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12 12:05최종 업데이트 22.02.12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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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홍정운군 소식 들었어요?"

장윤호가 '직업생활' 수업을 막 마쳤을 때 여기저기서 카톡이 왔다. 그는 교무실로 들어서자마자 뉴스부터 살펴보았다. 그의 등 뒤로 10월의 오후 햇살이 드리워졌고 구석 어디선가 자판 두들기는 소리가 일렁거렸다.


"또 한 아이가 죽었으니 한동안은 언론에서 특성화고 얘기가 반짝하겠네요."
"현장실습 정말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요..."


장윤호가 기사를 읽는 사이에도 문자는 계속 들어왔다. 고3 학생으로 현장 실습 중에 아니면 졸업하고 입사한 직장에서 목숨을 잃은 아이가 벌써 몇 명인가?

2016년 5월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다 숨진 김군, 2017년 1월, LG유플러스 해지방어팀에서 실습하다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한 홍수연양, 그해 11월, 음료공장에서 일하다가 기계에 끼여 숨진 서귀포산업고 이민호학생.

열 손가락으로도 꼽을 수 없을 정도다. 도대체 교육부나 고용노동부는 무얼하고 있단 말인가? 아이들 목숨만이라도 지켜줘야 하지 않는가? 장윤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운동장으로 향했다.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땀이 흘렀다.

"홍정운군은 물을 무서워하는데 떠밀려 들어가 요트바닥을 청소하다 죽었대요."

카톡의 문자와 기사의 내용들이 눈앞에 떠다녔다. '이런 현실에서 노동인권교육이 의미가 있을까? 아니야, 그래도 학교부터 노동교육은 이루어져야 해!' 어지러운 머릿속을 떨쳐내려고 장윤호는 계속 달렸다.

A공고에서 처음 접한 아이들의 노동 현실
 

재직 중인 학교 앞 카페에서 장윤호 그는 20년차인 특성화고의 기계과 교사다. ⓒ 민병래

 
장윤호가 '노동인권교육'에 뜻을 두게 된 것은 2001년 기계과 교사로 A공고에 첫 발령을 받은 지 몇 년이 안돼서였다.

"샘, 날짜가 지났는데도 월급을 안 줘요."
"수습이라고 50%만 주는데 어떻게 하죠?"


학급 아이들의 절반 가까이가 전단지를 돌리는 일부터 별별 아르바이트를 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직업계 고등학생이라고 업수이 여김은 물론 월급마저 못 받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은 참고 일하거나 그만둘 뿐 제대로 대처를 못했다. 어린 데다가 임금이나 근로시간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그럴 만했다.

장윤호는 기말고사가 끝난 틈을 이용해 '노동인권교육'을 했다. "내 권리는 내가 지키자"며 자는 애들을 깨웠다. 담임을 맡았던 학급의 아이들은 35명 정돈데 얼굴을 익히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1교시가 끝났을 때 오는 아이, 점심시간에 와서 5교시 땡 하면 가는 아이, 밤새 게임해서 피곤하다고 잠만 자는 아이... 아이들은 들쭉날쭉이어서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왜 공고에 왔냐, 열심히 해서 취업해야지" 하면 "엄마가 가래서 왔어요", "중학교 담임이 원서를 썼어요" 하며 핑계를 늘어놓았고 때론 대드는 녀석도 있었다. 전공수업도 잘 안 듣는 아이들에게 '노동인권교육'은 생뚱맞았다. 아이들이 듣거나 말거나 장윤호는 '어린 노동자'에게 '노동 3권'을 알려줬다. 어떻게든 남겠지, 하며.

A공고에서 옮겨간 S공고 시절, 장윤호는 고3 아이 담임을 하면서 취업담당교사를 맡았다. 기대에 못 미치는 사업장에라도 어떻게든 현장실습을 보내면서 아이들에게 '노동자의 권리'를 일러줘야 하는 처지였다. 2학기가 되면 고3 학생들을 현장으로 데리고 다니기 바빴고 어느 해인가 가을이 깊어가던 그날도 장윤호는 아이들 세 명을 차에 태우고 화성시의 한 공장으로 떠났다.

