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자영업자 폭력 보고서 열린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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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21.12.01 06:09최종 업데이트 21.12.01 06:09

"꽃집의 아가씨는 예뻐요~"
이 노래가 섬뜩한 이유

[열린 문 - 여성 자영업자 폭력 보고서 ③] 꽃집 10곳 중 8곳 "남성이 위협했다"

단순 업무방해, 주취폭력이 아니다. 이것은 젠더폭력이다. 여성 자영업자 102명을 만났다. 여성 자영업자 대상 범죄 판결문 287건을 집중 분석했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열린 문'의 공포였다. 가게의 문은 가해자에게도 열려 있어야 한다. 가해자가 마음먹으면 언제고 그 문을 열고 침범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경찰도 법도, 열린 문을 막아설 안전장치가 되지 못했다. <오마이뉴스>는 여성 자영업자를 상대로 한 젠더폭력 실태를 최초로 분석·보도한다. <편집자 말>
꽃집의 아가씨는 예뻐요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그녀만 만나면은 그녀만 만나면은 내 가슴 울렁울렁 거려~ (봉봉사중창단 <꽃집 아가씨> 1967년)
1967년에 발표된 이 노래 <꽃집 아가씨>를 만들 때에는 호의를 담으려 했을 것이다. 꽃집 아가씨를 향한 선망도 느껴진다. 그랬기에, 50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도 멜로디를 흥얼거릴 수 있을 만큼의 대중성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사의 뒷 부분은 사뭇 다르다. 아름다움을 칭송하기에 그치지 않는다. 밉다고, 얄밉다고 평가한다. 한 번 웃어주면 '미친다'고 말한다.
꽃집의 아가씨는 미워요 그렇게 미울수가 없어요. 남들이 보는 앞엔 남들이 보는 앞엔 얄밉게 쌀-쌀-해져요. (중략) 어쩌다 한-번만 웃으면 마음이 약한 나는 미쳐요. (봉봉사중창단 <꽃집 아가씨> 1967년)
여성 자영업자 폭력 보고서

ⓒ 권우성

노래 부르는 화자를 일주일에 2번씩, 한 달 내내 지속적으로 방문한 손님으로 상상해보자. 노래의 장르는 완전히 달라진다. 올해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꽃집을 개업한 A 사장님은 직원으로 다른 꽃집에서 일할 때 이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 손님은, 다른 손님도 없고 A씨가 혼자 있을 때만 꽃집을 방문해 말을 걸었다고 한다. 단답으로 대답하거나 무시하면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아냐"고 화냈다가 이내 사과했다고 한다. A 사장님은 "꽃을 사서는 내게 그 꽃을 주고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한 주에만 두 번씩 꼬박 한 달 동안 반복됐다. 경찰에 신고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고 했다. 경찰은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아 처벌을 못한다"며 그 남자에게 "오지 마세요"라고 말한 게 전부였다고 한다.
"그 사람이 오면, 그냥 꽃집 바깥으로 나갔어요. 그게 제일 안전하거든요."
<오마이뉴스>가 인터뷰한 망원동 꽃집 10곳 중 8곳의 여자 사장님은 망원동에서 꽃가게를 운영하며 남성에 의한 직접적인 위협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불청객의 방문... "지금 생각해도 소름끼쳐요"

B사장님은 "지금 생각해도 소름끼친다"며 비 오는 날 저녁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손님이 드문 시각, TV를 보며 일과를 마무리하던 평화는 삽시간에 깨졌다.
"지팡이를 짚은 남자가 화분을 가리키며 '이거 얼마?' 하면서 들어오더라고요. 이 가게는 화분이랑 꽃 때문에 통로가 좁으니까 구석으로 몰리면 분명히 위협당할 거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일단은 빠져나가려고 하니까 이 사람이 나를 막더라고요. 덩치가 컸어요. 그래도 막무가내로 나갔어요. 그랬더니 밥 먹게 돈을 달라는 거예요. '일해서 드세요'라고 하니까 소리를 지르면서 쌍욕을 하더라고요. 30분 동안 소란을 피웠어요. 요즘은 조금만 이상한 낌새가 있거나 술취한 손님이 저녁에 오면 밖으로 나가요. 구석으로 몰리면 안 되니까요."
B사장님은 "그 뒤로 '일해서 드세요'라는 말은 절대 안 하게 됐다"고 말했다. 2017년 첫 창업으로 꽃가게를 연 C사장님은 손님의 위협을 받고 가게를 옮기기까지 했다. 반지하지만 통창으로 돼었던 이전 가게에 만취한 아저씨가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오려고 했다고 한다. 대낮에 있었던 일이었다.
"(통창을 사이에 두고 눈이 마주쳤는데) 갑자기 오싹하고 너무 무서워서 그 분이 문을 잡기 직전에 문을 탁 닫았어요. 그랬더니 풀린 눈으로 저를 빤히, 한참을 쳐다보다 가는 거예요. 비 오는 날에 일어난 일이었어요. 1년 만에 다른 곳으로 가게를 옮겼죠."
이후로 사장님은 머리 속으로 상황을 그려보는 버릇이 생겼다고 했다.
"나 혼자 있는데 남자가 들어와서 나를 해치려고 하면 어디로 도망가야 하지,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비 오는 날은 더 그래요. (그런 날엔) 손님을 봐도 진짜 손님일까? 의심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가게에 문이 두 개 있는데) 제가 작업하고 있는 쪽이랑 연결되는 문은 비가 오면 닫아놔요. 남자가 테이블을 넘어서 내가 있는 쪽으로 넘어오는 동안 나는 빨리 도망칠 수 있다, 그런 상상을 하거든요."
집 다음으로 가장 오래 머무르는, 생계를 위해 꼬박꼬박 출근해야 하는,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인 일터에서 여성 사장님들은 위협을 마주했다. '열린 문'으로 위협이 걸어 들어올까봐, 이 곳을 벗어날 궁리를 해야만 했다. 테러에 대응할 자신만의 매뉴얼을 만들어야만 했다. 직접적 위험을 경험한 이후로는 '금기어'마저 생겼다. 술 취한 아저씨가 '닫혔음' 팻말을 걸었음에도 밀고 들어와 집요하게 악수를 요청한 경험, 함부로 꽃을 만지는 취객에게 "죄송하지만 취객은 받지 않는다"고 얘기했음에도 가게 주변을 떠나지 않고 어슬렁댔던 경험, SNS DM(SNS 이용자끼리 주고받을 수 있는 메시지)으로 스폰 제의를 받은 경험, 꽃을 "싸게 달라"며 몸을 만진 경험 모두 꽃집 사장님들이 겪은 일들이었다.
여성 자영업자 폭력 보고서

