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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화재가 누전? 그거 말고도 봐야 하는 게 있다"

[인터뷰] 군산 화재참사 기획전시 '다시 쓰다' 기획자 3인

등록 2021.11.19 09:22수정 2021.11.19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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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다'전시장 전경 ⓒ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2000년 9월 19일, 전라북도 군산 대명동의 일명 '쉬파리 골목'의 한 성매매업소에서 발생한 화재로 5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불은 건물 2층에서 발생했지만 위아래로 다닐 수 있는 계단은 철문으로 굳게 잠겨 있었고 창문은 쇠창살로 막혀 누구도 탈출하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1년 4개월이 지난 2002년 1월 29일, 대명동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군산 개복동의 유흥주점에서 또다시 화재참사가 발생하여 14명의 여성들이 사망했습니다. 이 두 사건은 한국사회 성매매의 실태와 여성인권의 착취적인 상황을 고발하며 반성매매 여성인권운동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지난 2020년은 대명동 화재참사 20주기가 되는 해였습니다. 그리고 내년인 2022년은 개복동 화재참사의 20주기입니다. 이에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이하 전국연대)에서는 작년 한 해 동안 화재참사와 관련된 기록을 수집하였고 올해 군산 화재참사 기획전시 '다시 쓰다'를 열었습니다.

전시를 준비한 전국연대 이하영 공동대표, 유영 활동가, 그리고 박소영 작가를 지난 9일 서울 성북구에 있는 전국연대 사무실에서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남발되고 색이 바랜 인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자"

- 서울에서 군산 화재참사를 주제로 한 전시를 여는 것은 처음입니다. 어떻게 이 전시를 기획하게 되셨어요?
하영 : "군산 화재참사가 발생한 지 20년이 됐어요. 그 20년 동안 참 많은 변화가 있긴 했어요. 성매매가 여성폭력이라는 인식도 생겼고 성매매여성이 피해자라는 이해도 생겼구요. 그리고 여성들을 지원하는 법과 시스템도 만들었죠. 그럼에도 성매매 규모나 현장이 변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아요.

지난해 n번방 사건처럼 더 교묘하고 새로운 방식의 성착취도 등장하고 있고, 여전히 성매매여성에 대한 착취와 낙인도 그대로 남아 있어요. 그래서 이 운동의 시작을 돌아보면서 현재를 점검하고 새로운 변화를 꾀하자는 취지로 '다시 쓰다'전을 기획하게 되었어요."


유영 : "저는 사실 이 사업을 신청할 때는 함께 있지 않았어요. 화재참사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고 전시를 준비하면서 알게 됐어요. 그래서 작년에 전국연대에서 만든 <나비자리, 그 후>(2020년 한국여성재단의 후원으로 군산 화재참사와 이후 성매매방지법 제정까지의 반성매매 운동을 담은 책)를 여러 번 읽었어요. 전시회 제목도 이 책의 글에서 따온 거예요.

저는 군산 화재참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단지 이 사건이 안타깝고 참혹한 대형참사라는 것보다는 이 사건을 통해 사람들과 사회의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군산 화재참사 대책위 활동은 이 사건을 누전과 개인의 부주의로 일어난 사고로 넘어가려고 하는 세상에 '아니다, 그거 말고도 봐야 하는 게 있다'고 말하면서 더 많은 것들을 질문하고 발견했어요.

불운한 사고가 아니라 책임자가 있는 사건으로 다시 쓰는 활동이었죠. 이런 부분을 기억하고 싶어서 전시회 제목을 '다시 쓰다'로 정했어요. 그리고 위에서 말한 대책위 활동을 담은 '사고에서 사건으로' 섹션과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사건에서 인권으로' 섹션을 마련했습니다.

마지막 섹션은 '인권에서 성평등으로'인데요, 인권이라는 말이 가끔은 모호하게 느껴지기도 하잖아요. 성매매의 경우 성매수도 인권이라고 하고, 업주들은 업소 운영이 자신들의 인권이라고도 해요. 이 남발되고 색이 바랜 인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자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섹션은 한국의 대표적인 집결지인 서울 미아리 집결지를 주제로 잡고, 이곳을 경험한 여성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제작한 작품들을 전시했어요. 인권을 말할 때 어떤 관점이 필요할지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해요."

"황무지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었던 분투를 기억함으로써"
 

2002년 개복동 화재참사 현장에서 발견한 유품 및 물품. ⓒ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 여기 모인 분들은 화재참사 당시를 경험한 분들은 아닌데요, 그래서 화재참사에 대한 마음이 조금씩 다를 것 같아요. 각자에게 군산 화재참사는 어떤 의미인지, 어떤 마음으로 전시를 준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하영 : "저는 당시 현장을 보지 못했고 그때 상황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이 사건을 기억함으로써 여성들의 희생과 이 운동을 만들었던 선배들을 기억하려고 해요. 지금보다 더한 황무지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었던 분투를 기억함으로써 오늘도 힘을 내는 거죠."

유영 : "저는 군산 화재참사라는 사건 그 자체보다는 이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이 어떤 움직임을 만들어냈는지, 그 부분에 더 관심이 가요."

소영 : "저도 유영님처럼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화재참사에 대해 알게 됐고, 군산도 처음으로 가서 화재가 난 장소를 두 눈으로 보게 됐어요. 겉보기에는 다른 곳들과 다르지 않은 공간들이 순례단(전국연대는 군산 화재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매년 민들레순례단을 떠난다)이 방문하고 묵념을 하고 할 때 비로써 그 장소성을 회복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국에서 같은 뜻으로 모인 분들을 보면서 이 사건이 정말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걸 실감하기도 했구요. 저도 매년 9월이 오면 다시 한번 반성매매를 곱씹는 시기가 될 것 같아요."

