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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좋은 노동시간'을

[차이를 좁혀 평등하고 건강한 노동시간으로①] 택배, 라이더, 그리고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등록 2022.03.10 18:36수정 2022.03.1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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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들이 1월 6일 오후 서울 중구 CJ그룹 본사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 돌입 및 4차 총파업 대회’를 열고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 이행과 이재현 회장의 책임있는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벌써 2년이 넘게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 판데믹으로 전반적인 경제활동과 노동이 위축된 가운데 눈에 띄게 노동강도가 증가한 사람들 또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택배 노동자가 대표적이다. 택배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은 '사회적 합의'에 따라 어느 정도 개선되는 듯 했으나 얼마 전까지 파업이 지속되었다. 가장 중요한 합의사항인 과로사 방지를 위한 장시간 노동 근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이후 이미 작년 6월 시점에 스무 명 남짓의 택배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택배 노동자 과로사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합의의 핵심 내용으로 주당 노동시간을 60시간 이내로 줄이는 것이 정부가 마련한 표준계약서에 포함되었다.

우리나라의 노동시간 제도는 주 40시간제이다. 과거의 잘못되었던 행정해석을 바로잡아 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최대 주당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한 이후 '주 52시간제'라는 용어를 빈번하게 듣고 있지만 엄연히 한국의 근로기준법상 표준 노동시간은 주 40시간이다. 주당 60시간은 뇌심혈관계질환이 과로로 인하여 발생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극단적인 수치이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많은 동료를 과로사로 잃고 파업으로 싸운 후에야 60시간이라는 장시간을 최대 노동시간으로 겨우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코로나19 판데믹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의 직종으로 배달 라이더를 들 수 있다. 작년 연말, 고용노동부는 전국 17개 음식 배달플랫폼 업체의 5600여 명의 배달 노동자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1). 보통 배달노동은 전업노동이라기 보다 젊은이들이 잠시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의외로 배달이 전업인 경우가 68%, 부업인 경우가 32%로 전업인 경우가 훨씬 많았다. 전업인 경우 평균 배달 일수는 주 5.8일에 달했으며 주 7일 배달한다는 응답자도 무려 18.9%를 차지했다. 하루 평균 업무시간은 전업의 경우 평균 9.4시간으로 발표되었으나 조사 결과를 자세히 보면 하루에 12시간 이상 배달한다고 응답한 경우가 전업 배달노동자의 22.5%에 달했고 평균값 9.4 시간은 이들을 모두 12시간으로 간주하고 계산한 값이었다. 표준적인 노동시간이라 할 수 있는 8시간을 초과하여 일하는 배달노동자는 모두 67.3%에 달했다. 하루 노동시간과 주당 근무일수를 보면 이들이 얼마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취약노동자의 대표적 사례인 농축산업 이주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어떨까. 지구인의정류장과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 노동자건강증진센터가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63명의 건강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너무나 열악한 노동조건에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응답자 10명 중 4명은 하루 평균 10시간 넘게 일한다고 답했는데, 농축산업 이주노동자가 69.7%를 차지했다. 한 달 동안 쉬는 날은 39.7%가 "2회 이하"라고 답했다. 과로사 업무관련성 평가시 만성과로로 인정하는 주 평균 60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는 33.4%에 달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모두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로 하는, 소위 필수노동이라 부를만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지만 근로기준법의 근로시간·휴게·휴일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집단이다. 아예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근로시간 규정의 적용 제외 대상에 해당하는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노동시간 대비 매우 낮은 임금 때문에 생계와 맞바꾸고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이기도 하다.

'평균' 노동시간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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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현황을 보통 평균 연간 노동시간으로 표현하지만, 평균값은 노동시간을 지나치게 단순화할 수 있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우리나라의 노동시간 현황은 보통 OECD 통계에서 발표하는 연간 노동시간으로 표현된다. OECD 평균 노동시간과 비교하거나 OECD 가입국 중 가장 노동시간이 긴 축에 속한다는 평가가 단골처럼 등장한다. 이 수치를 다시 한번 짚어보자면 2020년 기준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1908시간으로 OECD 평균 노동시간 1687시간, OECD 가입국 중 가장 짧은 노동시간을 보이는 독일 1332시간에 비해 연간 OECD 평균보다 221시간, 독일보다는 576시간 더 길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당시 임기 내 연 1800시간 노동시간을 실현하겠다고 공약을 내걸었으나 결국 지켜지지는 못했다.

