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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도면과 소방...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소방으로 通하다] 미국 소방검사 매뉴얼

등록 2021.12.31 10:28수정 2021.12.3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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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방부 소방규정인 'DoD Instruction 6055.06'을 보면 소방검열관은 기술적 차원에서의 건축도면 검토를 하지 않는다고 명문화 해놨다. 오히려 소방업무의 운영적 측면에서의 검토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기술적 검토'란 소방기술사 등 엔지니어가 다루는 전문영역을 뜻한다. 예를 들면 건물 내부의 최대 수용인원을 계산한다든지, 비상구의 면적과 숫자를 산출하거나 또는 소화설비와 관련된 유체역학적 계산 등을 말한다.  

물론 개인차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상당수의 소방검열관이 엔지니어로써의 학력과 경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그들의 역할과 한계를 명확하게 규정해 놓음으로써 '관할권자(Authority Having Jurisdiction, 보통 소방서장을 의미)'라는 명목 하에 자칫 잘못된 의사를 전달해 심각한 기술적 오류를 범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국방부는 소방검열관이 미국방화협회(NFPA) 1031번 기준인 '플랜스 이그재미너(Plans Examiner)'라는 설계도면 검토 자격을 취득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도면 검토와 관련된 기본적인 내용을 숙지함으로써 출동대원에게 필요한 각종 표식, 건물 접근로와 비상구, 그리고 화재예방과 인명안전을 위한 소방설비 등이 적합하게 설계에 반영됐는지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검토 과정은 소방검열관이 화재예방 등 소방 관련 업무가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설계됐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법적 권한과 책임에 근거한다. 
 

소방검열관이 검토해야 하는 한 세트의 건축도면이 책상에 놓여 있다. ⓒ 이건

 
그렇다면 도면에 대한 실질적인 기술 검토는 누가 담당하는가? 

소방검열관의 검토는 엄연히 기술적 한계가 존재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소방기술사(Fire Protection Engineer) 자격을 갖춘 사람을 주 소방국(State Fire Marshal Office)에서 채용해 관련 업무를 맡기고 있다. 도면 검토에 따른 수수료는 의뢰자가 지불해야 하며 주별로 상이하지만 대개 100달러 정도를 내야 한다.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의 경우, 하와이에 있는 미 공군 소속의 소방기술사를 통해 기술적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은 외부업체에서 제출한 도면 역시 자격을 갖춘 소방기술사에 의해서 설계됐음에도 불구하고 미 공군 소방기술사에 의해 검토가 이뤄지면 보통 A4 용지 1~2매 내외의 지적사항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소방기술사 사이의 교차검증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의 이념 중 하나인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이 도면 검토 과정에서도 예외는 아닌 듯 보인다. 

도면 검토에 대한 기술적 검토는 소방기술사가 하지만 사실상 모든 프로젝트를 소수의 소방기술사가 일일이 검토하고 따져볼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관할권을 가진 소방검열관의 경험과 지식 그리고 엔지니어와의 협업능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한편 도면과 함께 전달되는 '설계분석(Design Analysis)' 서류에 대한 검토도 소방검열관이 반드시 챙겨봐야 하는 중요 서류 중 하나다. 보다 세심한 검토를 위해 몇 가지 관련 책자도 갖추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미 국방부 통합시설기준인 'Unified Facility Criteria 3-600-01', '국제 건물 코드(International Building Code)', 인명안전코드인 'NFPA 101' 등이 필요하다. 
 

도면 검토를 위해 필요한 기준과 서적들이 책상 위에 놓여있다. ⓒ 이건

 
설계분석 서류에는 도면이 어떤 기준과 규정에 따라 설계됐는지에 대해 자세히 서술해 놓고 있으므로 혹시 잘못된 규정이나 오래된 기준이 사용되지 않았는지에서부터 간단한 오탈자나 숫자가 잘못 기재된 것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관련 서류가 500여 쪽을 넘기는 경우가 많고 기술적인 용어들도 많이 포함돼 있으므로 하루 안에 검토를 마치기는 어렵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토해야 하며 수시로 담당 엔지니어나 소방기술사와 연락해서 명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히 확인하고 넘어가야 한다. 

이렇게 건물이 지어지기 전부터 소방검열관의 역할이 강조되는 것은 소방서가 지향하는 가치가 우리 모두의 안전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이건 소방칼럼니스트 #이건 소방검열관 #미국소방 #소방검사 #화재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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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생. Columbia Southern Univ. 산업안전보건학 석사.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소방칼럼니스트. <미국소방 연구보고서>, <이건의 재미있는 미국소방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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