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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형 도시재생? '창신숭인'을 보라

[서울, 도시재생은 계속돼야 ⑤] 세계도시 서울, 경쟁력을 재생하자

등록 2021.11.15 16:59수정 2021.11.1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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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기사 : 세계도시 서울, 이제는 '오징어 게임'을 끝내자
 

2010년 4월 14일 서울시 보도자료 "서울시, 신개념 저층주거지 ‘서울휴먼타운’ 조성"에 등장한 서울 휴먼타운 구상도. ⓒ 서울시


지난 편에서 밝혔듯이, 오징어 게임의 현실판이었던 재개발 사업은 더 이상 서울에 어울리는 정책이 아니었음이 드러나면서, 저층 주거지를 위한 새로운 대안으로 도시재생이 등장하였다. 서울의 도시재생은 오세훈 시장의 '서울휴먼타운' 정책(2010)에서 시작되어, 여기에 박근혜 정부의 '도시재생선도사업'(2014)과 박원순 시장의 정책 방향이 결합되면서 본격적인 '서울형 도시재생'으로 정착되었다.

'서울형 도시재생'의 특징은 서울의 절반에 달하는 저층 주거지를 밀어버려야 할 개발 대상으로만 바라보던 시각을 바꾸어 주거지로서의 가치를 인정하고, 기반시설의 개선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서울시는 강남에만 기반시설을 투자했을 뿐, 상대적으로 강북과 비강남권의 주거지에 대한 투자는 적었기에, '서울형 도시재생'이란 이제는 서울시가 살기 좋은 도시와 주거지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시민의 삶의 질을 보장하고 책임지겠다는 선언이자 매우 긍정적인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창신숭인 도시재생 선도지역
 

창신숭인의 위치 ⓒ 창신숭인도시재생협동조합


그렇다면 서울형 도시재생은 지금 어떤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가? 원래 도시재생은 10년 정도를 목표로 하는 정책이기에 지금의 평가는 상당히 이른 것이지만, 가장 먼저 사업이 진행되었던 창신숭인 지역을 통해 그 성과와 방향을 살펴보자.

창신숭인은 동대문과 인접한 창신1~3동과 숭인1동의 4개 동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한양도성과 낙산 언덕으로 3면이 둘러싸인 구릉지로 교통이 불편하지만 가내 봉제공장들이 동대문 패션시장의 생산을 담당하고 있는 곳이다.

약 3만 명의 주민이 사는 주거지이면서, 2천여 개의 봉제공장과 관련 업체가 위치하여 연간 약 1조 5천억 원어치를 생산하는 산업지역이며, 한양도성, 흥인지문, 동묘 등 문화재와 인접하고 있는 역사문화지역이고, 서울시에서 가장 먼저 주민 의사로 뉴타운이 해제된 지역이다. 이렇게 창신숭인은 다양한 정체성을 한 몸에 가진, 마치 강북 지역의 축소판 같은 마을로서 여기서 최초의 도시재생사업인 창신숭인 도시재생선도사업이 시작된 것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첫 번째 재생사업이기에 어려움도 많았는데, 현재 일반근린형 도시재생지역 면적보다 6배나 넓은 면적을 지정했기 때문에, 오히려 6분의 1의 예산으로 사업을 집행해야 했다. 그래서 서울시나 종로구의 다양한 연계사업들을 활용하여 최대한 효율적으로 해야 했고, 이 사업만으로는 도시재생이 완성될 수 없기 때문에 사업 후에도 계속 도시재생을 지속하기 위해 주민들이 도시재생기업을 만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진행이 되었다.

민간의 신축 투자
 

창신숭인 도시재생의 성과 : 민간 신축 투자액 ⓒ 손경주


창신숭인 도시재생의 성과를 살펴보기 위해 우선 가장 평가하기 쉬운 지표인 민간의 신축 투자를 살펴보자. 건축물 신축은 구청이 인허가를 담당하고 있는데, 2014년~2021년 8월까지 종로구 집계를 기준으로 민간의 신축 투자는 약 835억 원으로 파악된다.


여기에는 리모델링이나 집수리, 증축은 들어가지 않은 금액이며 산업이나 인적 자원, 기타 소프트웨어 투자 등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를 포함한다면 최소한 1000억 원 이상이 지역에 투자된 것이다.

