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야간노동, 개인의 선택 아니냐고요? 무슨 소리를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저임금 불안정 노동 속에서 강제되는 발암물질 2급 야간노동

등록 2021.11.17 15:06수정 2021.11.17 15:06
1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을 야간노동, 과로로 내몰고 있는 한국. 그러나 야간노동을 규제하는 법률은 거의 없는 셈이다. 노동자의 생명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야간노동 규제 법안이 발의되고 통과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pixabay

 
2020년 서울신문에서 진행한 국내 야간노동·야간서비스 인식 조사에서, 야간노동을 실제로 하고 있는 노동자들 중 절반에 가까운 이들이(44.8%) '야간노동을 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서' 야간노동을 한다고 답했다. 이 중 73.5%가 야간노동으로 인해 건강문제(57.4%), 가족관계의 불화나 단절(12.6%), 여가시간 부재(22.4%), 사회적 관계 단절(7.7%)과 같은 문제를 겪고 있었다. 

한국에서 일용직을 포함하여 약 4만 명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쿠팡 풀필먼트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최근의 노동실태조사(쿠팡 물류노동자 노동조건과 건강실태 연구)에서도, 오후조(오후 4-6시~새벽 2-4)와 심야조(저녁 10시 출근-아침 7시 퇴근)의 82%가 '경제적인 이유'로 야간노동을 선택했다고 답했다.

이 업체의 경우,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으로 가는 게 매우 어렵고, 일용직이나 단기 계약직이 상당수다. 게다가 고된 노동에 비해 턱없이 낮은,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그러니 한 주당 5~6일씩 연속해서 새벽에 일을 하더라도, 통상임금의 1.5배를 주는 야간노동을 택하는 것이다.

한편, 쿠팡 풀필먼트에서 지난 1년간 발생한 노동자 사망 5건 중 3건이 야간노동자의 사망이었다. 해당 업체의 모기업에서 운영하는 또 다른 자회사인 택배사에 소속된 택배노동자의 과로사까지 포함하면, 작년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1년간 사망한 8명 중 7명이 야간노동자였다. 

한국 야간노동 규제 방식

한국에는 야간노동에 대한 규제 자체가 거의 전무하다. 근로기준법 70조 '야간근로와 휴일근로의 제한'에 유일하게 임산부와 18세 미만자를 야간근로 및 휴일근로를 시키지 못한다는 조항이 있다. 다만 당사자가 동의하거나 명시적으로 청구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고용노동부장관의 인가를 받으면 야간노동이 가능해 사실상 의미가 없다.

고용되려면 회사에서 제시하는 조건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 입장에서, 순전한 자발성에 근거한 '동의'는 불가능하다. 형식적인 제한 외에는 안전보건공단에서 제시하는 교대 작업자 건강관리를 위한 안전대책 및 수칙에서, 고정적이거나 연속적인 야간근무 작업을 줄이고, 연속 3일 이상의 야간작업 및 고정적인 야간 교대작업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라는 권고가 있는 정도(안전보건공단, 교육미디어-1023 교대 작업자 건강관리 방안)다. 


적용 예외가 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직업성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확인되어 근로자의 건강에 특히 해롭다고 인정되는 물질"은 제조·수입·양도·제공·사용을 금하고 있다. 야간노동은 화학물질은 아니지만 생체리듬을 교란시켜 암을 유발할 수 있는 2급 발암물질임에도, 그만큼 위험성을 내포한 노동 형태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야간노동 연속근무 규제가 필요하다

야간노동은 정부에게 일자리의 질과는 무관하게 형식적으로 고용률이 향상되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로, 기업에는 경쟁력을 제고하고 더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일하는 이들의 몸과 정신의 건강을 위한 규제가 없는 새,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속에서 노동자들은 불가피하게 야간노동으로 몰린다. 

9월 1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는 유통산업발전법 일부 개정안 심사에 들어갔다. 개정안에는 현재 법으로는 심야에는(자정~오전 10시) 오프라인 점포 운영과 온라인 주문상품 배송 모두 제한되어 있는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사업을 허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오프라인 점포를 거점으로 한 새벽배송 서비스를 시행할 수 있다면, "쿠팡 등에 주도권을 내준 먹거리 배송 시장을 단숨에 역전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를 내비쳤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개정안 발의 및 통과를 위해 유통업계는 지속적으로 로비를 하고 있다(MBC, '이런 근무 나올 줄은‥.지침 없는 '쿠팡식 심야노동'').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야간노동에 종사하게 될 노동자의 수는 더 증가할 것이다. 

한편, 야간노동은 한국사회의 큰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지난 10월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소속기관 등 국정감사에서, 강은미 의원은 과로사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야간노동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작년 10월, 쿠팡에서 야간노동으로 사망 1주간 주 평균 62시간 10분을 일하면서 하루 470kg의 중량물을 취급하다 사망한 고 장덕준 님의 유가족은 과로사를 막기 위한 야간노동 규제법을 제정을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다.

시민단체, 연구자들 역시 야간노동 규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야간노동을 규제하는 데는 일자리 수, 임금 등 다양한 요소들이 얽혀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는 생명, 그리고 사람이 양질의 육체적, 정신적 삶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일이다. 야간노동에 얽힌 문제들을 풀기 위해 수많은 고민을 해나가야겠지만, 이 가치를 중심에 두고 전체적인 구조의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인 김다연님이 작성하였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11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야간노동 #발암물질_2급_야간노동 #야간노동_규제
댓글1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모든 노동자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와 안녕한 삶을 쟁취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