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10년 안에,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산업을 재창조할 것이다."
- 미국 기업가 피터 디아만디스(Peter H. Diamandis)
<시사IN>에서 주최한 인공지능 컨퍼런스에서 AI혁명을 주제로 발표한 엑스프라이즈재단 회장 피터 디아만디스가 <시사IN>과의 인터뷰 말미에 덧붙인 말이다. 2016년 구글의 '알파고' 이후 5년이 지난 지금 인공지능은 데이터 분석과 학습을 넘어 추론과 창작이 가능해져 인간의 뇌에 더 근접한 '초거대 인공지능'으로 불린다.
▲ 인공지능이 글쓰기를 하다니 ⓒ GETTY
솔직히 인공지능이 인간을 닮아가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초거대 인공지능은 인터넷에 있는 글과 책 수천 권을 학습하고 나서 사람이 쓴 것처럼 복잡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문장을 만들 수도 있고, 문자 명령어를 가지고 이미지를 그릴 수도 있다.
또 인간의 고유한 영역으로 여겨지던 창의적 작업을 이제는 컴퓨터도 할 수 있다. 인공지능 발전으로 만들어질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기대보다는 인공지능과 경쟁해야 하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같은 컨퍼런스에서 네이버 클로바 CIC 정석근 대표가 소개한 초거대 인공지능 '하이퍼클로바'는 이미 우리 실생활에 매우 가깝게 다가와 있었다. 하이퍼클로바는 맥락을 이해하면서 대화를 하고, 안부 전화까지 할 수 있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열어가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맞다. 기술 변화 속도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빨라졌고, 변화가 가져오는 결과는 파괴적이다. 이 변화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인공지능이 조력자 역할을 해 인간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할 것인지, 인공지능으로 인해 인간들은 일자리를 잃고 불행한 미래를 맞이하게 될지. 확실한 것은 내가 맞이할 미래는 불확실성이 더욱 커진다는 점이다.
창의력을 발휘하는 일은 안전할까
그나마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니 당분간은 인공지능에게 일자리를 내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까? 그렇지도 않다.
초거대 인공지능은 사람처럼 글쓰기도 하고 맥락을 이해하며 대화하는 수준으로 발전했고, 연구개발 분야에서는 사람은 할 수 없는 방대한 데이터를 아주 짧은 시간에 학습하고 분석한다. 앞으로 5년, 10년 동안 발전할 인공지능의 수준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미 인공지능 연구원은 내 경쟁자다. 다부스(DABUS)라는 인공지능이 낸 특허가 여러 국가들에서 거절 당해 왔는데, 최근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호주에서 인공지능이 발명자로 인정을 받았고 특허도 받아들여졌다. 다부스는 두 개의 인공지능이 강화학습을 통해 다양한 주제를 서로 연결하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방식으로 발명한다고 한다. 내가 하는 발명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공지능이 이슈가 되자 직장에서도 각자 담당하고 있는 업무에 인공지능을 활용해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공학도 출신이지만 코딩도 할 줄 모르는, 손으로 뭔가를 만들고 실험을 하던 게 전부인 연구원에게 업무에 인공지능을 활용하라니... 막막했지만 해보는 수밖에.
인터넷 검색창에 "인공지능 + (OOOOO)(내가 하는 업무)"를 입력하니 생각보다 많은 자료가 검색되었다. 내가 속한 분야에서도 벌써 몇 년 전부터 그동안 쌓여 온 방대한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이용한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몇 가지 논문들을 추려내 내 업무와 가장 가까워 보이는 것들을 정리/요약해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짧은 보고서를 썼다. 결국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업무를 실제로 진행하지는 않았지만 최신의 트렌드를 확인하고 앞으로 이 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정도는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뜬금없이 '인공지능을 자기 업무에 적용해보라'와 같은 일은 지금까지보다 앞으로 남은 직장생활 동안 훨씬 더 잦아질 것 같다. 익숙하지 않아서 불편한 상황에 놓이는 경우도 많아질 것이고, 과거의 성취보다는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얼마나 성취할 것인지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이 같은 미래를 살아내려면 새로운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적응하기 위해 계속 공부하는 수밖에 뾰족한 방법은 없는 것 같다. 과거의 지식에 갇히지 않고 새것을 끊임 없이 배울 수 있는 공부 근육을 키워야 앞으로 직장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 듯하다. 이번 인공지능 과제를 경험하면서는 그동안 나름대로 공부 근육을 잘 키워왔다는 생각도 든다.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로에서 일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던 스티브 잡스의 조언을 따라 인문학 소양을 갖추기 위해 꾸준히 읽고, 글 쓰던 연습이 많은 도움이 된다. 새로운 상황에서 핵심이 무엇인지 빠르게 이해하고, 과거의 지식과 경험을 새로운 상황의 맥락에 맞게 연결할 줄 아는 힘이 자연스럽게 길러진 것 같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요즘은 속도 또한 중요하다. 배워야 할 것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혹은 재빠르게 배우는지가 앞으로 일터에서의 경쟁력이 될 것이다. 효과적으로 배우는 방법들을 검색해보면 '호기심', '실험하기', '다양한 영역들에서 연결점 찾아보기', '반추하기'와 같은 말들이 자주 나온다.
