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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행보남 "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성평등 지향하는 남성들 기자회견... 언론·정치권의 '이대남' 호명에 반발

등록 2022.02.09 16:57수정 2022.02.0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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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기자회견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앞에서 행동하는보통남자들 주최로 열렸다. 참가자들은 대선후보가 청년남심을 잡겠다며 SNS에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글자를 남기는 등 청년 남심들의 요구라며 혐오와 차별을 일삼는 목소리가 정치권에 울려지고 있다고 지적하며, 정치권과 미디어를 향해 혐오 부추기 중단을 촉구했다. ⓒ 권우성

 
"차별과 폭력을 용인하는 게 '이대남'이라네요. 이거 선 넘는 것 아닌가요?"

김연웅(26)씨는 '이대남'이라는 호명이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페미니즘을 또 다른 '차별'로 생각하면서 조롱하고, 여성들을 온라인상에서 공격하는 이들이 자신과 같은 '20대 남성'으로 묶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페미니즘을 접한 김씨는 '안티 페미니스트'들이 정치권에 의해 과대대표되면서, 오히려 성평등을 지향하는 20대 남성들의 목소리가 묻히고 있다고 봤다. 

제조업 회사에 다니는 고선도(23)씨는 n번방 성착취 사건 이후에 성차별적인 구조를 깨닫게 됐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남성들이 거리낌없이 성착취에 가담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느꼈으며,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온라인상에서 벌어진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공격에도 함께 맞서 싸우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20대 남성의 것'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안티 페미니즘과 여성가족부 폐지 등을 외치는 '이대남' 프레임이 워낙 강고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대남'이 단순한 호명이 아니라, 흔히 인식하는 '이대남'에 부합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 '너 페미냐'라는 말로 낙인찍는 정치적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다. 20대 남성의 다양성은 사라지고, 획일화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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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기자회견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앞에서 행동하는보통남자들 주최로 열렸다. 참가자들은 대선후보가 청년남심을 잡겠다며 SNS에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글자를 남기는 등 청년 남심들의 요구라며 혐오와 차별을 일삼는 목소리가 정치권에 울려지고 있다고 지적하며, 정치권과 미디어를 향해 혐오 부추기 중단을 촉구했다. ⓒ 권우성

 
성평등 교육 활동가 이한(30)씨는 2017년부터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을 꾸려나가면서, '남성 페미니스트'의 존재감을 꾸준히 부각시켜온 인물이다.

이씨가 성평등 강의를 하면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남성의 가능성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실재는 달랐다. 여성가족부 폐지와 같인 첨예한 이슈를 이야기했지만, 공격적인 반응보다는 "알아듣겠다"는 반응도 많았다. 남성을 하나의 동일한 생각을 가진 집단으로 규정하는 것에 그가 반대하는 이유다.

이들 세 명을 비롯한 남성 청년들이 마음을 모아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행보남)'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여성가족부 폐지',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 등의 말이 난무하는 정치권을 향해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행보남은 온라인 상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조직으로, 고씨의 경우 성평등 관련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대남이 조롱문화를 대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행보남은 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특히 이들은 '청년 남성'들의 요구라며 여성가족부 폐지를 이야기하는 등 정치권의 주장이 혐오와 차별을 일삼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자회견 사회를 본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이가현씨는 "언론과 정치권의 호명하는 '이대남'에 가려져 목소리가 지워진 다양한 남성들의 삶과 목소리를 활동을 통해 전하고 싶다"라며 "그동안 호명되지 못해 조용했던 '평등을 지향하는' 청년 남성들이 우리의 첫발자국을 보고 용기를 내어 말하기를 시작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이어 고선도씨는 "젠더갈등을 해결해 내는 것도 결국 페미니즘일 것이다. 진정한 우애와 사랑을 나누는 성평등한 세상을 만드는데 함께하자고 (페미니즘이) 말하고 있다"라며 "우리를 자유롭게 만드는 시대의 교양이 페미니즘이다. 함께 하자"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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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기자회견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앞에서 행동하는보통남자들 주최로 열렸다. 참가자들은 대선후보가 청년남심을 잡겠다며 SNS에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글자를 남기는 등 청년 남심들의 요구라며 혐오와 차별을 일삼는 목소리가 정치권에 울려지고 있다고 지적하며, 정치권과 미디어를 향해 혐오 부추기 중단을 촉구했다. ⓒ 권우성

 
김연웅씨는 "'이대남'이라는 정치적 집단의 대표성이, 구조적 모순과 억압에 대한 외침이 아닌, 권력에 대한 풍자가 아닌, 고작 페미니즘에 대한 조롱과 괴롭힘이라니... 한 명의 '이대남'으로서 개탄스럽기 그지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씨는 "저는 '이대남'이 더 이상 '조롱문화'를 대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며 "기성세대의 부정과 위선에 분노했던 그 에너지가 다시 모여 페미니즘을 지지했으면 좋겠다. 차별과 폭력에 '반대'했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트랜스젠더 남성 김정현씨 또한 "제 스스로 청년 페미니스트 남자라고 생각하고, 저와 같은 트랜스젠더 남성 청년 페미니스트들을 대신하여 나왔다"라며 제도적으로 그들의 인권을 보장해줄 것으로 요구했다.

이들은 <우리는 청년남성이 아니란 말입니까?>라는 선언문을 통해 "청년남성인 우리가 경험하는 문제의 원인은 페미니즘이나 어떤 페미니스트 때문이 아니다"라며 "여성가족부를 없애거나 여성이 군대에 간다고 해서 지금 내가 겪는 문제가 해결되거나 성평등해지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정치권과 미디어에서 그려내는 다 똑같은 청년남성이 아니다. 우리는 가부장제의 폐해와 성차별에서 벗어나 성평등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이다.  여성을 향한 차별과 폭력에 함께 목소리 내며 안전한 일상을 누리길 바라는 사람이다. 혐오, 차별없는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다"라며 "동료 청년남성 여러분, 이제 성평등의 가치를 믿고 실천하는 보통의 청년 남성들이 행동해야 한다"라고 외쳤다.

이날 행보남이 발표한 선언문에는 375명의 시민이 연서명했다. 이들은 2주 뒤에 후속 기자회견을 열며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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