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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보러 오세요, 팔진 않습니다' 버버리는 왜 이럴까

[이승용의 발로 뛰는 브랜딩] 자연 속 전시장, 버버리의 '이매진드 랜드 스케이프 제주'

등록 2021.12.09 12:58수정 2021.12.09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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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카피라이터가 요즘 뜨는 플래그십 스토어를 탐방하며 기업들의 참신한 브랜딩 전략을 살펴봅니다.[편집자말]
쇼핑은 끝없는 체험의 과정이다. 공간에 대한 시각적 정보를 기반으로 옷의 질감이나 향기 등 촉각과 후각 같은 다양한 감각이 동원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쇼핑 스페이스가 온라인 공간으로 확장되거나 대체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오프라인 매장은 여전히 구매욕을 자극하는 직관적인 경험을 선사하는 곳이다. 수많은 브랜드가 플래그십 스토어나 팝업 스토어에 아직도 많은 공을 들이는 이유다.

그렇다면 브랜드의 오프라인 공간에서 쇼핑의 종착지라고 할 수 있는 구매를 생략한 채 체험에만 오롯이 집중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영국 패션 브랜드 버버리는 지난달 11일 제주도 서귀포시에 팝업스토어 '이매진드 랜드 스케이프 제주 (THE IMAGINED LANDSCAPES JEJU)'를 오픈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이타미 준이 노아의 방주를 모티프로 설계한 '방주 교회' 인근이다. 버버리의 아우터웨어 글로벌 팝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이번 공간은 의류 제품을 팔지 않는 체험형 전시장이다.

제주에 상륙한 버버리
 

버버리의 팝업스토어 '이매진드 랜드스케이프 제주'의 입구 모습 ⓒ 이승용


건물의 외관 및 주변은 거울과 같은 소재로 되어 있어 주변 경관과 빛을 그대로 반사한다. 건축물의 모양은 등고선을 연상시키는데 제주도의 오름을 형상화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전시장 외부의 자연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특유의 존재감을 눈부시게 드러낸다.

내부에 마련된 스크린 룸에서는 세 명의 영상 아티스트 마오틱(Maotik), 차오 유시(Cao Yuxi), 류 지아위(Liu Jiayu)가 제작한 디지털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스크린 맵핑으로 공간 전체를 감싼 영상 속에는 계절이나 산과 들처럼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건물의 내부에서 외부의 자연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재미난 공간이다.

다음으로는 버버리의 아우터를 체험해볼 수 있는 전시장이다. 개버딘(gabardine) 소재의 트렌치코트부터 퀼팅 및 다운 제품 등 다양한 아우터웨어들을 현장에서 직접 피팅해볼 수 있다. 전시장 건물의 외부 디자인처럼 등고선 라인을 본따 만든 매대의 모습도 꽤나 인상적이다. 마지막으로는 전시장 한편에 마련된 전망대에 올라갈 차례다.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시장 내부에 마련된 아우터웨어 및 제품 체험존 ⓒ 버버리

 
이번 '이매진드 랜드 스케이프 제주'는 버버리의 창업자 토마스 버버리의 철학을 고스란히 반영한 공간으로 보인다. "자연과 기술, 내부와 세계, 현실과 상상력을 허물어 모든 옷에 자유를 담는다"는 그의 말처럼, 버버리의 팝업스토어는 자연 경관을 반사하는 외부, 자연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스크린룸, 그리고 옷을 통해 이 모든 가치를 몸에 걸쳐볼 수 있는 경험까지, 자연을 중심에 둔 버버리의 가치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통합 체험형 전시장이다.
 

자연을 주제로 한 전시장 내부의 스크린룸 모습 ⓒ 이승용

 
버버리의 이런 시도는 자연스러워 보인다. 자연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패션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트렌치코트에 개버딘 소재를 처음 활용한 것은 다름 아닌 버버리였다. 영국의 혹독한 날씨를 버틸 수 있도록 통기성과 방수 기능을 갖춘 레인코트를 발명한 것이었다.

이후에도 버버리는 극지방 탐험가들을 위한 가볍고도 튼튼한 방수 코트 등을 제작했다. 자연을 형상화한 다양한 요소가 제주의 전시장 곳곳에 배치된 것은 가혹한 외부 환경 속에서 최적의 힘을 발휘하는 버버리의 브랜드 가치를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가 느껴진다.


자연이라는 런웨이 

버버리는 '자연과 자유'에 대한 메시지를 최근의 광고 캠페인에서도 지속적으로 강조해오고 있다. 고난이도 CG 작업에 유능한 세계적인 감독 그룹 '메가포스'와 함께 만든 두 편의 영상에선 브랜드의 철학을 명확하고도 아름답게 표현한다.

2020년, 아우터웨어의 방수 기능을 강조하고자 만든 영상에선 편곡된 '싱잉 인 더 레인' 노래에 맞춰 쏟아지는 우박을 피하며 바다로 나아가는 네 명의 사람들을 보여준다. 감각적인 춤과 환상적인 CG가 어우러진 캠페인이다.
 

팝업스토어 전망대에서 바라본 제주도의 풍경 ⓒ 이승용

 
올해 런칭한 또 다른 캠페인 영상 'Open Spaces'에선 버버리의 아우터웨어를 입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네 명의 주인공들이 나타난다. 거친 바람 속에서도 사람들을 마음껏 날아오르게 도와주는 버버리 아우터의 능력이 예술적으로 표현된 광고다.

우리를 자연 속에서 누구보다 자유롭게, 그리고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브랜드라는 걸 감각적인 영상으로 접근한 것이다. 해당 광고는 이번 팝업 스토어를 들어서자마자 감상할 수 있다. 
 

버버리는 자연이라는 공간을 가장 중요한 런웨이처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이번 팝업 스토어는 감상 시간이 다소 짧고 세부적인 프로그램이 풍성하지 못하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자연을 대하는 브랜드의 철학을 잘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전시는 12월 12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버버리라는 브랜드에 관심이 있다면, 혹은 제주도의 자연을 조금 색다르게 느껴보고 싶다면, '이매진드 랜드 스케이프 제주'는 나쁘지 않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seung88)에도 함께 실립니다.
#버버리 #이매진드랜드스케이프 #제주도 #브랜드 #브랜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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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터. 술 마시며 시 읽는 팟캐스트 <시시콜콜 시시알콜>을 진행하며 동명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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