공부 근육을 키우자
▲ 공부하자 ⓒ pixabay
결국 앞으로의 직장생활에서도 호기심을 유지하며,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배우는 과정을 다시 돌아보는 연습을 꾸준히 실천할 수밖에. 다양한 책을 읽고 서평, 혹은 감상을 써오던 연습을 한 2년여 간 중단했는데, 이를 다시 시작해야겠다. 다만 책만으로는 최신 트렌드나 이슈를 따라가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다. 특정 주제나 사회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주간지나 월간지도 계속 구독할 것이다.
주간지나 월간지를 읽는 것은 최신 이슈에 대한 호기심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여기서 관심을 가지게 된 분야나 주제를 더 깊이 다룬 책을 찾아보는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지식들이 쌓여가면서 다양한 영역들을 연결해 보는 새로운 시도도 해보게 된다.
또 한 가지, 새로운 언어 배우기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하나 더 생기는 건 세계와 소통하는 창을 하나 더 내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출간하는 월간지를 구독하면서 시작한 프랑스어 배우기는 여러모로 유익하다. 5년을 연습했어도 유창하게 프랑스어를 구사하지는 못하지만, 프랑스어로 된 글은 단어를 찾아가며 읽고 이해하는 수준까지는 익숙해졌다.
논문을 찾을 때나,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언어가 하나 더 생겼다. 자연스럽게 프랑스 문화나 역사, 혹은 인물들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많아졌다. 이는 다양한 영역 혹은 경험을 서로 연결시켜 보는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음악을 듣거나 요리를 하듯 취미로 삼고 있는 언어 배우기는 지속적으로 배우는 습관을 유지하게 해준다.
실패가 배움으로 이어지려면
배움은 호기심으로 시작해 반추로 완성되어 간다. 배운 것을 체계적으로 깊이 생각하며 되새기면 배움의 효과가 배가된다. 성공적인 경험보다는 실패의 경험에서 더 많이 배우게 되는데 반추하기는 실패에서 교훈을 얻는데 더 효과적이다. 모든 실패가 당연하게 배움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수많은 실험을 해왔다. 성공보다는 실패의 경험이 훨씬 많다. 흔히 실험-실패-배움의 사이클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이 사이클에는 반추가 추가되어야 한다. 반추 없는 실패는 계속되는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실패의 경험이 배움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실패의 스펙트럼을 이해하고 내가 경험한 실패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 다양한 실패 원인 ⓒ 이훈희
가장 왼쪽에 있는 나쁜 실패는 경험하지 않는 편이 좋다. 한편, 실패의 원인이 오른쪽에 있을수록 교훈과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반추하기는 실패의 원인을 확인하고 확인된 원인의 양상에 따라 개선점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반추는 바둑에서 복기와 유사하다. 실패를 반추할 때 바둑 기사들이 복기하며 의견을 교환하듯 자신과는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과 의견을 나누면 더 효과적이다.
인공지능이 일터를 어떤 식으로 변화시킬지 예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변화의 양상은 때를 놓치지 말고 알아채야 하겠다. 계속 읽고 쓰며, 과거 지식과 최신 지식을 연결해 보고, 호기심을 유지하며 새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태도를 견지하고, 배움이 이루어지는 실패를 경험하면서 일터의 변화를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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