행정이 투자한 도시재생사업비 200억 원과 비교하면 이미 민간 투자금액이 훨씬 크며, 앞으로도 민간 투자는 계속 늘어나는 것을 감안하면, 창신숭인 도시재생사업은 재생에 시동을 거는 말 그대로 마중물 사업으로서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임팩트 투자 유치
 

청년 디자이너와 봉제장인를 위한 코워킹 디자인 스튜디오 창신아지트 ⓒ 어반하이브리드


또한, 창신숭인에는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상당한 임팩트 투자가 이루어졌다. 일반적인 부동산 투자는 부동산의 가치만 올리고 임대료를 많이 받는 것이 목적이라면, 임팩트 투자란 직접적인 사업 수익만 추구하는 게 아니라 투자를 통해 관련된 경제, 문화적인 생태계까지 함께 좋은 영향을 미쳐서 장기적으로 더 좋은 결과를 창출하는 것을 지향한다.

예를 들어서 어반 하이브리드(Urban Hybrid)의 경우는 임팩트 투자 펀드 50억을 조성하여 젊은 디자이너들과 봉제 장인들의 협업 공간인 '창신아지트' 1~3호점을 마련하였다. 여기서 디자이너들이 지역의 봉제 장인과 협력하여 자기 브랜드를 런칭하고 창업하는 사례들을 만들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까지 이어지도록 돕고 있다.

또한 창신동의 사회적기업 아트브릿지는 소극장, 책방&카페, 공유 오피스, 사회주택으로 구성된 '뭐든지아트하우스'를 조성하여 청년, 지역활동가,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일하고 살면서 창신동의 문화공간을 제공하고 주민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지향하고 있다.

'아미스타'는 여성주거와 촬영스튜디오, 편집숍과 갤러리, 공유오피스 등을 결합한 종합 코워킹스페이스를 조성하여 다양한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하는 근거지를 만들고 있다. 임팩트 투자를 통해 창신숭인에는 청년들이 거주하고 일도 하고 창업도 하면서 건강한 지역의 경제‧문화 생태계를 만드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채석장 전망대의 명소화
 

채석장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서울 도심 ⓒ 손경주

 
또한 도시재생사업에서 만들어져 지역 주민들이 운영하는 시설이 바로 민간의 직접적인 투자를 이끄는 마중물이 된 사례가 있다. '창신숭인 채석장 전망대'(서울 종로구 낙산5길 51)가 이 사례인데, 전망대가 조성되면서 이 지역의 조망권의 가치가 재발견되었고, 바로 맞은편에 민간에서 지은 새로운 전망대 카페(테르트르)가 들어서면서 이 지역이 '뷰 맛집'으로 명소가 되었다.

이렇게 소문이 나면서 지금 익선동에서 활동하고 있는 도시재생 스타트업인 '(주)글로우 서울'에서 창신동을 투자지역으로 선정하고 대대적인 투자를 유치하면서 21년 11월 현재 '도넛정수', '밀림' 등이 개점하는 등 10여 개의 카페, 레스토랑 등이 개점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창신동은 수많은 방문객들이 찾아와서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레트로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네가 되고 있다.

도시재생기업의 설립과 자립
 

창신숭인 채석장 전망대의 야경 ⓒ 손경주


그리고 창신숭인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 도시재생기업(CRC)인 '창신숭인 도시재생 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앞에서 언급했듯 도시재생사업만으로 도시재생이 완성되지 않기 때문에 사업 이후에도 주민들이 재생을 지속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2017년 설립된 '창신숭인 도시재생 협동조합'은 '백남준 기념관 카페'나 '창신숭인 채석장 전망대', 도시재생 해설 프로그램과 도시재생 교육사업 등을 통해 30인 이상의 고용창출 성과를 올렸다.