ⓒ 권우성

노래, 희롱의 도구

꽃집 사장님들은 노래 <꽃집 아가씨>가 희롱의 도구가 됐다고 했다.
"꽃집 아가씨는 예쁘다는데 이 집 아줌마는 안 예쁘네, 그런 얘기 들어봤어요." (B꽃집 사장)
"꽃집 아가씨는 예뻐요~노래에 나를 빗대서 치근덕대고, 팔 부분을 터치하거나 했어요." (D꽃집 사장)
"두 사람이 들어와서는 한 아저씨가 '꽃집 아가씨는 예뻐요' 이러면 다른 아저씨가 '그렇게 안 예쁠 수는 없어요'라고 하더라고요." (E꽃집 사장)
누군가가 흥얼거리는 <꽃집 아가씨> 멜로디가, 누군가에게 섬뜩할 수 있는 이유다. 여성 1인 자영업자의 범죄 노출에 대한 보고서 '여자 혼자 장사하기'를 발표한 추지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해자들이 꽃집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이유에 대해 "꽃을 사면서 '꽃과 같은 미소'를 함께 소비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니 '꽃집의 아가씨는 예쁘다'며 치근덕대는 걸로 이어진다"라며 "꽃, 꽃집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나 여성화된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여자가 사근대야지' 등 감정 노동 서비스를 제공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F꽃집 사장님은 굳이 몸을 건드리며 괜한 얘기를 물어보는 남성에게 반응하지 않았더니 "여자가 싹싹한 맛이 있어야지"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10년째, 20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며 꽃집을 운영해왔다. B 꽃집 사장님은 "그래도 꽃집은 나보다 남을 생각하고 오는 사람이 99%"라고 말했다. 10년 동안 꽃집을 운영한 F사장님 역시 "아무래도 꽃은 기쁜 일과 연관돼있으니 꽃다발 하나 사 가시더라도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26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킨 G 사장님은 "꽃은 감성적인 거라 프로포즈 할 때라든지 좋은 일에 쓰인다"면서 "유치원생일 때 봤던 애들이 결혼해서 올 때 보람된다"고 전했다.

자구책, 약자들의 연대

여성 자영업자 폭력 보고서

ⓒ 권우성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며 뜻깊은 일로 꽃을 찾는 '남을 생각하는' 손님들이 있는데, 1% 때문에 꽃집을 그만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추 교수는 "여성 자영업자들은 '폭력의 두려움'을 느끼고 있음에도 '두려움에 떨고만' 있지는 않는다, 범죄가 심각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억척같이 대응할 역량도 살아있다"면서 "두려움에만 떨며 장사를 그만두면 생계가 위협받는다, '두려움에 떠는 여성 자영업자'가 일상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H 꽃집 사장님은 젊은 여자 사장님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남겼다. 10년 동안 터득한 자구책이다.
"밤중에 술 취한 남자들이 들어와서 위험한 순간들도 있었죠. 저도 처음에는 되게 무서웠어요. 확실히 아저씨들이 젊은 여사장님한테 접근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희롱 발언도 하고요. 그럴 때는 '이러면 경찰에 신고해요'라고 직접적으로 말해요.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지 않으면 더 심해지더라고요. 말하면서 절대 웃지 마세요, 그게 중요합니다."
사장님들은 스스로가 누군가의 자구책이 되어주기도 한다.
"옆에 카페하는 아가씨가 남자 손님이 계속 안 나간다고 해서, 무서우면 전화하라고 했어요." (G 꽃집 사장)
"원래 여기가 우범지역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최근까지 24시간 간판 불을 켜놓았어요. 거리가 어두우니까 같은 여자 입장에서 무서울 거 같더라고요. 지금도 새벽 1시에 간판 불이 꺼지게 해놨어요. 귀가하는 여자분들 덜 무서우라고요." (E 꽃집 사장)
그렇게 여자 사장님들은 스스로를, 옆 가게 다른 여자 사장님을, 이름 모를 여성들을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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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이주연·이정환·홍하늘 사진 : 권우성 | 제작 : 이종호 | 개발 : 황장연 독립편집부 facebook.com/ohmyeum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Designed and built by 이공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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