300인 이상 사업장에 52시간제가 적용된 이후 한국의 노동시간이 줄어 2018년 드디어 연간 2000시간 노동의 벽을 허문 것은 고무적이라고 평가하는 해석도 있는 듯 하다. 그러나 단 하나의 수치로 표현되는 평균값은 그 계산에 포함된 무수히 많은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지나치게 단순화해 정작 중요한 사실을 가려버릴 수 있다.특히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평균 노동 시간을 줄이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는 단시간 노동, 초단시간 노동이다.


통계청에서 발표하고 있는 경제활동인구조사에 의하면 주당 노동시간 1~14시간의 초단시간 노동자는 2011년 84만명에서 2021년 151만명까지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2017년 96만명과 비교해도 최근 특히 가파르게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초단시간 노동은 주로 여성, 고령, 중졸 이하 등 우리 사회 취약층에 주로 집중되어 있고 주휴수당이나 사회보험, 퇴직급여와 같은 법적인 보호에서도 제외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초단시간 노동시장의 성장에 대해 분석한 문지선·김영미(2017)의 연구에서 초단시간 근로는 저학력 고령층 여성, 특히 사별 또는 이혼한 여성을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어 여성의 일-가정 양립이나 경력단절에 초점을 둔 정부의 시간제 근로 장려 정책의 결과로 보기 어렵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배우자가 있는 여성의 경우에도 육아나 가사의 이유로 노동시간의 이점을 보고 선택하는 고용형태가 아니라 원하는 일자리가 없거나 생활비가 필요해서 초단시간 근로를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보고하였다.

생계가 급급한 취약한 노동자는 '나쁜' 일자리라 할 수 있는 초단시간 노동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소득 보전을 위해 장시간 노동을 선택하기도 한다. 신영민·황규성(2016)의 한국의 노동시간 계층화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노동패널(1998-2014) 자료를 이용하여 분석했을 때 표준시간 노동자의 경우 시간당 임금은 1만 3200원으로 주당 노동시간은 41.4시간이었으나 장시간 노동자의 경우 시간당 임금은 6680원으로 주당 노동시간은 58.3시간에 달하였다. 고용노동부에서 수행한 2020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고용형태별 시간당 임금 총액의 경우 정규직이 가장 높은 2만 731원임에 비해 파견·용역 노동자는 1만 2338원으로 가장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월 노동시간은 정규직의 179.8시간 다음으로 파견·용역 노동자 173.5시간으로 높은 수준을 보였고 남성 노동자로 한정할 경우 정규직 182.1시간, 파견·용역 노동자 186.9시간으로 파견·용역 노동자가 고용형태 중 가장 장시간의 노동 시간을 보였다. 

요약하자면, 한국의 평균 노동시간이 점차로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흐뭇하게만 바라볼 수가 없고 양 극단의 노동시간을 차지하고 있는 취약한 노동자를 표준노동시간을 향해 끌어당겨야 하는 중요한 과제가 우리 사회에 있다는 것이다.

모든 노동자들에게 '좋은 노동시간'을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 동안 노동 이슈가 매우 빈약했지만 노동 이슈 중 그래도 주4일제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현재의 이중화된 노동시장과 주40시간제 도입 이후 무려 20여 년이 걸려 바로잡은 최대 연장근로시간 제한의 경험을 고려할 때 국가적 제도로서 주4일제의 혜택은 상당히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시간의 불평등을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고 주4일제에 매몰된다면 현실 노동시간의 더 큰 문제를 놓치게 될 수도 있다. 누구나 좋은 노동시간을 누릴 수 있도록, 먼저 근로기준법에서 정하고 있는 40시간 노동이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정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규정에서 적용 제외가 되는 농축산업 노동자, 특례조항으로 인해 제외되는 운송업, 보건업 노동자들이 모두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 무료노동을 조장하는 포괄임금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업장 규모 면에서 가장 노동조건이 열악하지만 근로기준법에서 아예 적용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법 적용 확대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젠 더 이상 특수한 집단이 아니라 일상이 되어 버린 특수고용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시간 역시 제도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누구나 좋은 노동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충분한 소득이 보장되어야 한다. 미국 대선주자로 나서기도 했던 버니 샌더스의 말처럼 "주 40시간 일하는 사람이 가난해서는 안 된다"가 최저임금의 획기적인 인상으로 가난해서 오래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없애야 할 것이다.

1)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기준과, 보도자료 <고용노동부, 음식 배달플랫폼 사업장 점검 결과 발표> 2021. 12. 27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한노보연 회원이자 직업환경의학전문의인 이혜은 님이 작성하였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일터' 3월호에도 게재됩니다.
#노동시간 #택배 #이주_농축산_노동자 #장시간_노동 #초단시간_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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