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넘어 '시간'까지 담은 세계적 지도, 이겁니다

[강리도로 역사를 다시 쓴 외국 사례들] 강리도의 가치

등록 2022.02.11 16:20수정 2022.02.1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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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권이 넘는 지리역사서(22개 언어로 번역)를 펴낸 펠리페(Felipe Fernandez-Armesto)의 저서 <1492>(2009)는 당시 아시아에서 나온 가장 뛰어난 지도가 '강리도'라고 전제하고 그 의미를 세계사적 맥락에서 짚는다. 내용 일부를 전하자면 이렇다.

"<강리도>는 거대하고 상세한 한국으로부터 허술하지만 약 100개의 지명을 새겨 넣은 유럽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의 광대한 영역을 보여준다. 중국은 넓고 상세하며 인도의 형태는 인식할 수는 있지만 미흡하다. ……이 지도는 긍지와 포부를 발산한다-지구적 시야를 추구했고 그러한 시야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당시 이 지도가 한국에서 일으켰던 흥분은 1492년의 지구의가 뉘른베르크에서 불러일으켰던 그것에 상당했다."


여기에서 지적하는 '지구적 시야global vision'는 강리도 가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강리도의 지리적 공간은 동으로는 동해와 울릉도로부터, 서로는 대서양상의 아조레스에 이른다. 북으로는 러시아 지역으로부터, 남으로는 아프리카의 남단과 그 아래의 망망대해에 이르고 있다. 이 놀라운 초광역 공간은 인공위성에서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동반구 보다 그 영역이 넓은 것이다. 아래와 같이 대조해 보자. 
 

원형강리도 강리도의 원형 이미지 ⓒ 김선흥

동반구 인공위성에서 바라보는 동반구. 우단 동그라미는 한반도를 가리킴 ⓒ 구글

 
1402년 조선 왕국에서 강리도라는 지도가 만들어지기까지, 동서양의 어떤 지도도 그만큼 넓은 지리 영역을 사실적으로 그리지 못했다고 본다. 이 점이 강리도의 독보적인 세계사적 가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강리도는 지리적 공간만 담은 것이 아니다. 천하고금의 시간을 또한 담았다. 이를테면 전설적인 중국의 요순시대 정보를 찾아볼 수 있고, 고대 이집트 알렌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도 오층 석탑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강리도는 동서고금의 시공간이 새겨진 시공 캡슐인 셈이다.

강리도의 그러한 특징에 주목한 책을 하나 소개한다. 호주 대학의 역사학자 테사 모리스 스즈키 (Tessa Morris-Suzuki)가 최근 출간한 <역사의 전선前線에서-동아시아 경계를 다시 생각하기 ON THE FRONTIERS OF HISTORY- RETHINKING EAST ASIAN BORDERS>(2020)는 르네상스 이후의 정치적 세계지도들이 국경이 분명해진 국민국가의 개념을 표현했을 뿐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개념에 심오한 혁명을 가져왔다고 강조한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 책은 르네상스 이전의 강리도를 먼저 살펴볼 것을 주문한다. 강리도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공간 뿐 아니라 시간을 기록한 점이 강리도의 또 다른 중요한 가치임을 이 책은 강조한다. 직접 저자의 강의를 들어보자.

"르네상스 후기의 정치적 세계지도들은 시간과 공간의 개념에 있어서 심오한 혁명을 보여준다- 그것이 관찰자에게 잘 포착되지는 않지만. 그러한 혁명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는 16세기 이전 가장 탁월한 지도를 살펴보는 것으로써 시작하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다. 1402 <강리도>가 그것이다. 조선 왕조 초기 한국에서 나온 강리도는 흔히 당시 '동아시아에서 나온 가장 완전한 지도'라고 일컬어진다. 사실 강리도는 동아시아뿐 아니라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지도였을 것이다….<강리도>의 유래와 중요성에 대해서는 폭넓게 논해졌다. … 그러나 이 지도에서 가장 흥미롭고 두드러진 특징은 그것이 공간뿐 아니라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 (이 책의 34쪽)

강리도라는 진귀한 인류 문화유산은 어느 나라의 누가 만들었느냐에 상관없이 지도 자체의 사료적 가치가 진귀하다. 강리도에 실린 지리적 공간과 역사 정보는 먼 훗날 16세기 서양인에 의해 이루어진 '지리상의 대발견'을 무색하게 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한다. 나라 밖의 지리 역사학자들이 강리도에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하는 까닭이 그러하다.


"강리도는 역사학계에 큰 진동을 불러일으켰다 引起了歷史學界相當大的震撼."
- 葛兆光(중국 푸단대학)

"지도의 영역이 모든 사람을 경악하게 한다."
- 미야 노리코(교토대)

"지도의 정확성에 아연실색하게 된다(be astounded)."
- The Human Record vol.1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지도역사에서 획기적인 성취(epochal achievement)이다."
- <Encyclopaedia of the History of Science, Technology, and Medicine in Non-Western Cultures>

"(<강리도>에 나타난) 유럽 중심의 세계관을 간단히 뒤엎는 객관적인 사실은 누가 보아도 명확하고 부정할 수 없는 것으로서, 볼수록 '충격적인 메시지'로 다가온다."
- 스기야마(교토대)


지금으로부터 꼭 620년 전인 1402년의 음력 8월 어느 날 개성(1399-1405 간 조선의 수도)에서 오늘날 세계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세계지도가 탄생했다. 이 지도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많은 이야기를 하나, 그 속에는 아직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이 많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알프스산맥이 연이어 달리고 있는 모습, 그 산맥에서 발원하여 베네치아 쪽으로 흘러가는 아디제(Adige) 강, 베네치아 일대의 굴곡진 해안선, 나아가 산 마르코 대성당 등이 그렇다. 

유럽의 다뉴브강과 아프리카의 나일강은 물론이고 남아공의 오렌지 강, 이태리의 아디제 강, 팔레스타인 지역의 요단강, 중앙아시아의 방황하는 호수, 러시아의 고도 데르벤트와 성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대성당, 이베리아 반도의 서단 호카 곶...

그것들이 600여 년 전 선조들이 물감에 붓을 적셔 비단에 그린 지도에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런 사실이 지도의 모국인 한국에 여태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또한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중화주의가 강리도의 결함이라는 강고한 '강리도 중화론'에 학생들이 밑줄 긋고 있는 나라가 모국이라는 아이러니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연재를 마친다.
#강리도 #중화론 #펠리페 #모리스 스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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