- 박소영 작가님은 어떻게 이 전시에 함께 하시게 되었나요?
소영 : "이전에도 '미아리집결지'를 주제로 작업을 했었어요. 하지만 이전 작업들은 미아리의 표면적인 모습이나 분위기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었거든요. 제가 알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으니까요.

반면에 이번 작업들은 미아리를 경험한 여성들의 목소리와 기억에 기반해서 더 새롭게 접근할 수가 있었어요. 어디서도 들을 수 없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두 귀로 듣고, 이걸 사회에 전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는 생각에 전시에 함께 하기로 결정했어요."

- 전시를 준비하다 보면 여러 자료들도 봐야 하고, 표현방식과 내용 등등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새롭게 알게 되거나 의미 있었던 부분이 있을까요?
소영 : "이전에는 제 감각이나 감정에 기반해서 작업을 했었어요. 그래서 제가 느낀 감각을 전달하는 데 중점을 뒀었거든요. 근데 이번에 타인의 이야기를 작업화 하면서 내가 이 이야기를 왜곡하지 않고 잘 해석해서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됐어요.

아직 경험을 나눠주신 분들이 제 작품을 보지 못하셔서, 보신 이후에 어떠셨는지 말씀을 꼭 듣고 싶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일대일 작업을 하게 된다면 이번처럼 당사자 분들과 함께 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분들에게 우리의 운동이 가서 닿을 수 있기를"
 

박소영 작 'home sweet home' ⓒ 박소영

 
- 이 작품만은 꼭 봐야 하는,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이 있으시다면 소개해 주세요.
유영 : "저는 박소영 작가님이 작업하신 'home sweet home'이 좋았어요. 작품에 조명이 달려있는데 사람들의 움직임에 반응해 켜진다는 점이 인상적이었고요. 인터뷰 내용을 따와서 집결지를 '집'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여러 의미가 들어있는 것 같아요."

하영 : "저는 아무래도 현장에서 가져온 유품들이 마음에 남아요. 그때 희생된 언니들이 말을 거는 것 같기도 하고... 그때 언니들이 소망했던 것들이 이제는 이뤄졌나, 하면 아닌 것 같아요. 지금도 같은 소망을 갖고 있는 여성들이 있을 건데, 그분들에게 우리의 운동이 가서 닿을 수 있기를 바라요."

소영 : "저도 유품이 제일 의미 있는 것 같아요. 창문을 가리고 있던 그을린 합판과 그 위에 그려진 그림도 그렇고 아크릴 박스 안에 20년 동안 고스란히 보관된 유품들을 보면서 가려져 왔던 여성들의 삶을 수면 위로 올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느껴졌거든요. 또 뉴스 기사나 글로 접했을 사건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게 되는 거기도 해서 보시는 분들도 감회가 새롭지 않을까 싶어요."

- 마지막으로 '다시 쓰다'전을 관람한 관람객들에게 이 전시가 어떤 의미로 남으면 좋을까요?
유영 : "개인적으로 전시를 준비하면서 사건(군산 화재참사)에 대해 극적인 말들은 빼려고 노력했어요. 착취의 형태는 점점 세련돼지고 있으니까요.

상징적으로 창문을 가린 합판과 철문을 가져왔지만 구체적인 물건과 착취의 형태를 기억하기보다는 이 물건이 그 현장에 있을 수 있었던 건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이걸 방관하고 외면한 지역사회와 여성들을 그곳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한 사회구조가 있기 때문이라는 걸 기억해 주시면 좋겠어요.

하영 : "맞아요. 성매매라는 주제가 어떻게 보면 낯설고 멀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우리 일상 곳곳에 있고, 나와 가까이 있는 이슈이기도 해요. 우리가 알면서 외면하는 문제구요. 그래서 저희가 전하고 싶은 말은 이 일상을 외면하지 말자는 거예요.

지금도 착취되는 여성들을 외면하지 말자는 거구요. 미투운동도 위드유가 있어야 가능했던 것처럼 성매매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끊임없이 말을 거는 성매매여성들의 말과 목소리에 관람객 분들도 관심을 갖고 응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소영 : "저도 성매매가 특정 여성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거, 이들도 같은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성산업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 삶이랑도 되게 밀접하고. 그래서 이게 우리 모두의 일임을 기억해 주셨으면 싶어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상황이 얼마나 기울어져 있고 기괴한지 알 수 있거든요."

유영 : "저는 그리고 반성매매 운동이 구체적인 맥락과 역사가 있는 운동이라는 것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성산업은 사실은 국가의 암묵적인 승인 덕분에 몸집을 불려온 산업이잖아요. 군산화재참사 당시에도 경찰이 업주에게 뇌물 받고 소방공무원은 서류를 허위로 작성한 정황들이 있고요.

거기에 여성운동은 국가가 왜 존재하는지를 질문하면서 국가를 책임자로 계속 지목해왔어요. 그리고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판결도 이끌어냈죠. 최근에는 여성인권을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성매매여성을 단죄하는 어떤 흐름 같은 게 보이기도 하는데, 이런 아이디어를 다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누구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요."
덧붙이는 글 군산 화재참사 기획전시 '다시 쓰다-사고에서 사건으로, 사건에서 인권으로, 인권에서 성평등으로'
▷기간: 2021년 11월 17일(수) ~ 23일(화) / 화-금 10am~19pm / 토,일 11am~18pm / 월요일 휴관
▷장소: 팔레 드 서울 1F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10길 30) 주차공간이 없으니 인근 공영주차장 또는 대중교통 이용을 바랍니다.
▷주최·주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후원: 한국여성재단
▷문의: 02-312-8297 / 2004-609@hanmail.net
#여성인권 #전시회 #성매매 #군산화재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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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활동가. 반성매매/반성착취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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