"샘 거기 식당 밥은 어때요?"
"월급은 꼬박꼬박 주죠?"


장윤호는 "이 녀석들아 선생님이 추천하는 데니 믿어 봐" 짐짓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이 공장은 아니지만, 얼마 전에도 실습 나간 학생의 부모가 항의전화를 걸어왔다. 실습생에게 밤 11시, 12시까지 일을 시키는데 잔업수당조차 안 준다며 더 이상 아이를 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경위를 파악하려고 회사에 연락해보니, 자신은 몰랐다며 공장장에게 주의를 주겠노라 대표는 말했다. 야간노동은 실습생에게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고 말했건만... 장윤호는 하마터면 그때 통화를 하다가 전화기를 내리칠 뻔했다.

아이들과 이날 가는 화성의 공장은 하청에 하청으로 직원이 스무 명이 채 안 되는 데 여러 번 연락해 겨우 통화가 되었다. "S공고 취업담당 교산데 아이들 실습 땜에 찾아뵙고 싶다"며 머리를 조아려 면접 약속을 잡았다. 그러니 현장에 가서 기숙사를 둘러보고 식당 밥 상태를 살펴보고 근로기준법을 지키는지 조사하는 건 언감생심. 그저 "학생들이 아직 어리고 안전이 중요하니..." 하면서 넌지시 앞자리를 깔 수밖에 없었다.

발안 IC를 빠져나오니 멀리 보이는 화성호 앞으로 너른 벌판이 펼쳐졌다. 그 곳에는 농가와 작은 공장, 창고들이 드문드문 나타났다 사라졌다. 아이들 얼굴엔 금세 그늘이 드리웠다.

"샘, 여기는 아무래도 출퇴근이 힘들텐데 기숙사는 어떨까요?"
"기숙사에 들어갔다가 괴롭힘 당하진 않을까요?"
"글쎄 일단 일주일 정도는 출퇴근을 해봐, 그럼 답이 나오지 않을까?"


장윤호가 말꼬리를 흐리자, 한 녀석이 기숙사에 있기 싫어 차가 있는 선배 작업자 차를 타고 함께 출퇴근했던 작년 실습생 얘기를 꺼냈다. 그 사람이 잔업할 때마다 기다리는 게 싫어 그만뒀다라는. 장윤호는 '걱정 말어' 하며 아이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몇 번이나 입을 떼려다가 거뒀다. 

장윤호는 아이들 면접이 끝나자 공장장에게 여러 번 머리를 숙였다. 얼핏 보니 공장 옥상에 콘테이너를 올려서 기숙사로 쓰는 듯했다. 구내식당 표지판은 공장건물 지하를 향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빨리 가자"라는 눈길을 보냈다. 발안IC를 되짚어 돌아오는 내내 장윤호의 마음 속은 복잡했다.

'화성 벌판에 놀리는 땅도 많던데 공장이 몰려 있는 곳마다 '공동기숙사'를 지어 당구장이나 PC방도 들여놓고 셔틀버스를 돌리면 좀 좋아? 엄한데 돈 쓰지 말고 이런 작은 공장에 취업한 애들에게 3년동안 한 달에 50만 원 정도 취업장려금으로 주면 그만두지 않고 기술이라도 확실히 익힐텐데...'

뒷자리의 한 녀석이 "샘! 밤이면 완전 깜깜하겠어요. 거기선 아무것도 할 게 없겠던데요"라며 장윤호의 상념에 맞장구라도 치듯 말을 꺼냈다. 그러며 슬쩍 옆구리도 찔렀다. "그런데 샘이 알려 준 '노동자권리'는 아예 꺼내지도 못하겠는데요?" 장윤호는 차의 속도만 높였다. 차장으로는 바싹 마른 플라타너스 나뭇잎이 부딪혔다 사라졌다.

