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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의 원인'을 알아야 청년이 보인다

대다수 청년에 불만족스런 사회 된 이유... '사치재'가 돼 버린 과거세대의 평범함

등록 2022.02.11 06:16수정 2022.02.11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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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다짐스터디카페 응암점에서 학생이 공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글을 쓰기 전까지 고심이 많았습니다. 제가 할 일은 이렇게 밖으로 문제만 떠드는 게 아니라, 실제 문제를 해결할 정책을 만드는 데 참여하는 겁니다. 이런 글을 쓰는 자체가 본분에 충실하지 못함을 자인하는 셈이지요.

청년문제는 이러한 고발 행위만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글로 녹이지 못 한 수많은 청년들의 삶은 여전히 사각지대에서 구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며, 묵묵히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는 분들이 부당하게 비판 받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글을 쓰게 된 이유인즉 현재 청년층이 과거 그 어느 세대보다 냉소가 만연한 세대를 살아간다고 생각하며, 이를 알려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저번 해 여러 경험을 통해 청년문제가 실제 직관과 다른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가령 성별 갈등의 화약고 중심에 있는 듯한 청년층은 다른 어떠한 세대보다 성평등의식이 높습니다. 언뜻 능력주의의 전도사로 보이는 청년층은 사실 불평등과 차별에 가장 많이 반대합니다.

기득권 청년을 상징하는 숫자 20과 대다수 청년을 대변하는 숫자 80 사이엔 사실 '꽤 많은 인구를 차지하며 꽤 많이 가진' 20~30% 사이의 계층이 존재했습니다. 교육 수준은 높고 정보 습득 또한 빠르며 중년층과 달리 여러 가지 정책의 혜택도 받습니다. 저는 과거보다 현재가 대다수 청년이 살기 좀 더 괜찮은 환경임을 확신합니다. 그럼에도 왜 청년들은 현재가 지옥이라고 할까요. 수많은 진단도 있고, 저도 15%의 '성'과 85%의 '평야'라는 비유를 들기도 했지만, 이번엔 조금 다른 주제로 접근해 보려 합니다.

청년에게 '사치재'가 돼 버린 연애·결혼·집

현 청년들의 부모 세대인 5060대의 부 75~80%는 상위 30%에 몰려 있습니다. 단순히 셈해 봐도 나머지 7할에 달하는 청소년들은 부모님 덕을 거의 못 본 채로 청년이 되어 사회로 나옵니다. 내세울 자원은 오로지 열정과 성실함뿐이죠.

문제는 그들이 맞이할 사회란 열정과 성실함의 값어치가 땅바닥으로 떨어진 세상입니다. 여기서 현미경을 잘 들이대 보아야 합니다. 청년들은 86세대처럼 악바리로 일하지 않아도 목숨부지는 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과거보다 좀 더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90년도에 글 쓰고 그림 그려서 먹고 살 수 있는 분이 몇 명이나 됐습니까? 당시엔 일부 전문 직업인들만 입에 겨우 풀칠할 정도만 버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대우가 엉망이라곤 하나, 관련 수요 자체는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고, 뜻이 있다면 누구나 입에 겨우 풀칠 정도는 합니다. '청년이 살기에 좀 더 좋은 나라'라고 한 말 뜻이 여기에 있어요. 예전보다 밑바닥이 약간 올라온 거죠. 제 아무리 가난해도 예전처럼 간단히 목숨을 위협받지는 않으니까요.

문제는 이겁니다. 바닥은 조금 올라왔는데 천장은 무지막지하게 높아졌습니다. 덕분에 예전보다 삶이 나아지기 굉장히 어려워졌습니다. 86세대가 노력하면 당연히 얻을 수 있던 요소들, 연애·결혼·집·가족·노후 안정이 어느 순간 사치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 변화엔 단순히 경제적 요인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음날 대한민국 GDP가 두 배로 뛴다고 해도 이 현상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겁니다.

15% '성'에 입성해 얻는 건 겨우 '평범할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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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정장대여업체 체인지 레이디에서 취업준비생이 면접용 정장을 빌리고 있다. ⓒ 연합뉴스

 
대한민국은 무한경쟁을 동력으로 성장해왔지요. 경쟁이란 끊임없는 비교를 수반합니다. 문제는 경쟁의 승자(천장)와 패자(바닥) 사이 양극단의 넓이는 큰 반면, 그 넓이를 체감하기는 과거보다 훨씬 쉬워졌습니다. 인터넷과 SNS엔 불평등을 알려주는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고, 이를 통해 청년들은 노력과 성실의 한계를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물려받은 것 없는 청년들이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삶을 누리기 위해선,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의 15% '성'에 입성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정말 혹독한 경쟁을 뚫어내야 합니다. 그 혹독한 경쟁의 정체를 쪼개 보면 불합리한 구석이 너무도 많지요. 일단 확정성이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상대방이 더 잘하면 평야로 내쳐집니다. 즉 성 안에 확실하게 들어간다는 보장을 받지 못합니다.