특히 이번 2021년에는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전년 대비 매출이 300% 성장하면서, 완전히 자립하는 첫 번째 도시재생기업이 되었다. 특히 앞에서도 언급한 창신숭인 채석장 전망대에서는 외부 방문객을 대상으로 한 '카페 낙타'를 운영하며 지역 청년 3인을 고용하고 있고, 뛰어난 조망을 활용하여 창신동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지역의 변화를 유도하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 뿐 아니라 주민공동이용시설 2곳('회오리마당', '수수헌')을 주민의 문화공간으로 제공하면서 지원금 없이 조합의 부담으로 운영하고 있고, 지역 내의 여러 가지 문화공간과 지역 단체, 주민을 연계하는 네트워킹도 하고 있다. 또한 종로구의 '안전안심 골목길 조성사업'이라는 지역의 기반시설 사업에 참여해서 도시재생기업이 주민의 의견을 모아 시설사업에 반영하도록 하는 역할을 직접 수행하기도 했다.

'사람재생'
 

청년 데님 디자이너 그룹 GMH(Geeks' Maker's Hub)의 전시 ⓒ Geeks' Maker's Hub


재생 전과 후를 비교하면 체감되는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새로운 사람들의 유입이다. 도시재생 이전의 창신숭인은 거주하는 주민, 그리고 봉제공장과 관련된 사람들만 드나들던 마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청년 디자이너들과 지역에서 새로운 창업과 기회를 꿈꾸는 이들, 문화, 예술, 사회적경제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 지역의 경관과 역사문화에 매력을 느낀 새로운 방문객들과 다양한 유동인구들이 몰려오는 곳이 되었다.

주민들도 마을의 역사‧문화‧산업적 가치를 알게 되면서 차츰 마을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을 되찾게 되었고, 이들의 요구로 마을 출신 예술가 백남준의 기념관이 지어졌으며,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에서는 마을 봉제인들의 제품이 전시되고 주민과 봉제인이 직접 도슨트가 되어 봉제산업을 소개하고 있다.

이렇게 창신숭인 도시재생에서는 지역에 애착과 자부심을 가지고 변화를 이끌어갈 수 있는 새로운 사람들의 유입과 주민의 변화를 유도하는 보다 근본적인 '사람재생'을 이루어가고 있다.

서울의 경쟁력 강화
 

흥인지문(동대문)과 한양도성 ⓒ 이영만


이렇게 창신숭인 도시재생은 행정의 도시재생사업으로 시작하여 민간의 참여와 투자, 주민들의 도시재생기업 창업과 자립, 새로운 사람이 유입되고 주민이 변화하는 '사람재생'으로까지 이어지는 성공적인 사례가 되었다.

창신숭인이 도시재생이 아니라 재개발이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3만 명의 주민 중 80%(2만 4천 명) 이상이 밀려났을 것이다. 2천여 개의 봉제공장과 연계산업, 수만 명의 일자리와 연간 1조 5천억 원의 생산, 나아가 동대문 패션의 경쟁력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빌딩 숲에 둘러싸인 한양도성과 흥인지문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있을 것이다.

세계의 문화컨텐츠 수도를 지향하는 서울의 경쟁력을 이렇게 어디에나 있는 아파트로 바꿔버렸다면, 지금쯤 우리는 정말 후회하고 있지 않았을까? 2014년 창신숭인 주민들이 도시재생을 선택했기 때문에, 주민들이나 봉제공장들, 골목상권이 밀려나지 않으면서도 창신숭인 지역은 새로운 변화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으며, 서울의 경쟁력도 지켜낼 수 있었다. 

'사람 재생'을 통한 서울형 도시재생

'서울형 도시재생'이 지방의 재생과 다른 이점이 있다면, 그리고 서울만이 가진 핵심자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이다. 지방도 얼마든지 최신 유행의 공간을 창출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서울은 다양한 인적 자원과 사람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서울의 도시재생은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장소의 매력을 만들고 이들과 기존 지역이 융합하는 화학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재생사업을 통해 지역에 애착과 자부심을 가지고 지역을 만들어가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사람재생'이 이루어질 때 이 변화가 시작되고, 그 이후에는 이러한 사람들과 지역이 함께 반응하여 자생적으로 창의적이고 경쟁력있는 도시공간을 만들어가게 된다.

창신숭인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이러한 '사람재생'이 바로 세계도시 서울의 경쟁력을 키우는 서울만의, 서울에 의한, 서울을 위한 '서울형 도시재생'의 목표이며 방법론이다. 서울도 우리나라도, 우리의 가장 큰 자원은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도시재생 #서울 #도시경쟁력 #서울형도시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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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숭인 도시재생 협동조합 이사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도시설계학 박사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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