혜의 차원을 넘어선, 평등한 관계의 연대를 말이다.
 
"그래서 불쌍하게 보는 게 아니라 이곳의 주체가 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쟁하고 사는 존재인 거죠. 본인들의 생명으로 견뎌내는 거잖아요. 이들은 이들의 목숨으로 투쟁과 저항을 하고 있는 거예요." (사이)

그리고 우연히 만난 사슴들

이제 우리는 반딧불이를 보기 위해 마을의 깊은 곳으로 향했다. 드문드문 들리는 새소리를 분간해보며 걷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낯선 울음소리가 들렸다. 사슴 농장이 있었다. 정확히는 녹용과 녹혈을 생산하기 위해 사슴을 기르는 곳. 우리는 길을 바꿔 그리로 향했다. 

사슴과 나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마치 내가 아프리카의 평원에 있다는 착각을 했다. 그만큼 커다란 사슴의 외형은 매력적이었기 때문인데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사슴의 머리에 뿔이 잘린 흔적을 발견했다. 어떤 사슴은 좁은 울타리 안에서 계속해서 철문에 머리를 박았고 어떤 사슴은 반복해서 울타리 안을 도는 정형행동을 하고 있었다. 잠시만 검색해보면 알 수 있다. 사슴의 녹용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사슴의 뿔이 어떻게 잘리는가를. 야생에 사는 동물이 좁은 울타리에 갇혀 정형행동을 하고 있는 걸 보고 있는 이 순간은, 이 사실이야말로 분명 현실인데 비현실적이다. 축사 앞에는 '녹용과 녹혈의 효능'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나는 부끄러웠다. 뻔히 존재하고 있는 사슴 앞에 그런 글귀를 달아두는 인간이 몹시 무례하게 느껴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사슴은 어떨 때 효능감을 느낄까? 인간의 보신을 위해 녹용이라 이름 붙이고 사슴의 쓸모를 정하는 것 말고, 인간의 잣대에 따라 '야생'이 되었다가 '축산'이 되었다가도 하지 않고, 사슴이 사슴으로서 있는 그대로 존재하면서 느끼는 효능감은 무엇일까? 아니, 이 효능감마저 인간만의 감정일까. 사슴은 계속해서 우리 안을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우리는 힘들게 발길을 돌렸다. 
 

우리 주변의 비인간존재에 대해 더 자주 생각할 수 있기를 ⓒ 선선

 

반딧불이의 출현

사슴농장과 멀어지자 등 뒤로 사슴과 새소리가 섞였다. 땅에서는 풀벌레 소리가 올라왔다. 우리는 이제 인적이 없는 숲을 향해 마을의 더 깊숙한 쪽으로 들어갔다. 좁은 길 하나만 있을 뿐 주변에는 인간을 위해 무엇으로도 쓰이지 않는 땅에 나무들이 제멋대로 자라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 변두리의 과거이거나 혹은 미래이기도 할 풍경. 우리는 얕은 개울물 앞에 자리를 잡고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고 더 이상 걸어가지 않은 숲의 깊은 곳을 향해 나란히 앉았다. 저녁 7시 15분. 이제부터 한 시간 정도 반딧불이가 보일 거라고 했다.

반딧불이는 빛 공해, 살충제 사용, 서식지 파괴 등으로 종의 11%는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사실 도시에서는 반딧불이를 볼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하지 않아 그 심각성을 못 느꼈다. 그런데 눈앞에 반딧불이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한둘 보이더니 조금씩 그 수가 많아졌다. 마치 밤하늘을 헤엄치는 물살이처럼, 부드럽고 유연하게 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보였다 했다. 반딧불이의 이동에 방해가 되지 않게 우리는 목소리를 낮췄다.
 
"반딧불이 처음 봐요."

"신기하죠? 풀벌레 소리도 몇 가지 종류가 들리는지 들어보세요. 동물들 소리를 구분하면 좋은 점이, 다른 존재에 의해서 이 공간이라는 것이 다시 읽혀요."

내가 있는 공간에 이렇게 집중해본 적이 언제였을까. 반딧불이, 별, 나무, 꽃, 물소리, 풀벌레소리, 새소리, 그리고 보이고 들리지 않아도 거기에 있을 존재들과 함께 인간동물 넷의 숨소리도 이 공간에 섞여 든다. 사실 보고 듣는 것도 누군가들에게만 가능한 경험이어서, 우리는 꼭 보고 듣는 것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비인간동물들과의 공존과 연대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 가지만이라도 명심하자. 우리의 가까이서, 또 멀리에서 존재하는 야생동물들의 수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그들이 살아가는 서식지가 계속해서 '인간에 의해' 파괴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여기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곳이에요." (사이)
   

밤하늘의 반딧불이 ⓒ 선선



야생동물도 주민이다

다시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본다. '살기 좋다'는 건 뭘까. 이 논의에 야생동물은 주민으로서는커녕 고려조차 되지 않는다. 나는 이제 이런 현실을 몹시 부당하다 느낀다. 이 모든 걸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돌아가는 길은 아주 천천히 걸었다. 오늘 우리의 짧은 여행이 단순히 일일체험이나 축제 참여와는 다른 것이었기를, 즐기는 게 아닌 지키기 위한 여행이었기를. 무엇보다 오늘 우리가 만난 새들, 사슴들, 반딧불이를 비롯한 비인간동물들이 살기 좋을 세상을, 이 글을 읽은 누군가는 한 번쯤 상상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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