국가교육과정 총론에 '노동교육' 가치를 담아야
 

학교부터 노동교육운동본부가 주최한 '노동교육제도화' 토론회 모습 장윤호는 발표자로 참석했다. ⓒ 장윤호제공

 
S공고 이후 옮겨간 L특성화고에서도 장윤호는 변함없이 '노동인권교육'에 정성을 쏟았다. 그는 지난해 10월 홍정운군의 죽음을 접하고 '학교부터 노동교육운동본부'(아래 운동본부)에서 추진하는 '노동교육의무화' 사업에 힘을 보태려 더욱 애썼다.

2021년 4월 12일 민주노총, 민교협, 특성화고권리연합회 등 162개 단체가 함께 모여 '운동본부'를 만들었다. 2020년에만 재해자가 십만이 넘고 무려 2062명이 죽어가는 현실을 바꾸려면 교실에서부터 노동의 숭고함과 노동자의 권리를 배워야 한다는 취지였다.

장윤호는 누구보다 이 '운동본부'의 출범을 반겼다. 그는 본부가 발족한 이후 2021년 7월 개최한 '학교부터 노동교육 제도화를 위한 토론회'에 나가 교과서의 원칙이 될 가칭 '노동인권교과'의 방향을 발표했다.

그는 2013년 경기도교육청에서 '민주시민교과서'를 발행할 때 '노동' 편을 집필한 경험을 살려 노동교육이 추구하는 인간상으로 '노동하는 민주시민'을 제시했다. 또 '인간존엄과 노동존중'이라는 가치가 담긴 '국가교육총론'의 전문과 이 전문의 정신을 반영한 가칭 '노동인권교과'의 내용영역과 내용요소를 제안했다(아래 그림 참조).
  

교과서의 얼개가 되는, 장윤호가 마련한 '노동인권교과'의 내용영역과 내용요소. ⓒ 장윤호 제공

 
물론 장윤호의 제안이 이뤄지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노동교육'을 반드시 시행하게끔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또 교육부가 2022년에 발표할 국가교육과정총론에 '노동존중'의 의지를 담아내야 한다. 이런 조건이 갖춰줘야 '노동인권' 교과가 수업단위 수는 적더라도 국어나 수학처럼 독립 과목이 되기 때문이다.

장윤호는 겨울방학 내내 지난 토론회에서 발표한 것을 구체화하고 있다. '교과서'의 얼개라도 준비되면 전국을 돌며 토론회를 열 수 있고 여기서 나온 의견을 갈무리하면 실제 집필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지런히 동료교사들과 토의하고 노무사들에게 자료를 요청하고 언론에 투고했던 기사들도 다시금 되새겨보고 있다. 홍정운군의 죽음이 장윤호의 겨울방학을 더욱 바쁘게 만든 것이다.

특성화고는 인구절벽의 폭탄을 맞고 있다

이런 장윤호의 마음에 근심 두 가지가 있다. 그 때문에 '노동인권교과' 준비 작업에 맘 편히 집중할 수 없다. 바로 특성화고 아이들의 실업률과 인구절벽이다. 

해마다 4월 1일이면 교육부에서 특성화고 학생들의 취업률을 발표한다. 2021년에 이어 2022년에도 그 숫자는 들여다보기 겁날 것이다. 교육부에서 아무리 숫자를 이리저리 만져도 취업률은 절반이 안 되리라. 취업하러 특성화고를 들어왔는데 대졸실업률보다 특성화고 실업률이 더 심각한 실정이다. 코로나가 쓰나미처럼 자영업자만이 아니라 특성화고까지 덮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인구절벽이 특성화고의 뿌리를 흔든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A공고의 옛 동료 교사가 자기네는 코로나가 심각할 때도 원격수업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교육부 방침에 따르면 학생 수가 400명이 넘지 않으면 원격수업이 아닌 대면수업이 원칙이었다. 장윤호가 A공고에 부임할 때 경기도에서 으뜸 가는 이 학교는 한 학년에 600명이 넘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교생이 400명에도 못 미친다는 얘기다.
  

