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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부부가 왜 지리산에 살림을? 춤추고 싶어서요

[지리산 힙쟁이] 눈치 보지 말고 놀자, '놀룩' 세현과 행자 ①

등록 2021.12.16 05:55수정 2021.12.16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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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 1번지 지리산권(구례, 남원, 하동, 함양, 산청)에 사는 청년들은 독특하다. 퀴어, 페미니즘, 동물권, 비혼·비출산, 탈성장 등 진보적 의제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작지만 놀라운 실험을 벌인다. 그들은 왜 지리산 시골을 무대로 택했을까. 이전 귀농·귀촌 세대와 무엇이 다를까. 남원시 산내면 등을 중심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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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현(왼쪽)과 행자(오른쪽)는 춤추고 노래하며 자유롭게 살고 싶어 전북 남원에 신혼살림을 챙겼다. 그들은 그들의 소신대로 집 앞에서 버스킹을 하며 동네 주민들과 재밌게 살고 있다. ⓒ 김혜리

 

식당 앞에서 덩그러니... 이런 시골 버스킹 본 적 있나요 '놀룩'의 행자와 세현이 집 근처인 전북 남원시 아영면 농협 인근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다. *영상 출처 : https://youtu.be/z8tv7WUw80s ⓒ 놀룩

 
이동식 스피커와 마이크, 그리고 가수.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리 공연(버스킹)의 모습이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는 남성 뒤 배경이 낯설다. 보통 버스킹은 고층 건물과 상점이 즐비하고 유동인구가 많은 시내 중심가에서 하는데, 이곳은 어찌된 일인지 썰렁하다. 주변엔 마트와 농협, 식당,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가 전부다. 저 멀리엔 마천루가 아닌 드높은 지리산이 보인다.

호응하는 관객은 앞치마를 두른 인근 가게 사장, 그리고 이따금 지나가다 신기한 듯 쳐다보는 몇몇 동네 주민뿐. 공연 중간엔 갑자기 어떤 여성이 나타나 노래에 맞춰 즉흥 댄스를 선보인다. 버스킹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이색 공연이 펼쳐진 무대는 전북 남원시 아영면. 포도가 유명한 농촌 지역이다. 버스킹을 펼친 두 젊은이가 운영하는 인스타그램을 보면 더욱 신선하다. 논밭 앞에서 유행하는 숏폼 댄스를 추고 등에 스피커를 메고 전통시장에서 랩을 한다. 이들은 누구인가. 왜 산골 동네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는가.

결혼하자마자 시골에 살림 차린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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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결혼생활 시작과 동시에 모든 걸 멈췄다. 세상의 기준 말고 우리만의 기준으로 살자며 머리를 맞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 김혜리

  
팀명은 놀룩(NOLLOOK). 멤버는 세현(별칭, 32)과 행자(별칭, 31) 부부다. 춤추고 노래하며 자유롭게 살고 싶어 결혼하자마자 시골에 신혼 살림을 차렸다. 사람들 앞에서 공연만 하는 게 아니다. 텃밭 농사도 짓고, 그림도 그리고, 직조도 하고, 유튜브도 찍는다. 하는 일을 좀처럼 체계화할 수 없다. 대체 무얼 하고 싶은 걸까.

지난 11월 25일 오후 만난 세현과 행자 역시 "자신들을 하나로 정의할 수 없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마도 평생 정의할 수 없을 거라고, 그게 바로 '놀룩'이자, 지리산 자락에 온 이유라고 했다.
  
세현은 살면서 결혼 전까지 한번도 서울을 벗어나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 말 잘 들으며 착실하게 공부해 대학을 졸업한 뒤 의상 디자이너로 취업에 성공했다. 순탄하게 달려오던 삶의 궤적이 그때부터 삐걱거렸다. 회사에 적응하지 못해 육체적·심리적으로 지쳐갔다. '이렇게 계속 살면 내 미래가 어떻게 될까.'

입사한 지 2년 만에 사표를 냈다. 몸에 쌓인 독소를 빼내려 주변에서 권하는 명상 활동, 공동체 생활에 참여했다. 자연 가까이에서 느긋하게 굴어도,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와 사회가 원하는 삶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을 처음으로 찾은 기분이었다. 인생의 길을 헤쳐 나간다는 심정으로 기회가 닿을 때마다 무엇이든 뛰어들었고, 2017년 6월 한 청년단체에서 주관하는 축제에 기획자로 참여했다. 그곳에서 행자를 만났다.

"신기한 게 저도 20대 초반이 방황의 연속이었거든요. 진로를 찾으려 이것저것 해보다가 군대 제대 후 뮤지컬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했는데, 몸과 마음의 병으로 한 학기 만에 자퇴했어요. 고향인 경남 김해에서 잠시 요양하다가 치유를 위해 경남 함양 녹색대학에 들어가 침과 뜸을 배웠어요.

어느 날 친구들과 전북에서 열린 한 축제를 구경하러 갔어요. 행사 마지막 시간에 다 같이 춤을 추는데 몸짓이 예사롭지 않은 여성이 눈에 띄더라고요. 에너지가 눈에 보일 정도로 너무 잘 노는 모습이었어요. 어떤 친구일까? 궁금했어요. 그 사람이 세현이에요." (행자)


세현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행자는 연애한 지 얼마 안 돼 청혼했다. 춤추는 모습에 반해 결혼하자니.
 
