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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도 아는 맛, 이거 한 그릇이면 속이 확 풀립니다

[오늘의 기사 제안] 시원하고 담백한 국물 맛에 반하다, 가을 아욱국과 배춧국

등록 2021.10.14 11:56수정 2021.10.14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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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생선으로 봄 도다리나 가을 전어가 제 맛이라면, 채소는 봄 머위 가을 아욱이 있다. 올봄에 내려온 지리산 아래 실상사 농장에서 농사지으며 지내는 숙소 주변으로 머위가 지천으로 깔려있었다. 쌉쌀한 맛이 쌈으로도 좋고, 나물도 맛있지만, 절 공양간 보살님의 손맛이 들어간 된장을 풀어서 끓인 머위국은 봄기운을 가득 담고 있었다.


봄과 여름을 지나면서 우주로부터 찰나의 순간에 흙속으로 내려앉은 태양 에너지의 기운이 충만한 가을이다. 씨앗을 뿌리지 않았는데도 낯익은 모양의 초록 잎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밀었다. 봄에 꽃을 피웠던 아욱 씨앗이 떨어졌고, 흙속에서 가을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우후죽순처럼 올라온 것이다.
  

가을 아욱은 맛있다 ⓒ 오창균

 
문 잠그고 먹는다

가을 아욱은 영양이 많고 맛이 좋다.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을에 먹는 맛은 특별하다. 농장 곳곳에 아욱을 심었던 자리마다 떨어진 씨앗이 자연 발아해서 올라올 만큼 절 공양간에서 아욱은 특별한 식재료였던것 같다. 지금도 농사를 짓는 스님이 가꾸는 밭에는 풍성하게 아욱이 자라고 있다.

과거에 절에서는 식량이 부족할 때 아욱 수제비를 만들어서 건강을 챙겼다고 한다. 부드러운 아욱잎은 죽으로 끓여먹기도 한다. 며칠전 공양간에서 아침에 먹은 죽을 시금치죽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욱을 넣은 것이라고 했다.

40년 넘게 절 공양간을 지킨 공양주 보살님도 아욱을 좋아한다고 하니, 사찰 음식으로 아욱은 중요한 식재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욱된장국 ⓒ 오창균

 
자연 발아된 아욱이 어느새 한 뺨만큼 자랐음을 보고 다음날 솎으러 갔다가 줄기만 남은 것을 봤다. 산에서 내려온 고라니가 먹고 간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피해라고 할 것도 없고 나눠먹는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안하다. 가을 아욱의 맛을 고라니도 아는구나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멸치와 다시마를 끓인 물에 된장을 풀어서 아욱을 넣고 텃밭에서 키운 대파, 청양고추를 썰어 넣으면 내 입맛에 맞는 시원하고 담백한 맛이 나온다. 갓 지은 뜨거운 쌀밥을 아욱국에 말아서 한 숟가락 입으로 넣으면 훈훈하고 따뜻한 기운이 온 몸을 감싸듯이 퍼진다.
  

일부러 늦게 심어서 작을 때 먹는 배추 ⓒ 오창균

 
늦게 심은 가을배추의 맛


뜨거운 밥과 따뜻한 국물이 있어야 밥을 제대로 먹은 것 같은 식습관은 오래되었다. 자박자박 끓여낸 찌개에 밥을 비벼먹거나, 시원한 맛을 내는 재료를 넣은 국을 좋아한다. 아욱과 더불어 가을의 별미로 애기배춧국이 있다.

일부러 김장배추를 늦게 심어서 속이 차지 않고 작고 여린 푸른 잎으로 끓여낸 배추 된장국이다. 두꺼운 큰 잎과 달리 부드럽고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아욱국과 똑같은 조리법에 작고 얇은 배추잎을 송송 썰어 넣었다.
  

어린 배추잎으로 끓인 된장국 ⓒ 오창균

 
근래에 찾아온 지인과 오랜만에 술잔을 기울인 다음날, 텃밭에서 한 뼘만큼 자란 배추를 뽑았다. 내 몸에서 나온 오줌을 거름으로 주고 벌레도 막지 않아서 구멍 송송이 되었지만 자연이 주는대로 먹겠다는 생각으로 키운 것이다.

동년배의 지인도 나처럼 아침밥은 꼭 먹어야 하고 국물이 있어야 밥을 제대로 먹은 것 같다고 한다. 애기배춧국으로 아침밥을 먹고 난 후에, 숙취로 조금은 무겁던 몸이 거짓말처럼 가볍고 속이 편안해졌다.

영하의 날씨로 내려가는 때에 수확하는 애기배추는 삶아서 냉동 보관 후 겨울에 배춧국으로 끓여먹기도 하고 찬바람에 말렸다가 봄에 먹으려고 한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아욱과 애기배추는 자연의 변화를 온전하게 담아낸 맛으로 밥상에 계속 오를 것이다.
#아욱 #배추 #된장 #실상사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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