'노동교육'을 반드시 시행하게끔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장윤호 교사. ⓒ 민병래

 
안 그래도 지금 수도권의 특성화고들이 정원을 채우지 못한다는 얘기에 '그거 참' 하고 말았는데 A공고 얘기까지 들으니 장윤호는 우울했다. 벚꽃 피는 순서로 지방대학이 사라지고 도심 초등학교조차 문을 닫는 것처럼 특성화고 또한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걸까?

앞으로 중학교 졸업생들은 특성화고 나와 봐야 좋은 일자리는 말할 것도 없고 취업도 못 하니 대학이라도 나오고 보자며 인문고 진학 쪽으로 더 기울 것이다. 이는 '고등전문기술인력의 확보'라는 전제가 흔들리는 것이고, 우리 사회의 가장 힘든 부분을 떠받쳐줬던 전사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발령 첫해부터 아이들 산업재해문제, 취업문제를 안고 20년간 특성화고 교사로 재직했는데 이제는 특성화고의 존립 문제까지 닥쳐온다. '미래는 적막의 골짜기는 아니겠지', '절망의 벼랑은 더더욱 아닐 게야'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맥이 풀리고 마음이 널브러질 때가 종종 찾아온다.  

장윤호 그는 86학번으로 기계과 공부를 마치고 대우중공업에 입사해 차량과 기차 설계를 했다. 착실하게 직장생활을 이어가던 그가 특성화고 교사로 들어온 건 대학 시절 서울 성수동에서 야학 활동을 한 덕분이다. 10대 중반에서 20대 초의 학생들을 가르치며 보람찬 시간을 보냈다.

교재도 직접 만들었다. 영어는 새우깡 같은 과자 이름을 알파벳으로 써서 가르쳤다. 노동자들 눈높이로 교과서를 만든 것이다. 그때의 행복한 경험을 잊지 못한 장윤호는 직장을 그만두고 교육대학원에 진학했고 99년 임용고시를 거쳐 2001년에 교사로서 첫 발령을 받았다.

부임을 하고 나서 실업계 교사로서 고민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인문계고에서 성적이 좋은 아이들을 가르쳐 보고 싶었다. 그때 아내가 "당신이 기계 전문간데 누구에게 맡기려고 그래" 하며 장윤호를 붙잡아주었다. 그로부터 20년 넘게 특성화고 학생들, 어린 노동자들과 부대꼈다. 지금은 기계과 전문가를 넘어 '노동교육' 전문가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못다한 이야기>

① 장윤호 선생은 2022년 3월 2일 자로 교사로 처음 부임했던 A공고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약간은 설레기도 하고 어떤 일어 일어날까 궁금하기도 하고..."라고 소감을 말했습니다.

② 장윤호 선생은 노동교육에 보람을 느끼면서도 특성화고의 존립 문제가 다가오면서 미래에 대한 답답함이 제일 힘겨운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이런 고민을 한 줄의 문장,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하고자 필자가 생각하다가 '적막의 골짜기 절망의 벼랑'이라는 싯구가 떠올랐습니다.

이 구절은 일본 근대시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하기와라 사쿠타로'(1986~1942)의 <귀향>에 나옵니다. 임용택 시인의 번역을 유종호 교수가 그의 책 <작은 것이 아름답다> 101쪽에서 해설과 함께 소개합니다. 번역의 원문은 "과거는 적막의 골짜기로 이어지고 미래는 절망의 벼랑으로 향했어라"입니다. 이 구절을 빌려 표현했음을 밝힙니다.

③ 장윤호 선생이 새롭게 만들자고 제안한 '국가교육총론' 전문은 아래와 같다.
"우리나라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간존엄과 노동존중 정신을 바탕으로,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 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④ 이글은 본 기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pmsigni)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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