"황당하고 두려웠죠. 나도 행자도 직장도 없어 안정적이지 않은데 괜찮을까? 한편으로는 행자와 계속 가보고 싶었어요.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나의 진짜 모습을 알아봐준 인연이잖아요. 무엇보다 우리 둘 다 춤과 노래를 사랑해요.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원하는 인생을 함께 그려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컸어요." (세현)


눈치 그만 보고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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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결혼식은 평범과는 거리가 멀었다. 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메이크업 등을 과감히 생략한 채 동묘시장에서 산 구제 옷을 입고 결혼 사진을 찍었다. ⓒ 김혜리

 
2018년 10월 27일, 두 사람은 부부가 됐다. 전혀 다른 인생을 꿈꾼 두 사람답게 결혼식부터 남달랐다. 식장은 덕유산 자연휴양림, 스드메(스튜디오촬영·드레스·메이크업)는 생략. 동묘시장에서 산 구제 옷 입고 친구의 도움으로 결혼 기념사진을 찍었다.

본식 때는 한복을 맞춰 입었다. 양가 어머님 화촉점화도, 주례도 없었다. 각자 좋아하는 음악을 배경으로 춤추고 노래하며 등장했으며 피로연 공연만 7개를 준비했다. 준비물은 손수건과 텀블러, 축의금은 안 받았다. 그야말로 축제였다. 잊지 못할 결혼식이라는 찬사가 쏟아졌고, 사사건건 반대하던 양가 부모님도 만족하시는 듯했다.

두 사람은 더도 덜도 말고 결혼식처럼 살자고 다짐했다. 세상의 기준 말고 우리만의 기준으로. 풍성하고 풍요롭게.

작은 시골집에서의 신혼 생활이 시작됐다. 행자가 결혼 전 구한 집이다. 세현은 공기가 좋지만 산 속이 아닌, 평평하고 눈이 시원한 곳에 살고 싶다고 했다. 살 집을 찾아 주변을 헤매던 중, 버스 창문 밖으로 아영면이 눈에 들어왔다. 고도가 500m인데 확 트인 농촌 마을. 곧장 마을회관의 도움을 받아 빈집을 계약했다.

둘은 결혼 생활 시작과 동시에 모든 걸 멈췄다. 각자 퇴사와 자퇴 후에도 여러 가지 활동을 벌여오던 중이었다. "일단 가만히 있어봐. 다 끊어." 앞으로 어떻게 살지 찾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세현은 생각했다. 세간 흐름에 자꾸 끌려가지 말고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방에 마주앉아 계속 대화를 나눴다.

'우리가 좋아하는 게 뭘까? 원 없이 노는 거. 아무 고민이나 망설임 없이 노는 거. 그런데 왜 좋아하는 것을 할 힘이 없을까? 스스로 무언가를 해본 경험이 부족해서. 무엇보다 스스로 놀고 싶어서 놀아본 기억이 별로 없어서.'

둘은 자신들에게 노는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니 일단 놀아보자, 노는 힘을 되살려보자 마음먹었다. 결혼 3개월째, 그렇게 놀룩이 탄생했다.

2019년 새해와 함께 출발한 '놀룩'은 눈치 보지 않고 논다는 뜻의 라이프스타일이자, 세현과 행자가 만든 회사 이름이다. 놀룩의 핵심 캐치프레이즈인 '내 눈치 그만 보고 놀자'는 두 사람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방문 위에도 큼지막하게 써 놨다.

어쩌다가 농촌에서 '회사'까지 차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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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내가 나 자신에게 행하는 매몰찬 평가와 혐오를 버리고 즐겁게 몸과 목소리로 표현하고 싶어 놀룩을 만들었다. ⓒ 김혜리

  
세현은 직장 다닐 때 눈치를 많이 봤다. 업무가 주어지면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앞선 나머지 밤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회사로 나갔다. '이 일을 맡겼다는 건 내가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겠지'라는 기대에 거절은 엄두도 못 냈다. 욕먹기 싫어서, 싸가지 없게 보이기 싫어서, 실수하기 싫어서 스스로에게 야박했다.

건강이 나빠지고 속이 곪아갈수록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게 됐고, 그런 나 자신이 못나 견딜 수 없었다. 퇴사 후에도 당시의 모습이 체한 듯 가슴에 남아 있었다. 왜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못하겠다고 말 안했을까.

"100%가 아닌 80%만 해도 괜찮으니까 할 수 있는 만큼 즐기자, 그게 놀룩이에요. 아기들은 잘하려고 안 해요. 그 순간 몰입하며 놀 뿐이죠. 잘했네, 못했네는 부모가 판단하는 잣대예요. 어린아이의 노는 감각을 되살리면 잘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그 다음을 계속 즐겁게 펼쳐갈 수 있지 않을까요.

예전의 저라면 사람들 앞에서 춤 출 생각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사실 저도 춤을 좋아하고, 그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고요. 제가 제 눈치를 봐서 못하는 거였어요. 지금은 내면의 시선을 신경 안 쓰고 편하게 춤추고 노래하려 해요." (세현)
 

행자도 타인과의 비교, 자신을 향한 과한 기준 때문에 그렇게 사랑하는 춤과 노래를 속 편하게 펼쳐내지 못했다. 제일 좋아하는데 제일 힘들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내가 나 자신에게 행하는 매몰찬 평가와 혐오를 버리고 즐겁게 몸과 목소리로 표현하고 싶어 놀룩을 만들었다.
 
"원래는 회사로 등록할 생각이 없었는데 이웃들이 자꾸 '무슨 일 하냐'고 물어봤어요. '예술해요', '다양한 걸 해요'라고 말하면 이해를 못하고 계속 '뭐 해 먹고 사냐'고 질문하세요. 결국 결혼한 지 약 1년이 안 됐을 때 회사로 차렸죠. 이젠 자신 있게 '저 사업하는 사람이에요', '할머니, 나 대표야' 해요. 그러면 어른들이 '그려?' 하고 넘어가요(웃음)." (행자)


[다음기사] 어묵 먹는 초등생이 관객... 이토록 뭉클한 버스킹이라니 http://omn.kr/1wa7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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