확정성만큼이나 확장성도 없습니다. 청년들이 열심히 쌓은 스펙 대다수는 딱 15% 성에 입성하기 위한 일종의 증명서 역할입니다. 평야로 내쳐지는 순간부터 아무 쓸모가 없어집니다. 또한 자체 가치창출이 아예 없습니다. 막말로 이 짓거리 암만해 봐야 돈 한 푼 안 나온다는 겁니다. 즉 경제활동을 미룰 수 있는 환경일수록 시간을 더 땡겨 쓸 수 있으므로 경쟁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해집니다.

이 불합리한 판세 위에서 겨우 성에 입성하면 겨우 '평범할 기회'를 얻습니다. 밑바닥보다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많아졌죠. 대표적으로 자가 보유와 결혼입니다. 그런데 이 옵션들은 예전 같았으면 밑바닥에서 시작해도 충분히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즉 '과거세대의 평범함'이 청년들에겐 쟁취하기 대단히 힘든 사치재가 되었습니다.

제가 위에서 언급한 '열정과 성실함의 값어치가 땅바닥으로 떨어진 세상'이 바로 이 상황을 압축한 말입니다. '열정과 성실함'으로 얻을 수 있는 최대치가 고작 '과거세대의 평범함'이니까요. 저는 청년층들이 냉소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환경변화에서 왔다고 봅니다. 대한민국은 평범함의 허들이 너무 높아졌고, 경쟁의 탈락자는 속출하며, 심지어 승자 또한 큰 보상을 얻지 못하여, 청년 대다수에게 불만족스러운 사회가 되었습니다.

내 집, 내 가정 얻는 데 장벽이 있어선 안 된다

자연스레 하나의 결론이 나옵니다. 평범함의 허들을 낮추어야 청년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된다. 즉 가정을 꾸리고 내 집을 가지는데 커다란 장벽이 있어선 안 된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으론 청년층의 냉소를 해소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어마어마한 선진국이 되어 국가에서 집을 공짜로 주고 육아를 보장한다 해도, 승자와 패자를 나누어 서로 비교하고 급 나누는 정서와 문화가 잔존하는 한, 갈등의 불씨는 꺼지지 않으며 청년은 여전히 불행할 겁니다.

무작정 경쟁하지 말자, 막연하게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는 소리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제는 경쟁의 전장을 옮길 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다수의 패자로 쌓은 무덤 위에 소수의 승자만 살아남는 능력주의 전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한국식 능력주의에 따라붙는 공정이란 단어의 모순은 경쟁 시작점이 제각기 다른 현실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비행기를 상속 받은 청년들, 자동차며 자전거를 물려받은 청년들, 태어나서 믿을 건 자기 두 발밖에 없는 청년들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목적지로 향해야 한다면 승부결과는 뻔합니다. 그런데 국가에서 두 발조차 없는 청년에게 의족을 만들어주면 불공정하다고들 말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누군가가 경쟁에서 유리해지면 다른 누군가는 불리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니까요.

이 구조를 없앨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패자가 느낄 굴욕감과 불합리함을 최소화 할 방법이 존재합니다. 바로 승자와 패자 간 간극을 줄이는 것. 즉 공정이 아니라 불평등에 관점을 맞추자는 겁니다. 이미 한국에서 공정이란 단어는 세속의 햇볕을 오래 쬔 나머지 상한 물고기가 되었습니다. 싱싱하게 팔딱이며 청년들의 열정과 희망을 돋웠던 그 단어가 아닙니다. 청년들을 시험이란 링 안에 가둔 채, 경쟁자에게 가혹함과 무자비함을 쏟아내도록 하는 폭력의 언어입니다.

대한민국이 이제라도 경쟁과 승자, 패자만을 가리는 차가운 공정이 아닌, 누구나 같은 눈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존중할 수 있는 평등을 추구할 때, 청년들의 냉소는 조금씩 녹아내릴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용접을 하는 청년 노동자이자 칼럼니스트입니다. 이 글은 글쓴이의 페이스북에도 게재되었습니다.
#20대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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